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친 뒤, 집사는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나와 다섯 명의 등신들을 홀의 오른쪽에 위치한 복도로 안내했다.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순환식 구조였다. 문이 뜯겨나간 장롱처럼 생긴 칸들이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신사납고 위험해 보이는 바로 그 엘리베이터 말이다. 왼쪽은 올라갔고 오른쪽은 내려갔다.
“한 명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오시죠.”
집사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위험해 보이는데 자칫하다 끼이기라도 하면 어디 한쪽이 잘려나가는 거 아니에요?”
파란 머리로 염색한, 앞니가 튀어나온 웃기게 생긴 여자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끼이면 안전장치가 있어서 자동으로 멈춰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죠.”
안경을 낀 학자처럼 생긴 남자가 말했다.
“타 봤어요?”
이번에는 무서운 눈매에 피글렛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물었다.
“네, 1902년에 지어진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구형 엘리베이터를 매일 탔죠.”
그는 입구 쪽의 손잡이를 잡고 무릎높이까지 떠오른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그 폼이 꽤나 능숙했다. 남은 이들은 그가 머리 위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뒤이어 부랑자가 결심한 듯 재빨리 다음 칸을 잡아탔다. 남은 남자는 나뿐이었다. 파란머리의 벅스 버니, 무서운 눈매의 피글렛, 그리고 긴 주황색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여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벅스 버니가 말했다.
“나도 몰라요. 타 본 적 없으니까.”
“왜 그렇게 화난사람처럼 말해요?”
“내가 언제 화를 냈어요?”
“아까도 식사자리에서 무례하게 굴었잖아요. 당신 때문에 우리 귀중한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 뻔 했다고요.”
안경을 낀 여자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끼어들었고 피글렛은 여전히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지만, 다들 어떻게 이 자리에 초대받은 거죠? 작가십니까?”
내 물음에 그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파티에서 초대를 받았어요. 대화를 나눠보니 아주 훌륭한 분이시던데요?”
벅스 바니가 말했다.
“어떤 파티요?”
“외숙모 생일 파티요.”
“외숙모께선 뭐하시는 분인데요?”
“그걸 왜 묻죠?”
“나 참...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뭐라고요?”
“신경 쓰지 마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내가 3층에 도착해 내리자, 집사와 남자들이 문이 닫힌 복도 앞에 서있었다.
“여기서 뭐해요?”
내가 집사를 향해 물었다.
“숙녀 분들이 도착하시면 방으로 안내해 드리죠.”
얼마 후에, 벅스 버니와 안경 낀 여자가 3층에 도착했다. 다음 칸에 피글렛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발이 바닥에 들러붙어버렸는지 뚱하니 서 있다가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 그 바람에 그녀가 탄 칸이 왼쪽으로 돌아 내려갔다. 우리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마지막 숙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피글렛이 무사히 도착하자, 집사는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복도를 가로막은 문손잡이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왜 복도에 문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열쇠로 여닫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환한 전등에 빛나는 하얀 대리석 바닥은 눈이 부실지경이었고 5미터 간격으로 화사한 꽃이 놓여있었다. 나는 복도에서 가장 가까운 쪽의 객실에 배정을 받았는데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할 수준이었다. 더블침대 옆 협탁에는 내선전화기가 놓여있었고 아늑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에 벽에는 그에 딱 어울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옆에서 머저리들의 탄성이 울려 퍼졌다. 소리를 따라가자 복도 가운데에 응접실 겸 식당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들은 진열장에서 막 꺼낸 와인을 꺼내 서로의 잔을 채우는 중이었다.
“가서 함께 한잔 하시죠.”
뒷짐을 진 집사가 머저리들이 앉은 소파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요. 이리 와서 같이 한 잔 합시다. 작가 양반!”
부랑자가 가래 낀 목소리로 손짓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라도 된 것처럼 여유가 넘쳤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으시다면 객실 룸서비스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룸서비스요?”
집사의 말에 피글렛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객실은 침대 옆 협탁 서랍에, 응접실은 식탁 위에 메뉴판이 있으니 확인해 보시죠.”
그 말에 머저리들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뒤쪽 식탁으로 달려가서 메뉴판을 확인했다. 그들은 메뉴판의 각종 요리와 음료의 이름을 읊으며 감탄하며 소파 옆에 놓인 전화기로 요리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 너저분한 광경을 바라보던 집사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러분, 그럼 좋은 저녁 보내십시오.”
