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어2랑 비교되면서 다시 이 게임이 언급되기에 이해를 돕고자 다시 한 번 써봄.
일단 미리 밝히건데,이건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 글의 보강판임.
전에 썼던건 여기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140667
하지만 그대로 복붙한건 아니고 나름대로 내용을 좀 더 보강해 봤음.
보강했다는 이야기는 뭐다? 더 길어졌다.....
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건,
한국인이 이 게임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임.
한국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아니면 대부분에게 그러함.
왜?
이 게임은 온전히 미국, 미국인, 미국 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
쉽게 말해 이 게임의 의의는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임.
그래서 그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움.
이 게임이 발매된 것은 2012년임.
이 년도가 왜 중요하냐면, 2012년은 이라크 전쟁이 끝난 해이기 때문.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기 시작하는게 2011년부터임.
문제는 이라크에서의 철군이 미국 사회에 문제를 하나 일으켰다는거임.
알다시피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 내에서조차 평가가 좋지 않았던 전쟁임.
다른 나라들로부터는 물론 미국 내에서조차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고,
결과가 시원한 대승이었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프간-이라크로부터 돌아온 참전 군인들은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됨.
(아프간-이라크전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전쟁인지는 다들 알거라 생각함.)
나름대로 조국을 위해 사지로 나가 목숨 걸고 싸웠는데,
돌아와보니 정치인들은 티비에서 내가 목숨걸고 싸웠던게 다 헛짓이었다는 말만 매일매일 되풀이하고
사회에서는 은근히 사람 죽이고 온 놈 취급이고
국가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전쟁 취급하며 쉬쉬하느라 영웅 대접이라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고....
이걸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미군 자.살률 추이임.
가장 정점을 찍었던게 2012년이지? 2012년이 어떤 해라고? 이라크 전쟁이 끝난 해.
사실 이 문제가 시작된건 아프간-이라크 전쟁보다 더 이전임.
이런 문제가 처음 시작된건 다름 아닌 베트남 전쟁이었음.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가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라는건 잘 알거임.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는 외교전과 여론전이 밀려서였음.
그 정도로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미국 내외에서 높았고,
지옥같던 베트남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돌아온 대접은
'공산주의와 목숨걸고 싸운 영웅'이 아니라
'패잔병' '약소국 괴롭히는 깡패' '민간인 학살이나 하다 돌아온 놈' 같은 비난이었음.
오죽하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baby killer"라는 말까지 생김.
약소국에서 어린애들이나 죽이다 온 놈들이다 이거지.
이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다름아닌 람보.
후속작들이 마초 액션영화로 나오다보나 람보의 이미지도 무력 마초가 되어버렸지만,
본래 람보 영화 원작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 처우 문제을 다룬 진지한 사회 고발 영화였음.
이 영화에서 람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을거임.
자유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돌아와보니 자기는 평화에 적응 못 하는 PTSD 장애인이고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폭탄으로 취급함.
스펙옵스: 더 라인이 베트남전부터 시작된 이 고질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임 상의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음악임.
스펙 옵스: 더 라인에 나오는 주요 음악, 노래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전 시기의 것들이거든.
지미 핸드릭스의 반전 노래들 같은.
작중 시간적 배경은 무기로 보나 배경 그래픽으로 보나 분명 2000년대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의도적으로 시대에 안 맞는 음악을 쓰고 있는 것임. 베트남전 이후라고 반전주의 노래가 없는게 아닌데도.
아주 의도적으로 게이머들에게 베트남전을 상기 시키는거지.
그런에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비하면 베트남전 이후는 그나마 나았음.
실패한 전쟁 취급이긴 해도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공화당 매파들을 비롯한 우파들은 지속적으로 베트남전을 옹호했거든.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이런 것도 없었음.
명분조차 불확실했던게 팩트고 우파들조차 손절해버렸으니까.
이 전후의 군인 대우는 PTSD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함.
PTSD 치료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희생이 가치있는 것이었음을 자타가 인정하는 것임.
