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닉 더 헤지호그』탄생・히트・신생의 진실을 소닉 팀의 레전드 크리에이터가, 25주년의 지금 밝히는 비장 자료 만재의 영구 보관판!
- 원본 인터뷰 게재일 - 2016.06.24 (소닉 마니아 및 소닉 포시즈 공개 전)
- 1991-2016까지의 소닉 게임 시리즈 소개 페이지인 마지막 5페이지는 생략
- 이미지 자료는 출처에서 확인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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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탄 25주년을 맞이하는 소닉 시리즈의 비밀에 다가가다
2010년대에 들어가면서 여러가지 게임 타이틀의 기념 년도가 계속되지만,
1991년에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용 소프트로 발매된『소닉 더 헤지호그』에 대단히,
2016년은 발매로부터 25주년이 되는 기념해야할 년이다.
메가드라이브라하는 제명도가 낮은 하드로 발매된 대개, 그때까지 게임에는 없었던 극적인 스피드감과,
쿨한 주인공 캐릭터 조형도 있어서, 북미를 중심으로 빅 히트.
계속적인 속편 발매나, 여러번의 신생을 지나서, 마침내는 시리즈로서 발매된 타이틀 수가 100 가까이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세가의 얼굴'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소닉은 어떻게 태어나, 인기를 얻고, 시리즈가 되었는가.
『소닉』시리즈를 만들어온 중심 인물인 나카 유우지, 오오시마 나오토, 이이즈카 타카시를 초대하여,
소닉 탄생으로부터 히트, 그 후의 변천에 대해 말해주었다.
상호간에 20~30대의 나날을 함께 보낸 구면의 관계라는 것도 있어 대담은 매우 고조되고, 드디어는 3시간 오버라는 이례적인 길이로.
지금이니 밝히는 에피소드도 다수 있고, 그 내용은『소닉』시리즈 뿐만 아니라,'소닉 팀 반생기'라고도 할 수 있는 귀중한 것이 되었다.
『소닉』시리즈 팬 뿐만 아닌, 메가드라이브~드림캐스트 시대를 함께 거쳐온'세가인'들께 그때의 뜨거운 마음을 기억해준다면 기쁘겠다.
[관련 기사] http://www.famitsu.com/news/201606/25107674.html
※『소닉 더 헤지호그』생탄 25주년 기념 특별 기획 1990년대의 세가 PR의 중심 인물인 타케자키 타다시씨가 밝히는 소닉 팀과의 인연
나카 유우지 (우)
1965년 오사카부 출생. 1984년에 세가에 입사하고, 프로그래머로서 세가 마크 III판『판타시 스타』나『스페이스 해리어』등을 담당.
천재 프로그래머로서 주목을 받는다.
이후에도『소닉 더 헤지호그』시리즈나『판타시 스타 온라인』이라하는 소닉 팀의 타이틀을 다수 프로듀스.
2006년에는 독립하고, 프로페를 설립. 대표 이사 사장으로 수완을 발휘한다.
오오시마 나오토 (좌)
1964년 오사카부 출생. 광고대행사를 거쳐 1987년에 세가에 입사.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소닉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
디렉터로서『소닉 더 헤지호그 CD』,『NiGHTS into Dreams...』,『버닝 레인저』등에 관련되다.
1999년에 세가를 퇴직하고 아툰의 설립 멤버가 되어,『블링스 더 타임 스위퍼』등을 제작하다.
현재는 아제스트 대표 이사 부사장으로서 닌텐도 3DS판『마리오 & 소닉 AT 리오 올림픽』의 개발도 직접 다룬다.
이이즈카 타카시 (중앙)
1970년 사이타마현 출생. 1992년에 세가에 입사해 메가드라이브판『소닉 더 헤지호그 3』에 플래너로서 참가한 이후,
『소닉 어드벤쳐』에 디렉터,『소닉 컬러즈』에는 프로듀서와, 거의 일관되게『소닉』시리즈의 개발에 참여하고있다.
지금까지 2번을 아메리카에서 개발하고 왔는데, 2016년 3월부터는 3번째의 도미를 완수하고,『소닉』시리즈의 총괄역으로 활동한다.
●충격의 고백! 사실은 소닉은 세가의 기업 캐릭터가 아니었다!?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닉 팀의 3인이 모두 모인다 라는 귀중한 기회이므로,
소닉 탄생비화를 생각나는대로 마음껏 말해주셨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계열을 쫓아 여쭤봐갈까 하고 생각합니다만, 먼저 소닉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까?
나카 유우지(이하, 나카)
최근 물건을 찾고자 하니, 초대『소닉 더 헤지호그』(이하, 작품명을 가리키는 경우는『소닉 1』)의 업체를 위한 팜플렛을 발견했거든요.
『소닉 1』과『소닉 더 헤지호그 2』(이하,『소닉 2』)의 음악을 DREAMS COME TRUE 나카무라 마사토씨가 만들어주신건 아시겠지만,
그 콘서트에서 나눠준 전단지가, 사실은 소닉이 세상에 나온 가장 최초의 타이밍이었답니다.
오오시마 나오토(이하, 오오시마)
저, 1990년에 개최된 DREAMS COME TRUE의 라이브 투어'WONDER 3'의 팜플렛은 갖고있어요.
팜플렛에 소닉의 광고가 게재되어있었고, 거기에 아바스에도 소닉의 일러스트가 그러져있었어요.
나카
그래그래! 그때의 사진 갖고있어?
오오시마
사진은 없습니다만, 디자인은 제가 했으니까(원화는)갖고있습니다.
애초에 저, 트랙을 보지 못했어요...
나카
에에~, 같이 봤잖아! 기억안나?(웃음)
마키노(유키무히씨. 초기 소닉의 사운드를 담당하고, 후에 웨이브 마스터 대표로서『루마니아』시리즈 등의 프로듀스를 담당한다.)랑
오오시마랑 나랑, 확실히 야스하라(히로카즈씨. 게임 디자인 담당)가 있었고. 이왕이면 그 디자인화를, 기사에 올리려해요!
나도 뭔가 가져오지 않아버려서, 그때의 스태프 점퍼는 갖고왔어요.
▲나카씨가 개인 소유하고있는 WONDER 3의 스태프 점퍼. supproted by sega 라고 쓰여져있다.
――소닉이 게임으로서 처음 등장했던건 언제가 될까요?
나카
확실히, 1990년의 도쿄 장난감 거리가 최초입니다. 그때의 ROM 갖고있어?
오오시마
역시 안갖고있어(웃음).
나카
사실은 게임큐브용『소닉 메가콜렉션』에 수록하고 싶어서 몹시 찾았습니다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오시마와「허세로 밀어붙히자고!」라고 괴상하게 고집부려서 배경을 7배 스크롤시켰어요.
내용으로서는 소닉이 조금 기복이 있는 스테이지를 맹 스피드로 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만,
닌텐도씨에 대항심을 점화하여「메가드라이브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라고.
오오시마
하지만 PR 예산이 없었기에, 장식 팝도 제가 커팅 시트와 손으로 만든 것이었거나.
▲1990년 개최된 장난감거리에 처음으로 움직이는『소닉』이 출전된 때,
급거했던 탓에 예산이 없고, 시유 코너의 장식용 일러스트를 오오시마씨가 자필로 마련한 것.
――메가드라이브의 배경면은 2면밖에 없는데, 7배 스크롤이라는건, 확실히 허세가 효과있네요.
오오시마
패미통씨라하면, 세가의 게임에 키칭 하고 페이지를 잡아 소개해줬는데, 아마도『소닉 1』이 최초에요.
그때까지는『Beep! 메가드라이브』(일본 소프트 뱅크 간)이나『메가드라이브 FAN』(도쿠마 쇼텐 간)이라한
세가 전문 잡지에는 게재되어있었습니다만, 패미통씨에게는 세가의 타이틀이 게재되지 않아서.
