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 옵스퀴르 분석 칼럼 :#2 캔버스의 위험성(부제 : 왜 화가들은 위험해지는가?)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이 게임을 여러 번 플레이하고, 레딧과 여러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토론을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그 재미도 끝내고, 좋은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러나, 아직 제가 할 일이 하나 남은 것 같군요. 바로 헌사를 바치는 일 말입니다.
창작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창작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즐거움’과 ‘감동’일 겁니다. 희극을 보며 웃기도 하고,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죠. 활극에서 활력을 얻기도 하고, 슬래셔물에서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결국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니까요.
그리고 창작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또 다른 큰 선물은 “무엇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실제 삶의 선택 순간에 도움을 얻거나, 인생의 다른 가능성들을 고민해볼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 ‘현실의 눈으로 바라본 Clair Obscur’이라는 주제로 몇 차례 칼럼을 써볼까 합니다. Clair Obscur의 세계는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 사람들이 만들고 즐기는 만큼 현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이 모든 분석과 사유가 제가 이 게임과, 제작자와, 그리고 여러분께 진정한 경애와 존경의 마음으로 바치는 헌사이며, 저는 그것이 제가 바치는 작별 인사로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제 본론인 33 분석 두 번째 칼럼, "캔버스의 위험성(부제 : 왜 화가들은 위험해지는가?)"를 시작하겠습니다.
* 시작하기 전에, 이 칼럼은 #1의 결론을 전제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그 칼럼의 결론은 "현실과 캔버스의 시간 비율은 1:100이다."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해당 칼럼을 확인해주세요.
게임 내에서 엔딩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화가가 캔버스에 오래 체류할 경우 죽게 된다."입니다. 다만 화가가 어째서 사망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선택이 훨씬 모호해지고 많은 망설임과 갈등을 낳고 있습니다.
제작자들이 직접 발표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이 왜 위험한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논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머리가 있죠. 이 머리를 회전시켜서, 그들이 왜 위험한지를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노화로 인한 자연사를 제외하면, 인간의 외부 요인(총격, 고문, 타격, 낙상, 교살, 익사 등)이 아닌 내부 요인으로 사망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요소(공기, 물, 칼로리, 온도, 습도 등)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가가 캔버스 안에 오래 잔류할 경우, 생존에 필요한 '어떤 요소'가 고갈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추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고갈된 것일까요? 이는 크게 '현실적인 이유'와 좀더 '판타지적인 이유',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1. 화가는 왜 위험해지는가? : 현실적인 이유
└ 1-1. 공기의 고갈
└ 1-2. 물의 고갈
1. 화가는 왜 위험해지는가? : 현실적인 이유
캔버스에 다이브해있는 동안 현실의 사람은 정지해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생명활동을 멈추거나,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눈가를 덮은 파란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죠.
이 경우, 캔버스에 다이브하고 있는 사람의 '현실의 육체'는 공기, 물, 음식 등을 필요로 하므로, 이것들이 모두 고갈되어서 죽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1-1. 공기의 고갈
공기의 고갈은 직접적인 위협이 아닙니다. 클레아가 데상드르 가문의 재산을 탐내서 르누아르와 알린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덮어씌우지 않는 한, 그들의 육체 주변에는 여전히 공기가 있으며, 현실의 육체는 의식이 없는 순간에도(잠을 자거나, 기절한 순간) 여전히 자율신경의 도움으로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들의 육체를 노리는 가장 심각한 위협은 탈수입니다.
1-2. 물의 고갈
현실적으로, 캔버스에 다이브한 사람의 육체가 캔버스 내 시간 비율과 같이 1:100 비율로 느린 시간을 보낸다면, 현실에서 그의 육체가 고갈로 사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300일입니다. 인간은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현실에서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틴 최대기록은 12일(한국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이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보통은 3-5일 사이에 죽으니까요.
또는 인간은 신체에 저장된 지방을 분해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낙타의 혹이 그렇듯이 지방을 소모하면서 약간의 물을 생성해 조금 더 버틸 수 있긴 합니다. 특히 살찐 사람들. 그러나 르누아르나 알린은 왜소한 체형이므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겠죠. 아무리 잘 버텨도 5일이 한계일 겁니다.
이 경우, 다이브한 사람의 육체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 현실의 3일, 그의 시간에서 300일을 버틴다면, 1:100의 시간 비율을 가진 캔버스 속 세계에서 그가 보낸 총 시간은 30,000일입니다. 이는 캔버스 내의 시간으로 82.2년입니다.
그러므로 캔버스 안에서 최소 67년을 지낸 르누아르나, 그 이상 지낸 알린은 실제로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이 그림에서 벗어나고 최초로 한 일은 식수대로 달려가 배가 터질 때까지 물을 들이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알린이 기침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현실에서도 탈수에 시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물을 들이마시면 기침을 하니까요.
물론 르누아르의 경우, 선 자세에서 허공에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으므로, 식수대로 가기 전에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을 겁니다. 특히 계속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무릎과, 허공에 들고 있던 팔을 열심히 주물러야 했을걸요. 물론 그 전에 바닥에 쓰러져 팔이 떨어져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도 반드시 거쳐야 했을 겁니다. 당신이 3일간 허공에 팔을 곧게 펴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지옥같은 고통이었을 겁니다.
