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실록 삽화, 누르하치와 뇨웡기연의 활쏘기.
1588년 음력 4월 누르하치는 하다 세력과의 정략혼을 위해 둥 지역에서 신부(하다의 아민 저저)를 기다리던 중 마침 둥 지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던 동고 지역 출신의 명궁 니오웡기연과 조우했다. 암반들을 통해 해당 인물이 니오웡기연임을 파악한 누르하치는 그에게 호승심을 내보이며 활의 실력을 겨루어 보자고 제안했고 니오웡기연은 그에 응했다. 그로서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경쟁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본인들로부터 1백여보의 거리에 떨어진 버드나무를 표적으로 삼아 활을 쏘았다. 니오웡기연이 먼저 쏘았고, 누르하치가 후에 쏘았다. 니오웡기연은 버드나무에 다섯 발을 쏘아 세 발을 맞추었다. 그 중 한 발은 버드나무 상단에, 나머지 두 발은 버드나무 하단에 맞았다. 그에 이어 누르하치가 쏜 화살은 다섯 발 모두 버드나무의 중앙에 맞았다. 이로서 누르하치는 니오웡기연을 상대로 벌인 활경합에서 승리하였다.1
이 활쏘기 시합은 누르하치의 무예 역량에 대한 가장 확실한 기록중 하나로서, 청년 시절 누르하치의 무예 역량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주족은 이러한 유형의 기록을 근거로 태조 누르하치의 무예를 숭상하는 동시에, 만주족의 상무정신을 이어나가고자 했다고 사료된다.
그런데 이 활쏘기 시합에 관한 기록은 과연 어떠한 과장이나 변곡도 없는 확실한 사실일까? 기록상 변곡이나 개입이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하필 아민 저저가 누르하치에게 시집을 올 때에 동고의 니오웡기연이 누르하치와 조우하여 서로 활쏘기 시합을 했다는 것, 아민 저저를 호위하는데에 있어 동고의 암반인 호호리가 나섰다는 것, 호호리가 이 이후 누르하치에게 완전히 충성을 맹세한 정황등을 살펴보건대2실록의 기록처럼 니오웡기연이 둥 지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누르하치와 조우했다기 보다는 애초에 호호리와 연관하여 둥 지역에 나와 있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해당 방향성의 판단의 경우 니오웡기연은 호호리의 휘하로서 그의 지시를 받아 누르하치와 함께 하고 있었거나 혹은 아민 저저와 함께 움직이던 호호리보다 선행하여 누르하치가 아민 저저를 기다리고 있던 둥 지역에 돌아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르하치는 암반들로부터 니오웡기연이 어떤 인물인지를 듣고 그와 활쏘기 시합을 하여 아민 저저와 정식으로 혼인을 하기 전에 주위의 분위기를 띄우려 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추론을 신뢰한다면 동고 제일의 명궁이라는 니오웡기연이 누르하치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한 것 역시도 실제 니오웡기연의 실력이 정말로 누르하치에 비해 무척이나 부족했다기 보다는 당일에 있을 결혼의 주연이자 향후 자신이 모시는 주인 호호리가 완전히 충성을 맹세할 대상인 누르하치를 띄워주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치 않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누르하치는 다섯 발의 화살을 모두 버드나무의 중앙에 맞춘 것에 비하여 니오웡기연의 경우에는 단 세 발을 버드나무의 상단과 하단에 맞추고 나머지 두 발은 아예 빗맞추어 완전히 밀려버린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니오웡기연이 사료상에서 호칭되기를 동고 최고의 명궁 이었다지만 그 명성이 누르하치 휘하의 암반들에게도 알려져 있던 것을 생각해 보자면 니오웡기연의 활솜씨는 건주 전체를 통틀어서도 널리 알려진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3그런 니오웡기연의 실력이라면 사료상에 서술된 누르하치의 실력에 심하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준하거나 우위에 있었을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그런데 사료상에 서술된 니오웡기연의 실력은 '명성 높은 명궁'이라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이렇다보니 니오웡기연이 일부러 버드나무를 빗맞추거나 분산되게 쏘아 누르하치의 승리를 밀어준, 소위 '접대 경기'를 한 것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추론 맥락을 종합하자면, 당시 니오웡기연이 누르하치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민 저저와 누르하치의 혼인, 그리고 호호리의 아민 저저 호위와 연관된 '예정된 만남'이었으며 누르하치와 니오웡기연의 활경합에서 니오웡기연이 누르하치에 비해 압도적으로 밀려버린 결과가 나온 것은 니오웡기연이 본인의 실력을 일부 숨기고 그 날의 주인공이자 향후 자신이 모셔야 할 주인인 누르하치를 밀어주었다는 추론이 탄생한다. 이에 따르면 사료상에서 니오웡기연의 만남이 우연으로 바뀐 것은 누르하치와 니오웡기연의 경쟁을 보다 극적으로 각색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추론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해당 추론에서도 결국 누르하치가 1백보 밖의 버드나무의 중앙에 다섯 발의 화살을 맞춘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의 활솜씨가 절대적으로 깎여나가진 않는다. 다만 니오웡기연을 확실하게 실력으로 이겼다는 결과는 바뀌기 때문에 누르하치의 무예에 관한 일화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래는 감이 있다.
더불어, 이상의 예측적 추론은 누르하치가 니오웡기연과 경합을 한 당시의 상황, 즉 아민 저저가 누르하치에게 시집을 오고 동고의 호호리가 그런 아민 저저를 호위하였으며, 나아가 호호리가 누르하치에게 귀부를 한 상황 정황을 통해 유추된 추론일 뿐 확실한 기록적 근거는 존재치 않는다. 즉 이는 실록에 기록된 이야기에 비해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1.만주실록 무자년 음력 4월 기사 축약
2.만주실록 무자년, 청사고 권 225 호호리 열전
3.만주실록 무자년 음력 4월, 한편 누르하치가 니오웡기연을 몰라보았던 것은 그와 직접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으로, 누르하치 본인 역시도 니오웡기연의 이야기나 실력 자체는 들어보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