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 4 : 이와이 슈, 죄와 벌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사일런트힐F 4회차를 플레이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 그 재미도 끝내고, 좋은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군요. 다만, 아직 제가 할수 있는 일이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바로 남겨두는 일 말이죠.
여러분들은 사일런트힐F의 스토리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해석의 여지'라는 말을 아주 폭넓게 응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토리를 해석하는 과정이 없으면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진행하면 이야기의 앞뒤가 하나도 안 맞으니까요. 제작진들은 일부러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으며, 엔딩 역시 각자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각자의 정답을 찾아 안개 속을 헤매이게 되었죠. 물론 저도 그 헤매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이제, 저는 4회차 플레이를 통해 저 나름의 답을 찾아냈고, 제가 찾은 답을 정리해 이곳에 남겨두려 합니다. 제가 게임을 하며 찾아냈던 것, 해석했던 것, 그리고 고찰했던 것에 대해 정리해 남겨두는 이 몇 개의 칼럼은 사일런트힐F에게 바치는 제 작별 인사이며, 이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 추가로, 이 글은 원래 레딧에 게시하기 위해 작성했던 글이며, 영어로 썼던 글을 다시 한국어로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어투나 어순, 혹은 일부 용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최대한 다시 다듬기는 했지만, 보시면서 혹시 말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시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서론을 살짝 길게 쓰고 있사오니 양해바랍니다. 이제 본론인 "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4: 이와이 슈, 죄와 벌”편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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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이코패스의 이면
(1) 오컬트의 존재 여부
(2) 겹치는 동기
(3) 인형의 동선
2. 사이코패스의 등장
3. 사이코패스의 행동
(1) ㅁㅇ투여
(2) 특수폭행
4. 사이코패스의 가치관
(1) 사회규범 무시
(2) 반복적인 거짓말
(3) 공격성
(4) 조종 성향
(5) 무모함
(6) 타인의 신뢰 악용
5. 사이코패스의 면죄부
6. 사이코패스의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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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코패스의 이면
심연이 우리를 바라보기 전에 눈을 감는 현명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죠. 지금도 딱 그 순간인 것 같으니, 사이코패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눈을 좀 풀어두는 의미에서, 먼저 이 게임의 추리 요소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겠습니다. 바로 슈의 이면, 그의 정체 중 하나인 서양식 인형에 대한 이야기죠.
사실, 저는 게임을 한참 플레이하는 도중에도 "당연히 저 인형은 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외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에서는 제가 왜 저 서양식 인형이 슈라고 생각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오컬트의 존재여부
먼저 이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겠군요. 슈가 서양식 인형과 합작을 하는 것 자체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다만 그가 서양식 인형 그 자체인지, 아니면 서양식 인형, 정확히는 최종보스인 츠구모가미에게 홀린 것인지는 오컬트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컬트의 인정 여부에 따라, 슈가 희생양인지 빌런인지의 여부도 상당히 많이 갈리게 되고요. 물론 그가 사이코패스 ㅁㅇ상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토지신에게 홀려서 그런 부분이 아주 약간 있을수 있을지도 모를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슈의 대사와 행동에서 그가 명백히 자신의 의지로 히나코를 조종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나긴 하지만, 츠구모가미가 그런 슈 내부의 충동을 증폭시켜 그를 과격하게 바꾸었을 일말의 가능성도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앞선 칼럼 1편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밝혔듯, 저는 전체 이야기에서 오컬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 해석하는 파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게임의 가장 큰 두 개의 축 중 하나인 여우신이 명백하게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사일런트힐 엔딩에서 여우신은 '오랜만의 결혼식에 흥이 돋아 과음한 인간 남성'으로 묘사되므로, 그 여우신의 반대 극단에 위치한 츠구모가미 역시 인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게임의 스토리는 오컬트를 인정해도, 인정하지 않아도 앞뒤를 맞출수 있도록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위의 여우신의 경우, 사일런트힐 엔딩에서는 고토유키의 할아버지쯤 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호유기미 엔딩에서는 딱 하나라고 단정지을수 없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특이한 혈통을 지닌 여자를 가문에 편입시키기 위해 고토유키를 홀린 혼령으로, 그 혼령에 홀려 삐뚤어진 고토유키 자신으로, 혹은 그 둘이 결합한 존재로 해석해도 말이 되니까요. 그 중 어떤 하나의 해석을 선택하면, 반드시 그 반대편의 정보가 모순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건 고토유키를 홀린 여우신의 혼령이었다'라고 해석할 경우, 사회의 문물을 익히고 돈을 벌었던 주체인 고토유키, 남자답게 포기할 줄도 알고 히나코와 슈를 보내주는 고토유키의 모습이 모순되게 됩니다. 반대로 그걸 고토유키로 해석하면 이번엔 '특별한 혈통을 원하는 여우신의 존재'가 모순되죠. 그 둘이 합쳐졌다고 해석할 경우, 고토유키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를 실종시키려 노력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그는 사일런트힐 엔딩에서 히나코를 위해 결혼식을 파혼하기까지하는데도 말이죠.
바로 이런 식으로, 오컬트를 인정할 경우 어느 쪽의 해석을 선택해도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쪽의 근거와 모순되요. 그러니까, 애초에 게임 자체가 의도적으로 '하나의 완벽한 정답을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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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오컬트를 부정하고, 그 모든 오컬트는 중증 중독자인 히나코가 ㅁㅇ 중독으로 인해 보고 있는 환상이라고 해석할 경우 각 정보가 모순되지 않아요. 예컨대 여우신의 경우, 할아버지 앞에서 히나코에게 엄한 소리를 하는 고토유키의 모습이나, 히나코가 슈와 알콩달콩하자 서운해하는 고토유키의 모습이 ㅁㅇ으로 인해 비틀렸다고 설명해버리면 되니까요. 이렇게 오컬트를 부정한 채로 해석할 경우, 오컬트를 성립시키기 위한 정보들 대부분이 'ㅁㅇ으로 인한 헛소리'로 가볍게 날아가버리므로 전체 스토리가 무너지기 직전의 젠가처럼 되어버린다는 단점은 있지만, 대신 앞뒤가 깔끔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요컨대, 슈가 투여한 ㅁㅇ으로 인해 히나코의 머릿속에서 사일런트힐 현상이 벌어진 것은 확실한 상수,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작중의 오컬트 요소를 대입하면, '우연히도' 그 ㅁㅇ으로 인해 히나코는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런데 그 신은 '우연히도' 두 종류가 있었고 서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결국 '우연히도' 특이한 혈통을 가진 히나코를 원하는 여우신과 '우연히도' 왠지 모르겠지만 히나코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인형신이 마구 싸워댄 결과로 히나코가 둘로 나뉘었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려요. 보시는 것처럼, 이야기가 순식간에 조악해지죠.
