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하면서 느끼는 것중 하나가 뭐냐면, 세계역사 지식이라고 생각이 들더랍니다.
원래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2배 3배 더 재미있게 할수 있는데 반면 아무런 배경지식조차 없는 분들이 하게되면 그냥 단순한 액션 게임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되더라고요.
특히나 트위치나 팟플에서 개인 게임방송 영화 트시는 분들중에서 역사적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등장인물들의 관계라던지,얘 누구야?? 장소는 이집트 인데 그리스 로마 병사는 왜나오냐?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번 몇가지 간단하게 준비해 봤습니다. 부족하지만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란?
많은 사람들이 고대 이집트가 배경인데, 왜 우리가 아는 고대 이집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왠 그리스 백인들이 나오냐?? 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 원인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문인데요. 고대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바로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건너온 외국인 왕이기 때문이지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은 초대 국왕인 프톨레마이오스1세 는 과거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절친이자 가장 신뢰받는 장군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에 처할때마다 그의 목숨도 구해준 각별한 사이이기도 했고요. 그들은 서로를 믿고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쟁터를 누벼온 전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대제국은 그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자 4개로 분할되었고, 그중 가장 축복받은 땅인 이집트 지역을 이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물려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된 것이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리스계 외국인 왕조이지만, 딱히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배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라오 라는 명칭도 쓰고 그들의 신화도 존중해줬다고 하네요. 다만, 고대 이집트 어를 절대 배우지 않고 오직 그리스 어 로만 대화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과거 이집트 고왕국시대 나 다른 왕권 국가들과 마찮가지로 철저하게 왕실의 피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부 혼혈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클레오파트라도 사실은 처음엔 남동생과 결혼을 했으니까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하여 당시 지중해에서 가장 거대한 해상무역항구 도시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파로스의 등대 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운 작품이었지요.
알렉산드리아는 당연히 그리스계 왕조가 만든 도시인 만큼 그리스 로마 그리고 동방 국가들의 세계 무역항이 되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고 헬레니즘의 문화를 꽃피운 도시이기도 합니다.
현재에도 알이스칸다리야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하는 이집트 최대 항구도시입니다.
2.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사람이다.
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연계되는 부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리스계 외국인 왕조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는 당연히 그리스 백인이겠죠. 더군다나 얘네들은 근친혼으로 왕실을 유지해왔으니까요. 처음엔 클레오파트라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13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어색한 남매이자 부부는 같이 공동왕위로 오르라는 부왕의 유언을 무시하고 서로 왕위를 혼자 독차지 하려고 물어뜯기 시작했죠. 처음엔 프톨레마이오스13세의 승리로 클레오는 왕실에서 쫒겨나게 되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을 통해 기회를 잡은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을 죽이고 명실상부한 이집트의 여왕에 등극하고 맙니다.
여왕의 자리에 오른 댓가는 톡톡히 치뤘겠죠? 50대 노인네 아저씨와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가 서로 껴안았으니, 결국 둘사이에 아들도 태어납니다.
카이사르와 손잡은 후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땅을 벗어나서 국빈 자격으로 줄곧 로마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연히 이집트 본토는 국왕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엉망진창이 됐겠죠.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결국 로마에서 나와 이집트 땅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엉망이된 이집트를 다시 바로잡으려면 이집트 왕국군 만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외세에 의탁해서 여왕이 된 마당에 결국 외세를 끌어들여서 다시 질서를 잡을 수밖에요.
참고로 클레오파트라의 정식 명칭은 클레오파트라7세 입니다. 왜 7세가 붙냐면, 우리가 아는 이 클레오파트라 이전에 클레오파트라 라는 이름을 가진 왕족, 여왕들이 많아서 그래요. 특히나 이 클레오파트라7세는 이집트 마지막 왕조이자 그리스계 외국인 왕가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의 역대 국왕중 상당히 똑똑한 여인이었으며, 9개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줄 알며 각종 상식과 지식을 겸비한 팔방미녀 였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국왕들이 오직 그리스 어로만 대화한거에 비하면 클레오파트라7세는 잊혀졌던 고왕국 이집트 시대의 고대 이집트어를 할줄 알았던 유일한 외국인 왕이었다고 하네요. 음... 한번보면 결혼하고 싶어질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인 여인임에는 틀림없군요.
3.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어쌔신크리드 오리진 중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로마 장군이었죠.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통칭 폼페이.
너무나도 잠깐 스쳐가는 까메오 수준인지라 도대체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을 법한 인물이지만, 로마 역사상 이 폼페이 장군은 정말 아주 중요한 인물 입니다.
바로 카이사르가 제안한 삼두정치인중 한명이었기 때문이죠.
삼두정치 이전에 폼페이는 이미 카이사르보다 인기가 매우 높고 덕망있는 유명한 장군이었습니다. 로마와 지중해를 위협하는 해적들을 싸그리 소탕하기도 했고, 그 유명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에서 살아남은 잔당들을 제거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심지어 일생 단 한번도 하기 힘들다는 로마 개선식을 세번씩이나 한 개선장군입니다. 나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보다 6살이나 더 연상이었지만, 떠오르는 권력자인 카이사르와의 관계를 위해 그와 혼인동맹을 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어린 딸인 율리아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됨으로써요.
