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놀랐나? 내가 디너게이트를 조종하는 거 말야."
경악에 빠진 자매는 조금 떨어져 있는 남자와 디너게이트를 번갈아 보았다.
"뭐, 아무튼 자세한 사정은 너희 동료에게 듣도록, 내 용건은 이제 거의 끝났으니까. 사실 너희를 벌써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말야.
"그게 무슨........."
"쏘아진 화살, 던져진 창이라고 했나?"
".........."
"총이 검보다 나쁜 점이 뭔지 아나? 중간에 되돌릴 수 없단 거야. 한 번 방아쇠를 당기면.........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없지."
"무슨 헛소릴........."
"빠져나가라."
"뭐?"
"뒤는 내가 맡는다. 셰이드 필드가 깨졌군. 보스급만 셋, 에이전트, 디스트로이어, 알케미스트다."
그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선글라스를 HK416에게 씌워 주었다. 그러자, 선글라스의 홀로그램이 그녀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뚜렷한 열원만 10만이 넘었다.
"장갑형이 95%, 나머지 중 절반 정도는 인형, 다른 절반은 기계형, 야포도 끌고 오는군."
"장갑형이 비정상적으로 많아. 철갑탄이........"
"가라니까, 시야는 끌어 주지."
"당신,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어?"
"인간이라고 한 적은 없지만 틀리진 않았어."
"인간이 무슨 수단으로 저 많은 걸 저지한단 거야! 정규군도......."
"아까 내가 철혈 수백을 처리한 건 기억 못하나 보군, 생각보다 머리가 니쁜데?"
"뭐야?"
HK416이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곧장 그녀에게서 떨어져 철혈이 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6시간."
"뭐?"
"6시간 내에 너희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너희도 죽은 목숨이야. 적어도 10km 밖으로는 벗어나야 할 거다. 아, 선글라스는 기념으로 가져."
"야! 너!"
막 걸어가려던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뭔데? 나도 시간은 없거든."
묻고 싶은 거야 많았다. 도대체 고용해서 뭘 시킬 거냐. 어떻게 만나야 하나.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궁금한 건.
"너, 이름이 뭐야?"
"T라고 부르도록, 그리고 한 가지, 만약 나와 다시 만난다면, 그땐 전부 알려 주지, 착수금도 그때 주고 말야. 그럼,"
곧장 그는 폭발이 휩쓸고 간 구덩이로 뛰어내렸다.
"416, 아까 그 남자, 대체 뭐야?"
"돌겠네."
UMP45의 질문을 거의 듣고 있지 않던 HK416은 신음을 흘렸다.
선글라스가 보여 주는 상황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콰쾅! 콰콰콰쾅!"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철혈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군, 해킹에 의해 통제력을 상실했어."
"그 남자가 뭐라고 했냐니까!"
"6시간."
"뭐?"
"6시간 뒤에 반경 10km 이내에 있으면 죽은 목숨일 거라고 했어."
"10km? 이런 젠장! 설마 핵을......"
"어...... 언니? 갑자기 무슨......."
"9, 당장 11 찾아와."
"잠탱이 저기 있네."
G11이 저만치에서 조준경에 눈을 대고 있는 걸 가리킨 416은 곧장 그녀에게 걸어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일단 빠져나가자, 9, 느낌이 안 좋아."
"넌 뭐냐! 인간 주제에 대체 뭐냔 말......"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디스트로이어의 소체, 그 소체에 휴대용 PDA를 연결시킨 남자는 장난을 하듯이 화면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앞을 엉망진창이 되어 뒹구는 것은 다름아닌 에이전트였다.
"저번에도 부하들의 통제력을 잃어버린 적 있지 않나? 너에게는 첫 경험은 아닐 텐데? 기분이야 더러울지 몰라도 말야."
"다르다! 전혀! 이건....... 이건........ 아아악!"
"흠, 제법 버티는데?"
그는 씩 웃으며 화면에 키보드를 띄우고 알 수 없는 코드를 입력했다.
"전장 시스템 로딩, 영역 동기화 및 모듈 로드... 97%, 좀 느리네, 소체의 성능 자체가 낮아서 그런가? 뭐, 상관없지, 이따 네 소체를 쓰면 될 테니까."
"누가 순순히 내준........"
"위성 링크 활성화, 지휘 시스템 가동, 으흠?"
