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장문 주의. 대신 그 마지막에 5줄 요약을 넣겠음.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138327?view_best=1&page=2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스펙 옵스: 더 라인'이라는 게임에 대한 해설임.
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건,
한국인이 이 게임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건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이라는 점임.
한국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아니면 대부분에게 그러함.
왜?
이 게임은 온전히 미국, 미국인, 미국 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
그래서 그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움.
이 게임이 발매된 것은 2012년임.
이 년도가 왜 중요하냐면, 2012년은 이라크 전쟁이 끝난 해이기 때문.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기 시작하는게 2011년부터임.
문제는 이라크에서의 철군이 미국 사회에 문제를 하나 일으켰다는거임.
알다시피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 내에서조차 평가가 좋지 않았던 전쟁임.
다른 나라들로부터는 물론 미국 내에서조차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고,
결과가 시원한 대승이었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프간-이라크로부터 돌아온 참전 군인들은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됨.
나름대로 조국을 위해 사지로 나가 목숨 걸고 싸웠는데,
돌아와보니 정치인들은 티비에서 내가 목숨걸고 싸웠던게 다 헛짓이었다는 말만 매일매일 되풀이하고
사회에서는 은근히 사람 죽이고 온 놈 취급이고
국가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전쟁 취급하며 쉬쉬하느라 영웅 대접이라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고....
사실 이 문제가 시작된건 아프간-이라크 전쟁보다 더 이전임.
이런 문제가 처음 시작된건 다름 아닌 베트남 전쟁이었음.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가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라는건 잘 알거임.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는 외교전과 여론전이 밀려서였음.
그 정도로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미국 내외에서 높았고,
지옥같던 베트남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돌아온 대접은
'공산주의와 목숨걸고 싸운 영웅'이 아니라
'패잔병' '약소국 괴롭히는 깡패' '민간인 학살이나 하다 돌아온 놈' 같은 비난이었음.
이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다름아닌 람보.
후속작들이 마초 액션영화로 나오다보나 람보의 이미지도 무력 마초가 되어버렸지만,
본래 람보 영화 원작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 처우 문제을 다룬 진지한 사회 고발 영화였음.
이 영화에서 람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을거임.
자유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돌아와보니 자기는 평화에 적응 못 하는 PTSD 장애인이고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폭탄으로 취급함.
람보의 절규대로임. "아무 것도 없어! 휴가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왜 베트남전까지 거슬러가냐고?
스펙 옵스: 더 라인에 나오는 주요 음악, 노래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전 시기의 것들이거든.
지미 핸드릭스의 반전 노래들 같은.
작중 시간적 배경은 무기로 보나 배경 그래픽으로 보나 분명 2000년대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의도적으로 시대에 안 맞는 음악을 쓰고 있는 것임.
아주 의도적으로 게이머들에게 베트남전을 상기 시키는거지.
그런에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비하면 베트남전 이후는 그나마 나았음.
실패한 전쟁 취급이긴 해도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공화당 매파들을 비롯한 우파들은 지속적으로 베트남전을 옹호했거든.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이런 것도 없었음.
명분조차 불확실했던게 팩트고 우파들조차 손절해버렸으니까.
이 전후의 군인 대우는 PTSD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함.
PTSD 치료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희생이 가치있는 것이었음을 자타가 인정하는 것임.
이 때문에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은 비교적 PTSD를 적게 겪었음.
힘들고 끔찍한 경험을 했던건 똑같지만
나치나 북한은 그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자타가 공인하는 악의 축이 맞고
그렇다보니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도 명확했고
결과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한테 익숙한 한국전쟁 이야기이 촛점을 맞춰보자면
88올림픽을 보면서 PTSD를 벗어난 참전군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내가 희생해서 구한 나라가 발전해서 올림픽까지 개최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한 의미와 보람을 찾았다는거지.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워낙 관심을 못 받아서 잊혀진 전쟁 소리를 듣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논란거리가 없다는 이야기기도 함.
지금도 한국전쟁 참전했다, 북한과 싸웠다고 하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소리를 듣고
간혹 한국인이라도 만난다면 진심어린 감사도 들을 수 있다는거지.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그렇지 않았다는거야.
이 문제가 심각해서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엔
PTSD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이 단골로 등장함.
관심 있으면 넷플릭스 드라마 '퍼니셔'를 추천.
마블 히어로물이지만 주인공부터 아프간-이라크전 참전 군인이고 주변 주요 인물들도 그러함.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그런 시점에서 게임임.
이 게임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함.
'니가 한 번 군인 입장이 되어봐'라는거지.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 게임의 장르는 fps가 아님.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게임의 여러 특징들이 잘 이해됨.
왜 선택지가 없는가?
->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으니까.
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나한테 뭐라 그러는가?
-> 실제로 군인들도 명령대로 했을 뿐인데 죄책감과 PTSD는 자기가 떠안아야 하니까.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측면에서,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음.
CIA를 비롯한 "조국"은 군인들에게 제한된 정보만들 제공하고
때로는 심지어 가짜 정보까지 흘리면서 주인공들이 시키는대로 하도록 유도함.
선택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지만 상황을 가만히 보면 실제로 상황 자체가 선택지가 별로 없음.
결과를 아는 게이머 입장에서야 다른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서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임.
위에서 말한대로 상황은 급박한데 정보는 제한적이거나 심지어 거짓이거든.
게이머에게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음. 게임 끄고 더 이상 안 하는거.
근데 돈 주고 산 게임을 그럴 수는 없지?
군인에게도 전장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는 허상임.
전쟁터에서 군인이 '난 더 이상 못 하겠으니 집에 돌아갈래요!'하면 순순히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함?