카이사르와는 달리 그는 정치권력에 딱히 큰 욕심은 없었던 듯 보입니다. 전성기의 카이사르보다 확실히 덕망도 높고 군단도 더 많이 보유한 폼페이 장군은 이전 루비콘 강을 건널때 그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로마 원로원의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군단을 모두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온 인물이었으니까요. 로마 원로원은 원래 카이사르보다 이 폼페이 장군을 더 두려워했고 견제했었죠. 이런 인물이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들어오면 그순간 로마 공화정은 끝이었거등요. 하지만 폼페이장군은 로마를 향해 그러한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인물인 카이사르가 그일을 해내고 말았죠.
드디어 쿠데타를 일으킨 카이사르를 막기 위해 로마원로원은 그동안 자신들이 괴롭혔던 폼페이우스 장군과 손을 잡게 됩니다. 이때 폼페이우스 장군도 딱히 로마 원로원을 내칠수 있는 입지를 가지진 못했어요. 결정적인건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를 이어주고 있었던 연결고리인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가 출산 도중 사망하고 맙니다. 거기다 삼두정치인중 하나인 크라수스 장군이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고 무리하게 동방 파르티아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해버는 마당에... 결국 폼페이와 카이사르의 권력 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둘중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어야 하는 치킨 게임이 시작된 거죠.
시작은 폼페이우스 장군이 훨씬 유리했습니다. 원래 뛰어난 전략가였던 폼페이우스 장군은 카이사르의 약점을 확실히 잘 알고 있었고 장기전을 통해 서서히 카이사르의 군단을 말려죽이는 전술로 승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조급한건 카이사르쪽이었고, 카이사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떨어지고 맙니다.
허나, 승자는 결국 카이사르가 되고 말죠. 이 어이없는 결말의 원인은 로마 원로원이었습니다. 로마 내에서 호의호식 했던 공화파 고위 원로원들은 전시상황의 야전생활을 못견디고 폼페이우스를 닥달한 나머지 폼페이우스 장군은 결국 실책을 하고 말고 기적적으로 카이사르 군대가 승기를 잡아 결국 폼페이우스의 패배로 끝이나고 맙니다.
폼페이 장군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였는데요, 이전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준 인물이 폼페이우스 장군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제 의탁하고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도와주지 않을까 해서 건너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길이 자신의 저승길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겠죠. 이집트 왕실의 경비대로 눌러앉은 옛날 폼페이의 부하들은 카이사르와의 내전에서 패배하고 도망쳐온 폼페이 장군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고, 더군다나 폼페이우스가 보낸 사절이 괜히 옛 상관의 밑으로 다시 들어오라는 헛바람을 불어넣은 바람에 폼페이 장군은 이집트에 상륙하자마자 자신의 옛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의 머리는 잘려져서 카이사르에게 보내졌는데... 이것을 본 카이사르는 기뻐하기는 커녕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위대한 장군이 허무하게 죽었다고 하면서.... 과연 진짜 슬퍼서 흘린 눈물일런지는...]
폼페이 장군의 암살을 빌미로 카이사르는 곧바로 이집트 원정을 시작하고 정복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7세와의 동맹을 통해서 말이죠.
그의 얼굴은 석고상으로 조각되어 그의 이름과 같은 폼페이우스 극장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폼페이와 권력투쟁을 했던 카이사르 역시 암살되었고 마지막으로 쓰러져 죽은 곳이 바로 이 폼페이우스 장군의 두상 밑이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4. 카이사르=(시저)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라 스포일러 축에도 끼지 못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어쌔신크리드 오리진 막바지에 나오듯이, 카이사르 = 영어 로 시저라 불린 이 인물은 기원전 44년 로마 원로원에 의해서 암살을 당했습니다.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에서는 주인공인 아야의 계략으로 인해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요.
카이사르는 로마 최고의 권력자로서 그 누구도 자리를 넘볼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실 카이사르도 원래는 단순한 로마의 장군으로 시작해서 별볼일 없었던 인물이었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었는지는 몰라도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다가 과거 프랑스땅인 갈리아 원정 성공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겉으론 민중파 였던 카이사르는 독재자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삼두정치라는 괴랄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죠. 뭐, 시작은 진심이었을수도 있습니다.
이 삼두정치는 끝이 안좋게 마무리 되었고, 결국 로마는 권력 내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내분마저도 승리한 카이사르는 로마 원로회를 다그쳐서 종신 독재관 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고 말죠. 원래 독재관은 로마 공화정때부터 있던 직책이었는데, 비상시 국론일치를 위해 한사람에게 정치 군사 재정 등 모든 주요 권한을 몰아주는 일종의 임시직이었습니다. 이걸 카이사르는 평생 해먹겠다고 선포하는 바람에 원로원과 공화파의 미움을 사고 맙니다.