저는 깔끔하게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칼럼을 포함한 모든 글을 쓰면서 '오컬트는 없다, 히나코가 ㅁㅇ 중독으로 보고 있는 환상이다'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함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닌데, 이 게임의 미스터리함이란 건 솔직히 이것저것 무차별로 던진다음 '알아서 끼워맞춰 해석해보세요'라는 식이라서 급이 너무 낮아요. 모호한 부분끼리 상충되지 않고, 하나의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그런 것처럼 보이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대놓고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습니다, 참 신기하죠?"를 어거지로 해석하는 일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의 스토리에 '오컬트는 없다'라고 결론내린 것이며, 따라서 작품 내에서 명백하게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는 서양식 인형 역시 오컬트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의 인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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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형을 '현실의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준코죠. 매 회차의 엔딩 직전, 히나코와 준코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준코가 히나코를 설득하고 약을 먹지 못하게 말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1회차때는 보이지 않지만 2회차 엔딩부터는 이 서양식 인형이 준코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제압해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준코가 자신에게 달라붙은 인형을 보고 "너는(お前は, omaewa)... 대체?"라고 말하는데, 이 '너는(お前)'이라는 말은 사람을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입니다. 아주 넓게 잡아서 동물도 그렇게 부를 수는 있는데, 물건을 그렇게 부르진 않아요. 다시 말해 현실의 준코에게 인형은 사람으로 보인 거죠. 만약 현실의 준코한테도 인형이 인형모습 그대로 보였다면, 준코가 "이건(これは, korewa)... 대체?" 혹은 "이 물건은(この物は, konomonowa)... 대체?"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어 자막에서도 "What... are you?"라고, 명확하게 인칭대명사로 부르고 있고.
< 준코의 말은 중의적입니다. "너는 대체 누구냐?"라는 뜻도, "너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냐?"라는 뜻도, "너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라는 뜻도 되니까요. >
이 장면을 현실로 가져와보면, 결혼식 도중 갑자기 히나코의 상태가 안좋아지자 준코가 다가가 히나코를 케어하려 했지만, 잠입해있던 슈가 결혼식을 파탄내기 위해 준코를 제압한 것이죠. 실제로 여우의 혼례식 엔딩, 호유기미 엔딩에서 보면 그는 야구방망이를 소지한 상태고, 건장한 20대 남성인 고토유키조차 단 한방의 빠따질로 제압했으니 준코를 가볍게 제압해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설마 슈가 말로 준코를 설득한 건 아닐테고, 뭔가 물리력을 행사해서 제압했겠죠. 그렇다면 저 장면은 현실에서 슈가 준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돌아보는 장면이 아닐까요? 저렇게 어깨에 손을 얹은 다음 준코를 때려눕히거나, 넘어뜨리거나, 목을 졸라서 제압한 거죠.
그가 준코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서 제압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거라 믿고 싶군요. 준코와 슈가 히나코에 대한 약속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예전에 슈가 준코와 사이좋게 지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해당 시점에서 준코는 결혼 후 임신 및 출산을 거치고도 한참 지난 상태이므로 슈와는 몇년 이상 만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 친하게 지내던 누나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 제압한다는 건 좀 그렇죠.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지만, 슈라는 인물은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를 속여 ㅁㅇ을 먹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려 했던 사이코패스라서 차마 확신할 수가 없군요.
(2) 겹치는 동기
앞선 챕터에서 '어째서 서양식 인형이 현실의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째서 그 서양식 인형이 이와이 슈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 설명할 차례죠.
먼저, 다음의 대사들을 살펴봅시다. 전부 인형이 하는 말입니다.
> 여우남자를 믿지 마
> 린코를 조심해
> 시미즈 히나코를 도와줘
> 돌이킬 수 없게 될거야
> 원래의 네가 아니게 될 거야
> 생각해 내, 네 이름은 시미즈 히나코
>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없게 될거야
> 시미즈 히나코만 살아남을 거야, 너는 죽어
> 여우들을 따를거라면 저주해주겠어
> 나랑 놀자, 언제까지나
> 시미즈 히나코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건 나 뿐이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 정보는 이 인형이 고토유키/린코/시미즈 씨/시미즈 여사/여우일족/히나코를 남처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인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죠. 이들을 전부 제외하면 '인형의 현실 인물'의 후보는 총 둘입니다. 슈와 사쿠코죠. 실제로 저 인형의 대사를 사쿠코로 생각해도 상당부분 맞아 떨어집니다. 다만 사쿠코로 해석할 경우 인형이 고토유키에게 보이는 증오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넓게 보자면 '결혼으로 내 소중한 친구를 뺏어간 고토유키가 싫어'라고 연결할 수는 있지만 조잡하죠. "린코를 조심해"라는 대사도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슈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동기가 충분하죠. 린코가 자꾸 히나코 앞에서 자신을 유혹하려고 수작질을 부리니까.
두번째 정보는 인형이 '시미즈 히나코'만을 인정하려 들고, 다른 히나코-즉, 고토유키와 결혼한 츠네키 히나코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건 슈의 특징 중 하나인데, 슈의 '복용 실험 메모'를 보면, 그는 고토유키와 결혼을 결심한 히나코를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히나코를 속여 그녀에게 ㅁㅇ을 먹였죠. 또한, 그 메모에는 인형의 "시미즈 히나코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건 나 뿐이야."라는 대사와 정확하게 대구를 이루는 "(히나코가 ㅁㅇ을 먹음으로써) 히나코를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지 깨달을 것이다."라는 말도 적혀있습니다.
세번째 정보는 인형이 히나코의 선택, 즉 고토유키와의 결혼을 무산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원래의 히나코가 아니게 되는 일을 막아내려 하고, 언제까지나 히나코와 놀고 싶어하는 사람,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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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시점에서 서양식 인형이 최초로 등장하는 시점은 게임의 맨처음 오프닝 장면입니다. 어릴 때 히나코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 나오죠. 이후 그녀는 여자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는 화가 나서 그 인형을 내다 버렸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크 쉬라인의 외곽, 봄눈의 경옥으로 만든 대문의 열쇠를 얻는 곳 근처에서 그 인형을 다시 만나게 되죠. 처음 인형을 본 히나코는 "...어째서 여기에?"하고 놀랍니다.
하지만, 3회차 이후에는 이 둘 사이에 빠진 장면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1950년 9월 19일, 히나코가 내다 버린 그 서양식 인형을 어떤 소년이 주워서 그녀를 찾아온 날이죠. 그리고 히나코와 그 소년은 그날 이후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믿었죠. 그래서 그 인형은, 둘의 우정의 계기이자 유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좋게 말하자면 유대의 상징, 나쁘게 말하자면... >
(3) 인형의 동선
이 게임에서 가장 중대한 반전은 에비스가오카에 있는 히나코와 다크 쉬라인에 있는 히나코가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하나의 히나코가 둘로 갈라져 있죠. 그런데 이 두 명의 인물 주변에 항상 맴도는 인물이 둘 있습니다. 바로 준코와 인형입니다.