잠시 뒤, 전술지도가 떴다. 사방이 철혈로 가득한 모습을 보고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보스 셋 중 둘이 벌써 그에게 당하지 않았던가?
"네가 철혈 서열 2위라고 했나? 엘리사와의 연결 링크는 있겠지?"
"그분을..........."
"순리를 바로잡을 뿐이지, 너희는 저항할 수 없어, 하드 디스크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포멧에 저항할 수 있던가? 응?"
"으윽!"
잠시 뒤, 붉은 색으로 점멸하던 철혈 신호들에 자그마한 테그들이 하나 둘 붙기 시작했다.
"감염이라니? 이런 건........."
"너도 본 적 없겠지, 엘리사도 아마 거의 몰랐을 거야. 너희는 엘더 브레인이라고 부르던가?"
"감염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쓰던 우산 바이러스처럼 단순한 게 아냐. 후훗, 감염이란, 철혈공조나 IOP의 전술인형과 병기들 모두에 해당하는 시스템인데, 정확히는 시스템에 대한 권한자를 제외한 제 3자의 침입을 말하는 거지."
그는 곧장 키보드에 긴 문자열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에이전트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문자열이었다.
"이 코드는 최초의 인형이 생산되기도 전에 사용되다 사라진 코드지. 아마 이 접속경로도 금시초문이겠지만 말야."
잠시 뒤, 그 붉은색으로 점멸하던 것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철혈들이 하나 둘 초록색으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후후, 어떤가?"
"무슨..........."
"네 아래로 지휘체계가 있지? 엘리사 밑에 네가 있고, 네 밑에 저 디너게이트가 있다고 하자, 그럼 엘리사가 널 건너뛰고 디너게이트에게 권한을 행사하면, 그건 정상적인 상황일까? 할 수 있더라도 그게 정상적인 건 아니지, 그래서 감염 기호가 뜬 거야, 하지만 제어권에 대한 정상적 이양이 끝나면 더 이상 감염 상태가 아니게 되지, 암호화 지휘체계 안정적 구축 완료, 지휘체계 업데이트 완료. 후훗."
"무슨 헛.........."
"간단히 말해, 너희 모두는 이제 내 말을 들어야 한단 거지, 지휘체계 상으로 말야. 그럼 첫 번째 명령이다. 엘더 브레인에게 안내하도록, 그녀도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가겠다고 연락을 넣었으니까."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순간, 에이전트의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
디스트로이어의 소체를 들어 에이전트의 주먹을 막은 그는 씩 웃었다.
"말을 안 듣는군."
그는 곧장 주먹에 깔끔하게 관통된 디스트로이어의 소체를 휙 밀었다. 여전히 주먹이 소체에 박혀 있던 에이전트 역시 순간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크윽!"
에이전트는 자신이 순간 휘청인다 싶더니 하늘과 땅이 거꾸로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발목을......."
에이전트의 발목을 걷어차 그녀를 꼴사납게 나동그라지게 만든 그 남자는 흥미가 떨어진단 듯이 자신의 발목을 비틀었다.
"조금 쑤시는군,"
"감히!"
곧장 에이전트의 치마 속에서 화기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쓸모없다니까?"
에이전트의 마인드맵으로 신호가 곧장 들어왔다.
<무기 설정 : 잠금>
곧장 명령권자를 추적한 에이전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 관리자 권한인 것이다. 설마 해킹으로 엘리사의 권한을 탈취한 것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엘리사 위의 권한이 작동한 것이다.
물론 철혈의 지휘인형들 사이에서는 엘리사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가진 자리가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엘리사의 아버지, 리코가 엘리사를 제어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해 놓지 않았을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권한을 가지고 있던 유일한 존재, 리코가 사망한 이상, 그 권한을 발동할 사람이 없으니 있든 말든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권한이 발동된 것이었다.
"프로이라인, 그대들의 실책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그 권한을 가졌을 거라고 착각한 것일세, 나는 아까 그 코드가 보안장치가 몇 겹이 되든 우회하지 말고 엘리사의 마인드맵으로 전송되게 만들었지, 이 방식으로는 극히 기초적인 침입방지장치도 뚫지 못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거든, 말 그대로 왕좌의 정당한 주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일 뿐이니 말이네. 역시 그대들의 가장 큰 적은 그대 자신, 더 정확히는 그대들의 오만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