나카
그치만'패미콘 통신'이니까요(웃음).
오오시마
저는 본래 광고업자였기에, 당시 가정용 게임의 홍보 담당이 된지 얼마 안된
타케자키(타다시씨. 세가 가정용 게임의 명물 홍보맨으로서 활약. 현재는 톰스 엔터테인먼트 이사)씨와 같이
편집부에 카트리지 지참해서 실례하여「게재해주세요!」라고 부탁을 올리니,「세가씨는 처음 오셨네요」라고 말해서 휘청해서.
그때까지는 단순히 아무도 패미통에 가지 않았던 것 뿐이에요(웃음).
――그런 교환이 있었을줄은(웃음). 그렇게 되면 타케자키씨에게도 이야기를 듣고싶네요.
그런데, 소닉은 세가의 기업 캐릭터로서 탄생한 경위가...
나카
(가로막으며)애초에 소닉은, 기업 캐릭터로서 인지된 적은 없어요.
――에엣, 사실입니까!?
나카
사내에서 기업 캐릭터를 모집하는 타이밍과 겹쳤기에 오해하기 쉽습니다만,
그 이전에 1990년부터『소닉』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과 같은 시기에, 세가는 도쿄 증권 거래소에 일부 지정(이부 상장은 1988년)을 받아서,
사가를 만들어라 등 회사답게 성장하는 타이밍이었다. 그 일환으로서 기업 캐릭터를 만들어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사내 공모로 200 정도의 캐릭터가 모인 가운데 소닉은 최종 후보의 8안까지 남았어요.
우리들은 매우 기뻤습니다만, 결국은 어느 쪽이 기업 캐릭터가 될까는 정해지지않고 흘렀어요.
오오시마
저, 그 프레젠테이션을 당시의 사장에게 했어요. 저는 중도 채용이어서 동기 사원이 없었던 것도 있어서,
토이 사업부 등 다양한 부서의 사람에게 부탁해 인형이나 문구 용품 등을 만들어 받아서, 게임이 움직이는 형태로 도운 것이에요.
나카
기억났다. 그래도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고 기억해요.
오오카와(이사오씨. CSK 그룹 창업자로 1980년대부터 세가의 회장을 힘써, 2000년부터는 사장을 겸임)씨가
사장일때의 시대에는 일단 명함에 소닉이 인쇄되어있었지만요.
이이즈카 타카시(이하, 이이즈카)
20주년때에도 명함을 소닉 무늬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후에는 명함에 풀칠용의 툴을 만들거나도 했죠. 그래도 공식적으로 회사 캐릭터가 된 사실은 없어(웃음).
나카
사가의'젊은 힘'같은건 회의의 결의를 거쳐 정해졌습니다만, 회사 캐릭터를 정하는 회의는 그 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이즈카
그러니, 그런 연유는 아닙니다만, 이번에 제가 아메리카에 건너가서, 현지에 직접 캐릭터 IP의 핸들링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죄담회는 이이즈카씨가 아메리카에 건너가기 수일 전에 수록되었다.
●소닉 탄생까지의 우여곡절. 에그맨도 주인공 후보였다!
――다시 소닉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방금전의 이야기지만, 소닉은 게임이 있어서 탄생했다는 것입니까.
나카
소닉이 고슴도치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걸쳤어요.
캐릭터로서 키칭 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귀로 물건을 들어 던지는 액션을 갖춘 토끼가 되고나서.
하지만 라이벌로 보고있던『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는 달리, 스피드의 빠른 게임을 만들고자해서 시행착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오시마씨가 초기에 디자인했던 토끼의 캐릭터. 귀로 물건을 잡아 던지거나 하는 액션이 상정되어있었다는 것.
▲초기 단계의 주인공의 디자인안.
▲후의 Dr.에그맨이 되는 디자인도, 당초에는 주인공 캐릭터안의 후보중 하나였다는 것 같다.
오오시마
또 캐리어 3년째정도의 페이페이한 자신이었습니다만,
넘버 원 프로그래머라 불리고있던 나카씨와 일을 하고싶다고, 함께해서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완성형이 어떤 게임이 될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중에, 전술의 토끼를 디자인했는데
나카씨는「나는 좀 더, 공같이 되어서 굴러가는 것을 만들고 싶어」라고 했어요.
이이즈카
(나직이)『팬더와 아기 팬더』지요. ← (한국 정식명 -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
오오시마
그래그래. 이미지 소스는『팬더와 아기 팬더』
(1972년 공개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은 타카하다 이사오씨, 각본은 미야자키 하야오씨로『이웃집 토토로』의 원형이라 평가된다)라고.
나카
게임의 기획을 생각할때마다 팬더를 주인공으로 하고싶어서,『팬더와 아기 팬더』의 이야기를 하고있었어요.
저도 오오시마도 미야자키 하야오씨의 작품이 정말 좋아서요.
오오시마
그래서, 그때까지 생각하던 캐릭터가 공이 되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그럼, 어쩌지」하고 또 고민해서, 최종적으로 도착한 것이, 고슴도치와 아르마딜로에요.
나카
공중제비하고 굴러서 적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제가 고교생때부터 품어왔던 비장의 아이디어로, 속내로는 쓰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토끼가 물건을 던지는 게임이라니, 물건을 던지기위해 일일이 멈추는 것이 싫었기에, 그런 벽에 부딪힐때 마지못해 피로해서.
(일동 웃음)
나카
하지만, 오오시마는 논란의 여지때문에「말아서 적을 쓰러뜨리는게 이상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대해서(웃음).
그렇다면 고슴도치나 아르마딜로같은, 등이 단단한 동물로하자 라고 해서 기획이 굴러간 것이에요.
디자인 중에는 후에 Dr.에그맨이 되는 캐릭터도 있었습니다만, 그것도 주인공 후보중 한명이었으니까.
오오시마
개인적으로 가장 권할 수 있는건 에그맨으로, 디자인 단계에는 좀 더 몸이 둥글었어요.
소닉의 몸의 색을 파란색으로 한 것은, 세가의 이미지 컬러에 아울러서에요.
나카
이름을 정하는때도 말썽이 있어서, 광속은 영어로'라이트 스피드'... 잘 안오네 라고.
대화가 심야까지 이어졌을때에, 누가 생각없이 입에 담은「음속은'소닉'이라고 해」라고 하는걸 들어서「그거다!」라고.
아르마딜로가 아닌 고슴도치가 된 이유는, 가시가 있는 쪽이 스타일리쉬하고 멋졌기 때문에였네요.
오오시마
그렇네요. 그리고, 클래식 소닉의 일러스트가 완성되기 전단계에는 조금 디자인에 조리 양념 간장의 단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어뮤즈먼트 부서의 디자이너 마키노(타쿠씨『전국대전』등의 카드 일러스트를 직접 다루다)씨께 부탁해서 피규어도 만들어 받았어요.
그 당시의 형태가 남아있다면, 또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카
『초인 록』의 머리카락처럼, 소닉의 머리 부분이 어떤 형태인가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마키노씨가 입체로 해준 것에 오오시마가 또한 이해해서, 소닉의 디자인이 또한 리파인되어서 완성에 이른 것이에요.
일부입체물을 만든다는 흐름은, 마치 픽사 영화의 제작 과정 같네요.
오오시마
당시 헐리우드에서 유행한 방법을, 조금 흉내를 낸 점은 있을지도(웃음).
이이즈카
입체물이라하니, 25주년 기념으로 클래식 소닉의 피규어를 프라이즈 경품으로해서 제작중이에요.
6월 25일에 개최되는 생일 이벤트에는 시간이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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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이 완성해서 히트해도, 뒤에서는 경악할만한 사태가!
――이야기는『소닉』완성 후로 옮깁니다만, 대히트의 뒤에는 경악할만한 사태가 진행하고있었네요.