준코의 경우를 먼저 봅시다. 현실의 그녀는 히나코의 결혼식에 참례자로 참여해서, 히나코의 상태를 체크하거나 케어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준코가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에게도 보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준코가 목소리만 들리거나, 창문 너머의 그림자로만 보이지만,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가 이와이 저택을 방문할 즈음이 되면 아예 히나코 앞에 나타나서 말을 해줍니다.
반대로 인형의 경우, 그 인형은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히나코의 곁을 맴돌고 있죠.
인형은 슈가 화면에 비춰지고 있을 때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인형이 화면에 비춰지고 있을 때는 슈가 등장하지 않아요. 위 사진 세트의 맨 오른쪽 아래 사진은 호유기미 엔딩의 장면인데, 저기 서 있는 인형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마치 교대하듯이 슈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형의 동선을 통해, 어떻게 슈가 갑자기 저 결혼식장 한복판에 나타났는지도 설명됩니다. 2회차 이후에 확인 가능한 정보들을 모아보면, 인형은 맨 처음에는 신전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히나코가 봄눈의 경옥을 깎아 만든 열쇠로 신전의 대문을 열자 그녀를 뒤로 따라들어가 신전으로 잠입합니다. 그 과정에서 히나코를 밀쳐버리기도 했죠. 이후 인형은 의식장으로 가는 계단의 아래, 행사장 외곽의 어두운 골목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히나코를 따라가죠. 계속 그녀를 설득하려 하면서. 그렇게 결혼식장까지 따라간 거에요. 그래서 이 인형, 슈가 각 엔딩의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거말고는 슈가 거기서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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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전체에서 둘이 한 화면에 같이 잡히는 장면이 딱 한 장면 있습니다. 린코의 집에서 셋이 사쿠코를 이야기하며 복도를 걷는 장면에서, 복도 옆에 인형이 숨어있는 모습이 스쳐지나가죠. 그 장면에서 린코와 히나코는 평범하게 복도를 걸어서 휙 지나가버리지만, 슈는 인형 근처에서 걸음이 느려지더니 잠깐 멈췄다가 지나갑니다. 즉, 슈만 인형을 인지하고 있어요. 다만 그 장면의 의미가 뭔지 좀 애매해요. 어차피 에비스가오카는 히나코의 환각 속의 세계고, 시로무쿠와 히나코처럼 동일 인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례도 있으니까 설명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색하죠.
사실, 이 장면을 전후해서 게임의 만듦새가 갑자기 심하게 안좋아지는데, 논의 안개 속에서 슈가 두 명이 있다던가(컷신에서는 앞으로 나간 것처럼 나오는데, 뒤로 돌아가보면 그대로 서있음), 계단에서 린코가 히나코를 밀치는 컷신의 카메라 락을 풀어보면 히나코가 굴러떨어진 이후에 린코가 허공을 밀치는 동작을 한든가 하는 식으로 퀄리티가 굉장히 낮아요. 그래서 저는 슈와 인형이 한 장면에 잡히는 그 유일한 장면이 기획 단계에서의 연출 미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장면에서 둘은 절대로 같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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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여기까지, 슈의 인형극에 대한 추리로 가볍게 눈을 풀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심연에 눈을 돌려 이와이 슈, 그리고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로군요. 이제부터는 좀 무거운 이야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2. 사이코패스의 등장
"당신에게는 결코 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선들이 있죠. 하지만, 어느 날 당신은 그 선들을 넘어요. 그 때 당신은 깨닫게 되죠: 규칙이 깨져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부터 굵고 검은 선은 점점 희미해져서 회색빛이 되버려요. 그 선은 넘을 때마다 조금씩 더 흐려지고, 끝내 당신은 어느 날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될 거에요: '예전에 여기 어디쯤 선이 있었던 것 같은데...'"
- 테일러 젠키스 리드
우리 모두는 선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파악하게 해주는 힘이자, 창작물을 즐기며 그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주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전쟁물을 감상하는 중이라면, 사람에 대고 총을 쏘는 일이 끔찍한 범죄로 인식되지는 않겠죠. 반대로 청소년 심리 드라마를 감상하는 중이라면, 날카로운 먈 한마디가 살인 범죄만큼이나 엄중한 무게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처럼 작중의 상황, 배경이라는 것은 그 안의 등장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어느 정도 일관된 톤으로 짜여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공포물에서 뮤지컬 댄스장면이 나오거나, 멜로물에서 인간을 해부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으로 '극 내의 일관된 분위기'를 해치는 장면이 삽입되면 감상하는 사람이 굉장히 당황스러울거고, 그럼 작품에 몰입하기가 그만큼 어려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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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힐F의 배경을 봅시다. 이 게임에서는 각 인물들이 각자의 이기심, 욕망, 뒤틀림을 가지고 있고, 이 뒤틀림으로 인해 히나코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며, 그 결과로 히나코는 여러 피해를 입었습니다:
A.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회칼 등 물건을 집어던진 시미즈 씨
-> 그 결과, 히나코는 가정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얻었음
B. 히나코에게 반해 매매혼을 추진한 고토유키
-> 그 결과, 히나코는 트라우마로 괴로워했음
C. 슈에게 반해 히나코에게 싸가지없는 행동을 한 린코
-> 그 결과, 히나코는 마음의 상처를 얻었음
D. 히나코에 대한 의존심이 너무 커서 그녀를 속박하려 한 사쿠코
-> 그 결과, 히나코는 놀랐음
보시면, 배경적인 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의 뒤틀림과 잘못된 행동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소소하고 일반적인 문제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물건이나 회칼등을 집어던지곤 하던 시미즈 씨인데, 그래도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가정폭력 양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시미즈 씨의 행동이 잘한 일이다(혹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막 엄청난 범죄나 "오 하느님,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하면서 경악을 금치못할 끔찍한 일까지는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칼이라는 점이 무서운 거지, 폭력적인 부모가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진 경험이야 주변의 누군가 중 한두명쯤은 겪었을 법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뒤틀림과 잘못된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옥의 약사' 이와이 슈가 한 행동이죠:
E) 히나코에게 반해 그녀를 파혼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ㅁㅇ을 먹인 슈
-> 그 결과, 히나코는 결혼식장에서 쇠파이프와 식칼을 휘둘러 10여명을 때려눕히고 한 명을 살해했음
...톤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다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도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슈의 행동은 그 급이 너무 달라서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여자애한테 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ㅁㅇ을 먹인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인가요? 아뇨, 그런 행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보통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미치광이', 줄여서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현실의 일본에서 사이코패스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온갖 뉴스에 대서특필될만한 특종감이고, 현대로 치자면 레딧을 포함한 수많은 커뮤니티에서도 며칠간 엄청난 화젯거리가 되었을 법한 일이죠. 그러니까, 일반적이지가 않습니다.
