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현대 경제사이기에 경제 이야기지만 역사탭임
1편 "뉴욕청산소"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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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연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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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브랜튼 우즈 체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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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브랜튼 우즈 체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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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페트로 딸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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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딸라-석유-채권" 무한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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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극복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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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의 요약
- 골드러쉬이후 미쿡의 금융은 우후죽순으로 발전했고, 딸라도 여러 은행이 재각각 발행
- 이 와중에도 화폐제도가 유지된건 화폐를 금에 연동시킨 금본위정책이 있었기에 가능
- 은행간 딸라 거래를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뉴욕청산소"를 만들면서 현대적인 결제시스템을 구축
- 이후 1930년 블랙먼데이 이후 은행의 줄도산을 극복한뒤 은행 위의 은행 연준을 만들고 통일 지폐와 연준을 통한 통화량 조절시스템 구축
- 두 차례 세계대전과정에서 전세계에 달러는 널리널리 보급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금보다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문제가 생김
- 이에 미쿡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새로운 국제결제 제도인 "브랜튼 우즈 체제"를 이끔
- 그럼에도, 미쿡 화폐의 발행량이 계속 늘어 가치의 하락이 이어졌고, 급기야 미쿡은 브랜튼 우즈 체제를 내다 버림
- 기존의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에 대한 투매가 이어짐
- 미쿡은 당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협정을 맺어 원유 결제는 달러로만 한다는 "페트로달러"를 구축함
- "페트로 달러"의 등장으로 미쿡이 채권을 찍으면 사우디가 사주고, 석유를 사기 위해 세계는 딸러는 사모으는 무한동력이 구축됨
2. 무한동력이 Yuji 되는 EU
- 사우디가 미쿡딸라로만 석유를 판매
-> 세계는 딸라를 벌어서 석유대금을 지급
-> 미쿡은 세계에 딸라를 수출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
-> 사우디는 남아도는 딸라로 미쿡 채권을 매입
- 이 구조를 보면 미쿡은 끊임없이 빚을 내도 사우디가 그 채권을 사줄 것이고,
- 사우디가 채권을 팔고자 할 때는 딸라 유동성만 Yuji 되면 팔리는 구조임
- 뭔가 이상하지 않음??
- 이렇게 되면 싸우디가 채권을 사지 않으면 미쿡은 채권을 발행 할 수 없고,
- 세계로 가는 딸라가 줄어들면 싸우디가 벌어들일 딸라가 줄어듦
- 반대로 싸우디가 원유를 딸라고 파는 동안은 미쿡은 안심하고 딸라를 찍어낼 수 밖에 없음.
- 아무리 미쿡이 군사보호를 앞세웠다고 해도 사우디가 호9짓을 계속 하는 것은
- 미쿡이 발행한 달러는 많지만 브랜튼 우즈를 종식시킨 이래 대체시장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임.
- 이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달러로 석유를 사와야 하는 상황에서 달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음
=> 결과적으로 달러는 사상 최대의 량이 발행되었고 그리고 그놈이 찾아왔음.
3. 그놈이 찾아왔다. 인플레
- 이렇게 무제한 (지금 생각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달러 발행에 대해서 미국채 호9큰손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는데..
- 정작 미쿡 내부는 침제 + 인플레라는 문제가 이어지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음
- 인플레를 통제해야 하는 곳이 어디었는가.. 하면 연준말곤 없었음
- 그런데 그 딸라를 찍어내는 인쇄소인 연준을 이끄는 수장의 행보 자체가 문제였음
- 1970년대 초반에는 번스라는 양반이 의장이었는데.. 이 양반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입으론 단호했지만..
- 실제로는 1960년대부터 발생하고 있는 높은 실업률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짐.
(이건 마치.. 파월이 금리 추가 인하를 실업률 핑계대는 것과 반대 로직)
- 재임초기에는 인플레를 잡겠다고 9%수준으로 올렸다가
- 침체를 벗어나야한다며 기준금리를 절반인 4%수준으로 내렸음.
- 이후 72년에 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번스는 신속하게 13%까지 올리면서 인플레를 잡아야 한드아ㅏㅏ 딸깍질을 했는데..
- 경기 침체를 우려하던 닉슨은 번스에게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했고,
- 지금까진 인플레를 관리하던 번스는 느닷없이 5%까지 내려버림.
