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와 카드 배틀이 만났다, 데스티니 오어 페이트
주요 퍼블리셔의 한국어화 라인업 확대와 닌텐도 스위치 등 신규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국내 콘솔 시장은 연일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이에 따라 ‘테라’, ‘검은사막’,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유수의 국산 게임들이 콘솔 이식에 나서고 있으며, 과열된 모바일 경쟁에 지쳐버린 게임사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10일(목)부터 나흘간, 고양시 킨덱스에서 진행 중인 플레이엑스포에서 콘솔 게임 개발에 매진하는 몇몇 스타트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콘솔 시장은 수집형 RPG 일변도인 모바일에 비해 장르적 다양성이 살아있지만, 그만큼 완성도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진입 장벽이란 측면에서는 모바일보다도 난해한 시장이다.
과연 국산 콘솔 게임의 개척자를 자처한 이들은 어떤 전략으로 새로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까? 장르부터 독특한 판타지 로그라이크 카드배틀 ‘데스티니 오어 페이트(Destiny or Fate)’를 개발 중인 블래스터 강삼세 대표, 오성진 PD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블래스터 오성진 PD(좌)와 강삼세 대표(우)
● 스타트업 게임사인만큼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강삼세: 그간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드래곤 네스트’, ‘리니지 이터널’ 프로젝트에 몸 담았다가 지난해 창업에 나섰다. 국내에는 카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거의 없어서 결국 직접 개발하게 됐다(웃음). 현재는 여덟 명이서 함께 ‘데스트니 오어 페이트’를 만들고 있다.
오성진: 예전에 강삼세 대표와 함께 ‘드래곤 네스트’를 만들었던 인연으로 합류하게 됐다.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보람 찬 순간은 플레이어들이 내 창작물을 재미있게 즐겨줄 때다. ‘드래곤 네스트’ 개발 당시 강삼세 대표는 그 누구보다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해줬다. 이런 사람이 이끄는 회사라면 그러한 보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 판타지 로그라이크 카드배틀이라니 흔히 들어보지 못한 장르다
강삼세: 기본적으로 RPG처럼 게임을 진행하며 전투는 카드배틀로 치르는 게임이라 보면 된다. ‘매직 더 개더링’부터 ‘하스스톤’까지 카드 게임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뭔가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이런 형태로 발전했다.
● 카드배틀을 활용한 전투 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오성진: RPG적인 요소와 카드배틀이 혼재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최소 15장의 카드와 영웅 및 몬스터로 편성된 4인 파티를 운용하게 된다. 영웅이나 몬스터는 저마다 스킬을 가지고 있고 마나 한도 내에서 카드를 사용해 각종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 몬스터 스킬과 카드 효과를 적절히 연계하는게 전투의 핵심. 시연 버전에서는 매 턴마다 몬스터가 행동하는데, 향후에는 강력한 스킬을 쓸 경우 한동안 행동할 수 없도록 할 것이다.
● 영웅이나 몬스터라고 했는데 둘은 어떻게 다른 건가
오성진: 영웅은 게임 도중 발생하는 특정 이벤트를 통해 획득하게 되며 몬스터는 적을 처치하고 포섭할 수 있다. 영웅의 경우 강력한 리더 스킬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과 궁합이 좋은 몬스터로 파티를 꾸려야 최적의 효율을 얻을 수 있다. 현재는 영웅은 단 한 명만 넣을 수 있는데 플레이어의 자유를 너무 제약하는 것 같아 다른 방안을 고민 중이다.
● 카드 획득은 어떻게 하나, BM(수익화 구조)와 연결되나
오성진: 일단 BM에 대해선 부분유료화는 아예 고려치 않고 있다. 대신 전투에서 승리하면 카드 몇 장을 보여주고 그 중 하나를 직접 골라 갖게 될 것이다. 그 외에 상점에서 구매하는 경우에도 당연히 인게임 재화을 지불한다. 적에게 직접 타격을 입히거나 아군을 치유하기도 하고, 다음 턴의 마나량을 늘리는 등 카드 효과는 각양각색이다. 매 턴마다 카드 5장이 손에 들어오며 덱을 모두 소진할 경우 다시 처음부터 섞여서 나오게 된다.