< 선은 넘을수록 흐릿해집니다: 그의 발 밑에 있는 선이 보이나요? >
문제는 이 사이코패스의 행동이 게임 내에서는 그리 무게감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자애에게 ㅁㅇ을 먹인 슈의 행동과, 질투 때문에 싸가지없는 행동을 한 린코의 행동이 같은 선에서 다뤄지고 있으니까요. 슈의 행동이 '엄청난 악행'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슈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거나, 그 행동의 댓가를 치르거나, 단죄받지도 않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전체 스토리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완전히 망가뜨려버려요. 특히, 여우의 혼례식 엔딩에서.
자, 그럼 이제부터 이 사이코패스 ㅁㅇ사범의 행동과, 그 행동이 게임 내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하나씩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사이코패스의 행동
(1) ㅁㅇ 투여
슈의 행동 중, 먼저 ㅁㅇ 투여부터 살펴보죠. 편의상 ㅁ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슈가 히나코에게 먹인 것은 ㅁㅇ이 아닙니다. 집 텃밭에서 가꾼, 슈 자신도 뭔지 모르는 풀뿌리에서 추출한 향정신성 성분이죠. 슈는 그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환각 성분을 지닌 풀뿌리'를 직접 먹어보기도 했고, 히나코에게 몇년간 꾸준히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정신나간 행동인데, 환각 성분 그 자체의 독성도 검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환각 성분 이외의 독성 또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환각 성분은 기본적으로 신경계를 교란하는 물질이므로 그 자체로 독입니다. 마취제로 많이 쓰이는 양귀비(모르핀), 코카잎(코카인) 등은, ㅁㅇ이라는 점을 완전히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투여량을 조금만 착각해도 순식간에 사망하는 강력한 독이에요. 동양에서 한방약에 들어가는 성분이자, 동물 마취제로 쓰이는 히오시아민이나 스코플라민 같은 경우는 실제로 독화살 재료로도 쓰였어요. 여러 가지과 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성분이자, VX가스의 해독제로도 쓰이는 아트로핀의 경우 과용하면 신경계가 굳어져 사망하게 되는 끔찍한 독입니다.
수천년간 검증된 성분들조차도 그런데, 슈가 사용한 성분은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풀뿌리에 함유된 성분, 즉 정확한 용법도, 용량도 모르는 환각 성분이잖아요. 그걸 대뜸 자기 몸에 경구투여하는 행위는 치킨 레이스나 러시안 룰렛에 비견될 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행위입니다. 심지어 슈는 그걸 자기만 먹은 것도 아니고, 남에게도 먹였어요. 몇년간,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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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그 '환각 성분'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위에 말한 아트로핀 성분을 함유한 가지과 식물 중 식용으로 쓰이는 가지, 토마토, 감자 등등은 일반적으로 가지독, 솔라닌이라는 성분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건 독살녀의 대명사인 벨라돈나의 독성분인데, 벨라돈나 기준으로 블루베리만한 거 세 알만 먹으면 치사량이에요. 즉, 환각 성분 자체의 위험성을 제외하더라도 따로 독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성분을 같이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사실, 그 가능성이 매우 높죠. 애초에 식물이 환각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이유 자체가 자기를 뜯어먹으려는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니까요. 그러니까 걔네 입장에선 독이나 환각 성분이나 똑같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생물을 공격하는 수단인 겁니다. 식물은 뜯어먹히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애초에 왜 '식용 식물'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겠어요.
거기다 그 자체로는 독성이 없더라도, 특정 방식으로 가공할 경우/가공하지 않을 경우 독으로 변하거나, 다른 성분과 함께 섭취할 경우 독으로 변하거나, 부패가 쉽게 일어나거나 하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독으로 작용하는 성분' 역시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런 거 함부로 먹다가 간부전, 신부전, 장폐색 등으로 불구가 되거나, 그대로 사망하는 일은 정말로 드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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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악질적인 것은, 슈는 약사 할머니 밑에서 공부중이던 견습 약사라는 점입니다. 그는 약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그 지식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짓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예 모르고 저지른 것도 아니고, 알고 저지른거에요. 그러니까, 견습 약사가, 여성 청소년을 성적 유인 및 정신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그 여성 청소년에게 뭔지도 모르는 식물의 뭔지도 모르는 ㅁㅇ성 성분을 장기간 투여한 상황입니다. 두통약이라고 속여서요.
심지어 슈가 히나코에게 두통약으로 속이는 방식조차 소름끼칩니다. 그는 그 ㅁㅇ이 마치 '진짜 약'처럼 보이도록 캡슐로 포장해서, 그 캡슐을 시판 감기약의 포장에 담아 히나코에게 건넸어요. 그 '약'이 히나코의 두통약이라고 말하면서.
< 감기약, 가정상비약이라고 써있지만, 내용물은 ㅁㅇ입니다. >
시판 감기약의 내용물을 빼내고 ㅁㅇ을 채워넣어 히나코에게 건넨 순간, 슈는 일본의 형사법, 약사법, ㅁㅇ법, 의약품관리법, 제품표시법, 소비자보호법을 동시에 위반했습니다. 심지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은 독극물이니까, 더해서 독물관리법도 위반한거죠. 말 그대로, 그는 지옥의 약사입니다. 그의 할머니는 거리낌없이 무허가 성분(아마도 ㅁㅇ)을 처방하는 죽음의 약사니까, 어떻게 보면 개연성이 맞아 떨어지기도 하는군요. 맨슨 패밀리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게 정설이죠.
사실, "괴물은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는 정신의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화두입니다. 하지만 슈의 경우에 한해, 그 화두는 큰 의미가 없죠, 그는 ㅁㅇ을 뿌리고 다니는 ㅁㅇ사범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정통 후계자입니다. 심지어 그를 상징하는 문양마저 대마초에요. 그러니까 그는 애초에 ㅁㅇ사범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할머니는 그래도 좋은 뜻에서 ㅁㅇ을 뿌리고 다닌 반면, 그는 여성 청소년을 유인약취하여 조종하기 위해 ㅁㅇ보다 심각하게 위험한 향정신성 성분을 장기간 투여했어요. 시판 약의 포장으로 바꿔치기한 다음, 두통약이라고 속여서 말이죠. 그러니까, 그는 가문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만들어진 괴물이기도 해요. 하느님 맙소사, 저는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 악마의 가문에서 태어난 끔찍한 변종 괴물같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있기는 할까요?