오오시마
충격적이었어요. 회사에 가니「나카씨가 그만뒀다!」라고 들어서.
나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소닉』의 발매 전에 그만뒀으니까.
저는『소닉 1』이 반드시 팔린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의 상사가 전혀 평가해주지 않았어요.
그 일이 불만이어서,「그러면 회사를 그만둬주지」라고 한게 진상이에요.
상무에게서는 남으라고 설득받았습니다만, 결국 그만두는 것으로 되어서.
――당시의 오피셜 정보로는, 나카씨는 아메리카의 세가에 전속해서『소닉 더 헤지호그 2』를 제작하고있다는 것이 되었습니다만,
실제는 한번 퇴직한 것이네요.
나카
그런거에요. 퇴직한 후의 6월에 가끔씩 찾아온 세가에 마크 서니(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1990년대에 세가에 재적하고『갤럭틱 프로텍터』등의 세가 마크 III의 타이틀을 손수 다룬다.
대표작은『마블 매드니스』,『크래쉬 밴디쿳』이나『라챗 & 클랭크』등 다수)와 우연히 만난거에요.
그쪽에서는 이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했기에「한가하면 아메리카에 놀러오세요」라고 들어서, 6월에 도미한거에요.
후에『소닉 2』를 개발하게 되는 Sega Technology Institute의 오피스를 방문하고, 3일간정도 있었습니다만,
토요다 노부오씨(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설립에 크게 관계하다. 현 Unity의 일본 지사인 Unity Technologies Japan 대표 이사)에게 불려서
「여기에 와서 일하지 않겠나」라고 설득받아서, 2개월 후에는 아메리카에 있었네요.
그래서, 그때 세가의 로비에서 마크 서니와 만나지 않았다면『소닉 2』는 없었어요.
오오시마
사실은 저도 아메리카행의 이야기를 받아서,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있었어요.
나카
그랬어!?
오오시마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에, 나카씨가 아메리카에서 일하는 것이 된 순간 당시의 사장이 불러서
「나카가 아메리카에서 일하는 것이 되었기에, 오오시마는 일본에 남아주게」라고 들어서「네에ー!?」했어요.
제 다음 후보였던 야마구치(야스시씨.『소닉 2』에는 존 아티스트로 참가. 현재는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약중)가
대신 아메리카로 가서.
――그런 사정도 있었군요.
나카
저로부터는 오오시마는 불러도 오지 않았다는 인상이었지만.
야스하라(히로카즈씨. 초대『소닉』시리즈에 크게 플래너・디렉터로서 참가. 현재도 게임 디자이너로서 활약중)는 불러서 와줬는데.
그런가, 오오시마는 남겨졌던건가.
――그렇다면 나카씨와 오오시마씨의 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은 취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나카
전혀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전자 메일조차 없던 시대였기에, 지금보다 선뜻히는 커뮤니케이션은 취하지 않았네요.
오오시마
기획거리의 앞뒤가 맞게, 최저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취했습니다.
『소닉 2』의 메카 소닉과,『소닉 더 헤지호그 CD』(이하『소닉 CD』)의 메탈 소닉이 그것으로,
「나카씨가 만들고있는『소닉 2』에 메카 소닉이 등장하는 듯 해」라는 것을 듣고, 우송으로 메탈 소닉의 디자인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나카
기억 안나는걸. 야마구치랑의 교환이 아니었을까나. 어쨌든 당시는 장난아니게 바빴기에, 여러 일에 손이 돌지 않았어.
당시 아메리카에 있던 이이즈카라면 알고있지?
이이즈카
어쨌든 인수가 모자랐어요. 그에 비해 프로젝트의 규모가 컸기에, 어쨌든 일로 절여졌었네요
나카
일본에 있으면 스태프가 많이 있어서 도와줄 사람을 의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아메리카는 소인수라, 자신들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돼.
거기다 발매일은 정해져있어서, 어쨌든 전력질주하지 않으면 안됬어.
그건『소닉』시리즈 전반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이라,『소닉 1』은 실질 5인이 만들었으니까요.
음악을 담당한 사람을 포함해도 7인.『소닉 2』의 때가 되어, 겨우 10인 정도.
이이즈카
『소닉 3』에서 12인이었습니다.
――의외에요. 소닉 팀이라하는 이름 때문인지, 좀 더 대세의 사람이 참여하는 이미지였어요.
나카
이이즈카가 아메리카에 왔을 때는 초 수라장이어서, 회사에서 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신입사원인데 그런 상황에 던져져서.
이이즈카
제가 입사한게 아메리카에서 『소닉 2』를 제작하는 1992년.
다음으로『3』를 아메리카에서 만들게 되었을 때 당시의 상사에게「아메리카에서 하지 않겠는가」라고 들어서 영광으로 생각했네요.
――거기에서『소닉 2』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나카
『1』때부터 오오시마와 계속 두명 플레이의 게임을 만들고싶다고 말해서,『소닉 1』의 개발의 최후의 단계에서 시작한거에요.
젊음도 있었기에, 바쁨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했던 시기였기에.
그리고 화면 분할을 해서 움직이는 것 까지를 만들었지만, 인터레이스 표시는 아니었기에 보이지 않아서 플레이 할 수 없었어요.
그 생각이 나서부터 아메리카에『소닉 2』의 이야기를 듣고
「메가드라이브로 두명 동시에 플레이가 가능하면『소닉 2』를 만들자」라는 기분이 되었어요.
그 후, 인터레이스의 표시를 2개월정도 해서, 1991년의 후반에 목표가 그것뿐이었어요.
마침 그 시절『소닉』이 항간에는 대 브레이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명 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테일즈네요.
나카
야마구치가 가장 권하는'횡 회전하는 너구리'네(웃음).
이이즈카
지금 생각하면 그건 너구리 마리오와 둥근 머리네요(웃음).어째서 여우로 바꾼거였었죠?
나카
확실히 하늘을 날게 할 필요가 있어서 꼬리를 두개로 했을 때에 여우가 되었던게 아닐까나.
테일즈라고 하면, 본명의 마일스 파우어라는 것은 야마구치의 발안이었지만,
세가 오브 아메리카가 어느새 테일즈라는 이름을 발표했던거어요. 그것에 대해 야마구치가 매우 화가 나서, 회의까지 열었어요.
그 해결법으로, 테일즈를 애칭으로 하고 본명을 마일스 파우어로하자 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애초에 어째서 마일스인가 하면, 속도의 단위인 음속 = 소닉에 대해서, 시속 = 마일스 퍼 아워(miles per hour)로부터 이름붙혔습니다.
――한 말에 두 뜻을 갖게한 것이군요.
나카
그런 것이에요. 인데,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소닉 더 헤지호그 3』(이하,『소닉 3』)의 신 캐릭터 이름을 정할때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이 스스로 와서 함께 정했습니다(웃음)
(⇒ 관련 기사는 이쪽 http://www.famitsu.com/news/201407/29058056.html)
그래서,「주먹으로 물건을 때려 부수니까 너클즈는 어떨까나?」같은.
이이즈카
당시의 사장 톰 칼린스키네요. 그 옆에 마케팅 헤드의 파멜라 켈리가 있어서.
그들과 우리 개발자와 같은 테이블에 마주봐서, 동물 도감을 보면서 저것도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라고(웃음).
그래서 에키드나(바늘 두더지)는 어떠냐 라는 흐름으로 정했어요.
나카
꽤 이례적인 일이었죠. 그래도 그렇게 해서 캐릭터의 능력부터 이름도 디자인도 정하고있어서,
지금에도 통용하는 캐릭터로서 남아있네요. 그러고보니 패미통씨에게 처음으로『소닉 2』가 게재되었을 때에,
기사에「소닉의 뒤를 따라오는 여동생의 테일즈」라는 글귀를 하고있었어요.