이 때문에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은 비교적 PTSD를 적게 겪었음.
힘들고 끔찍한 경험을 했던건 똑같지만
나치나 북한은 그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자타가 공인하는 악의 축이 맞고
그렇다보니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도 명확했고
결과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한테 익숙한 한국전쟁을 예로 들어보면
88올림픽을 보면서 PTSD를 벗어난 참전군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내가 희생해서 구한 나라가 발전해서 올림픽까지 개최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한 의미와 보람을 찾았다는거지.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워낙 관심을 못 받아서 잊혀진 전쟁 소리를 듣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논란거리가 없다는 이야기기도 함.
지금도 한국전쟁 참전했다, 북한과 싸웠다고 하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소리를 듣고
간혹 한국인이라도 만난다면 진심어린 감사도 들을 수 있다는거지.
이 포인트가 PTSD 치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함.
자기가 한 일들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었다는걸 확인하는거.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그렇지 않았다는거야.
이 문제가 심각해서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엔
PTSD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이 단골로 등장함.
가령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왓슨은 아프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는걸로 나오고
마블 드라마 퍼니셔에서 퍼니셔가 이라크전 참전 때의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은 영화의 주요 주제와도 밀접함.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그런 시점에서 발매된 게임임.
이 게임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함.
'니가 한 번 군인 입장이 되어봐'라는거지.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 게임의 장르는 fps가 아님.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게임의 여러 특징들이 잘 이해됨.
왜 선택지가 없는가?
->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에게 실제로 선택지 따위는 없으니까.
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나한테 뭐라 그러는가?
-> 실제로 군인들도 명령대로 했을 뿐인데 죄책감과 PTSD는 자기가 떠안아야 하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것도 자신이니까.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측면에서,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음.
CIA를 비롯한 "조국"은 군인들에게 제한된 정보만들 제공하고
때로는 심지어 가짜 정보까지 흘리면서 주인공들이 시키는대로 하도록 유도함.
선택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지만 상황을 가만히 보면 실제로 상황 자체가 선택지가 별로 없음.
결과를 아는 게이머 입장에서야 다른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서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임.
위에서 말한대로 상황은 급박한데 정보는 제한적이거나 심지어 거짓이거든.
게이머에게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음. 게임 끄고 더 이상 안 하는거.
근데 돈 주고 산 게임을 그럴 수는 없지?
군인에게도 전장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는 허상임.
전쟁터에서 군인이 '난 더 이상 못 하겠으니 집에 돌아갈래요!'하면 순순히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함?
군인으로서의 불명예,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가족들을 부양할 생계 수단의 단절 등등 걸려 있는게 너무 많기도 하고.
엔딩까지 보고 난 게이머들을 좋같은 기분에 빠트리는 그 요소.
이걸 게이머 개인에 대한 게임 제작사의 비난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불쾌하거나 어이없을 수 있음.
아니, 선택지도 없이 시키는대로 안 하면 게임 진행 자체가 안 되게 해 놓고,
시키는대로 했더니 나를 무슨 나쁜 놈 취급하네?
그럴거면 선택지라도 주든지!
하지만 저 문구들은 게이머 개인에게 날리는 제작사의 일침 같은 단순한게 아님.
저건 PTSD에 시달리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형상화한 것인 동시에,
당시 미국 사회가 사지를 뚫고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암암리에 보내던 메시지임.
"부시 정부의 명분 없는, 부당한 전쟁에 부역하다 온 살인자들.
석유 이권 둘러싼 더러운 전쟁에 이용이나 당하고 돌아온 멍청이들.
멍청하게 거짓 정보에 휘둘려서 무고한 사람들이나 죽이고 온 주제에 훈장? 전쟁영웅?
불쌍한 중동 사람들 삶의 터전 다 뒤집어 엎고 돌아오니 좋아?
참전 군인들 처우가 불만이라고? 너희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같아?"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 자.살률이 치솟았던게 괜히 그랬던게 아님.
