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그냥 시대사 이야기를 조금 썼는데 이번엔 제도사 이야기나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특히 작위, 쉽게 말하면 칭호에 관련해서 조금 이야기해볼까 해요. 그 전에
유게이들이 좋아하는 꼴짤부터.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최근에 유명했던
현종....이 아니라. 그 아들인
덕종으로 얘기해볼겁니다.
우선 「고려사」 현종편을 조금 인용해볼게요.
이 내용은 우리 현쪽이가 아들 왕흠, 이후의 덕종을 연경군으로 책봉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번 내용의 핵심은 밑줄친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사도(開府儀同三司 檢校太師 守司徒) 겸 내사령 상주국 숭인광효보운공신(內史令 上柱國 崇仁廣孝輔運功臣)라는 칭호입니다.
이 칭호는 고려 전기 봉작제도를 공부할 때 교과서처럼 나오는 이름이거든요.
엩 그냥 대충대충 붙여놓은거 아닌가요?
저기에는 단어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데, 그럼 우선 첫번째 '개부의동삼사'부터 보겠습니다.
개부의동삼사는 문산계 종1품이라는 최고 위치에 속해있습니다.
문산계가 뭐냐는지부터 설명하면 길어지는데,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비유하기 딱 좋은 장면이에요.
문산계는 관직과는 다른 의미의 직위입니다. 실제로 권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한 직위에 있다는 걸 상징하는 제도가 고려의 '관계' 및 '문산계' 였습니다.
그리고 개부의동삼사는 그 문산계의 종1품, 맨 꼭대기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왜 정1품이 아니라 종1품이냐고요?
그냥 고려는 정1품을 완전히 비워놨습니다. 정1품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관직이 아니다...이거에요.
다음은 '검교태사'입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이번엔 검교직이라는걸 설명해야 되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명예직입니다.
그래서 이런 검교직은 '검교+관작'식으로 만들었어요. 즉 '검교+태사=검교태사=명예직'이 된겁니다.
그럼 다음, '수사도'로 넘어가볼게요.
수사도는 '종실 인원'에게만 줄수 있는 작위였습니다.
현종의 아들 왕흠은 당연히 종실 인원이죠? 그것도 장자죠? 그래서 그 중에서도 제일 높은 '수사도'를 준겁니다.
다음은 4번째 작위명인 내사령입니다. 내사령은 중서령이라고도 불려요.
그런데 이 중서령이라는 직위는 꽤나 특위한 작위입니다. 혹시 이 두 단어 들어보셨을까요?
자, 우선 중서문하성(이 시기에는 내사문하성이지만 손에 익은 대로 쓸게요)은 고려 정치의 핵심 기구였습니다. 조선으로 따지면 의정부겠네요.
재상은 역사소설 조금 읽어 보신 분들은 들어보셨겠지만 보통 최고위 관직들을 얘기하죠.
고려의 경우에는 중서문하성에 속한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재신, 즉 재상이라 불렀습니다.
이 재신에 속하는 관직은 문하시중, 문하시랑평장사, 문하평장사 등등 총 9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중서령은 이 안에 속해있으면서도 유일하게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습니다. 중서령을 받는 경우는 3가지였어요.
1. 종친
2. 사망한 신하에게 주는 증직
3. 공을 세운 신하에게 주는 치사직
왕흠의 경우에는 1번, 종친이라 받은거죠.
이제 5번째 '상주국'입니다. 이건 '훈직'이라는 제도에 속합니다. 훈직은 상주국과 주국, 둘로 나뉘는데 당연히 上이 붙은 상주국이 더 높습니다.
이 훈직의 역할이 궁금하실거 같은데, 훈직은 '원래는'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직위입니다. 그럼 왕흠은 공이 있냐고요? 왕자니까 태어난게 공?
근데 왕흠은 '아무런 공도 없지만' 훈직을 받았죠. 사실 훈직은 신하에게 거의 주지 않는 직위입니다.
어디까지나 '군'으로 봉해진 왕자 왕흠의 칭호를 더 높혀주기 위해 붙여주는거죠.
그럼 마지막으로 제일 긴 '숭인광효보운공신'입니다. 마지막 단어 공신만 봐도 아시겠죠.
공신호라고 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왕흠은 딱히 공은 없죠? 그렇지만 왕자이기 때문에 달 수 있는건 다 달아준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공신호까지 달아준겁니다.
이렇게 왕흠의 봉작에 달려있는걸 다 보면...뭔가 주렁주렁 달리긴 했지만, 실권은 하나도 없죠,
그렇지만 이렇게 봉작호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내다보면, 이런 저런 사람의 권력이나 당시 정치적 위상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