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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다 가문의 무장들은 축성술의 달인들이었습니다.
축성을 잘 하니, 농성하는 적을 어떻게 상대하는지도 잘 알었겠지요.
사나다 유키타카(사나다 마사유키의 아버지)의 경우,
다케다 신겐이 두번이나 패배했던 강적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토이시성주를 조략함으로써" 패배시켜 버립니다.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거성인 카스라오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토이시 성의 역할 덕에 패퇴시키게 된 것입니다.
사나다 마사유키 역시 축성의 달인이었는데,
군사적 전략기지였던 누마타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경영했습니다. 마사유키에게는 성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와비츠성과 누마타성이 전부였지만,
누마타성을 끼고 있는 한 우에스기, 호조의 대군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누마타성의 경우 에치고와 관동 사이에 난 길가 주변, 높은 산 위에 지어진 산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좁은 입구를 틀어쥐고 있었던 셈입니다.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오다군이 왔을 때, 관동관령 역할을 한 "타키가와 카즈마스"가 누마타 성에 주둔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성 덕분에 어느 정도 호조-우에스기 등과의 대국들과 협상을 체결하기가 유리했던 점도 있습니다.
마사유키는 에치고의 침공으로부터 시나노, 카이를 막는 방패역을 한다고 속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성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는데,
이 성이 우에다성입니다.
우에다성은 주변에 토이시성을 끼고 있어 거의 난공불락인 성이었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주변에 산. 바로 옆에는 강을 끼고 있는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이 우에다성에서 도쿠가와군은 두 번이나 패전을 하고 맙니다.
대군이 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인데다 주변환경이 매복하기 딱 좋은 환경이어서
중간중간에 함정을 발동시키는 '쿠즈노키 마사시게'류 군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 유키무라 대에 이르러
난공불락이지만, 남쪽만큼은 허술하다고 인지된 오사카성 남쪽에
사나다마루라는 외성을 쌓게 됩니다.
이 사나다마루에서 마에다군, 이이군이 대패를 맛봅니다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짓 협정 때문에
사나다마루에서의 전투는 단 한번에 그치고 맙니다.
어찌보면...
사나다 가문의 무장들 자체가 뛰어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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