제도적으로야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만큼 군인 처우가 잘 되어 있는 편인게 미국이기도 하지만
제도와는 별개로 사회 분위기 상은 참전 군인들 대우가 형편없었던게 미국인 것도 사실임.
한 마디로 스펙 옵스: 더 라인 제작진이 게임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는 이것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그런 비난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들이 과연 '선택지가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결정으로, 스스로 원해서 사람들 죽이다 온' 사람들일까?
실제 전쟁터가 흔히 FPS나 액션 게임에서 묘사되는 것 같은 그런 영웅놀이의 현장일까?
참전 군인들의 모습이 과연 불쌍한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갈기면서 "히히히 나는 영웅이다 악당들 다 죽어" 이런걸끼?
괜히 스펙 옵스: 더 라인이 평단에 엄청난 호평을 받고 평점도 높은게 아님.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는 정말 사회 전반에 날리는 통렬한 일침이었고,
굉장히 시의적절한 사회 고발적 내용이었던거지.
즉,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관점으로 이해하면 모든 메시지가 명확해진다는거지.
실제 군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주고,
진짜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쟁이 얼마나 좋같은 것인지를 굉장히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전달함.
게임성 자체에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성 하나만으로 그런 고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는거임.
그렇다고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고 아무 논란거리 없는 뺴박 갓-겜이다!라는걸 말하고자 하는건 아님.
일단 게임성 자체는 좀 지루하고 시시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점에서도
"나는 다 됐고 다 부시고 다니는 FPS게임 하고 싶었는데 왜 그런 나한테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를 시킴? 소비자 우롱 아님?"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기분 나쁜 부분이 있을 수 있는건 사실임.
하지만 그럼에도 스펙옵스: 더 라인이 지금 논란이 되는 라오어2와는 넘사벽 수준일 수 밖에 없는게
상술한 바와 같은 시의적절함임.
적어도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이게 진짜 중요한 사회 문제였단 말야.
아무 생각 없는 사람한테 갑툭튀로 개똥철학을 주입하려 시도한건 아니라는거지.
참전 군인 문제가 진짜 심각한 사회 문제일 떄,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우리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하면서 나온게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는 게임임.
그래서 이 게임에서 적어도 스토리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는거임.
당장 게이머가 스펙옵스: 더 라인을 하고는 기분이 상했다 해도,
다음날 마트에 가는 길에 참전군인을 봤을 때, 그리고 그를 사람 죽이고 온 살인자 취급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게임에서 느꼈던 그 억울함을 떠올리고,
그 참전군인이 사람 죽이면서 영웅놀이하다 온 놈이 아니라 그저 제한된 정보 안에서 선택지 없이 전장에 내몰려 고통받는 한 인간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스펙옵스: 더 라인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게임이었다 할 수 있는거지.
뭐 그래서 "스펙옵스: 더 라인"이 "게임으로서 훌륭하냐"는 또 별개의 문제니까 결국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이 "시의적절함"은 강렬한 메시지를 포인트로 삼는 서사물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임.
사회에 대한 통렬한 일침과 그냥 단순한 일침놀이를 가르는 기준이기도 하지.
스팩옵스: 더 라인이 뜬금없이 갑툭튀해서 여러분 전쟁은 이렇게 나쁜거예요~하는 꽃노래 취급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 메시지가 적어도 당시 미국 사회에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임.
스펙옵스: 더 라인이 무슨 우주명작 갓-겜 같은건 아니지만
적어도 라오어2에 비벼질만한 개똥철학 일침놀이 게임은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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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어2랑 다르게 스펙옵스는 막판에 다죽일지 안죽일지 플레이어의 선택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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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대로 총질하고 다녔더니 영웅이 되는 콜오브듀티 같은 레일 슈터식 FPS게임의 안티테제 같은 느낌이지 적어도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는 비판만은 이 게임에 완벽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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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전쟁게임의 안티테제일줄 알았는데 저런 거였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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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맨 마지막에 가서야 선택지를 선심 쓰듯 던져주지만... 모두 시궁창... | 20.06.24 03: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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