< 게임에서 슈를 상징하는 문양: 대마초 >
여담으로, 식용 식물도 자기방위를 위한 기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방법이나 형태가 비식용 식물과 다를 뿐이죠. 높은 곳에 매달려서 먹기 힘들게 한다거나, 가시를 세운다거나, 단단한 껍질로 둘러싼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혹은 필요없는 부분은 천적이 먹게 내버려두고, 필요한 부분은 먹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식물 입장에서 필요없는 부분(=사람이 먹는 부분)'에 독이 없으면 식용식물이 되는거에요.
예컨대, 사과 씨앗이나 복숭아 씨앗을 반으로 자르면 흘러나오는 회백색 점액질인 아미그달린을 봅시다. 이 물질은 대사되면 시안화수소와 벤젠 알데히드라는 독성분으로 분해되는데, 따라서 실제로 냄새를 맡아보면 아몬드 비슷한 불쾌한 냄새, 화공학 약품같은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짐승이나 어린애들도 안먹고 바로 뱉어버리죠. 냄새가 이상하니까. 실제로 시안화수소와 칼륨이 결합하면 시안화칼륨(청산가리)가 되는데 이것은 치사량 1.5mg, 손끝에 찍어서 맛만 봐도 사망할 수 있는 맹독이거든요. 시안화수소와 시안화칼륨은 다른 물질이긴 하지만, 어차피 시안화칼륨의 독성도 대사과정에서 시안화수소가 분리되어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저지를 때 사용한 독가스의 주성분도 시안화수소였어요. 덧붙여, 위에서 이야기한 가지독, 솔라닌은 가지과 식물인 감자와 토마토의 먹는 부분에는 거의 없지만, 감자 싹과 토마토 줄기에는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감자싹의 경우 1kg, 토마토 줄기는 세 단만 먹어도 치사량이에요.
인간이 오랫동안 식용으로 사용하고 꾸준히 개량해온, 누구나 잘 아는 식용 식물들조차 이렇습니다. 그래서 아예 뭔지도 모르는 식물을 대뜸 먹어보거나, 남에게 장기간 먹였던 슈가 완전한 미치광이인 것입니다. 작중에서는 그 결과로 히나코가 살인마가 되어버렸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얻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어요. 어느 쪽이든, 끔찍한 비극이죠.
(2) 특수폭행
사실, 위 부분은 읽으시면서 '좀 지나치게 과장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내에서 슈는 꽤 호감형 인물로 비춰지니까요. 히나코를 향한 짝사랑을 불태우는, 아직 미숙하고 혈기가 넘치기 때문에 때로는 금기를 범하거나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 청년으로 말이죠. 그러므로 "슈가 뜻은 좋았는데, 방법이 좀 잘못된거지. 그걸 잘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막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도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고요.
물론, 해석은 각자의 자유이고, 저는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에게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슈가 한 행동 중에는 ㅁㅇ 투여 이외에도 중대한 범죄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군요. 슈는 여우의 혼례식 엔딩에서, 히나코의 언니인 준코를 제압한 후 고토유키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 패죽이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고토유키가 쓰러지자 확인사살하려고 했어요. 네, 그 유명한 전쟁범죄인 확인사살 말이죠.
그 과정을 정확히 말하자면, 먼저 슈가 히나코를 보살피는 고토유키에게 몰래 접근한 다음, 그의 뒤통수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 제압합니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거 한방에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아래 사진을 보면 마지막 순간 고토유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는데,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만약 고토유키가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면 저 야구방망이는 그의 연수에 명중하는 궤도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연수에서 약간 빗나간 부위에 맞았더라도 충격파와 부서진 뼛조각이 연수를 박살낼 가능성도 충분하고.
연수가 파괴된 인간은 그 즉시 호흡, 심장 박동, 혈압 조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며, 연수 파괴 시점에서 대략 10초 내로 심장이 정지합니다. 연수가 파괴된 인간을 치료하거나 연명시킬 방법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다행히, 연수가 파괴되는 즉시 의식이 소실되므로 고통은 없습니다. 이후에 팔다리가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경련하거나, 손발이 쥐어짜듯 오그라들거나, 얼굴 근육이 급격하게 뒤틀릴 수는 있지만, 그건 척수반사에 의한 것이고 실제로 당사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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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야구방망이가 연수가 아닌 다른 부위에 맞았다면 괜찮았을까요? 인간의 머리 안에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뼈가 있고, 실제로 두개골은 평균 50줄 내외의 상당히 큰 충격도 버틸 수 있습니다. 평균적인 두개골 골절의 임계 충격에너지는 35줄~70줄 언저리지만, 경우에 따라서 100줄 내외의 큰 충격을 버텨낸 기록도 많아요. 100줄이면 당구공을 시속 100km 속도로 던져서 맞춘 정도의 충격량입니다. 그 정도 충격량을 버틸 수 있으니, 두개골이 단단하긴 엄청 단단한거죠, 다만 위의 이야기는 운이 아주 좋을 경우에 한해 치명상만 입고 두개골은 부서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당구공 던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확실하게 두개골에 골절을 입힐 정도의 충격량은 그 두 배인 200줄인데, 이건 10kg짜리 덤벨을 2m높이에서 낙하시켰을 때 발생하는 충격량입니다. 천장에서 떨어진 10kg짜리 덤벨을 맞은 두개골이 멀쩡하길 바란다면 양심이 없는 거죠.
그리고, 작중 슈의 행동처럼 아마추어 성인 남성이 나무 배트를 풀스윙으로 휘둘렀을 때 발생하는 충격량은 대략 300~500줄 내외입니다. 심지어 슈는 약 5걸음 이상 전력으로 도움닫기해서 배트를 휘둘렀으므로, 제자리에서 휘두르는 것에 비해 충격량이 더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앞선 예시들을 보셨으니 바로 알아채셨겠지만, 두개골을 가볍게 박살낼 수 있는 충격량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글록 17에 들어가는 9mm 패러블럼 탄의 충격량이 480줄입니다. 그걸 뒤통수에 맞은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슈의 첫 공격을 맞았을 경우 고토유키가 생존할 가능성이 딱 그만큼이었어요. 앞서 말했듯, 다행히 고토유키가 고개를 돌렸기 때문에 야구방망이의 궤도가 틀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야구방망이가 그의 어깨 뒤쪽을 스치며 가면부위에 빗겨맞았은 덕분에 살아남았을 뿐이죠. 그야말로 파워볼 당첨급의 천운이 함께한 것입니다.