난 방으로 돌아와 잭 다니엘과 콜라 두 병을 시켰다. 시계를 보니 12시에 가까워져 있었지만 여전히 응접실에서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벽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들은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있는지 저녁을 그렇게 푸짐하게 먹고도 쉴 틈 없이 룸서비스로 온갖 요리들을 주문해댔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대표에게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주제로 한바탕 떠들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도 들리지 않고 ‘삐삐’ 거리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통화가 곧바로 꺼졌다. 폰의 상태 창을 확인해보니 ‘서비스 안 됨’ 이라는 표시가 떠있었고 인터넷도 접속이 불가능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북이라든지, 태블릿이라든지 뭔가 인터넷이 될 만한 걸 뒤졌지만 방 어디에도 그런 건 없었다. 책상에 놓인 묵직한 레밍턴 타자기가 전부였다. 하여간 아날로그 사랑이 대단한 집주인이었다. 그때 등 뒤로 바닥을 빠르게 스치는 어떤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보니, 문 틈 아래로 푸른색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편지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한 줄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오늘 저녁 6시까지 20페이지 분량의 희곡을 제출하십시오.'
내가 곧장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는 찰나 집사가 열려있던 복도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잠그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손잡이를 돌렸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봐! 왜 문을 잠그는 거야!”
나는 주먹으로 문을 세게 두들기며 외쳤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을 부술 듯 발로 세게 걷어찼지만 두꺼운 나무문에 내 발바닥뼈가 먼저 부러질 판이었다. 그 소리에 의사양반이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그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방금 문을 잠갔어요. 우릴 가뒀다고!”
의사 양반은 문손잡이를 잡고 몇 번 돌리더니 별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별일 아니겠죠. 이곳의 규율일 수도 있고...”
“아니, 손님을 감금하는 정신 나간 규율이 어디 있어요?”
“특이한 분이잖아요. 우리가 비위를 맞춰야죠. 덕분에 큰돈을 쥐고 나갈 텐데.”
“그쪽은 어떻게 초대됐어요?”
“학회모임의 뒤풀이 파티에서 그 분을 만났죠.”
“학회요?”
“정신분석학회요.”
“댁이 보기엔 이 작자의 정신상태가 정상으로 보입디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어요. 변태인건 분명해보이지만... 그렇다고 뭐 별 일 있겠어요.”
그는 이 상황을 아주 느긋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우리가 감금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 돼지우리를 연상시키는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고기조각과 빵 부스러기가 폭격을 맞은 듯 테이블과 카펫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고 먹다 남은 양갈비 한쪽이 코냑이 반쯤 찬 술잔에 담겨 있었다. 머저리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술을 홀짝이며 서로를 향해 잘 들리지도 않는,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나는 구둣발로 테이블 다리를 두 번 걷어차며 거친 노크를 했다.
“뭐야? 또?”
벅스 버니가 턱을 괴고 눈을 찡그렸다.
“우린 갇혔어요.”
“무우라구우?”
부랑자가 꼬인 혀로 느리게 말했다.
“복도 문을 잠그고 우릴 가뒀다고! 당장 가서 확인해 봐요!”
내가 손가락을 뻗으며 크게 외쳤지만 그들은 게으른 거지새끼들 마냥 키득키득 웃을 뿐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몇 번 더 외쳤지만 결국 포기하고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정신과 의사를 향해 물었다.
“혹시 편지 봉투 받았어요?”
“편지 봉투라뇨?”
“당신 방 문 안쪽을 확인해 봐요. 내일... 아니 오늘 저녁 6시까지 20페이지 희곡 대본을 써내라고 적혀있으니까.”
의사가 응접실 뒤의 자신의 방에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봉투 같은 건 없던데요?”
“없다고요?”
“못 믿겠으면 내 방에 가서 확인해 봐요.”
나는 의사의 방은 물론이고 다른 머저리들의 방을 모두 확인했지만 그들 중 편지봉투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당신이 첫 번째로 글을 쓰고 다음차례가 되면 다른 사람이 글을 쓰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요? 야구로 치면 1번 타자인 셈이죠.”
갑자기 이 모든 상황에 넌더리가 났고 그래서 복도로 나가 다시 분풀이 하듯 나무문을 발로 걷어찼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잭 다니엘을 병째로 들이키며 욕설을 난발하면서 신경질적으로 타자기를 두들겨 댔다. 뭐가 됐든 20페이지만 채우자는 마음이었다. 내가 써낼 수 있는 한 최악의 원고를 싸질러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마구 떠오르는 상황을 조잡하게 이어 붙였다. 새벽 2시 무렵, 응접실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내 옆은 부랑자의 방이었는데 벽 너머로 방문이 닫히더니 이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똥 같은 것을 써내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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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에서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