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uce74\uc81c\ub098","rank":0},{"keyword":"\ube14\ub8e8\uc544\uce74","rank":0},{"keyword":"\ub864","rank":1},{"keyword":"\uc820\ub808\uc2a4","rank":-1},{"keyword":"\ubc84\ud29c\ubc84","rank":1},{"keyword":"\ub2c8\ucf00","rank":1},{"keyword":"\uc2a4\ud154\ub77c\uc18c\ub77c","rank":"new"},{"keyword":"\ud2b8\ub9ad\uceec","rank":-3},{"keyword":"\ub9bc\ubc84\uc2a4","rank":0},{"keyword":"\uba85\uc870","rank":-2},{"keyword":"\uc2a4\ud0c0\ub808\uc77c","rank":1},{"keyword":"\uc6d0\ud53c\uc2a4","rank":-2},{"keyword":"\u3147\u3147\u3131","rank":-2},{"keyword":"@","rank":0},{"keyword":"\uc9c0\uc2a4\ud0c0","rank":0},{"keyword":"\ub274\uc9c4\uc2a4","rank":2},{"keyword":"\uc6d0\uc2e0","rank":0},{"keyword":"\ub9d0\ub538","rank":-2},{"keyword":"\ud0c0\ub974\ucf54\ud504","rank":1},{"keyword":"\ub358\ud30c","rank":"new"},{"keyword":"\uac74\ub2f4","rank":"new"},{"keyword":"\uc5f0\uc6b4","rank":"new"}]
(IP보기클릭)39.124.***.***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라 조공-책봉 형식이 아니면 교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황제의 가오를 과시하기 위해 받는 진상품보다 황제가 답례로 주는 회사품의 양이 더 많았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개털리던 송나라 때를 포함해서, 심지어 아편전쟁에서 개박살난 다음에도 원하는거 다 들어줄테니 조공의 형식만 취해달라고 요구했던게 청나라입니다.
(IP보기클릭)39.124.***.***
교루가 없다가 이루어지면 놀랄 수 있죠. 일본에서 수양제에게 동천자, 서천자 운운했을 때는 또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놀랐겠습니다. 간혹 모든 조공 관계를 실질적인 상하 관계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IP보기클릭)223.62.***.***
수양제 하니 생각나는건데 수양제도 로마 제국과 접촉시도했다더군요
(IP보기클릭)223.62.***.***
콤니노스 3현제가 괜히 대제 취급 받는게 아니더라고요 어떻게든 멱살잡고 살려낸 공로...
(IP보기클릭)223.62.***.***
구당서가 기록된게 저 시점으로 백년도 전 일인데 조공을 바친 전례가 없다고 한거 보면 당나라 시기 입조한것도 형식적인 조공이었다는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뭔가 더 일이 있어서 놀라고 의심한것 같은데...
(IP보기클릭)121.142.***.***
원래 저 동네는 타국과 물자 교역을 하면 다 명목상 조공이라고 퉁치는 곳이라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 자체는 몇백년 전부터 알던 서방의 강대국과 드디어 물적 '교역'을 한게 의미깊어서 기록한게 아닐까요?
(IP보기클릭)223.62.***.***
구당서에 이미 수차례 조공 무역과 사신 교류를 했었단 기록이 있습니다 명사에서도 송사의 이 기록을 로마에서 보낸것에 대한 진위여부를 의심한것이라고 기록한거 보면 아마 모종의 일이 더 있었던 모양인듯 합니다
(IP보기클릭)223.62.***.***
_ 잉여잉여칠면조
콤니노스 3현제가 괜히 대제 취급 받는게 아니더라고요 어떻게든 멱살잡고 살려낸 공로... | 22.05.22 22:04 | |
(IP보기클릭)39.124.***.***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라 조공-책봉 형식이 아니면 교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황제의 가오를 과시하기 위해 받는 진상품보다 황제가 답례로 주는 회사품의 양이 더 많았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개털리던 송나라 때를 포함해서, 심지어 아편전쟁에서 개박살난 다음에도 원하는거 다 들어줄테니 조공의 형식만 취해달라고 요구했던게 청나라입니다.
(IP보기클릭)223.62.***.***
구당서가 기록된게 저 시점으로 백년도 전 일인데 조공을 바친 전례가 없다고 한거 보면 당나라 시기 입조한것도 형식적인 조공이었다는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뭔가 더 일이 있어서 놀라고 의심한것 같은데... | 22.05.22 22:20 | |
(IP보기클릭)39.124.***.***
털보네국밥
교루가 없다가 이루어지면 놀랄 수 있죠. 일본에서 수양제에게 동천자, 서천자 운운했을 때는 또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놀랐겠습니다. 간혹 모든 조공 관계를 실질적인 상하 관계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 22.05.22 22:27 | |
(IP보기클릭)223.62.***.***
수양제 하니 생각나는건데 수양제도 로마 제국과 접촉시도했다더군요 | 22.05.22 22:29 | |
(IP보기클릭)121.142.***.***
원래 저 동네는 타국과 물자 교역을 하면 다 명목상 조공이라고 퉁치는 곳이라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 자체는 몇백년 전부터 알던 서방의 강대국과 드디어 물적 '교역'을 한게 의미깊어서 기록한게 아닐까요?
(IP보기클릭)223.62.***.***
구당서에 이미 수차례 조공 무역과 사신 교류를 했었단 기록이 있습니다 명사에서도 송사의 이 기록을 로마에서 보낸것에 대한 진위여부를 의심한것이라고 기록한거 보면 아마 모종의 일이 더 있었던 모양인듯 합니다 | 22.05.23 17: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