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걱정/근심/염려의 신인 쿠라가 흙을 가지고 놀다가 자기와 비슷한 형상의 물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제우스가 이 광경을 봤고, 쿠라는 자기가 만든 형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우스는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줬고, 그 형상에 인간이라는 이름도 붙여줬죠.
그런데 쿠라가 인간은 자기 손으로 만들었으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제우스는 자기가 생명을 줬으니 자기 것이라고 맞서면서
뜻하지 않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흙의 신 호무스(혹은 텔루스)가 끼어들어 싸움을 중재….
…하나 싶었는데 인간이 자기가 관장하는 흙으로 만들었으니 인간은 자기 것이라면서
호무스도 소유권 분쟁에 끼어들었고
결국 다툼은 걷잡을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이들은 심판의 신 사튀르(사투르누스)를 찾아가서 판결을 부탁했고
사튀르는 잠시 생각한 후, 이런 판결을 내렸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몸은 흙으로부터 만들어졌으니 호무스가 가져가고
영혼은 제우스가 불어 넣어줬으니 제우스가 도로 가져가거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은 인간을 만든 쿠라의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은 걱정/근심/염려의 신 쿠라의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일생 동안 걱정, 근심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몸이 됐다고 합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대표 저서인 <존재와 시간>에 나온 이야기이자
파페포포 안단테 첫번째 편에서 인용한 ‘인간은 누구의 것인가’.
한 가지 근심이 사라지면 다른 근심이 찾아오는 일이 다반사인 게 인간의 삶이라서
특히나 인상 깊었고 공감도 많이 갔던 이야기입니다.
여담으로 저는 파페포포 안단테를 먼저 접한 후에 중학교 도서관에서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만화로 존재와 시간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 그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어 이거 파페포포에서 본 건데.’라며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