사실, 말이 좋아서 종신 독재관이었지 그냥 왕관만 안쓰고 왕좌에 앉지 않은 왕 그자체 였으니까요.
아하! 현대의 1972년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일이 하나 있었죠. 정말 너무 똑같아서 뭐라고 할수가 없네요. 뭐,결말도 똑같았군요.
암튼 카이사르의 종신 독재관 등극을 계기로 로마 원로원은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걸 염려한 나머지 카이사르를 제거하기로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 그 결과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무참하게 살해를 당하고 맙니다. 이 암살극에 무려 60명정도가 달려들었고 칼에 23방이나 찔렸다고 하는군요. 이 독재자의 마지막 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단말마인 "부르투스 내아들아, 너도냐" 이 말은 후대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의 대사가 유명해지고 구전되어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죽었지만, 그가 유언장으로 지목한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 로 인해 로마 공화정은 끝짱나 버립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고 카이사르를 암살했건만, 그의 후계자에게 영원히 멸망해버렸다니... 아이러니 하군요.
또한 카이사르는 이전에 클레오파트라7세와의 정분으로 정식 아들도 한명 있었지만 전혀~ 언급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둘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정분을 맺은 그이상 이하도 아닌 셈이 되버렸네요.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가 죽자 그의 정식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때문에 로마를 벗어나야만 하는 운명이 되고 맙니다.
5. 옥타비아누스는 정치가 였지 군인은 아니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조카이자 양아들로서, 로마 공화정을 끝짱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그 유명한 로마제국 시대를 열은 인물입니다.
헌대, 왜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에서 나오지도 언급조차도 없는 옥타비아누스를 왜 여기에 썻을까요??
그건 바로....이 인물 때문입니다.
마르쿠스 비프사니우스 아그리파.
아그리파?? 어크 오리진에서 사이드 미션을 하다보면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그리파 란 이름을.
그리고 이 아그리파 라는 인물은 서양 미술을 전공하거나 입문하는 분들을 아주 지독하게 괴롭힌 그분이기도 하지요.
아그리파는 평민출신 장군으로 카이사르에게 발탁되어 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로 활약한 명장군입니다.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에 등극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활을 맡은 사람이지요. 이는 카이사르의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옥타비아누스는 정치적인 면에서 매우 뛰어났지만, 군사적인 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한 옥타비아누스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카이사르가 특별히 준비한 인물이 바로 아그리파입니다. 아그리파가 없었다면, 나중에 벌어질 악티움 해전에서 과연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할수 있었을까 의심도 되긴 하네요.
물론 옥타비아누스가 전쟁터 한번 다녀본적 없는 초짜는 아닙니다만.... 다른 장군들에 비하면 그 군사적 재능이 다소 떨어졌다고 하네요.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에선 녹색산맥의 수도 건설을 위해 이집트 노동자들을 심하게 부려먹는 악덕 장군으로 나오는데요. 결국 바예크의 칼날에 최후를 당하고 말죠.
글쎄... 역사적 고증을 따지고 보면, 바예크의 칼날에 죽은 아그리파가 이 아그리파랑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네요. 정말 동일인물이면 고증오류가 되는 셈이니까요.
뭐, 당시대에 아그리파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사람뿐만이 아닐테이니까요
그래도 차기작에 나올지도 모르는 동명이인 이 위에 설명한 아그리파가 되길 희망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6.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의 배경인 기원전48년은 예수가 탄생하기 약 48년전이다.
기원전 과 기원후 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려나요???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기준은 바로 성서의 예수 그리스도 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고대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을 거쳐 훗날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초대 카톨릭의 시작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고대 역사를 기록하는 기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게 된거죠.
기원전의 계산법은 숫자가 클수록 오래된 일이고 점점 작아질수록 기원후. 즉 서기 지금 시대로 들어오게 됩니다.
예수는 정확히 몇년 몇월 에 태어났는지 그 기록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대략 어림잡아 계산해온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네요. 아마 옛 크리스트교인들이 적은 기록을 통해서 정해진 듯 싶네요. 당연히 실제로 예수는 우리가 전세계적으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12월25일에 탄생한건 아니죠. 다만 그날을 공식으로 지정해 기념하는 것입니다.
아하! 참고로 기원전 은 영어로 B.C : Before Christ 이고 기원후=서기 는 A.D 입니다. 어라? B.C 는 예수 이전인건 납득이 되는데 왜 기원후는 A.D 냐구요? A.C 가 되어야 하는게 아니고?
그이유는 A.D 는 영어가 아니고 라틴어 Anno Domini 에서 따온 글자입니다. 뜻은 "하나님의 해" 라고 하네요.
(IP보기클릭)211.196.***.***
(IP보기클릭)175.117.***.***
네.. 저도 숀의 입담이 가득한 인물 데이터사전이 없어져서 매우 아쉽드라고요 | 17.11.14 02:31 | |
(IP보기클릭)218.152.***.***
(IP보기클릭)223.38.***.***
(IP보기클릭)175.195.***.***
(IP보기클릭)39.7.***.***
(IP보기클릭)106.255.***.***
(IP보기클릭)27.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