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존재했던 만큼, 전국시대에는 분쟁의 희생양으로 대신 처형당하는 ‘해사인(解死人)’이라는 슬픈 존재도 있었다. 전국시대에는 마을과 마을이 물싸움 등으로 무기를 들고 큰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1592년, 셋쓰국(攝津國)의 나루오 마을(鳴尾村)과 가와라바야시 마을(河原林村) 사이에 농업 용수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고, 결국 치열한 전투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천하통일이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진 것에 대해 히데요시는 격노했다. 그는 두 마을의 책임자를 불러내어 책형(죄인의 목을 베는 형벌으로 처하라 명령했다.
그런데 이때 실제로 처벌 대상이 된 것은 마을의 촌장(庄屋, 쇼야)이나 명주(名主)가 아니라, 이따금 마을 일을 돕던 거지들이었다고 한다. 이런 존재를 해사인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떠돌이나 거지로서, 마을 주민이 아니었다.
이 두 마을 사람들은 자기 마을의 거지들을 평소 잘 돌보아 주었다가, 이런 엄청난 문제가 생기자 책임자 대신 이들을 내놓아 제물로 삼았던 것이다.
1.마을끼리 전쟁날뻔함.
2.흙수저 천민이 니들 전쟁하면 다 족칠꺼라 경고함.
3.쫄아서 마을거지 2명 제물로 바치고 땡침.
전국시대였으면 마을끼리 피터지게 싸웠는데 천통후에는 그러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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