- 닉슨이 사임한 이후에도 계속 정부와 미쿡 의회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번스는 기준금리를 6% 정도로 겨우 올림
- 인플레가 발생한 상황에서 물가관리를 지속적으로 실패하였고
- 결과적으로 70년대 미쿡은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이됨
- 거기에 구조적으로 딸라가 너무 풀려있는 상황에서
- 미쿡은 특히 연준은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가기가 요원해짐.
- 후임으로 등판한 윌리엄 밀러역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던 자였음.
- 결국 세계 시장에서는 달러를 내 던지고 귀금속, 부동산, 예술품 등의 실물자산으로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음
- 이 즈음 영국은 영국병이라는 것 때문에 파운드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중이었는데
- 반면 전후 경제 복구를 하면서 빠르게 치고 올라온게 독일 마르크와 엔화였음
- 그러메도
4. 인플레 파이터 볼커
- 1979년 카터 대통령은 달러의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수단으로 연준의장에 볼커를 임명함
- 뉴욕연준은행 총재시절 FOMC에서는 매파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 시장에서도 매파가 등장하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안정성을 지킬 것으로 기대했음
- 볼커이전의 연준이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음
1) 은행에 직접 지급준비금을 투입하거나 지급준비금을 회수
2) 이를 통해 연방기금금리를 조절
- > 총 통화량이 얼마인지를 정해놓고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 > 목표한 금리에 맞추기 위해서 통화량을 조절한 것
=> 결과적으로 금리가 시중의 통화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
- 그런데 볼커가 볼때는 기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총 통화량이 문제인 상황
1) 볼커가 관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은행과 회사, 상점가에서 유통중인 현금이나 개인 예금에 한정했음
2) 이 통화량에 한정해서 물량을 관리하면 금리가 치솟든 어떻든 연준이 원하는 통화량의 범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했음
-> 여기서 문제는 금리가 치솟든 말든이었고
-> 당시 백악관이고 의회고 물론 연준 내부에서도 반대를 하고 있었음
- 바야흐로 1979년 10월 연준은
- "이자를 기준으로 대출을 관리하던 기조"에서 "통화공급량의 증가 속도에 맞춰서 대출을 관리하던 기조"로 전환했음
- 그리고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레이건이 등판함.
5. 레이건이 만든 함정
- 레이건의 기조는 "감세로 경기호황" 이란 말로 요약됨
- 그런데 정작 고금리로 인해 경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연준을 공격하기 시작했음
- 파이터 볼커는 인플레로 고통받는 대다수의 미국인을 앞세워 배짱을 부리면서
- 인플레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실업률을 감내해야하는지 한계를 확인하고 있었음.
- 그러는 와중에 레이건 기조는 대규모 감세를 하는 동시에 "강한 미쿡"을 앞세워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했음
-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 예산의 일부를 삭감했지만, 국방비 증가와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분을 상쇄하기는 역부족이었음
- 이미 80년대 이전부터 경상수지 적자인 상황이었는데
- 결국 레이건은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채권을 발행했음
- 미국을 쌍둥이 적자국가라고 하는게 이 즈음부터 벌어진 일이며,
-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채권국가였던 미쿡이 채무국가로 뒤집힌 것임.
- 강한 달러 기조로 이행하는 와중에 채무국가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일 수 있음.
- 달러의 수요가 많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채권 판매가 쉬워지기 때문임
- 달러 자체가 약하다면, 그리고 달러의 수요가 없다면 국채 발행에도 한계가 생기는 것임
- 통화량을 관리한다는 연준의 입장에서 미쿡정부가 채권을 찍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임
- 기본적으로 국가의 통화량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각각 영향을 주는데
1) 통화정책 자체는 연준이 직접 컨트롤 하면서 다소간의 시차를 두고 시장에 영향을 주지만
2) 재정정책은 정부가 직접 돈을 발행하는 효과를 만들고 통화정책 자체를 수정하는 이슈를 만들기 때문임
- 결국 지속적으로 고금리를 Yuji 하려던 볼커는 자신을 탄핵할 움직임이 보이자
- 마침내 기준금리를 끌어내렸지만 여전히 인플레의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남겨뒀음.
- 때는 1983년 기준금리 인하이후 레이건이 기대하던 낮은 실업률, 탄탄한 성장, 낮은 인플레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고
- 레이건이 말하는 "미국의 아침"이 찾아오고야 말았음.
- 재정적자라는 수렁에 빠진 채..
다음은 플라자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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