그 덕에 테일즈가 여자 아이라고 하는 정보가 게이머의 사이에 퍼져버리고(웃음).
그 후 세가로부터「남자 아이에요」라는 정정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오시마
개발자인 우리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이이즈카
저도 일본에서 디버그를 하고있어서,「타이틀 화면에 나오는 이 캐릭터는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일까」라고 고민했어요(웃음).
자료는 없으니까 타이틀 화면에 판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 테일즈에게는 눈썹이 있었기에, 어느 쪽으로도 보였네요.
오오시마
그래그래! 모르겠어서 저, 야마구치에게 전화를 했어요.「남자 아이, 여자 아이 어느 쪽?」이라고.
나카
진짜? 어쩌면 야마구치는 그걸로 한번 더 화났을지도(웃음). 그래도 당시는 ROM을 보낸 것 뿐이니 어쩔 수 없을까.
●맥도날드에 MTB. 대히트의 뒤에서 큰 소용돌이에 휘감긴『소닉 3』
――『소닉 2』발매 후,『소닉 3』의 제작에 착수했다.
나카
위험했지만 재미있었네요.『소닉 2』의 때는 스태프 절반정도가 외국인이었습니다만,
영어로의 커뮤니케이션이었기에 미묘한 차이가 전해지지 않아요.『소닉 2』에 조금 바꾼 색조의 스테이지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그래서,『소닉 3』의 때는 일본인을 더 넣자 라는 것으로 이이즈카들에게 와달라고.
이이즈카는 그 1993년부터 계속『소닉』시리즈에 참여하고있는거지? 이야, 굉장한 일이야.
이이즈카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나카씨와 만났을 때는「신인 같은걸 내놓고선!」이라고 들었지만요(웃음).
나카
지금이 되서 보면 고마운 이야기입니다만, 당시의 절박한 상황 중에는 베테랑을 파견해줬으면 했네요(쓴 웃음).
그래도 일의 흡수가 굉장히 좋았기에『소닉 3』를 어떻게든 시간에 맞추는 것이 가능했어요.
――『소닉 3』의 그저 넓은 맵은 야스하라씨와 이이즈카씨의 피와 땀의 결정이었습니까(웃음).
나카
게다가 이이즈카가 온 1993년 1월부터의『소닉 3』는,
SVP(세가 버추얼 프로세서. 카트리지에 탑재하는 것으로 폴리곤 묘화를 가능하게하는 칩.
메가드라이브의『버추얼 레이싱』에 사용되었다)를 사용해서 3D판의 통칭『소닉 3D』를 시도하던 무렵이어서요.
아직 기초 연구의 단계여서,『드래곤 볼』의 계왕성같은 작은 구형 필드를 소닉이 돌아다니는 듯 한 데모를 할 수 있던 정도.
그것을 어느 게임에 넣어갈까 라는 단계로,
1993년에 맥도날드의 해피밀(일본에서 말하는 해피 세트의 장난감)을 낸다 라고 하는 계약이 정해졌어요.
회사 엄명으로 거기에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안됬던 것이지만, SVP 생산도 시간이 걸리고, 그 전에 3D로 하면 도저히 시간에 맞출 수 없어.
그것부터『소닉 3』가 완성하기까지의 약 반년간은, 수라장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소닉 1』~『소닉 3』중에는,『소닉 3』가 가장 개발 기간이 짧아요.
――아메리카에서의 나카씨는, 좀 더 프로듀서적인 위치에 서있던 것일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닉이라고 하는 캐릭터의 관리도 하는 정도라던가.
나카
아니요, 좀 더 프로그램을 하고있었습니다. IP의 관리라고 하는 면에서는, 일본과 아메리카에도 별도의 움직임을 하고있었어요.
하지만, 아메리카에서『소닉』을 만들어서 다행인 것은, 아이들을 회사에 불러서 테스트 플레이를 반복하는 것으로,
「아, 저기서 게임 오버가 되는구나」,「여기가 재밌겠다」와,
플레이하고있는 반응을 눈 앞에서 연구할 수 있던 것이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이즈카
제가 아메리카에 오고 1년 반동안, 그런 것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 나카로부터『소닉 3』나『소닉 & 너클즈』가 완성되었던거에요.
거기에 개발에 절여졌다고는 해도, 가끔의 휴가에는 아메리카를 만끽했네요.
그때의 즐거움과 일에 집중 가능했다는 기억이 있으니까, 아메리카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가진 채 귀국해서,
나중에 다시 아메리카에 가는 것이 된거에요.
●사장의 권위있는 말로 일본에 남는 것이 된 오오시마씨. 소닉 CD의 진정한 모습이란!?
――한편 오오시마씨는 일본에서『소닉 CD』를 손수 다루게되었습니다만,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오오시마
『소닉 CD』의 이야기가 올라온 때는 회사에「프로그래머 나카씨가 있어서의『소닉』이라 무리에요」라고 말했어요.
그래도「우수한 프로그래머를 붙혀줄테니까」라고 하는 것으로,
야마모토(케이이치씨. 메가드라이브판『스트라이더 비룡』등의 프로그램을 담당)씨가 참가해줘서.
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것도 있어서,「역시, 나카씨가 없으면 안되는걸까나」라는 기분이 됬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이즈카
프로그래머때문이 아닌, 아마도 오오시마씨의 요구가 하드의 한계를 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는 소닉이 타임 워프로 달리고 있으면, 배경이 순간 다른 시대로 변화하는 아이디어였죠?
나카
로드가 있으니까 그건 무리네. 어쩔 수 없으니까 타임 워프 때에 소닉이 위로 날아가는 신을 넣고
「시대가 변했어요」라는 연출이 있어서.
오오시마
『소닉 CD』의 이식판을 볼 때마다,「부탁이니까 그 신은 컷해줬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지금이라면 온메모리로 전부 넣을 수 있을텐데.
사실은 스테이지 맵에 4개의 시간대가 어디서 변화해도 좋게끔 만들어서, 순간 확 하고 지형이 바뀌는 연출이 싫었어요.
최초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나카
2011년에『소닉 CD』가 iOS에 이식되었을 때도「이 신 필요없는데!」라고, 굉장히 화나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이식해준 사람이 이 기사를 읽고있다면, 그 신을 없앤'디렉터즈 컷 판'을 만들어주십시요.
오오시마
해준다면 정말로 기쁠거야, 스스로 플레이해보고싶어요.
나카
『소닉 CD』라고 하니 에이미 로즈가 등장했습니다만, 저희들 아메리카에 있던 면에서 보면, 그것이 헌팅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닉의 걸프렌드로서는, 이미 글래머스한 어른의 인간 여성'마돈나'가 설정되어있었네요.
그것이 있었기에, 굉장히 위화감을 느낀 기억이 있네요.
오오시마
그건 라이센스 비지니스를 담당하던 당시의 캐릭터 일부로부터
「미키에 대하는 미니에 맞는 여자 아이 캐릭터를 원해」라고 들어서 디자인한거에요.
▲소닉의 걸프렌드로 설정된 마돈나. 새빨간 복장도 섹시한 글래머스한 인간의 여성이다.
나카
그 당시 J리그가 발족하니까, 그 용도로 소닉의 일러스트를 그려라 라는 의뢰가 온거네.
오오시마
저는 단지「소닉이 축구를 하고있는 일러스트가 필요」라는 발주였기에,
소년 축구 클럽이 무엇일지 생각하면서 수십분간 그려올리니,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의 유니폼의 가슴에 디자인되어 놀랐습니다.
확실히 매직으로 그렸다고 기억합니다(웃음).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당시)의 유니폼 가슴 부분에 세가가 스폰서.
화상은 오오시마씨의 러프 스케치.
3페이지
●높아지는 일방의『소닉』인기. 세계 각지에서의『소닉』피버의 무대 뒤에서는...!?
