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누르하치를 다룬 여러 외부기록에서는 누르하치의 지능적 면모가 주로 부각된다. 특히 조선에서는 누르하치에 대해 간교하다거나 교활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이는 누르하치가 조선과 명, 그리고 여타 여진 세력의 사이에서 상당히 지능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는 모습을 무척이나 근접한 곳에서 관측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의 입장에서 그에 대한 경계심이 자극된 것에 따른 평가로 생각된다. 이러한 평가는 역설적으로 누르하치의 능력에 대한 고평가이기도 했다.
후금/청의 내부 기록상에서도 누르하치는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용맹에 관한 서술이 지모에 관한 서술에 비해 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후금/청은 본인들의 태조의 용감무쌍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그의 무골적 성향에 관한 기록을 신경써서 다루었다. 누르하치에게 바쳐진 초기 묘호가 규정하는 누르하치의 성격이 바로 무황제(武皇帝)였더니만큼, 그들로서도 누르하치의 무용적인 모습은 강조해 마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대표적인 기록 사례로 누르하치가 아직 건주를 통일하기 전, 직접 선봉에 서면서 싸울 무렵에 동고의 명궁 니오웡기연(niowenggiyen. 뇨웡기연)과 활쏘기 시합을 하여 승리를 한 일에 대한 기록 사례를 들 수 있다.
니오웡기연의 묄렌도르프 전사상 이름 철자는 '녹색'을 뜻하는 니오왕기얀(niowanggiyan, 뇨왕기얀)과 다소 차이가 존재하지만 누르하치의 손자 사할리연과 색채 사할리얀(검은색)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녹색'을 이름의 어원으로 두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1580년대 당시 건주의 5개 부(aiman)중 하나인 동고에서 명궁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으나 그 외의 정보는 불확실한 인물이다.
1588년 음력4월, 하다의 버일러인 다이샨1이 자신의 여동생인 아민 저저를 누르하치에게 시집을 보낼 당시 누르하치는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본인의 거점인 퍼 알라를 나와 둥 지역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 때에 누르하치 일행의 근처를 니오웡기연이 지나갈 일이 생겼는데, 화살통을 차고 말을 타고 가는 니오웡기연을 본 누르하치가 수하의 암반들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건주의 실질적인 지배자의 위치에까지 오른 자신의 근처를 지나면서도 자신에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본인의 갈길만을 가는 니오웡기연에게 흥미가 동한 듯 싶다.
암반들은 누르하치에게 동고 지역에서 저 사람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명궁 니오웡기연'2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바로 저 자라고 말했다. 이로 보건대 니오웡기연은 당시 건주에서 꽤 유명세가 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누르하치는 그 말을 듣자 경쟁심이 동했던지 니오웡기연을 불러 그에게 활솜씨를 보고 싶다는 논조로 그에게 말했고 그에 니오웡기연이 응하여 활과 화살을 가지고 누르하치에게 다가왔다. 니오웡기연은 누르하치의 지시에 따라 그들로부터 1백여보 떨어져 있는 버드나무를 쏘았다. 이 때 사료상에 언급된 보(步)가 어느 시기의 기준이 적용되었는지는 불확실 하나 대략 130미터에서 160미터 정도로 추정된다.
니오웡기연은 다섯 발을 쏘아 그중에서 세발을 버드나무에 명중시켰다. 명중한 화살들의 경우 버드나무의 한 지점에 맞지 않고 다소 분산되었다. 실록상의 서술과 실록에 첨부된 실록도 삽화를 살펴보자면 1발은 버드나무의 상단부에, 2발은 버드나무의 하단부에 맞은 것 같다. 나머지 두 발은 빗나갔다.
(실록도, 니오웡기연과의 활싸움, 만주실록 中)
니오웡기연의 사격에 이어서 이번에는 누르하치가 니오웡기연과 경쟁하기 위해 활을 쏘았다. 누르하치는 다섯 발의 화살을 쏘아 다섯 발의 화살을 모두 버드나무에 맞췄다. 뿐만 아니라 그 화살은 니오웡기연이 쏜 화살처럼 분산되거나 하지 않고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3누르하치가 니오웡기연을 이긴 것이다.
이는 누르하치의 활솜씨가 대단함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누르하치의 활솜씨에 대해 강조하는 기록은 이외에도 여럿 존재하지만, 누르하치의 사격 실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기록은 위의 1588년 음력 4월의 니오웡기연과의 경쟁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누르하치의 무용을 화려하게 꾸며주기 위해 어느 정도 과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야사가 아니라 정사인 실록의 기록이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한편 이 이후 니오웡기연은 사료상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고에 소속된 점, 아민 저저와 누르하치간의 혼인 시기에 동고의 수장인 호호리가 누르하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누르하치의 속하로 들어온 점, 니오웡기연이 바로 이 때에 누르하치와 만난 점을 생각해 보건대 이 이후 호호리와 같은 동고 출신인 니오웡기연 역시도 누르하치 산하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이야기에 대하여 다른 의견도 있는데 이는 다음의 글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1.누르하치의 차남 다이샨과는 동명이인
2.만주실록 무자년 음력 4월, gabtara mangga niowenggiyen
3.만주실록 무자년 음력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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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씨는... 정체가 뭐에용... 후금 연구로 석박사를 따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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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닌자와도 같은 후금사의 베스트 정복 마치 잊으면 돌아오는 여진족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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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대인데도 황제의 무인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건 비슷하네 강희제도 호랑이, 늑대, 곰 등 맹수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까지 자세히 기록돼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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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씨는... 정체가 뭐에용... 후금 연구로 석박사를 따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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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코멘트 촤하핫 | 23.05.14 19:5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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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대인데도 황제의 무인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건 비슷하네 강희제도 호랑이, 늑대, 곰 등 맹수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까지 자세히 기록돼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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