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박용운 선생님의 「고려시대사」개론서 정리하고 있는데
공부하는 겸 유게이들하고도 얘기하고 잠시 숨 돌릴겸 공부한 내용이나 싹 써봐야지
일단 이번에 얘기하려는 내용은 태조에 대한 내용인데
우선 태조의 세력 기반부터 한번 얘기해봅시다.
일단 태조의 세력 기반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견해로 나뉘는데
1. 신라말에 크게 성장한 해상 호족세력이라는 견해
2. 그렇게 강한 세력은 아니거나, 애초에 신분 자체가 높지 않았다는 견해.
이렇게 2가지가 있음.
먼저 첫번째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제시되는건 다음과 같음
태조의 건국신화 및 가문에 대한 신화는 작제건, 강충, 혹은 당 숙종과 연관짓는 설화들이 존재하는데 이 설화들은 공통적으로 '바다'와 관련있음.
태조가 건국 후에 자기 가문을 신성화하기 위해서 만든 설화들이 굳이 '바다'와 계속 관련을 지었다는건 태조의 가문 자체가 바다에 기반을 둔, 이른바 해상세력이라는 추측임.
거기다가 강충~왕륭(용건)대에는 축성이나 노역에 많은 백성을 동원한 기록이 존재하는데, 이건 왕건 가문이 해당 지역의 세력가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함.
반대로 그리 큰 세력이 아니었다는 견해도 존재하는데 여기에도 근거는 있음.
일단 '호경'라는 신분을 자칭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호경이라는 세력은 신라말에는 이미 소멸된 성골 신분이라는 거임. 굳이 없어진 옛날 칭호까지 가져온다? 이건 왕건 가문이 그리 높은 신분은 아니었다는 말이 될 수 있음.
그리고 전술한 건국 및 가문에 대한 설화들로 혈통을 미화하려고 했다는건 왕족이니까 당연한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출신 성분에 대한 콤플렉스로 혈통 미화를 했다는 주장도 있음.
그렇지만 일단 분명한 건 왕건가문은 꽤 오랜 기간 지방 호족 가문으로 존재했을거임.
고려서 1권에 왕륭이 궁예한테 귀부했을 당시 굉장히 환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아마 지방에 상당한 권세를 가진 호족으로써 그 세력이 인정받았다는 얘기로 볼 수 있음. 그런 의미에서 일단 학계에서는 첫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는 편임.
아무튼 태조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천도였음.
알다시피 태조의 기반 지역은 송악, 즉 개경이고 지금의 개성인데, 고려 건국 당시 도읍은 일단 철원이었음. 그렇기에 왕건은 당연히 자기 기반 지역인 개경으로 천도해서 정치적, 군사적 기반을 강화함. 특히 왕건을 따르던 심복들도 대체로 송악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세력을 확고히 해줌으로써 건국 직후의 안정성을 도모했지.
또 외교적으로도 눈에 띄는 정책들로는 일단 외교정책이지. 한반도 내적으로는 신라에 굉장히 우호적, 후백제에는 적대적 스탠스를 취했어.
그런데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점은 후백제와의 관계야. 왜냐면 건국 당시에는 후백제 견훤도 왕건의 즉위를 축하한다는 사절을 보내고, 왕건도 그에 화답하면서 최소 태조 3년까지는 큰 충돌이 없던 걸로 보이거든. 특히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견훤의 신라 공격 이후에야 '비로소 틈이 생겼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단은 고려 건국 극초기에는 정권 불안정으로 인해서 '당장은' 후백제와 싸우지 말자는 의미가 있는 걸수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아.
태조는 한반도 외, 즉 중국에도 외교 시도를 했는데, 이때 중국은 개지랄브루스 추고 있는 시기였지. 5대 10국.
태조가 제일 먼저 손을 뻗은 나라는 남중국지역의 오, 월이었어. 왜냐면 이들은 이미 후백제랑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서 견제할 필요가 있었거든. 하지만 태조의 시도는 결과적으로는 실패했고.
그 외에도 후당에게도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관계 수립을 시도했는데, 사실 후당도 처음에는 고려를 무시했어. 이때 중국 대륙에서는 한반도의 정세를 신라 기준으로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여. 그래서 아마 고려를 국가보다는 지방 세력으로 인식하고 굳이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으려고 한거 같아. 그렇지만 928년을 기점으로 후당은 고려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를 새로 파악하고 고려를 번국으로 책봉하는 관계를 맺었어. 그리고 이때 사절 교류 방식이 정립된 걸로 봐서 완전히 국가 대 국가로 교류한 걸로 보여.
왜 928년이냐 라는 질문도 있는데, 그 2년 전인 926년에 발해가 멸망했거든. 그래서 후당은 고려와 연립해서 한창 성장하는 요를 견제하려는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지.
일단은 이만큼만 쓰고 밥먹으러 가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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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투항 후 얘기고(물론 지방 호족 세력들이랑 후백제 내에 남아있는 견훤 지지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견훤을 잘 대해줘야지) 그 전에도 고려는 후백제랑은 무난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견훤의 신라 공격, 그리고 고려에 보낸 인질의 사망을 기점으로 둘은 다이다이를 까는 사이가 되버리지 | 24.04.22 17:4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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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 24.04.22 18:1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