군인으로서의 불명예,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가족들을 부양할 생계 수단의 단절 등등 걸려 있는게 너무 많기도 하고.
엔딩까지 보고 난 게이머들을 좋같은 기분에 빠트리는 그 요소.
로딩 화면에서 처음에는 게임 팁이나 스토리 해설 같은걸 알려주다가 점점 이런 비난을 하기 시작함.
그리고 이걸 게이머 개인에 대한 게임 제작사의 일침으로 생각하면 졸라 불쾌하거나 어이없을 수 있음.
아니, 선택지도 없이 시키는대로 안 하면 게임 진행 자체가 안 되게 해 놓고,
시키는대로 했더니 나를 무슨 나쁜 놈 취급하네?
그럴거면 선택지라도 주든지!
하지만 저 문구들은 게이머 개인에게 날리는 제작사의 일침 같은 단순한게 아님.
저건 PTSD에 시달리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형상화한 것인 동시에,
당시 미국 사회가 사지를 뚫고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암암리에 보내던 메시지임.
부시 정부의 명분 없는, 부당한 전쟁에 부역하다 온 살인자들.
석유 이권 둘러싼 더러운 전쟁에 이용이나 당하고 돌아온 멍청이들.
멍청하게 거짓 정보에 휘둘려서 무고한 사람들이나 죽이고 온 주제에 훈장? 전쟁영웅?
불쌍한 중동 사람들 삶의 터전 다 뒤집어 엎고 돌아오나 좋아?
참전 군인들 처우가 불만이라고? 너희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같아?
농담 같지? 아프간-이라크 전쟁 동안 미군 자살률이 치솟았던게 괜히 그랬던게 아님.
제도적으로야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만큼 군인 처우가 잘 되어 있는 편인게 미국이기도 하지만
제도와는 별개로 사회 분위기 상은 참전 군인들 대우가 형편없었던게 미국인 것도 사실임.
한 마디로 스펙 옵스: 더 라인 제작진이 게임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는 이것임.
선택지도 없이 제한된 정보와 거짓된 정보만 주고,
나름 최선을 다해 목숨 걸고 싸웠더니 결과는 허망하고,
근데 그게 전부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냐고?
어때, 좋같지? 기분 더럽고 억울하지?
근데 이게 지금 우리 미국이 돌아온 참전 군인들이게 하고 있는 대접이고
니가 느낀 그 좋같음과 억울함이 바로 그들의 심정이야.
괜히 스펙 옵스: 더 라인이 평단에 엄청난 호평을 받고 평점도 높은게 아녀.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는 정말 사회 전반에 날리는 통렬한 일침이었고,
굉장히 시의적절한 사회 고발적 내용이었던거지.
여기에 하나 더,
저런 메시지들은 이중적으로 미국 정부와 고위 장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함.
왜냐, 게임에서 주인공을 조종하는 게이머가 바로 그들의 포지션이기도 하거든.
실제로,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게임에서 가장 나쁜 악당은 CIA와 미국 정부임.
근데 게임에서 보면 주인공 일행은 제한된 상황 속에서 목숨걸고 사지를 헤매이며
그 결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면,
정작 진짜 책임이 있는 높은 인간들은 편하게 방에 앉아서
서류랑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상황 파악하고 명령만 하달하고 결과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자유롭거든.
즉, 게이머 개인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단
현실에서 게이머 포지션에 있는 정부와 군부의 관료들에 대한 비난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함.
마지막으로, 실제로 게이머 개개인에 대한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제작진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 전쟁은 다른 fps게임들에 나오는 것처럼 신나게 나쁜놈들 쳐죽이고 다니는 영웅놀이가 아니라
이 게임처럼 선택지는 없고 내가 선택한 행위가 아님에도 책임은 나에게 돌아오는
더럽고 좋같은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고도 함.
즉,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관점으로 이해하면 모든 메시지가 명확해진다는거지.
실제 군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주고,
진짜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쟁이 얼마나 좋같은 것인지를 굉장히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전달함.
게임성 자체에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성 하나만으로 그런 고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는거임.
종종 PC충들이 깨시민 일침놀이하느라 이 게임에 높은 평점을 매긴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게임이 출시된 2012년은 지금처럼 PC충들이 활개치던 시점이 아니기도 하고
실제 당시 미국 상황을 보면 오히려 PC충들을 까는 내용에 가깝다는걸 말하고 싶음.
당시 부쉬 행정부의 실정을 까기 위해
아프간-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손가락질하는데 앞장선게 바로 그 PC 충들이거든.
5줄 요약
1. 스펙 옵스: 더 라인은 2012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게임이므로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2. 스펙 옵스: 더 라인은 더러운 전쟁에 동원된 군인의 상황을 이해하는게 목적인
일종의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이다.
3. 게임 상에 나오는 비난 문구들은 게이머 개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시 참전 군인들에게 향하던 미국 사회의 부당한 비난 분위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4. 게임 상에서 게이머들이 느끼는 좋같음과 억울함은 이런 관점이서 의도된 것으로,
실제 아프간-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이 느끼고 있던 좋같음과 억울함을 같이 느껴보자는 것이다.
5. 다시 말하지만 이런 미국 상황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상태로 게임을 하면
그냥 게이머에게 선택지도 주지 않아 놓고 일침놓는 일침병 게임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렇게 느꼈다고 잘못은 아니라는 것.
요약해놓고 보니 요약도 긴 건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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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단점은 군인 시뮬을 총싸움 시뮬 하고 싶던 사람에게 판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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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 목표로 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가 있나? 했는데 시대상하고 연결되서 확실하게 정리되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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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이 안돼... | 19.12.10 13: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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