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누르하치의 거병 초기 무렵, 닝구타 버일러 연맹의 보올랑가(boolangga)계는 그의 아군으로 활약했다. 거병 초기 무렵 자신의 매부인 가하샨 하스후가 암살당했을 당시 이에 분노한 누르하치가 그의 시신을 수습코자 했을 때, 보올랑가의 차남인 렁던(lengden)은 그것이 누르하치를 꾀기 위한 함정일 것을 우려하여 누르하치에게 일단 자제할 것을 설득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고1, 보올랑가의 손자이자 두이친(duicin)의 아들인 자친·상구리(jacin·sangguri)는 그를 도와 원정에 종군하면서 그의 건주여진 통일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물론 자친·상구리의 경우 이전에 글에서 다루었듯이 혼하-자이피얀 전투 당시 갑작스러운 대규모 적군의 출현에 당황하여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타인에게 대행시키려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으나2, 어쨌건 거병 초기 우군이 별로 없던 누르하치에게 상당히 요긴한 지지 세력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자친·상구리는 기록에 따라 한 명으로 살펴지기도, 두 명으로 살펴지기도 한다. 어떤 기록에서는 두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는 반면, 어떤 기록에서는 자친·상구리가 마치 한 명의 인명인 것처럼 서술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친·상구리를 언급하는 기록의 출전이 『실록』계 기록이냐 아니면 『현행전례』냐에 따라, 『실록』이라면 그것이 한문본이냐 만문본이냐에 따라, 또는 『청태조무황제실록』·『만주실록』이냐 아니면 『청태조고황제실록』에 따라, 자친·상구리의 정체성은 모호해져, 그가 자친 상구리라는 한 명의 사람인지, 아니면 자친과 상구리라는 두 명의 인물인지 혼동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자친·상구리는 자친 상구리라는 한 명의 남자일까. 아니면 자친과 상구리라는 두 인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친·상구리는 각각 자친, 상구리로 구분되는 두 사람이며, 두이친의 아들로서 형제관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친, 상구리가 각각 별개의 인물임을 증명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현행전례』이다. 『현행전례』는 누르하치의 초기 생애와 관련하여 『실록』보다 원형에 가까운 기술과 기록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실록』에서는 언급치 않는 기술 역시 많이 내포하고 있다. 『현행전례』에서는 닝구타 버일러 연맹의 가계 역시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보올랑가계의 가계 역시도 언급된다. 여기서 자친과 상구리는 각각 다른 인물로서, 보올랑가의 아들인 두이친의 아들, 즉 보올랑가의 손자로 서술되고 있다.3 두 사람은 순서상 각각 차남과 삼남으로 보이며, 그들 위로 그들의 형인 러터이(letei)가 존재하는 가계도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무황제실록』과 『만주실록』의 한문본의 기술이다. 『고황제실록』에서는 자친과 상구리에 대한 어떤 구분도 없이 두 이름이 합쳐 서술되어 마치 자친·상구리가 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4하지만 최초로 편찬된 청태조계 실록이자 가장 원전적 실록인 『무황제실록』과 그것을 모토로 건륭 시기에 이루어진 개국 역사 편찬 작업의 일환으로서 편찬된 『만주실록』의 한문본에서는 두 사람을 '2인(二人)'으로 명시함으로서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5
다만 염두에 둘 것은, 만문본 『무황제실록』과 『만주실록』에서는 마치 『고황제실록』의 한문본과 같이 자친, 상구리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6 그렇기에 자칫 현대의 관점에서 두 판본의 실록을 살핀다면 만문본 실록에서는 자친·상구리를 구분하지 않았는데 한문본에서 오독, 오역, 오기를 하여 자친·상구리를 임의로 구분했다는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만문본 실록에서 자친·상구리에 대해 따로 구분을 하지 않은 것은, 당대 실록 편찬측의 입장에서 만문본 실록 내에서 자친·상구리 두 사람을 굳이 2인으로 확실히 구분하지 않더라도 오해될 문제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한문본 실록에서 두 사람에 대해 명확히 2인(二人)으로 구분을 한 것은 한문본의 경우 여진인명을 한문으로 옮겨 적음으로서 오독의 소지가 존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미 『현행전례』에서 자친과 상구리, 두 사람이 구분되는 이상, 두 사람은 자친 상구리(jacin sangguri)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기 보다는 자친과 상구리, 두 사람의 형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수용하여, 『청사고』 열전에서도 역시 자친과 상구리를 각각 다른 인물로 구분하고 있다.7 이런 점을 보건대, 자친·상구리는 '두이친의 아들 자친 상구리'라는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두이친의 차남과 삼남으로서 태어나 활동한 자친과 상구리 형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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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주실록』 권1 갑신년 정월.
2.『만주실록』 권2 을유년 4월.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1853577
3.『현행전례』, boolangga sunjacin de banjihangge duicin, lengden. duicin de banjihangge letei, jacin. xangguri.
4.『청태조고황제실록』 권2 을유년 4월, 有尼麻喇城、五祖包朗阿孫、札親桑古里、見敵眾。大懼。解其甲與人。
5..『청태조무황제실록』 권1 을유년 4월, 太祖見其兵阵於界凡、浑河、直至南山,約八百余。有夹陈、桑古里'二人'豹郎刚之孙也,見敌兵大恐,解其甲與人。; 『만주실록』 권2 을유년 4월. 有扎親, 桑古哩'二人'寶朗阿之孫也, 見敵兵大恐, 解其甲與人.
6.『만주실록』 권2 을유년 4월, jacin sangguri golofi etuhe uksin besufi gvwa de etubuhe manggi.
7.『청사고』 권226 열전 13 기오로 바이산 열전, 太祖起兵之三年,攻哲陳部托漠河等五城,合兵戰於界凡,包朗阿諸孫札親、桑古里皆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