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까지만 쓰고 개론서나 더 읽어야지.
꼴짤부터 올리고
지난 글에 광종까지 썼고...
광종 다음에 경종이 왕위에 오른것부터 시작합시다.
경종은 광종이 신나게 강화해 놓은 왕권을 더더더욱 강화하기 시작했어요. 경종의 혼인 상대들부터 보면..
헌숙왕후 김씨 : 경주계(구 신라계)
헌의왕후 유씨 : 충주 유씨
헌애왕태후 황보씨(천추태후), 헌정왕후 황보씨 : 황주 황보씨
유명한 이름도 보이죠. 천추태후...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개국공신 가문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경종은 광종의 숙청 이후 완화를 위해서 밀려났던 개국공신 가문을 다시 포섭합니다. 물론 이들은 이제 왕권을 위협할 정도의 힘은 잃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런데 왜?
답은 이전에 광종이 시행했던 제도들 중에 있습니다.
과거제와 관료제로 인해서 정계에 발을 들인 신진관료 세력이죠.
경종은 혼인을 통해 포섭한 유력 가문, 그리고 과거로 입시한 관료세력...이 둘에게 한 가지를 시킵니다.
경종은 두 세력이 상호 견제하도록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왕권을 더더욱 강화합니다.
이 두 세력은 서로 정쟁하고 견제하면서 약화되고, 이렇게 밀려난 이들은 경종의 정치세력으로 흡수되죠.
그리고 경종은 이렇게 정리된 관료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한 가지 제도를 더 실시합니다. 이거 수능이랑 시험에 잘 나오니까 밑줄그어두세요.
경종이 실시한 전시과는 고려의 관료제도를 완벽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관료제의 근본은 명예와 경제적 기반인데, 경종은 이 관료들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해서 관료제를 완성한겁니다.
이렇게 고려는 잘 굴러가게 되고, 그 다음으로 경종의 이복종제인 성종이 즉위합니다.
...? 왜 아들이 아니라 이복종제가? 당연한 이유입니다. 장자인 목종은 어렸으니까요.
성종은 정치적 기반도 적절하고, 능력도 있었기에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준겁니다.
성종은 그런 경종의 기대에 부응하는 제도들을 펼쳐갑니다.
신라대 6두품 출신 유학자(최승로 등), 개국공신가문, 지방 호족 등 다양한 계층을 모두 포섭해오고
외관을 파견하고 향리직을 마련하는 등 지방 통치 체제도 완성하고
2성 6부제로 대표되는 고려의 중앙정치체제도 깔꼬롬하게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종대에 대표적인 개혁안으로 유명한게 있죠. 이거 짚고 넘어가려고 이번 글 썼습니다.
고려 전기 유학자로 대표되는, 최승로와 최승로의 시무 28조입니다.
시무 28조 원문은...각자 찾아보시고. 이번 글에서는 각 조가 가지고 있는 성격만 다뤄보도록 할게요.
첫번째는 불교를 비판하는 2, 4, 6, 8, 10, 13, 16, 18, 20조입니다.
우선 유교국가에서 왕이란 무엇일까요?
왕이란 이념적 차원에서는 천명의 대변자이자, 나라의 주권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법제적 차원에서는 최고 통치권자 및 최종 결정권자이며, 국정은 원칙상 국왕의 결재를 받아야만 실행 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적 의미에서는 입법권과 사법권을 손에 쥐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여기서 유교에 입각하면 한가지가 더해집니다. 天意에 따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입니다.
여기서 천의란 뭐 당연하겠지만 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신하들을 잘 챙겨주는...그런겁니다.
즉 유교적 이념에 입각하면 국왕은 절대적이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국왕이 선을 넘지 않도록 보필하고 왕의 명령을 실행하는 존재가 신하, 관료입니다.
(사진은 조선시대입니다)
고려의 대간들은 여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정에 대한 논집, 그리고 중요한...
서경권, 간쟁권, 봉박 등이 있습니다.
서경권은 인사권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즉 대간의 심의를 받지 못하면 인사행정은 불가하다, 라는 의미가 되죠.
간쟁은 말 그대로 국왕한테 직접 간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봉박은 국왕의 명이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이를 행하지 않고 태클을 걸 수 있는 권한입니다.
물론 이 권한들은 굉장히 강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위험한 권한이기도 했습니다. 국가 최고권자인 국왕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는 권한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대간직은 굉장한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험한 직임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최승로가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상은, 국왕과 귀족관료가 상호 견제하면서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최승로가 말하는 유교적 이념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귀족정치였고요.
그리고 이런 이상적 정치상은 정종-광종-경종-성종까지 S-SSS급 가챠가 터지면서 잘 굴러갔고, 이 시기 고려 초기는 굉장히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