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여진족, 그리고 그로부터 계승되는 만주족의 여인들은 대부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질이 상무적이고 전사다웠다. 그들은 남자들처럼 말을 타거나 함께 사냥을 하기도 했으며 아예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금이 건국된 뒤에도 그 기질은 사라지지 않아서 외부원정에 차출된 장정들이 군사작전에 종군하는 동안 마을에 남은 장정들과 함께 방위근무를 서며 방어공백을 메꾸거나 아니면 아예 남자들과 함께 원정에 종군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진-만주족 여성들의 기질은 청이 입관한 뒤에도 이어졌고 오랜 시간 한족 여성들과 구별되었다.
후금이 건국되기 전, 누르하치의 공신중 한 명이었던 호호리의 아내1가 보여준 모습이 이런 여진-만주족 여인들의 호전성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일 듯 하다.
1588년 음력 4월, 한참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누르하치는 이전에 자신과 충돌했던 해 여진계 세력 '하다'로부터 정략혼인을 제안 받았다. 그것은 하다의 적법한 계승자이자 당시 명나라의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내외부적 위기를 벗어난 '다이샨'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누르하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었다.
누르하치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다이샨의 여동생이자 전대 하다국주(beile) 후르한의 딸이었던 아민 저저를 후처중 한 명으로 맞이하였다. 그런데 이 때 아민 저저를 호위하여 함께 누르하치를 만나고 그에게 귀부의사를 표한 사람이 바로 건주의 동고부 수령 호호리였다. 동고부와 누르하치의 일족(닝구타 버일러 세력) 사이에 원한관계가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호리가 누르하치에게 귀부 의사를 표한 것은 이제 건주의 주도권이 사실상 누르하치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즉슨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누르하치가 동고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항복을 한 것이었다.
호호리는 누르하치가 내심 포섭을 원하고 있던 인물인 동시에 일전에 본인이 귀순을 종용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누르하치는 호호리가 자신에게 귀부의사를 표하자 그를 크게 환영했다. 나아가 자신의 장녀인 눈저를 처로 주고 자신의 암반(대신)으로 삼았다.2
그런데 사실 이 때 호호리는 당연하게도 이미 기혼자였다. 그는 누르하치가 결혼을 주선한 당시에 28세의 나이로서, 당시 여진족의 결혼관례에 따라 첫 번째 부인을 맞이한 지 한참 지난 상태였다.
호호리의 기존 부인은 호호리가 자신을 아내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누르하치의 딸과 혼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분노하였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고 관습이 관습이니만큼 호호리가 새로운 처를 맞이하는 것 자체에 분노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유추된다. 생각키로 진짜 문제는 호호리가 처로 맞이하는 대상이 '누르하치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1588년)의 누르하치는 1583년 막 거병했을 당시의 '주변의 범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 같은 것이 아니라 건주 최고의 실력자였기 때문에, 누르하치의 딸 눈저와 호호리가 혼인을 하면 호호리의 본처가 곧 눈저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그리 되면 자신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이 상황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호리의 부인은 자신을 따르는 수족들을 모아 호호리를 상대로 전투를 결의했다. 자신의 남편을 상대로 사생결단을 내고자 한 것이다. 호호리로서는 상황이 상당히 난처해졌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말로 자신의 아내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역으로 아내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호호리를 보다 못한 누르하치가 사태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누르하치는 이제야 막 자신의 막하로 들어온 수하가 부인과 실질적인 전투를 벌이다가 비명횡사하거나 아니면 부인을 죽이는 불상사를 범하는 것을 막고자 호호리의 부인을 타이르는 동시에 그녀에게 합당한 대우를 약속했다. 결국 호호리의 부인은 이 이상 싸움을 이어나가보아야 의미가 없었기에 누르하치에게 항복하고서는 병사를 해산시켰다.
이후 호호리의 본처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누르하치가 그녀를 싫어하여 그녀를 '두려운 부녀'라고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한 듯 하다.3
확실한 것은 호호리가 누르하치의 장녀인 눈저와 혼인하여 동고 어푸(donggo efu, 동고 사위)라는 호칭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이후 수십년동안 누르하치의 충신으로서 그를 지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청사고 호호리 열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당시 여진-만주족의 여성들이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1.그녀의 이름은 불명확하다. 유계흥은 본인의 저서에서 호호리의 아내의 이름을 새감(賽堪)으로 표기했으나 과연 확실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서술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유계흥, 你所不知道的帝王 참조
2.이상까지는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2645254 요약
3.소정잡록 권2 제6장 하온순공(호호리). 소정잡록은 비록 청황실의 아이신교로 자오랸이 편찬한 것이긴 하나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찬술서이며, 야사도 대폭 담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