――그렇게해서 모두가 게임 제작을 하고있는 사이에도, 소닉이라하는 캐릭터는 계속 인기를 획득해서,
MTV의 캐릭터에 채용되는 등 지명도도 올리고 있었습니다.『소닉』이 인기있게 되는 것을 어디에서 실감하십니까?
나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맥도날드씨의 해피밀에 뽑혔을 때네요.
「굿즈를 전세계 대상으로 2억개 가까이 제조하여 받는다」라는 것을 들었을때, 기쁨과 동시에 압박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닉 2』는 백만개 단위로 히트했습니다만, 그것과는 다른 단위의 큰 숫자로, 한편 그 캠페인까지『소닉 3』를 완성하지 않으면 안됬어.
결과,『소닉 3』를 두개로 나누는 형태로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어요.
이이즈카
사실은 제작 기간뿐만이 아닌, 카트리지의 용량이 모자라서, 모든 데이터가 ROM에 들어가지 않았다 라는 것도,
『소닉 3』가 두개로 나뉜 이유지만요.
나카
그 밖에는『소닉 2』의 때의 출하식도 추억에 남아요.
공장에서 소프트를 트럭에 올리는 장면을 신문 미디어로「마침내『소닉 2』가 출하!」라는 형태로 올려져 받았어요.
저는 입회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점보 제트기의 카고 편 4기에서 소닉이 소프트를 가지고 나왔다고 들어서,
「우와, 브레이크해있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소닉 3』에는, MTV 주최로 세계 규모의 게임 대회가 이루어졌죠.
나카
「알카트라즈 섬(샌프란시스코만의 난바다에 있는 섬. 옛날에는 형무소로서 사용되었다)을 전세로 빌려서 이벤트해요」라고
들어서 스케일이 다르구나 라고(웃음). 호텔부터 알카트라즈 섬까지 가는 것이 호송차로, 샌프란시스코 경찰 비번의 경관을 부르거나 해서,
일일이 쇼 업 하는거에요. 어떻게 하는건지 몰랐습니다만, 거리의 신호를 계속 파랗게 바꾸고있었고. 굉장했지~.
이이즈카
MTV의 프로모션이 정해졌을 때는, 아직『소닉 3』를 만들고있던 한창이었습니다만,
마케팅 담당이 와서「게임 중에 감옥에 잡혀있는 신을 넣어주게」라고 말해왔었네요.
알카트라즈의 일은 듣지 못했었고, 게임의 전개적으로도 무리가 있어서「그런거 할 수 없어요」라고 거절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넣었으면 좋았었겠네요.
――『소닉』의 인기와 함께 관련된 사람이나 조직이 계속 커지고있던 것이네요.
이이즈카
그러네요. 1993년 11월에는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아메리카의 유명 백화점 메이시가 감사제 시즌에 뉴욕에서 하는 퍼레이드)도 있었습니다.
나카
있었지! 소닉의 거대 풍선이 등장한다고 말하니까, 추운 중에 뉴욕까지 갔습니다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타트 직후에 바람에 휘말려서 푸슛 하고 시들어버렸다고.
이이즈카
도중에 소닉의 T셔츠를 입고있던 단체가 걷다가「혹시 저거 아니야? 하지만 풍선이 안오는데」라고.
누구도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줬기에, 끝날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카
그 퍼레이드는, 가필드나 스파이더맨 등, 유명 캐릭터가 아니면 뽑히지 않아요.
그중에 소닉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기뻤어요.
이이즈카
저에게는 그 순간에, 소닉이 아메리카에 국민적인 캐릭터가 되었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것이 오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었지만요(웃음). 출발 전에 보러가면 좋았어.
――일본에 있던 오오시마씨는, 실감이 있었습니까?
오오시마
저는 없어요. 아메리카에서 굉장히 인기있다고 말은 들었지만, 현장을 보지 못해서.
나카
연말의 CM에서「전미에 대히트!」라던가 하는 캐치 프레이즈도 있지 않았어?
오오시마
그런 것은, 실감이 아니라 정보밖에 안돼. 눈 앞에서 보면 또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제가 가장 존경하는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미키 마우스를, 소닉이 인기 랭킹으로 앞지를 해가 있었어요.
그때는 역시나「미키를 넘었다ーーー!」라고 흥분했네요.
소닉의 아래에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있어서,「굉장한 일이 되고있다고!」라고. 1994년쯤일까나.
●'잠복'이 이어진 새턴 시대. 거기에서의『나이츠』와『버닝 레인저』
――시대가 내려와서 세가새턴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세가새턴 전반은『소닉』시리즈의 발매가 없어서,「소닉 팀은 대체 무엇을 하고있는 걸까」라는 기분이 있었습니다.
나카
「이제『소닉』은 만들고 싶지 않아」라는 기분이었어요.
「세가새턴은『소닉』이 없어서 인기가 없어」라는 목소리도 닿았습니다만, 4년간『소닉』에 절여졌기에,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
거기에서 오오시마・이이즈카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NiGHTS into dreams...(이하,『나이츠』)』에요.
『나이츠』는 만드는데 2년간이 걸렸으니까요.
그 후에 팬에게는 미안한 기분이 되어서, 세가새턴의 개발 환경에서 움직이는『소닉』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만,
그것이 후의『소닉 어드벤쳐』에요. 다만, 세가새턴에서 테스트 1 스테이지를 만들었을때, 차세대기 드림캐스트 이야기가 나오는거에요.
결국 사명이 있어서, 프로젝트 자체는 드림캐스트로 바꾸는 것이 되었습니다만,
모처럼 만든 세가새턴에서 움직이는『소닉』을 뭔가로 살리고싶다 라고 생각해서,『소닉 JAM』의 갤러리 모드로서 실현했습니다.
――『Project SONIC』이라하는 일련의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나카
그 당시는 미디어의 인터뷰가 늘어난 시기입니다만, 유저씨에게는「새턴판은 중지되었다」라고는 말 못하고,
드림캐스트의 일도 표명할수 없고 해서, 상당히 힘든 시기였네요.
그래도 드림캐스트의 런치 소프트로 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있었습니다.
――『소닉 R』도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해외 개발이었죠.
나카
트레블러즈 테일즈(후에『크래쉬 밴디쿳』을 손수 다루는 영국의 개발사)네요. 몇번이고 영국 출장을 해서 감수를 했습니다.
――모처럼인데 조금 더『나이츠』에 대해서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만.
이이즈카
일본에 귀국한 저와 나카씨에게 오오시마씨가 합류해서, 세가새턴을 대표하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자고 시작한 것이 계기에요.
게임의 기획을 가다듬고있을 때에 나카씨가 말한 키워드가'공중을 나는 캐릭터'와'날지 못하는 새'였어요.
「날지 못하는 새가 최후에 날면 굉장히 감동적이네」라고 들어서.
나카
말이나 영상이 아닌 게임 체험에서 감동시키고 싶었네요.
이이즈카
하지만 나카씨로부터 전달된 그 키워드는,'하늘은 나는'과'날지 못하는 새'로 처음부터 모순되어있네요.
당시는 젊어서 유연성이 없었던 탓도 있어서인지, 기획이 형태가되기까지는 정말로 머리를 괴롭혔습니다.
오오시마
저로서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기쁨을 느꼈네요. 여기저기서 말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게임을 몇번이고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이상은 미야자키 하야오씨처럼 매번 다른 작품으로 모두에게 즐겨주셨으면한다.
그러니까, 나카씨들이 돌아와서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기쁨이 컸어.
그것도 지금부터 말하는 것입니다만, 영업 사이드로부터는「『소닉』을 만들어주세요!」라고 강렬한 압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세가새턴의 신작 프레젠테이션에서는「이번의 소닉은 하늘을 납니다」라고 말했어요.
――사실은 소닉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라는 것은 말하지않고!
