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라 유포니엄을 올해 3월에 보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교토애니메이션 작품을 골라보던중 5월달에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보게 되었습니다.
1화를 보고 큰 감동을 느껴 쿄애니의 또다른 명작이구나 하고 보다가 중간에 상당한 위화감을 느끼며 시청을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곤 다시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몇가지 이유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1. 지나치게 빠른 바이올렛의 재사회화 과정.
전쟁의 전투도구로만 사용되어진 바이올렛이 전후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에 맘에 들었던 에피소드가 바이올렛의 군인스러운 경직된 모습을 불편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교정하도록 도와 주는 여성동료들의 모습이었는데 그 부분에서 좀더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했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일지라도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 그저 선머슴아 같을 뿐일테고 매력도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바이올렛에게 여성으로의 육신의 아름다움과 여성스러운 행동을 가르쳐 주면서 서로 이해하고 더불어 동료애를 느끼며 또는 갈등하면서 성장하는 스토리를 기대했었는데 거기에 관한 설명은 너무나도 짧게 끝나 버렸습니다.
단순한 대필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바이올렛의 여성으로써의 자각과 공감능력이 향상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쿨로 끝나버릴 수 있는 짧은 방영시간에 어떤형태로든 바이올렛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간의 시간흐름을 너무 과도하게 삭제해 버린 것 같습니다.
OVA와 외전으로 그 간극을 메울 수 있고, 또 나름 이해 할 수는 있으나 그 전달 형태가 이 이야기에 몰입하는 팬들 이외에는 전해지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생각합니다.
2. 구독일제국을 연상케 하는 군대.
가상의 국가와 가상의 세계관에서의 전쟁이었지만 보는내내 그 복식과 명칭에서 구독일제국군이 떠 올랐습니다.
연상의 연상은 꼬리를 물었는데, 독일제국, 과거 2차대전에서 일본의 동맹국 이었고 당시 독일의 정치,경제,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많이 주었으며 , 전후에 각종일본매체에서 구독일군에 우호적인 묘사가 많았다는 생각까지 도달하면, 그냥 그 자체로 불편해 졌습니다.
차라리 프랑스군이나 영국군의 복식과 명칭이었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거란걸 생각하면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불편함이 아니었나, 그래서 전투장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그냥 싫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3. 대필의뢰자의 죽음으로 인한 신파극.
당시의 상황상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이 곧 죽을 거라는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질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죽음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이 우리나라 70년대 엄마없는 하늘아래같은 최루성 신파극이었다는데서 감정 이입이 힘들었습니다. 그 뭐냐. 옛날영화중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김병장님 제가 죽으면.. 이 대위님 제가 죽으면.. 같은 죽으면서도 할말은 끝까지 다하는 모습이 슬프고 눈물이 나지만 너무 작위적이나 않나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신파극은 저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에피소드 중 대필의뢰자의 소중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슬퍼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까지 그 반대의 심정을 이해하기엔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2월에 들어 다시 보게 된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처음 볼때보다 훨씬 더 마음에 닿습니다. 처음에 느꼈던 불편함과 위화감은 추가 에피소드를 시청함으로써,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무뎌지고, 그 감동은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바이올렛의 이야기는 내러티브의 몇몇 구멍을 넓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근래 보기 드문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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