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드디어 니어 오토마타의 엔딩을 봤습니다.
사실 전 니어 오토마타가 정발한다고 했을 때 부정적인 선입견이 가득찬 상태였습니다.
전작의 명성을 들었던 지라 막연하게 자극적인 스토리에 광기가 가득한,
소위 막장 드라마에 있을 법한 요소를 게임으로 옮긴 게 아닌가하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편협한 시선이었지만 그만큼 니어 시리즈가 생소하기도 했고
자국 내에서도 매니악하기로 유명한 게임인 만큼 우리나라에선 접하기도 힘들었고
거기에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저에게 있어 니어는 관심 밖의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루리웹에서 요코 타로 디렉터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이 적을 타도하거나 적을 죽이고 생존하는 것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건 저도 게임을 하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봤던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흔히 게임을 할 때면 적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 나쁜 놈이니까 죽인다.라는 식의 당연하게 혹은 아무런 생각없이 적을 죽입니다.
이에 대해 농담 삼아 사실 네가 죽인 그녀석은 두 아이의 가장이고-란 식으로 얘기하면 뭔 소리냐는 핀잔이 돌아오죠.
몇몇 퍼즐 게임과 어드벤쳐 게임을 제외하면 게임의 주류는 항상 누군가를 죽이거나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툼레이더 같은 경우엔 주인공이 하도 무쌍을 찍으니 나중엔 적들이 그 유명한 대사, 저 여자가 우릴 다 죽일 거야란 대사를 치는 것처럼.
언차티드 같은 경우 수백 명이 넘는 적들을 학살하고 씩 웃으며 대사를 치는 장면을 보며 저녀석은 싸이코 패스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에 대해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야! 무슨 게임을 그렇게 깊게 생각해? 그냥 게임인데 즐기면 그만이지.'라는 말을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적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심지어 그것을 재밌어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그에 대한 게임을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니어 시리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전 이 게임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니어 오토마타 엔딩을 본 지금 전 떠오르는 게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스펙옵스 : 더 라인'이란 게임입니다.
TPS 장르와 찰떡 궁합인 '전쟁'이 과연 찰떡 궁합인가에 대해 다룬 게임으로 간접 PTSD 체험 게임으로도 유명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한 군인의 모습을 다루는 반전(反戰) 메세지를 담은 게임인데,
이 게임 역시 아무 생각없이 쏴죽이는 적들이, 잡몹 A,B,C들이 과연 정말 적인지, 나쁜 놈들인지 대해 내내 묻습니다.
하지만 스펙옵스가 전쟁으로 인한 사람의 변모를 끔찍하게 그려나갔다면 니어는 전쟁 역시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씁니다.
스펙옵스가 전쟁에 무게를 뒀다면 니어는 사람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죠.
그래서 니어 오토마타에 나오는 각종 기계 생명체와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은 각각 사람의 여러 모습들을 따온 듯 합니다.
마치 하나의 우화를 보는 것처럼요.
그런 맥락에서 전 다른 시리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광기'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금기시 여기는 소재, 그러나 우리와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소재들을 중점으로 다룬 것이기에
광기라기 보단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사람의 여러 면모 중 어두운 부분까지 들춰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도 인물들의 행동들을 보면 심적 변화가 말이 안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적어도 스쿨 데이즈 특정 엔딩처럼 막장으로 치솟아 미쳐 날뛰는 나이스 보트 같은 식의 전개는 니어 오토마타에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편견으로 가득찼던 막장 드라마와은 1%의 연관성도 없는 게임이었던 거지요.
마지막으로 니어 오토마타에 쓰이는 수식어 중 하나가 아무에게나 추천할 수 없는 게임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약간 바꿔서 성인들을 위한 게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게임을 스트레스를 푸는 용이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옳습니다. 현실도 힘든데 게임까지 우울한 걸 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화나 소설이 사회 고발성 내용이나 대중적이지 못한 내용을 다룸으로써 그 깊이와 외연을 넓혀왔듯이 게임 역시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장르의 외연과 폭의 확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로 펑츄에이션의 얏지가 스펙 옵스를 가리켜 성인들을 위한 게임이자 이런 게임들도 나와야 할 때라고 말한 것처럼
저 역시 니어 오토마타와 같은 성인들을 위한 게임이 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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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적을 많이 죽이든 적게 죽이든 아무런 상관은 없습니다. 여타 게임에서 적을 죽인 수가 전적이나 통계, 혹은 자랑의 표시라면 이 게임에선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괜히 사족 같아서 지우는 게 나을지도요; | 17.03.22 17: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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