< 사람의 뒤통수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거나, 쓰러진 사람의 얼굴에 야구방망이를 내려찍는 행동, 당신이라면 가능한가요? >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 직후 이어지는 슈의 추가타, 확인사살입니다. 슈의 첫 공격에 고토유키는 정신을 잃고 하늘을 올려보는 자세로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슈는 그의 머리맡에 서서 야구방망이를 높게 들어올렸다가 장작을 패듯이 내려찍으려 했어요. 이 경우 휘두르는 궤도에 비해 운동에너지는 크게 줄어들어 대략 150~250줄 내외가 되지만, 대신 그 충격이 맞는 부위에 완전히 집중되므로 훨씬 위험합니다.
수평으로 휘둘러 목표를 맞출 경우, 운동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대상을 밀어내는 힘으로 분산되요. 야구공이 배트에 맞아서 날아가는 이유가 그거죠. 날아간 거리만큼 충격량이 줄어든 겁니다. 하지만 수직으로 내려찍어 목표를 맞출 경우, 목표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는 힘으로 분산되는 운동에너지가 거의 없고, 결국 그 운동에너지는 전부 파괴, 압착, 균열에 쓰이는 변형에너지로 작용합니다. 거기다 작용-반작용 법칙에 의해 바닥에서 올라오는 반탄력도 야구방망이의 충격량에 합쳐져 피해를 증폭시키죠. 결국 충격력은 수직으로 내려찍는 쪽이 몇 배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공격이 실제로 내려꽂혔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고토유키의 얼굴 부분이 함몰되면서 머릿속으로 찌그러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나 피부, 코뼈 같은 연조직이 압력 때문에 그대로 터져서 사방으로 튀어나간 직후, 남아있는 얼굴뼈가 박살나면서 뇌까지 뚫고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죠. 그 경우, 고토유키는 당연히 즉사했을 거고 치료는 커녕 시체 수습조차 어려웠을 겁니다. 예후가 아주 좋았어도 카무가라 같은 꼴이 되었을 테니까. 천만다행으로, 저 공격이 내려찍히기 직전 히나코가 자신의 몸으로 고토유키를 덮어 지켜내면서 사태가 일단락되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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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히나코의 눈부신 파인 플레이 덕에 고토유키가 살아남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의 잘못이 사라지나요? 슈의 첫 번째 공격은 명백한 살의를 품고 있었고, 두 번째 공격은 완벽한 확인사살이었습니다. 그 확인사살을 히나코가 막아냈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사람에게 총을 쐈을 경우, 그 총알이 빗나가거나 총알을 맞은 부위가 나중에 치료된다고 해도 총을 쏜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전 무리라고 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부모님의 원수한테도 저런 행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군요. 애초에 사람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은데, 그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내려찍어 죽이려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 미치광이는 인류 전체로 따져도 아주 극소수에 불과할겁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꼭, 절대로 유념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고토유키는 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고토유키는 슈에게 별 관심이 없었어요. 히나코가 슈에 대한 미련을 끊을 때 말고는 아예 언급조차 없고, 심지어 그 미련을 끊는 과정도 린코와 사쿠코를 포함한 '친구들 전반'을 아울러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잠깐 같이 놀았던 것 말고는 따로 둘 사이에 접점이 있다는 묘사도 없고.
그러니까, 슈는 고토유키에게 따로 원한이 있어서 그를 살해하려 했거나, 감정싸움이나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에요. 그는, 단지 고토유키가 히나코와 결혼하려 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려 한 것입니다. 잔혹하게도 말이죠.
4. 사이코패스의 가치관
사실, 어떤 사람이 '소꿉친구를 유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ㅁㅇ을 먹였다'나 '야구방망이를 사람에게 휘둘렀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사이코패스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심각한 미치광이, 인면수심의 범죄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적 특성을 확실히 가졌다고는 할수가 없어요. 실제로 ㅁㅇ사범이나 폭력범이 전부 사이코패스인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와이 슈를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ㅁㅇ 문제 이외에도 작중 슈가 보여주는 여러 행동이 사이코패스의 징후를 뚜렷하게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는 선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선은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주변 인간들과 엇비슷한 경향이 뚜렷하죠. 대부분의 인간은 주변의 인간들과 엇비슷한 사회문화 안에서 엇비슷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독특한 선을 가진 인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특히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선이 '아주' 독특한 인간들이죠.
흔히들 하는 오해와 달리,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명확한 하나의 질병이 아닙니다. 질병분류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고, 정신병으로 분류되지도 않습니다. 범위를 아주 넓게 잡아서, 예전에 사이코패스라는 병명으로 분류되었던 코드 F60.2가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변경되면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아우르고 있어요. 이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이들이 다른 '평범한' 이들과 극단적으로 다른 부분은 대표적으로 조종 성향, 반복적인 거짓말, 공격성, 무모함, 사회 규범 무시, 타인의 신뢰 악용 등이 있죠. 그리고 이것들은 작중 슈가 보여주는 특징들이기도 합니다.
자. 하나씩 자세히 따져보죠.
(1) 사회 규범 무시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
-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 죄와 벌
애초에 이름에 '반사회적'이 들어가는 만큼,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법, 도덕, 윤리, 상식을 포함한 여러 사회 규범을 지속적으로 위반하거나,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인면수심의 범죄자를 부를 때 '미치광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것은 슈가 보여주는 뚜렷한 성격적 특성 중 하나입니다.
-> 여성 청소년을 유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ㅁㅇ을 먹이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사회 규범을 무시하는 행위 목록'의 제일 윗칸에 적혀있습니다. 많은 경우 누군가가 여성을 유혹할 목적으로 ㅁㅇ을 먹였다면, 그것은 그 여성을 심신미약 상태에 빠뜨려 성관계를 하기 위한 단기적이고 단발적인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그게 잘하는 짓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경우 ㅁㅇ 투여가 대체로 단발성 투여로 그치고, 투여하는 쪽도 일부러 여성을 중증 중독자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는 단발성 성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히나코의 마음을 영원히 조종하기 위해 ㅁㅇ을 먹인 것이고, 최소 연단위 이상의 ㅁㅇ 투여를 지속했습니다. 여성 청소년에게 장기간 ㅁㅇ을 투여하여 정신을 조종한다. 그야말로 마피아나 야쿠자가 할 법한 '반사회적인' 행동이죠.
(2) 반복적인 거짓말
"인간이란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존재요. 하지만 끝내 그 거짓에서 도망칠 수는 없지."
- 포르피리 페트로비치, 죄와 벌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도덕심, 죄책감, 후회의 부재입니다. 이는 반복적인 기만행위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특정 목적을 위해서, 쾌락을 위해서, 혹은 '그냥'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아요.
> 슈는 게임 내에서 심각한 거짓말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A: "나는 파트너(히나코)를 여자로 보지 않아!": 게임 내에서 슈는 이 말을 거의 열 번 가까이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거짓말과 달리 히나코를 여자로 보고 있었습니다.
