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현대 경제사이기에 경제 이야기지만 역사탭임
1편 "뉴욕청산소"의 탄생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8464621
2편 "연준"의 탄생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8466502
오늘은 세계 통화질서의 첫번째 변곡점 브랜튼우즈체제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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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축통화의 서막
- "이자"를 통한 "통화의 통제"하는 "최종 대부자" 연준의 존재로 인해 미쿡의 금융업이 급 성장했음
- 반면 유럽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뒤 유럽이 초토화 되면서
- 독일은 전후배상금 조달을 위해, 기타 영국, 프랑스, 이딸리아 등은 복구비용 조달을 위해서
- "금"을 내다 팔았음.
- 당시는 금본위체제가 Yuji되고 있었기 때문에 금을 내다 판다는 것은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 금값이 폭등하면서 유럽의 경제는 더욱더 나락을 갈 수 밖에 없었음
- 이 틈에 유럽에 지점을 낸 미쿡계 은행들로부터 유럽의 상선, 조합, 기업들은 달러로 대출을 받았음.
- 마침 미국계 은행들은 유럽에만 지점을 낸게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에도 지점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 유럽의 본점에서 식민지의 지점에 달러를 지급하는 구조가 생성되었음.
- 비유를 한다면 한국에온 베트남 노동자가 베트남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달러로 월급을 받는 것과 유사함
- 1차대전후, 유럽 각국의 화폐 가치 하락으로 그 빈틈을 달러가 비집고 들어가면서
- 미국땅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유럽과 유럽 식민지에서 서서히 유통되기 시작한 것임.
- 유럽중앙은행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20년 중반이 되면
- 유럽 중앙은행들의 외화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이 파운드 비중을 앞지르기 시작했음.
2. 베르사유 조약과 케인즈의 예언
- 1차대전 종전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부과된 배상액은 독일 경제 규모의 2.5배 수준에 달하는 1,320억 마르크였음.
- 실제로는 전액을 부담한 것은 아니었고 미국딸라기준으로 250억~400억딸라 수준으로 조정을 하고 있었음
- 미쿡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흔히 우리가 아는 그 케인즈)는 베르사유 체제의 배상액과 배상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했음
- 독일의 실질 지급능력은 100억달라가 최대치라고 봤는데
1) 외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확대하고, 수입을 줄여야 하는데
- 당시 독일 수출품은 기계, 기관차, 자동차인 반면
- 독일의 핵심 수입품은 곡물, 철광석임
2) 즉, 수출을 늘이기 위해서는 수출품의 원자재를 수입해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배상자체가 불가능해지고
3) 전후 쑥대밭이 된 유럽은 경기불안+ 금융불안 + 보호무역심화로 독일의 수출품을 대량수입할 EU가 없었음
- 결과적으로 독일이 돈을 벌어서 낼 수 있는 국제 무역구조가 성립하느냐가 문제인 것이었음
(이건 하단에 후술하겠지만 최근 우리 상황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만하다)
- 결국 케인즈는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베르사유 조약에 초를 쳤는데..
- 그런데 그것이 "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 독일의 하이퍼플레이션과 도스 플랜
- 독일의 하이퍼플레이션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1) 국제수지 악화 : 케인즈 예언대로 일단 독일은 수출이 감소했지만 식자재를 수입하는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2) 배상금 부담 : 무역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배상금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재정적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3) 자본도피 : 독일은 전후 혼란기에 금본위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값비싼 은을 해외로 반출하는 수요가 많았다
=> 결과적으로 재정-통화-외환-정치 위기가 복합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하이퍼플레이션은 정확히 이 루트다)
- 독일의 하이퍼플레이션은 단순히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의 무역결제 시스템을 흔들어 놨다.
- 독일 마르크 표시 채권의 실질 가치 하락 -> 환율 변동 리스크 급등 -> 독일채권에서 금/달러/파운드 등 상대적 강세 화폐 선호
이렇게 순차적으로 자본이 이탈하면서 달러표시 혹은 파운드 표시 환율이 급등한 것.
- 이 하이퍼인플레로 인해 독일이 더 이상 배상금을 지불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자
- 프랑스와 벨기에는 독일 공업지대 루르를 무력 점령을 해버림
- 이미 막대한 달러와 채권을 유럽에 투입한 미국은 채무 회수를 위해서 중재자로 나섰고
- 이때 등판한 것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찰스 도스 미국 부통령임
- 찰스 도스는
1) 독일의 연간 배상금 지급액을 낮추고
2) 미국이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3) 루르 지방에서 프랑스와 벨기에가 철수토록 하고
4) 독일 중앙은행을 연합국 감독하에 두어서 배상금 납부를 보장하도록 했음
(이로 인해 독일에는 활기가 돌고 성장기를 맞았는데 이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황금기' 였음)
- 이 과정에서 미쿡 달러의 위상이 서서히 파운드를 앞지르기 시작하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확고해지는 양상을 보였음
- 그. 런. 데..