오오시마
그걸 말해버리면 반대당하는 것이 정해져있었으니까요. 그것으로 시작판을 완성해서 영업에 보여주니
「『소닉』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면서도,「재밌어보여」라고도 말해서 우선 안심했습니다.
나카
『나이츠』는 어쨌든 개발 기간이 길었네요. 2년정도 걸려서, 지금까지 손수 다룬 게임 중에서도 최장 클래스가 아닐까나.
――되짚어봅니다만, 유저 관점에서 보면 그 2년간'소닉 팀의 잠복 기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카
『나이츠』는 어쨌든 고민하던 시기가 길었어.
어느 때 이이즈카가「최후에 날아서 기분이 좋다면, 기분 좋은 것만 만듭시다」라고 말해서(웃음).
이이즈카
어떤 게임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디어가 나올때까지 고민하고 고민했네요.
나카
최초는 흰눈썹뜸부기 새가 모델이 되었습니다만, 오오시마는 별로 불평하지 않았네.
오오시마
『나이츠』의 스태프 롤에서는, 나카씨가 프로듀서, 제가 디렉터로 되어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캐릭터에요.
나카씨와 같이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서, 게임 부분은 이이즈카에게 맡기고 있었네요.
그래서, 최후에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신을 몰라서, 테스트 플레이 중에「아아, 난다!」라고(웃음).
나카
감동 포인트에 빠져준 것이네(웃음). 그렇게 해서, 눈물이 나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서,
이이즈카는 꿈의 세계의 연구에 들어간거에요.
이이즈카
매일 출사하면「어떤 꿈을 꿨습니까?」라고 팀의 모두에게 물어서 꿈 해석을 하고있었네요.
나카
영과 프로이트의 서물을 읽거나해서네. 필드의 색설정에 관해서도 그런 연구에서 생겨났기에,
심층 심리에 작용하게끔 되어있던 것일거에요.
이이즈카
엘리엇이나 클라리스의 심정의 변화에 아울러 스테이지가 구성되어있어요.
오오시마
사실은 이 3인의 역할 분담은, 플레이어는 나카씨와 저, 게임은 나카씨와 이이즈카, 세계관은 저와 이이즈카라는 삼각형으로 만들어져요.
그다지 3인 동시에 이야기한 기억이 없네요.
나카
사이가 안좋은 것 같은 표현이잖아(웃음).
오오시마
만들고있는 한창에는 그런 직무로 했다는 것이에요(웃음).
이이즈카
최후의 나는 신은 사운드의 사사키 토모코씨와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하면 좋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순간 무음이 되어 BGM이 시작하는 것은 사사키씨의 아이디어에요.
나카
같은 시기에 또 하나의 눈물 포인트로서, 엔딩 무비가 올라와요.
가까스로 소리가 나는 순간의 것을 보면, 그 시점에 눈물이 지긋이 나와서.
「만드는 도중에 이러니까, 완성하면 절대로 감동시킬거야!」라는 반응을 느꼈네요.
――감동시킨다 라고하는 테마는,『소닉』과는 또 다른 곳을 노린 것이네요.
(전원)
그렇네요.
나카
상쾌감을 노린『소닉』에 대해서,『나이츠』에는 이야기를 체험시키자 라는 것. 그것이 최대의 차이였습니다.
오오시마
마켓적인 것으로 말하면, 아메리카는『소닉』으로 제압하고,『나이츠』는 유럽에서 이기고싶다 라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것은 영업 사이드로부터의 요망인게?
이이즈카
아니요, 단순히 우리의 생각이에요.
나카
거기는 꽤 자유롭게 해주었으니까요. 세가새턴 초기정도까지는 현장의 재량에 여러가지 시켜주었습니다.
오오시마
덧붙혀서,『크리스마스 나이츠』는 회의에서 돌아온 나카씨가「오오시마ー! 연말 타이틀을 뭔가 내놔!」라고 들어서,
급거 만든 타이틀이었습니다(웃음). 이유를 들어보니, 다른 프로젝트의 스케쥴이 전부 지연되서 연말에 팔 것이 없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이즈카
그런 경위라서,『크리스마스 나이츠』는 파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배포하는 캠페인 소프트로 하자 라는 것이 되었어요.
결국 본체나 멀티 콘트롤러에 제공되는 형태로 유통을 했습니다만, 그 이외에도 전화 신청으로 원하는 유저씨에게 제공하자 라고.
그래서, 제조 코스트와 발송료의 실비만 유저씨에게 부담하고 제공을 했어요.
나카
그건 확실히 타케자키가 생각한거네.
――게임을 만드는 측과 파는 측과의 위태로움이 보일 듯 말듯 하네요.
나카
그건 어느 시대에도 있는 것 아닌가요? 영업 사이드가 생각하는 것은 있어도, 개발은 생각하는대로 만들지 않아.
반대로, 이쪽에서「무엇을 만들고싶어?」라고 들어도 그들로부터「팔리는 물건」이라는 답이 돌아와.
그러면,「이쪽에 맡겨줘」라고 하네. 크리에이티브와 장사의 틈새라 하는 것은 영원의 과제네요.
오오시마
게임 회사에 있어서는 경영자의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이즈카
그런 의미로는, 사시의'창조는 생명(목숨)'이라는 말의 존재가 크네요. 개발은 항상 챌린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식이 세가의 게임을 형성해 만들었기에,「이런 것 본 적 없어!」라고 하는 감동 체험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조금만『버닝 레인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만.
오오시마
『나이츠』가 끝나고, 또 다른 즐거운 것을 만드는 챌린지를 하기 위해서,
소닉 팀이 하지 않을 듯한 타이틀에 도전해보자 라고'모에계'를 해볼까 하는 것이 계기였습니다. 조금 오타쿠 기질의 유저를 겨냥한 것.
거기에서 회사 중에서 그런 것이 득의한 사람을 모아서, 저도 모에계를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그럴수가!
오오시마
하지만 그것은 하지 못했어. 그려도 그려도「뎃생이 너무 정돈되었어요」,「조금 더 무너뜨리는 쪽이」라고 들어서 포기한거에요.
나카
오오시마는 히어로물이 정말 좋았어요. 아메리카에서 친근한 히어로라 말하면 소방사이기에, 그것을 하자고 해서.
오오시마
그래서 캐릭터 디자인을 애니메이터의 오치 히로유키씨에게 부탁하고싶다 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쯤 세가와 반다이가 함병을 발표했던 타이밍이었기에, 애니메 무비 제작도 반다이씨에게 부탁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기다렸습니다만, 여러가지가 있어서 합병은 해소가 되어버려.
그래서, 급거히 세가의 자회사였던 토쿄 무비 신사(현 톰스 엔터테인먼트)에 부탁했습니다만,
역시나 패키지만은 오치씨에게 부탁하고싶다 라는 것으로 그려받았습니다.
나카
그런 합병 이야기도 있었지(쓴 웃음).
오오시마
하지만 게임 시스템에는 자신 있어요. 비주얼면에서도, 세가새턴에서는 하지 못했던 반투명 처리를 프로그래머가 실현한다던지.
나카
그러네. 스크롤면을 모조리 그린다던지. 우선 순위도 붙히는데 어려웠다던지.
2 CPU를 다 사용한다던가 해서, 그것이야말로 새턴의 하드를 다 빨아내버리는 듯한 제작을 했기에, 이식이 어려워요.
이이즈카
이식을 바라는 목소리는 아직도 있네요.
오오시마
지금 유행의 시리어스판을 만들고싶네. 헐리우드판 처럼.
나카
당시의 그대로도 좋지않아? 라고 해야하나, 오쿠나리(요우스케씨.『세가 3D 복각 프로젝트』프로듀서)에게도
「『버닝 레인저』의 이식은 너의 일이니까」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으니까.