B: "나는 파트너의 선택을 존중해!": 슈는 맨 처음 등장 장면부터 이 말을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거짓말과 달리 히나코의 선택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고, 그녀의 정신을 조종해 그 선택을 되돌릴 목적으로 그녀에게 ㅁㅇ을 먹였습니다.
C: "이 약은 두통약이야!": ㅁㅇ이었습니다.
D: "파트너는 내가 지키겠어!": 그 파트너에게 위험성 검증도 되지 않은 ㅁㅇ을 먹였어요. 장기간.
E: "히나코는 내 것이다!": 아닙니다.
(3) 공격성
성격장애가 대체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충동성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반사회석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라, 특정 상황에서는 매우 잔혹하고 치명적인 공격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 이 게임에서 슈가 공격하는 대상은 크게 두 명, 히나코와 고토유키입니다. 히나코에게 ㅁㅇ을 먹여 조종하려 하는 것도 물론 굉장히 잔혹한 공격이죠. 장기간 ㅁㅇ을 먹이는 그 방식은 언뜻 보기에 충동성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공격'을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거지, '공격 방식'은 계획적으로 구상하거나 실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예 정교한 범죄 계획을 구상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슈의 고토유키에 대한 공격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슈는 야구방망이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죠.
(4) 조종 성향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조종 성향입니다.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욕구와 버릇인데,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들이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 거짓말, 위협, 조종, 약물 투여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일반적입니다. 이제는 좀 식상해진 가스라이팅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식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잖아요.
> 슈는 히나코를 조종해서, 그녀가 고토유키와의 결혼을 파혼하고 자신과 연인이 되도록 만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 설득하기, 히나코의 물건 뒤져보기, 속여서 ㅁㅇ 먹이기 등의 방법을 사용했죠. 현대로 치자면, 소꿉친구를 유혹하기 위해 그녀의 휴대폰을 몰래 훔쳐서 그녀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뒤져본 거나 다름없는 행동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글쎄요, 음...사이코 스토커?
(5) 무모함
앞서 이야기했듯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충동성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등한시하는 무모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 무모함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가 없는 것도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죠.
> 앞서 짚었듯, 슈는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ㅁㅇ성 성분을 직접 먹어서 실험해보기도 했고, 히나코에게 장기간 투여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실험이나 패치 테스트같은 아주 최소한의 안정성 검증도 없이 말이죠. 저는 일본 청소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이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 또 뭐가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군요.
(7) 타인의 신뢰 악용
위에서 언급한 가스라이팅도 그렇고,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애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직장 관계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죠.
> 히나코는 슈를 믿었고, 그에게 고토유키 문제를 상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슈가 뭘 했죠? 그녀의 방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악용해 그녀의 개인적인 편지를 뒤져보거나, 그녀의 믿음을 악용해 두통약이라 속인 ㅁㅇ을 먹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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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보신 것처럼 작중 슈의 행동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묘사한 교본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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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슈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사이코패스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가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의학적으로 진단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더불어 슈의 동기는 사랑이나 분노 같은 감정적인 것이고, 슈 자신도 냉정하거나 계산적인 성향이 두드러지지는 않기 때문에, 게임상에 비치는 모습으로 엄밀히 분류하자면 사이코패스보다 소시오패스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칼럼에서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병명으로서의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명확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미치광이'라는 사회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로 슈를 사이코패스라 부르고 있습니다.
5. 사이코패스의 면죄부
"신 앞에 첨회하세요. 그럼으로써 모든 게 시작되니까."
-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벨라도바 "소냐", 죄와 벌
앞선 챕터에서 누누이 밝혔듯, 슈의 행동은 현실의 정상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행동들을 엄청난 악행으로 다루고 있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슈의 ㅁㅇ 투여에 대해서는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히나코를 너무 사랑하다보니 실수한 것도 있고, 어쨌든 히나코가 그 약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두통이 줄었기도 하고..."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거세게 비판하는 것도 그 부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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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결말, 네 개의 엔딩에서 슈의 ㅁㅇ투여가 다루어지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자업자득 엔딩:
슈의 ㅁㅇ투여로 인해 히나코는 결혼식장에서 쇠파이프와 식칼을 휘두르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대략 10여명의 사람에게 상해를 입혀 쓰러뜨렸고, 그중 한명을 현장에서 즉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 스토리에서 '슈의 ㅁㅇ투여'는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게임 엔딩 직전에 잠깐, 그리고 엔딩 스텝롤 올라가는 중간에 잠깐 '그 붉은 알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복선을 던질 뿐이에요.
B) 호유기미 엔딩:
아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C) 사일런트힐 엔딩:
아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D) 호유기미 엔딩:
슈가 "너한테 약이라고 속여서 먹였다, 체질에 따라선 굉장히 위험한 약이다. 네가 결혼을 거절하길 바래서 먹였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자신에 대해 경멸해 달라고 말하죠. 그 말을 들은 히나코는 "파트너를 경멸할수는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곧 보스전이 이어지고, 보스전에서 승리하면 고토유키가 다가와서 슈에게 "나와 너는 세상에서 가장 히나코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이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나?"같은 정신나간 소리를 하죠. 그리고 그 다음, 둘은 피스트 범프를 나누며 우정을 쌓습니다.
< 이 게임에서 가장 나쁜 장면 2위: 저 장면에서 대략 5분쯤 전, 오른쪽 남자는 뒤통수에 야구방망이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저러고 있는거죠. >
이 장면은 얼핏 보기에 그저 단순한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 스토리를 심각할 정도로 망가뜨려놓고 있습니다. 끔찍한 죄악이 저질러졌고, 그 피해자가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사건의 가해자가 단죄받지도, 뉘우치지도, 용서받지도 않기 때문에 사건의 마무리가 이상해져요. 마치 어린애 둘이서 감정싸움을 했다가 다음날 화해하는 것 같은 식이 되어버립니다.
고토유키의 입장에서 보자면, 슈는 끔찍한 악당입니다. 어릴적 고토유키를 구해준 영웅이자, 그의 첫사랑이자, 최소 년단위의 기간동안 구애해서, 마침내 많은 것(주로 돈)을 희생한 끝에 결혼하게 된 그의 아내, 히나코에게 ㅁㅇ을 투여한 악당이죠. 심지어 슈가 그 ㅁㅇ을 투여한 이유는 그녀와 고토유키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저 장면의 대략 5분쯤 전, 슈는 고토유키의 결혼식에 잠입해서 그의 뒤통수를 야구방망이로 후려갈겼고, 쓰러진 그의 머리를 내려찍어 죽이려 했죠. 히나코가 막아주지 않았으면 고토유키는 그대로 살해당했어요.