- 미국에서 탈이 났음.
4. 미국 대공황과 "금본위 제도"의 종말
- 케인즈는 베르사유 조약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을 Yuji할 경우
- "엄격한 금본위 제도"는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두번째 예언도 남겼음
- 위에서 서술한 독일이 배상금을 갚지 못하는 메커니즘에서
- 유럽이 독일산 제품을 수입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고 케인즈는 주장했는데
- 실제로 유럽은 독일의 제품을 수입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 돈도 안갚으니 독일의 공업지역을 무력 점령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음
- 거기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갈수록 강력해지는 파운드와 달러에 대항하기 위해
- 자발적으로 금본위 제도를 무시하고 돈을 찍어내거나 국채를 발행하면서 환율을 올리기 까지 했음
- 대표적으로 영국의 버터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기 위해 덴마크와 뉴질랜드가 평가절하 치킨게임을 펼친 것임
- 금화에 고정되어 있던 화폐 가치를 임의로 절하해버리면,
- 복본위제도 시절처럼 금을 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 인플레를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음.
- 그리고 그 여파는 해결사를 자처한 미쿡에 미치고 있었음
- 연준이라는 든든한 빽을 기반으로 유럽과 열강의 식민지를 나돌아다니면서
- 미쿡의 기업들은 주가가 크게 올랐음
- 은행과 증권사 만이 아니라 일반 투자자까지 대거 시장에 진입했고
- 마진거래와 신용매수.. 이른바 빚투까지 확대되었음
- 표면적으로는 호황처럼 보였지만, 유럽에 융자한 자금에서 연체가 발생하고 소비가 둔화되는 조짐이 보였음
- 모든 경제학사에서 기술하기를 "주가상승속도 > 실물경제 기초체력"인 구간이었음.
- 은행들은 매도 압력을 방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는데..
- 1929년 10월 28일 블랙먼데이로 다우지수 13% 하락, 29일 12% 하락.. 단 이틀만에 25%를 날려버렸음
- 미쿡 은행권의 든든한 백 "연준"은 블랙 먼데이 여파로 뱅크런이 일어났을 때에도
- 달러가치를 금값에 고정하기 위해 통화를 공급하지 않았음.
- 그 결과 전국적으로 은행이 파산하고 대공황이 심화되었으며
- 소비력이 감소함에 따라 디플레가 시작되었음.
- 루즈벨트 대통령이 등판한 이후 일반 국민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금본위제에서 이탈했음.
-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케인즈의 주장대로 대공황의 타개책으로 대대적인 재정지출..
- 모두가 아는 "뉴딜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한 것임
-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중재자를 자처한 미국은 그 오지랍으로 인해 금본위를 스스로 해체해버리는 결과를 맞아버렸음
5. 브렌튼 우즈 체제의 탄생, 달러 마침내 제왕이 되다.
-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 유럽은 또 전쟁자원 조달이라는 막대한 과제를 안게 되었음.
- 가뜩이나 미쿡에서 금본위제를 포기한 뒤로는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풀어대기 시작했고
- 강대한 영국과 대공황을 벗어나 소비력이 많은 미국에 수출품을 팔기 위해서 환율을 올리는 지경에 이러렸음.
- 심지어 빈번하게 관세를 먹이면서 무역전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세계사시간에 이걸 보호무역시대라고 배웠던 기억들이 있을것임..
- 그러던 와중에 2차대전이 터지면서 유럽은 전쟁자금 조달에 애를 먹게 되었음
- 단순히 독일의 군사력이 강했다의 문제만이 아니라
- 유럽 각 국가들의 재정이 거덜난 상태였기에 적기에 군비 증강에는 실패를 했던터라
- 독일의 유럽 침공이 비교적 수월했던 면이 있었던 것임..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선 이가 있으니..
- 존 메이너드 케인스, 베르사유 조약과 금본위제의 붕괴를 예언한 대예언가(아님) 이자 정부주도 부양정책을 주장했던 경제학자임.
- 미쿡, 영국 등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한 이후
- 케인스와 덱스터 화이트 미쿡 재무 차관(벌써 쎄하지?)의 주도아래
- 연합국의 총리 및 재무부관계자 등이 영국의 브렌트우즈의 호텔에 모임.
