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글을 남기는 일에서 멀어진 지 꽤 되어서,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잘 잡히지 않네요.
메타 점수가 높고 2024년 꽤 많은 상을 받은 데다가, 특히 게임 평론가들의 평가가 워낙 좋아서,
그냥 지나치긴 아깝다는 생각에 별 생각없이 가볍게 시작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수차례 플레이한 후에 느낀 감정은,
수십년간 수많은 게임을 해오며 더이상은 "경이"를 느끼긴 힘들 거 같다는 저 자신에게,
아직 인생에 더 많은 것이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게임이었습니다.
모든 즐거움은 "개인적"이기에 이 게임 역시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겁니다.
다만 JRPG를 좋아하고 판타지를 좋아하고 왕도식 이야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게임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저에게,
이 게임은 "이런 게임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의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초회차는 하드로 진행했고, 노가다를 안좋아해서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오락적인 부분만 보면 게임 기본 시스템 자체가 페르소나 시스템을 차용한 지라 익숙한 맛입니다.
난이도 이야기가 많은데, 난이도란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제 기준으론 하드도 어렵진 않고 적당했습니다.
만약 게임의 어려움을 노가다로 해결하려 한다면 굳이 하드 모드를 추천하진 않습니다만,
전략과 전술로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 분이라면 하드는 적당히 재미있는 난이도라 생각합니다.
턴제 RPG에서 방어 커맨드가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게임에서 쓰지 않는데, 저는 그러한 류의 게임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방어도 하고, 아이템도 쓰고, 상성 고려해서 전략을 바꾸는 등 생각하면서 임하는 전투가 짜릿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의 기본적 시스템은 특별하지 않고, 그래픽은 사람에 따라선 안좋다고 느낄 만 합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경이로운 이유는 "게임 시나리오" 때문입니다.
JRPG 특유의 세상을 구하는 왕도식 스토리는 주류를 벗어나 식상해진지 오래입니다.
어린 시절 마왕성을 쳐들어가던 이야기나 세상을 무로 돌리려는 존재에 맞서는 이야기는 지금은 유치하다는 평을 듣겠지요.
메타포는 어쩌면 유치한 왕도식 JRPG 스토리의 틀 안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틀 안에서 갈고 닦아서 제작자가 가진 "환상"에 대한 사상을 유저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장인들의 고집일 수도 있겠지만 저또한 판타지 애호가로서 이러한 선택은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인의 고집은 잘 짜여진 게임 시나리오에서 빛을 발합니다.
왕의 마법으로 "모어"의 목소리가 게임 유저에게 닿고, 우린 위대한 탐구자가 되어 주인공 일행의 인도자가 되는 설정과,
주인공과 모어, 갈리카에 숨겨진 정체 등은 많은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미리 예측할 수 있고없고를 따지고, 떡밥과 회수를 따지는 단편적인 시나리오가 넘치는데,
이 게임은 예측 따윈 중요하지 않아서 "아 예측 못했다 했다"가 아닌 "이 사람의 정체" 그 자체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또한 JRPG 캐릭터의 약점인 입체적이지 못하고 단순하게 정의감만 넘치는 캐릭터들도,
그들의 아픈 과거라는 서사로 시선을 돌려서 매력과 당위성을 부여한 부분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하고 나서 위대한 탐구자에 대한 모어의 감사는 그야말로 게임이어서 가능한 구성이며,
또한 게임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문화"이자 "작품"이라는 제 신념을 다시한번 자극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 속에 삽니다. 저와 같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게이머라면 더 그러할 것입니다.
그 불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식으론 알고 있지만 이를 체득하게 해주는 것이 "문화"라 여깁니다.
모어의 감사 인사에, 그리고 이 게임을 한 수백시간이, "환상"이, "꿈"이, 바로 이 게임이,
내가 가족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데 하나의 다짐의 계기가 된다면,
게임 제작자의 마지막 바람이 제게 전해진 것이 아닐까요.
2회차는 킹오브킹으로 했는데, 무기 계승이 너무 사기라서 장비 제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근데 하드랑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회차는 좀더 "게임 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만 게임 시스템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보니 2회차는 그냥 평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