'닝구타 버일러 세력'이란 후금의 건국군주 누르하치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집단의 지도자는 총 여섯 명이었으며 모두 교로 하라의 '푸만'이라는 버일러에게서 태어난 이들이었다.
그들 집단이 '닝구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이 여섯 명 이었기 때문으로 유추된다. 여기서 닝구(ninggu)는 여섯 이란 뜻이다. 즉 닝구타 버일러 세력이란 '여섯 버일러가 통치하는 세력'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초기 지도자들은 앞서 말했듯이 푸만의 여섯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장남부터 막내순서로 더시쿠(desiku), 리오찬(liocan), 소오창가(soocangga), 기오창가(giocangga), 보올랑가(boolangga), 보오시(boosi)였다.
이 중에서 장남~사남이었던 더시쿠, 리오찬, 소오창가, 기오창가는 물려받은 재산이 부유하여 나름대로 집안이 풍성했으나 오남 보올랑가와 육남 보오시는 상대적으로 빈궁한 처지였다고 한다.
이 여섯 버일러는 평소에는 흩어져서 살다가 적의 침입을 받을 때나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든 외부 세력을 공격해야 할 때에는 힘을 합쳤다. 그들의 근거지는 만주실록에 의하면 더시쿠는 기오르차, 리오찬은 아하 홀로, 소오창가는 홀로 가샨, 기오창가는 허투 알라, 보올랑가는 니말란, 보오시는 장기야였으며 이 근거지들 말고도 여러 치하 마을들이 존재했다. 위에 언급된 거점들은 세력 지도자들이 기거했던 중심 거점들이며 그 외의 마을들은 분가를 한 아들들이나 그들의 구추들이 꾸린 마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1
한편 위의 여섯 버일러들은 수많은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2세대로 활동했다. 버일러들과 그들의 자식을 연결지어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버일러 더시쿠는 수허천 다이푸, 탄투, 니양구 피양구를 아들로 두었다.
둘째 버일러 리오찬은 루후천, 마닝거, 먼투를 아들로 두었다.
셋째 버일러 소오창가는 리다이, 우타이, 초키 아주구, 롱돈, 피옹돈2를 아들로 두었다.
넷째 버일러 기오창가는 리둔, 어르구원, 자이칸, 탘시, 타차 피양구를 아들로 두었다.
다섯째 버일러 보올랑가는 두이친, 렁던을 아들로 두었다.
여섯째 버일러 보오시는 캉기야, 아하나, 아두치, 도르호치를 아들로 두었다.
여기서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만문사료들(현행전례, 만주실록등)을 보면 1583년 음력 8월 '보오시의 아들 캉기야, 초키타, 기오샨 세 명이 모의하여 하다의 군대를 불렀다'는 서술이 있다. 그런데 정작 계보상에는 초키타와 기오샨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만문사료의 해당 문장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583년 음력 8월에 발생했던 후지 전투를 언급한 만문사료들을 보면 초키타와 기오샨이 '보오시의 아들'에서 구분되지 않아 보오시의 아들의 범위를 나눌 수가 없다. 그러나 후지 전투를 언급한 한문사료(청태조실록, 만주실록 한문본등)들을 보면 '보오시의 아들 캉기야'와 '초키타', '기오샨'이 독립적으로 서술되어 구분됨을 알 수 있다.3
즉, 1583년 음력 8월에 '하다'를 찾아가 그들에게 군대를 요청한 것은 보오시의 아들 캉기야, 초키타, 기오샨이 아니라 '보오시의 아들 캉기야'와 반 누르하치파의 또 다른 인물들인 초키타, 기오샨이었다.
어쨌든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2세대는 위와 같이 정리되었다.
이제 누르하치와 동세대, 즉슨 닝구타 버일러의 3세대를 살펴보자.
3세대는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더시쿠계
부친 수허천 다이푸 : 후싱가, 구왕두 / 부친 탄투 : 탈차 / 부친 니양구 피양구 : 와르하, 코르하
-리오찬계
부친 루후천 : 솔호 / 부친 마닝거 : 없음 / 부친 먼투 : 아르구타
-소오창가계
부친 리다이 : 저천, 바이타, 솔고타, 후시타 / 부친 우타이 : 룩수, 우워이춘, 우바타이, 동고로, 성거, 왕샨4 / 부친 초키 아주구 : 아둔5
부친 롱돈 : 치버리, 이바리, 도피, 사할차, 코왈차, 도보호이, 리다이 / 부친 피옹돈 : 없음
-기오창가계
부친 리둔 : 보이고치 / 부친 어르구원 : 없음 / 부친 자이칸 : 없음 / 부친 탘시 : 누르하치, 무르가치, 슈르가치, 야르가치, 바야라
부친 타차 피양구 : 고르하치, 다르호와치, 루쿠 기오하
-보올랑가계
부친 두이친 : 러터이, 자친, 샹구리 / 부친 렁던 : 벌리연, 우바시호, 사하시호, 길다시호
-보오시계
부친 캉기야 : 함부, 람부, 룸부, 툼부루 / 부친 아하나 : 탄치부 / 부친 아두치 : 아라부 /부친 도르호치 : 없음6
위와 같은 인물들이 닝구타 버일러 세력을 구성하였다. 닝구타 버일러 세력은 기오창가와 탘시가 명군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후 사실상 둘로 갈라졌는데 하나는 누르하치의 거병에 동참한 이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에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친 누르하치 세력은 점점 커졌고, 반 누르하치 세력은 점점 약해져 종국적으로 누르하치가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대부분을 산하에 두게 되었다. 누르하치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전향을 하여 누르하치에게 숙이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누르하치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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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각주
1.최소한 닝구타 버일러 세력과 동고부간 전쟁[16세기 중후엽, '닝구타 버일러' 세력과 동고부의 갈등 (리뉴얼) 참조]이 벌어질 당시에는 총 12개의 마을이 닝구타 버일러 세력 아래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행전례 인용
2.후금의 오대 개국공신 피옹돈과는 동명이인
3.예컨대 청태조실록은 이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六祖寶實之子康嘉、與綽奇塔、覺善、三人同謀/육조 보오시의 아들 캉기야와 '더불어' 초키타와 기오샨 세 명이 모의하여~
4.우바타이와 동고로는 동일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게 구분한다.
5.원문은 아두라고 되어 있으나 보다 유명한 표기인 아둔으로 기입한다.
6.이상까지 현행전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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