이이즈카
그러고보니 게임이 거의 완성해서, 다음은 파는 것에만 가까운 타이밍에,
해외 담당자가「『버닝 레인저』라니, 현지의 미묘한 차이로는 자신이 불타는 것이 됩니다만」이라는 지적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외국인이 하면 그 타이틀 명에는 위화감이 있었을지도 몰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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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하드 드림캐스트의 등장.『소닉』도 미래 기준으로 신생
――드림캐스트 시대의 이야기를 묻겠습니다.
일단은 하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된『소닉』이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회귀하게된 흐름을 기억하십니까?
나카
세가새턴이 세일적으로 혹독했던 것은『소닉』시리즈가 없었으니까, 라는 목소리가 있던 것은 굉장히 컸네요.
변명이 됩니다만,『나이츠』는 2년을 걸 셈은 없었어요. 1년 정도로 만드는 것을 끝내고,
그 다음에『소닉』시리즈의 신작을 만들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만, 결과로서는 2년의 공백이 되어버려.
그러거나, 첫 3D기도했고, 캐릭터 디자인을 바꾸고싶다고, 어찌됬든 챌린지를 다했어.
소닉을 말하게 할까 어쩔까도, 엄청난 논의를 반복했네요.
――여러가지 화제의 제공이 있었네요. 소닉 팀이 남미로 취재 여행을 가거나.
나카
그래그래. 대작으로서의 화제성을 만들자 라는 것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와 페루에 2주간의 취재 여행을 갔네요.
이이즈카가「『인디아나 존스』의 로케이션 헌팅이 열린 곳에 가자」라고 플랜을 생각해서.
하지만 계기로서는, 스즈키 유씨가『아웃 런』을 만들 때에 아웃 번에 취재 여행을 갔다왔어요.
그것이 계속 부러워서,「이제, 이 찬스밖에 없어!」라고, 빌어먹게 바쁜 중에 6인의 스태프를 데리고서 현장을 떠난다고 하는(웃음).
오오시마
그때 저는『버닝 레인저』의 제작을 해요.개발 시기가 병행되고있었으니까요.
――또 오오시마씨만 잔류...(쓴 웃음).
이이즈카
취재 여행에는, 텍스쳐의 수집 목적도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디자이너가 손으로 그렸습니다만,
드림캐스트의 시대가 되니 사진이 그대로 텍스쳐가 돼. 그래서, 게임 중에 유적이 등장한다면 남미에서 실물을 촬영하자 라고.
나카
필름의 현상대가 굉장한 것이 되었지.
――새로운 챌린지를 많이 하고있는『소닉』입니다만, 반대로'『소닉』다움'이라고 말할 변하지 않은 점은 있었습니까?
오오시마
저는『소닉』을 새롭게 한다 라는 것으로, 얼마나 탈피해줄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버닝 레인저』를 만들면서 옆에서「좀 더 바꿔ー!」라고 극을 날렸습니다.
이이즈카는 디렉터였으니까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젊은 스태프로서는 지금까지의『소닉』이라는 존재가 컸기에 빠져버리지 않았어.
이이즈카
그것도 있고, 이쪽의 우에카와(유우지씨.『소닉 어드벤쳐』이후의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에게
새로운 소닉의 일러스트를 그리게했어요.
오오시마
최초에 제가「이 정도는 해라」라고 전한 스케치는, 각자에 따라 친부에게 가시 돋친 흉포한 것이었습니다만,
우에카와는「그런 걸로 했다간 팬에게 살해당합니다」라고 반응했습니다(웃음)
――이이즈카씨의 안에서의 비전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이즈카
그때까지의『소닉』은, 스토리는 취급 설명서에 써져있는 정도의 간단한 것이고, 어떤 캐릭터인지는 플레이어의 상상의 범주였어요.
하지만『소닉 어드벤쳐』에는 소닉은 말하고, 이야기도 제대로 있어.
거기서 여러분이 생각해 그리고있는 소닉을 배신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모든 것을 구축하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러니까, 클래식 소닉의 일러스트가'가진'조금 건방지지만 귀엽고 스피드가'빠른'이라는 이미지는 남긴다 라는 의식에서 있었습니다.
그것이 있어서, 발하는 방식이 조금 건방져지거나, 아메리카인같은「와ー오!」라고 하는 말버릇을 도입하거나 했습니다.
오오시마
스토리는 누가 생각한거야?
이이즈카
이야기의 대략부터 대사에 이르기까지 니시야마(아키노리씨.『소닉 어드벤쳐』의 시나리오 담당.
이후도 이이즈카씨, 우에카와씨와 함께『소닉』시리즈의 감수에 크게 관여하다)네요.
――나카씨는 프로듀서로서 그들을 심판하는 입장이 된것일까 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떤 점은 의식하신걸까요.
나카
제 자신, 내심 여기까지 해서 좋을까 라는 불안한 기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3D로 완전히 바뀌는 타이밍이어서, 게임의 스타일뿐만이 아닌, 캐릭터 조형도 크게 바꿨습니다.
디즈니를 좋아하는 오오시마의 말을 빌리자면, 「미키도 시대에 맞춰서 모습을 바꾸고있다」라는 것이네요.
게임 디자인적인 이야기로 하자면, 점프의 타이밍이네요.
3D로되는 것에 따라서 발판의 끝이 알기 어렵기 되기에, 그것을 어떻게 할까에는 신경을 썼습니다.
『버닝 레인저』의 때에는 오오시마와 상담한 결과, 가장자리에 가면 자동으로 점프를 한다는 수단으로 해결했습니다.
하지만,『소닉』의 경우는 자기 자신이 점프를 하는 게임이잖아 라는 판단으로,
공중에서의 호밍 공격을 용의하는 것으로, 적을 노리는 것으로 기분 좋게 진행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했습니다.
――2D의『소닉』과 다르게'낙사'하는 것은 적어졌네요.
나카
분명히 떨어져 죽는 장면에 쥐어짠 결과에요. 2D의『소닉』에는, 저희 중에'야스하라 세트'라고 부른,
점프 후에 가시가 놓여있는 듯한 배치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3D에서 하면 바로 죽고말기에 배제했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의 흐름이 상당히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만, 3D의『소닉』의 기준점은 여기에서 확립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라고.
이이즈카
3D 액션의 선인으로서『슈퍼 마리오 64』가 있었습니다만, 첫 플레이할때의 저는 어디로 가면 좋을지가 알 수없었어요.
옛날의『소닉』은 오른쪽으로만 입력하면 골에 갈 수 있는 디자인이었으니까,
『소닉 어드벤쳐』도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게임으로 하고싶지 않았어요.
진행해야할 방향에 카메라가 향한다 라는 시스템은, 그 생각으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소닉 어드벤쳐』의 하이스피드한 라이드 감은, 그러한 것으로부터 생겨난거군요.
이이즈카
카메라의 자동 제어 시스템이 없으면, 3D판『소닉』의 탄생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카
거대한 변혁을 했는데, 충분히 드림캐스트의 런칭날... 로부터 약 1개월 늦춰서 발매할 수 있었지.
이이즈카
네(웃음).
――캐릭터로서 축은 있으면서도, 항상 변혁을 멈추지 않은 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소닉』의 경향이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이즈카
그런거에요. 그 때문에, 25년을 하고있는 비교적으로는 넘버링 타이틀이 적어요. 항상 매회 새로운 컨셉, 새로운 판매를 쓰고있기에.
――그렇게 생겨나, 자라온 소닉이, 지금에는 마리오와의 공연을 올림픽 게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서의 감상은 있으십니까?
나카
사실은 마리오와의 공연이란 것은, 제가 하고싶어서 한번 미야모토 시게루씨(말하지 않아도 알 닌텐도 크리에이티브 연구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나『젤다의 전설』등의 창시자)가 있는 곳에,
마리오와 소닉이 공연하는 액션 게임을 만들고싶다 라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있었어요. 게임큐브 시절에, 플래너 4인정도를 데리고서.