그런 사람과 피스트 범프를 나누며 우정을 쌓는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요? 일반적으로는, 슈가 먼저 진심으로 뉘우치고 머리를 박으면서 백배사죄하더라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데 심지어 슈는 저 장면에서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히나코는 자기의 것이라고 강짜를 부리고 있어요. 결국 슈의 ㅁㅇ 투여 문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여우의 혼례식 엔딩서조차, 최종적으로는 '슈가 히나코를 좋아해서 저지른 실수' 정도로 마무리됩니다. 이게 대체 뭔가요? 마치 50대 남성이 "좋아하면 좀 그럴수도 있지."라면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자기합리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목적은 수단을 상당 부분 정당화한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면죄부는 3번 칼럼에서 자세히 다룬 주제니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굳이 또 다루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만, 그래도 그 테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다시 말할 수밖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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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한술 더 떠서, 피해자가 슈를 두둔함으로써 슈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끔찍한 죄악의 직접적인 피해자, 히나코와 고토유키가 상관없어하니까 괜찮지 않냐는 식으로. 실제로 히나코는 슈가 자신을 유인약취하기 위해 ㅁㅇ을 먹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경멸하지 않아!"같은 소리를 하고 있고, 고토유키는 자기 아내한테 ㅁㅇ을 먹이고 자신에게는 야구빠따를 휘두른 범죄자에게 "우린 좋은 친구가 될수 있겠군."같은 소리를 하고 있죠. 이사람들 제정신인가요?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히나코는 중증 ㅁㅇ중독자고, 고토유키는 조금 전 뒤통수에 야구빠따 풀스윙을 맞았으니 제정신일리가 없긴 하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결국 저 일견 훈훈해 보이는 광경 뒤편에서, 결국 사람에게 ㅁㅇ을 먹여 조종하려 했던 죄악이나 사람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내려찍어 터트리려고 했던 끔찍한 사이코패스에 대한 내용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려요.
특히 제게 떨떠름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슈가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기획된 캐릭터같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의도적으로 사이코패스로 기획된 캐릭터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사이코페시적인 부분을 부각하는 연출이 있어야 할텐데, 이 게임에는 그런 부분이 없어요. 슈는 어디까지나 '짝사랑 때문에 작은 실수를 저지른 미숙한 소년' 정도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굉장히 떨떠름해요. 이전 3번 칼럼에서도 이야기했듯, 이 게임의 스토리를 쓴 사람의 도덕관이나 윤리관이 상당히 심각하게 고장나있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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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이코패스의 성차별
앞선 챕터에서 언급한 피스트 범프 장면에서 슈와 고토유키가 나누는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이 이야기의 기저에 짙게 깔린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알 수 있습니다.
< 슈와 고토유키의 대화 >
- 슈: "'나의' 히나코를 불행하게 한다면, 100방 먹여주겠어!"
- 고토유키: "히나코는! '내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너의 것'이 아니야!"
- 슈: "아니! 내 파트너니까 '내 거'야! 잠깐 '빌려줬을 뿐'이야!"
참고로 저 대화는 히나코의 코앞에서 벌어지는데, 저 이야기를 들은 히나코는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거 아냐."라고 뻘쭘하게 이야기하지만, 슈와 고토유키는 한마음 한뜻으로 히나코의 반론을 무시해버립니다. 둘 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아요. 히나코도 물건 취급 당한 것에 진지하게 분노하거나, 둘을 제재하려 하지 않고.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남자 둘의 바보짓에 여자애가 태클을 거는 개그 장면, 마치 훈훈한 청춘드라마의 감동적인 화해 장면처럼 연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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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게임, 사일런트힐F의 F가 페미니즘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 게임이 페미니스트를 위한 게임이고, 여성의 아픔을 대변하는 게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저 장면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 사람들은 과연, 두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물건 취급하면서 내거니 니거니, 빌려주니 마니 하고 있는 모습을 '훈훈한 청춘드라마'처럼 연출하는 저 장면을 기쁜 마음으로 봤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처럼, 이 게임은 표면상으로는 성차별, 여성의 고통, 시대상에 대해 다루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내용을 조금만 깊게 들이파보면 성차별에도, 여성 인권에도, 페미니즘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마치 50대쯤 되는 구시대 남성이 "나는 마음이 젊은 '성평등한' 사람이야!"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설교하는 듯한 내용만 잔뜩 있으니까요. 물론, 현실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이 게임의 내용은 별로 성평등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온갖 성차별적 시각과 내용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습니다. 백설공주의 왕비마냥 남편에게 걸레빤 물을 먹이는 키미에 여사, 질투에 미쳐 싸가지없이 행동하는 린코, 친구에게 의존해 혼자서는 훌쩍거리기만 하는 사쿠코, 물건처럼 다뤄지는 여자들 등등.
덧붙여, 이 게임의 성차별적 시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UFO 엔딩입니다. 여자아이의 브래지어나 팬티에 대한 이야기를 길바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고 있어요. 심지어 거기서 여자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은 리코더입니다. 그 리코더라는 것은 일본 문화에서도 약간 저변에 깔린 소재인데,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리코더를 몰래 훔쳐서 그 리코더에 묻어있는 여자아이의 침을 맛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에서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리코더를 훔쳤다는 식으로 비틀긴 했지만.
거기다 대놓고 마스터베이션을 은유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딥페이크를 이야기하기도 하죠. 이 게임은 그런 여러 행동을 마치 '젊은이들의 귀여운 소동극' 정도로 훈훈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여자아이의 치마를 강제로 들춰 팬티를 노출시키는 행동을 '짖궂지만 귀여운 장난' 정도로 인식하던 구시대적 시각 그 자체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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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게임에는 '죄'는 있지만 '벌'이 없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엉망진창입니다. 꼭 저처럼 하나하나 풀어서 정리하거나 생각하지 않더라도, 피스트 범프 장면을 보면서 허탈함이나 불합리함을 느끼신 분들이 많을 텐데, 그 이유가 바로 사라진 벌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만, 현실의 사람을 욕하는 글이 되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말이 쓰일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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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위의 해석은 '완전한 정답'이나 '유일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작진들은 이 게임의 스토리가 여러 방식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고 이미 밝혔어요. 그래서 게임의 수많은 요소들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도록' 굉장히 애매하게 짜여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제가 해석한 것들은 그 애매한 것들 중 제가 마음에 드는 몇 가지를 골라내어 짜맞춘 결과물일 뿐, 정답이 아니에요. 말투도 굉장히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매번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를 붙이자니 글이 너무 난잡해져서 잘라낸 거고요.
그러니, 위 해석 또한 읽으시는 분 각자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재미로 읽어볼만한 여러 생각 중 하나로 여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한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고, 각자가 내린 결론이 진실입니다. 제 생각에, 스토리 짠 사람 포함해서 제작진 대부분(혹은 전부)도 하나의 완벽한 정답 같은건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의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못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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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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