반대로 알린의 경우, 꼿꼿한 자세로 르누아르보다 더 오래 앉아있었기 때문에 척추 디스크, 치질, 꼬리뼈 탈골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알린이 허우적대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현실에서도 디스크에 시달리는 사람이 앞으로 넘어져 허우적대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2. 화가는 왜 위험해지는가? : 판타지적인 이유
└ 2-1. 크로마의 본질
└ 2-2. 크로마의 대가
2. 화가는 왜 위험해지는가? : 판타지적인 이유
위의 가설은 신빙성이 있긴 하지만 몇 가지 빈틈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눈가의 푸른 일렁임 이외에는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것은 '시간이 멈춘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클레아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옷깃을 여며주거나 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더 확실해졌겠지만, 그녀는 차가운 성격이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클레아와 대화를 나눈다면 "야, 가족을 좀 더 소중히 대해!"라고 이야기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녀는 가족을 좀... 한심하게 보는 경향이 있죠.
어쨌든,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캔버스에 진입시 화가의 육체 시간은 정지된다'라고 가정할 경우, 화가는 과연 무엇의 고갈로 죽게 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는, 바로 게임 내에서 일종의 에너지로 취급되는 '크로마'입니다.
2-1. 크로마의 본질
캔버스의 세계를 창조하고, 순환시키는 것에는 '크로마'라 불리는 특별한 힘이 필요합니다. 이 크로마는 캔버스 내의 창조물들이 받아서 사용하다가, 그들이 죽으면 화가에게로 회수되어 화가의 힘을 재충전합니다.
이것이 고마주가 실행되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한데, 르누아르는 알린보다 약해서 패배하고 모노리스 아래에 짓눌렸지만, 클레아가 창조한 네브론들이 크로마의 회수를 차단해서 알린의 힘을 점점 빼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린은 자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뤼미에르에게 고마주 형태로 경고한 거죠.
이 지점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크로마가 마치 현실세계의 에너지처럼 돌고 돌면서 화가와 창조물 간의 생명을 연결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경우, 캔버스에서 크로마는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순환합니다.
(1) 화가가 세계를 창조하면서, 화가에게서 창조물로 크로마가 전송됨
(2) 세계의 창조물들이 화가에게서 받은 크로마를 이용해 살아감
(3) 창조물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크로마가 다시 화가에게로 회수됨
+ 이 과정을 반복함.
이는 현실 세계에서 물이나 에너지의 순환 과정과 아주 흡사합니다. 다음 두 가지 과정을 봅시다.
(1) 물이 증발하여 대기가 되고-> 비가 되어 내리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하는 물의 순환 과정
(2) 비료나 썩은 것에서 영양을 얻은 식물이 자라나고-> 그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썩으면서 다시 흙에 영양을 공급하고 하는 에너지의 순환 과정
다만 물의 경우 직접적인 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은 아니기 때문에, 크로마는 현실세계의 에너지와 유사하다고 해석하는 쪽이 논리적으로 타당합니다.
현실에서의 에너지는 순환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손실합니다. 정확히 그 에너지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환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상온에서 따듯한 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갈 뿐 자동으로 다시 데워지지 않습니다. 이 사라진 열은 주변의 공기중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소멸한'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이 열을 다시 거둬들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소멸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이며, 엔트로피는 고립계 내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에너지의 소실이 꾸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고립계는 멸망, 정확히는 완전히 정지한 상태로 고정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른 종말", 정식 용어 "열적사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지구가 고립계가 아니며, 태양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보충받기 때문에 열적사 현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캔버스는 고립계이며, 그 안에서 순환하는 크로마는 명확한 총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경우, 캔버스 내에서 순환하는 크로마의 총량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 것이고, 그래도 캔버스 세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다른 대가를 추가로 치러야 할 것입니다.
2-2. 크로마의 대가
위 분석에 따르면, 크로마가 '창조물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에너지'의 일종이란 것이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현실에서의 '생명력'과 같거나, 혹은 상호 치환될 수 있는 존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많은 창작물에서 바로 이런 식으로 '생명력'을 이용하는 초능력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초능력자들은 대체적으로 초능력을 과도하여 헐떡거리거나, 생명력의 한계까지 초능력을 사용하여 생명력 고갈로 사망합니다.
이 경우, 화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크로마를 그림에 전송함으로써, 캔버스 세계를 구현하고, 생명력이 고갈되기 전 캔버스에서 탈출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가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캔버스에 쏟아붓는다면, 현실의 육체가 생명력의 고갈로 사망할 때까지 캔버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작은 가능성
마엘의 엔딩에서, 우리는 그녀의 얼굴에 펼쳐지는 무늬가 로르샤흐 테스트의 모양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정신력의 고갈과 그로 인한 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이 정신력의 고갈로 사망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는 마엘이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짐을 나타내는 장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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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재미를 드릴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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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칼럼: #1 현실과 캔버스의 시간 비율(부제 : 캔버스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가?)
분석 칼럼: #2 캔버스의 위험성(부제 : 왜 화가들은 위험해지는가?)<-
분석 칼럼: #3 마엘은 행복할까? (부제 : 베르소의 선택이 가진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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