그 이야기 자체는「소닉과 마리오가 액션으로 공연하는 명확한 필연성이 없다」라는 것으로 유감스럽게도 실현은 하지 못했습니다만,
마침 그 당시, 세가가 올림픽의 라이센스를 취득했기에, 그 라이센스를 살려서 캐릭터들이 공연한다 라는 형태로서 맡은거에요.
그 조금 후에『대난투 스매쉬 브라더스 X』에 소닉이 등장한거에요.
하지만, 그것도 제가 사쿠라이(마사히로씨. 소라 대표.『대난투 스매쉬 브라더스』시리즈나『광신화 파르테나의 거울』등을
손수 다룬 게임 디자이너)씨에게「소닉을 내면 좋겠어」라는 것을 부탁해서 실현한거에요.
올림픽 게임은 저의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세계 중의 아이들이 기뻐해주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마리오와는 액션으로 공연을 이루었으면 좋겠네요.
이이즈카가 필연성을 찾아내서 또 프레젠테이션을 해줬으면 하고 생각합니다(웃음).
오오시마
저도 동감이네요. 이전은 라이벌로 보았습니다만, 공연을 봤을 때는「닌텐도씨가 소닉을 인정해줬구나」라고 솔직히 생각했습니다.
나카
옛날부터'소닉이 활보하는 테마 파크가 가능하다면'이라는 꿈은 계속 갖고있었습니다만, 별도로 디즈니 랜드에 가줘도 좋아요.
한 시기, 아메리카에서『소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있는 DiC Entertainment가 디즈니에 인수되었어요.
「혹시 소닉이 디즈니 랜드를 달려버릴지도!」라고 기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다양한 곳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소닉』의 유전자. 이제부터 미래의『소닉』상은!?
――슬슬 인터뷰를 정리해서 들어가려합니다. 25년이라는 세월 중, 작품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는 시리즈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이즈카
수로 말하자면 100 타이틀 가까이 있습니다.
나카
그렇게나 있구나! 게임기어판같은건 거의 노터치였었네. 부서가 달랐어서.
――덧붙혀서, 나카씨와 오오시마씨는, 현재의『소닉』시리즈를 플레이하고 있으신가요?
오오시마
전부는 아닙니다만 소프트를 플레이하고있습니다. 여전한 스피드 감은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카
저, 미안합니다만 플레이하지않습니다(단호히). 2006년에 세가를 나오기까지,『소닉』에 계속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플레이하면 다양한 부분이 신경쓰여버려요.
――제작한 사람의 시선으로서 보고만다?
나카
세가를 나가서부터 1작품은 플레이했습니다만, 처음 10초정도에서 다양한 것이 신경쓰여서「이건 만지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해서,
멀리서부터 지켜보는 것을 했어요. 그 이래 일체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2006년 발매의『소닉 더 헤지호그』까지는 참여하고 있었습니다만,
도중에 세가에서 나가버렸기에, 그 후에 만들어진 부분이 아무래도 신경쓰여버려.
애초에 그 타이틀 명을 했던 것도, 15주년의 단락을 짓는 것으로 거대한 변혁을 할 수 있도록,
'또 새로운 한 걸음'이라는 것으로, 감히 초대와 같은 이름으로 한거에요.
결과, 평가는 좋지 않아서, 최후까지 참여하지 않은 것이 지나칠 정도로 미안해서.
――그러면『소닉』에 대해서의 정보도 차단하고있다?
나카
쇼 회장 등에서 영상을 멀리서부터 보고,「이번의『소닉』은 이런 것이 되어있구나!?」같이 생각하는 것은 있네요.
역시 신경은 쓰여버려요. 단, 그것을 이이즈카에게 이래저래 말할 것은 아니에요.
――시집 가버린 여동생같은(웃음).
나카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또 3인이『소닉』을 만들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이즈카가 아메리카에 가버려서, 조금 멀어진 것 같네요.
하지만, 최초의 생각을 가진 유전자가 다양한 곳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25주년을 걸맞는 스텝 업의 순간이 온다고 생각하기에, 그때가 기대됩니다.
다음에 나아가는 것은 50주년일까나?(웃음)
이이즈카
그때는 모두가 늙어 휘청휘청해서, 당시의 일을 듣고자 해도 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일동 폭소)
나카
그 정도로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은 있네요. 거기까지 자신도 활약하고싶고,『소닉』과 같이 애니버서리를 맞고싶어요.
――닌텐도에 마리오라 하는 명확한 라이벌도 있구요.
나카
그런 강대한 경쟁 상대 적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일지도 몰라. 세가뿐만이 아닌 게임 업계 전체에 있어서.
지금은 플랫폼의 차이가 별로 없게 되어서, 라이벌 관계 라고 하는 것이 엷어지는 것이 쓸쓸하네요.
――미래로 향하는『소닉』의 비전은?
이이즈카
팬의 여러분은 알고있으시겠지만, 우리들 소닉 팀이 만드는 게임 이외에도,
CG 애니메이션부터 스타트한『소닉 툰』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게임이 전할 수 없는 듯한 국가나 지역에까지 전달되고있어, 호평을 얻고있습니다.
게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그리고 이번 소니 픽쳐스가 제작하는 영화와, 다양한 형태로『소닉』이 넓어지고있기에,
다양한 터치 포인트가 가능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이이즈카씨는 아메리카로 건넌다?
이이즈카
그러네요. 오늘은 역사를 쫓아서 말했습니다만, 해외에서 만들어진『소닉 R』도 있고,
저도 나카씨도 노터치한『암흑의 기사』처럼, 우리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흔들리는'때가 있어요.
2년 전에 발매된 게임판의『소닉 툰』도 정직한 유저의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소닉은 이래야'라는 기준을『소닉』브랜드의 사령 본부가 있는 로스 앤젤레스에서 하러 가자 라는 것이에요.
――자라가는『소닉』의 통제를 잡는다 라는.
이이즈카
그런 것이에요. 25년이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이며, 어느 타이틀에도 동일한 것.
『나이츠』는 2개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20주년이에요. 그래서, 경과한 년월이 굉장한 것이 아닌, 쌓아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므로, 다음 애니버서리의 때는,'과거의 IP'라고 불리지 않도록, 항상 새로운 것을 제안해서, IP를 계속 살리는 듯한 대처를 하고있어요.
나카씨는 플레이해주시지 않습니다만(웃음).
나카
최초부터 보여주면 할게! 하지만 이이즈카는 전혀 상담해주지않아.
분명「보여주면 시끄러워지니까...」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나(웃음).
――그만큼 사랑이 강하다는 것일까요.
오오시마
저의 경우는, 같은 만드는 측의 인간으로서, 그 게임에 안된다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별로 신경은 쓰이지 않아요.
반대로, 좋은 곳을 찾아냈을 때는「나도 질 수 없겠는걸」이라는 자극이 됩니다.
나카
나는 신경 쓰여버려서, 욕구 불만인 쪽이 강하네. 특히『소닉』시리즈에 관해서는.
15년을 참여했던 분 만큼 깊은 생각이 강한거네.
――오늘은『소닉』시리즈의 반생의 진실과 같이, 세분의 관계성이 정말로 잘 보였다는 느낌이 듭니다(웃음).
긴 시간, 귀중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나카
이번은 아메리카에 나랑 오오시마도 불러. 3인이서 밥을 먹으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자!
이이즈카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때야말로는『소닉』을 플레이해주세요(웃음).
【특별 부록】소닉 디자인의 변천
▲좌부터 메가드라이브의 시절,『소닉 어드벤쳐』의 시절,『소닉 어드밴스』의 시절,『소닉 더 헤지혹』(2006년)의 시절,
『소닉 제너레이션즈』의 시절,『소닉 툰』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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