- 미쿡은 이 모임 이전부터 이미 승전을 가정하고 전후 경제 질서를 정리하기 위해서 사전 교섭을 해뒀음
- 그 교섭 내용은 아래와 같음
1) 세계 각국의 환율은 고정한다 (고정환율제의 시작)
2) 상황이 바뀌면 주기적으로 조정한다 (환율 조정은 당국의 결정에 따른다는 원칙)
3) 국경간의 자본이동을 제한한다
- 이 세가지의 원칙을 주장한건 케인스였고, 당시 어마어마한 케인스의 영향력으로 인해 브렌트 우즈에 모인 참가자들은 이에 동의를 했었음
-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서 브렌트 우즈에서는 이 합의 아래 케인스가 제안한...
- 금을 대신해서 중앙은행만 쓰는 절대 통화 방코르가 탄생할 예정이었음.
- 그. 런. 데..
- 여기서 화이트 재무차관이 개입을 하면서 케인즈의 이상적인 방코르는 너무 이상적이라 구체화가 어렵고
- 중앙은행간의 거래에 사용하기에는 분실과 파손 등의 리스크가 있으며
- 유럽이 가난해진 마당에 방코르를 발행해야하는 재원을 미쿡이 다 털어 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 방코르 대신 달러를 쓰기로 해버림.
(케인즈는 이때 절망했다곤 하던데..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음)
- 여기서 더 한발 나아가 고정환율을 감독하는 기구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IMF를 창설(미국의 돈으로)하였고
- (미국의 돈으로 창설했으니)IMF는 기구내에서 고정환율을 산정하는 기준를 달러로 정해버림.
- (미국의 돈으로 창설한)IMF에 가입한 나라들의 모든 기준환율은 달러에 고정을 했고
- 이 기준환율의 범위에서 각국가들이 필요할 때 어느 정도 조정을 했으며,
- 만약 큰 폭의 조정이 필요하면 IMF(라고 썼지만 미쿡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 한편 미쿡은 달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 중앙은행간 거래시에는 1온스당 35불의 교환비로 금값을 정해서 금과 달러를 교환해주기로 했음
- 개인간 거래에서는 금본위제를 폐지했지만, 국가간 결제에서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
6. 브래튼 우즈 체제가 남긴 것.
- 미쿡 달러는 1차대전 사후 정리과정에서 파운드와 동등한 체급이 되었다면
- 2차 대전 정리과정에서 브래튼 우즈 체제를 만들면서 압도적인 지위를 얻었음
- 아니 1차대전과는 다르게 미국 달러 중심으로 완전히 복속시킨 것임
- 영국이 쇠락하는 길을 걸은 것도, 소련 중심의 공산국가들이 삽질을 하게 된 것도..
- 이 브래튼 우즈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음..
-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 세계 교역 규모가 커지고 요구량이 늘어나면 미쿡이 달라를 계속 발행해야 할텐데 이걸 감당할 수 있겠냐 하는 것임.
-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에도. 그것이. "또" 실제로 문제가 일어남.
- 그것도 안일하게 국가간 결제에서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로 취한 저 망할 1온스당 35불의 교환비에서 말임.
다음엔
위기의 달러, 위기의 역설, 그래도 딸라?? 를 정리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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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알못이라 흥미진진하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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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중에 시간되시면 영국 파운드에 대한 글도... 기대해봐도 될까요?ㅎㅎ 유로가 제일 높은줄 알았는데 파운드 환율보고 깜놀했습니다.. 이렇게 높았다니..
(IP보기클릭)106.101.***.***
감사!! 이 맛에 부규게 들어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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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는 만들때부터 다른 통화대비 높은 교환비를 설정했어요. 파운드 개념을 도입할때부터 우리 영국은 위대한 나라이니 통화가치도 높아야해!! 같은 게 있었답니다. 그래도 미쿡과의 경재력이 역전된 이후로 파운드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브랜트우즈에서도 1파운드에 4달러를 시작했다가 2.9딸라로 절하했고요 현재는 1파운드에 1.4불 내외이니 굉장히 많이 약해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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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중에 시간되시면 영국 파운드에 대한 글도... 기대해봐도 될까요?ㅎㅎ 유로가 제일 높은줄 알았는데 파운드 환율보고 깜놀했습니다.. 이렇게 높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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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는 만들때부터 다른 통화대비 높은 교환비를 설정했어요. 파운드 개념을 도입할때부터 우리 영국은 위대한 나라이니 통화가치도 높아야해!! 같은 게 있었답니다. 그래도 미쿡과의 경재력이 역전된 이후로 파운드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브랜트우즈에서도 1파운드에 4달러를 시작했다가 2.9딸라로 절하했고요 현재는 1파운드에 1.4불 내외이니 굉장히 많이 약해진겁니다. | 26.02.27 17: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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