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둘이 결투를 치뤘다는 섬인
간류지마
놀랍게도 무사시의 말에서는 패배해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간류 선생(사사키 코지로)의 이름이 오히려
섬에 붙어있음.
보통은 패자보다 승자를 기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한 일인데
전말을 따져보면 다음과 같음.
인물의 구성이 우선 바뀌어야함. 보통 사사키 코지로 즉 간류 선생은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이런 젊은이가 아니라
이런 노인이었음.
거기다가 원래 간류 코지로 등으로 불리다가 이천기 등을 통해 사사키라는 성이 갑자기 붙으면서 사사키 코지로가 됨.
누마타가기라는 전국 시대의 실존 가문인 누마타가(沼田家)에 관한 기록과 함께 이천기 등과 대조해 보면
당시 간류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지역에서 명성이 있어서 결투에 관심이 없고 소극적인 태도였다고 함.
그래서 누마타가기 를 읽어보면 무사시의 제자들과 간류의 제자들 사이에 싸움이 나서 누구의 병법이 최고인지 따져보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결투를 하게 됨.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천기와 누마타가기의 내용이 조금 다른데
이천기에서는 무사시는 일부러 3시간 가량 늦게 출발하여 노를 깍아 만든 목검으로 노인인 간류 선생을 쳐 죽였다고 해놨는데
정작 누마타 가문의 기록에서는 무사시가 약속을 어기고 자기 제자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패배한 간류 선생을 제자들로 하여금 집단 린치시켜서 죽였다고 기록을 하고 있음.
놀랍게도 이 부분은 시모노세키 지역의 전승과 일치하는데
해당 지역의 어민들이
"무사시가 약속을 어기고 제자들을 데리고 섬에 갔으니까 가지 마라" 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무사시와 그 제자들의 행패가 계속될 것을 걱정한 간류는
간류는 이미 무사로써 내뱉은 말이 있으니 상대가 약속을 어겼어도 나는 가는것이 맞다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러 갔다고 함.
그 때문에
시모노세키 지역 주민들은 간류 선생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섬에 간류 지마라고 이름을 붙이고
인간 말종인 무사시의 흔적을 지웠다고 함.
물론 어느 쪽이든 100% 믿기 힘들지만
공식 기록에 가까운 누마타 가문의 기록과 시모노세키 지역의 전승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노인인 간류 선생을 무사시와 그의 제자들이 집단 폭행해서 죽인 것은 거의 확실하다는 게 중론.
가장 오래된 기록은 코쿠라의 비문인데, 거기서는 무사시와 코지로가 동시에 만나 무사시가 일격에 코지로를 죽였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일단 무사시가 지각을 했다는 썰은 진실이 아닐 공산이 크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미야모토 무사시의 전기에서 일부러 지각을 해서 코지로를 지치게 한 다음 때려죽이는 비열한 방식을
자랑스럽게 적어놓은 거 자체가 여러모로 에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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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생존자니까 | 23.09.29 20: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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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코지로가 어렸을 때 배를 탔는데. 어른중 하나가 '어린 놈이 칼을 차고 다닌다' 라고 하니까 실력을 증명하려고 공중에 날아가던 제비를 점프해서 베어서 그게 쯔바메 가에시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도 들었고. | 23.09.29 20: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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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천기 이야기인데 이천기만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마타 가문의 공식 기록이나 시모노세키 전승에서는 그냥 제자들 하고 우르르 몰려가서 간류 선생을 쳐 죽였다고만 기록됨. | 23.09.29 20: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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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사시도 아랍 문지기에게 단칼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이쪽은 루머인가? | 23.09.29 20:3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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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또 뭔 소리임. 무사시는 말년까지 벼슬 하려고 자기 소개서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 거렸는데. | 23.09.29 20:4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