● 아군 몬스터와 적 몬스터, 손에 쥔 카드까지 있으니 UI가 복잡하다
오성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지 고심하는 중이다. 몬스터를 아래로 내리거나 카드를 중앙에 놓기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카드가 가장 아래에 있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더라. 다만 지금도 계속해서 개발 중인 부분이라 개선의 여지는 많이 남아있다.
● 그러면 로그라이크적인 요소는 어떤 점이 있나
오성진: 로그라이크와 같이 매번 게임을 즐길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갈림길에서 어떠한 경로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획득하는 영웅과 몬스터, 카드가 달라지고 적들도 변화한다. 또한 전투나 선택의 결과가 곧장 저장되기 때문에 입맛대로 다시 고르거나 할 수도 없다. 전멸할 경우 모든 것을 잃고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데, 여러 번 회차를 반복해야 해금되는 특별한 카드도 존재한다.
● 이런 장르는 속된 말로 ‘운빨X겜’이 될 소지가 다분한데
오성진: 운이 주로 작용하는 요소는 카드다. 획득 자체도 확률적인데다 매 턴마다 무작위로 다섯 장이 들어오니까. 반면 영웅과 몬스터의 경우 스킬을 확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전략적인 판단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설령 손패가 꼬이더라도 몬스터에게 의지해 덱이 순환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다키스트 던전’과 같이 눈뜨고 코가 배이는 상황은 없으리라 약속한다.
● 몬스터나 카드 강화가 존재하나. 갈아 넣어서 5성 SSR을 만든다거나
오성진: 5성 SSR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웃음), 특정 이벤트를 통해 몬스터를 강화할 수는 있다. 다만 한 판에 존재하는 강화 기회가 한정되기 때문에 어떤 몬스터에게 힘을 실어줄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 콘솔 게임은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이를 어떻게 보여줄 계획인가
오성진: 게임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이미 세계를 구한 영웅이다. 그는 마왕과 일전을 벌이는 와중에 어떤 질문을 받았고, 그 답을 구하고자 자신의 여행을 처음부터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RPG는 서사의 진행이 선형적이지만 ‘데스티니 오어 페이트’는 로그라이크라는 장르 특성상 여러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흩여 놓았다.
● 게임이 굉장히 독특한데 주로 어떤 작품을 많이 참고했나
오성진: 물론 여러 카드 게임을 좋아하고 살펴봤지만 실은 어릴 적 즐긴 ‘드래곤 퀘스트’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클래식한 디자인을 택한 것도 그 시절의 메트로한 감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꼈던 그 감동과 재미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고 싶다.
● 최종적인 게임 볼륨은 얼마나 되며, 출시 예정 시기는 언제인가
오성진: 카드는 150여 장, 영웅은 약 28명. 그리고 몬스터는 약 100여 종이 들어갈 텐데 약간의 변화를 준 바리에이션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출시는 일단 올해 말까진 내는게 목표다. 지원 기기는 스팀을 통한 PC, Xbox, PS4, 닌텐도 스위치다.
● 업계의 대세는 모바일인데 어째서 콘솔을 지향하게 됐나
강삼세: 현실적으로 우리처럼 작은 회사가 모바일 게임을 내놓아도 홍보할 방법이 전혀 없다. 대규모 자본을 갖춘 퍼블리셔를 잡아야 하는데, 그들과 얘기해보면 100% 나오는 질문이 ‘이런 게임이 성공한 사례가 있느냐’다. 그래서 ‘음, …없죠’라고 대답하는 순간 거기서 계약은 끝. 결국 이미 흥행력이 검증된 게임과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 거다.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콘솔에서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 로그라이크 카드배틀이면 국내 마니아층만으로는 다소 힘들 것 같다
강삼세: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지원할 예정이고 특히 서구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콘솔은 해외 심의가 상당히 까다롭다고들 하는데 우리도 처음이라 부딪히며 경험해볼 수밖에 없다.
● 플레이엑스포에 출전했는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강삼세: 게임 시연이 끝나면 짧은 설문을 부탁드리고 있는데, 어떤 분이 '데스티니 오어 페이트'를 위해 콘솔을 구입하고 싶다고 적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벅찬 심정이다.
● 끝으로 루리웹 독자들에게 당찬 출사표를 던져달라
강삼세: 사실 내가 루리웹 고레벨 유저다. 항상 보고 있으니 피드백 남겨 주시면 열심히 반영하겠다. ‘루까성’이란 말도 있으니 혹여 안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