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TLIGHT PROGRAM, 4월 5일 04:00 업데이트
※ 1~10구간, 첫 주는 50포인트까지
※ 모먼츠 7개, 24포인트
● 1~4, 타자(홈런)
● 5~7
※ 드롭 1-PXP 미션 3개, 20포인트
● 1, 1,000PXP
● 2~3, 타자(350) 투수(500)
※ 스탯 미션 4개, 20포인트
● 1~4
주 포지션 2루수, 50루타
선발투수, 25삼진
오리올스 타자, 15장타
※ 선택사항, 팩으로 등장한 카드 컬렉션, 50포인트
※ 4월과 레트로 라이트닝 카드 컬렉션(미완성)
※ 컬렉션에 스포트라이트 시리즈도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4월 프로그램은 앞으로 4주 더 진행되고 월간은 5월 6일인가 7일에 나온다고 합니다.
※ 선택사항, 익스트림 모먼츠, 26포인트
이 사람들아 이런 건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할게, 왜 조건에 초구도 넣지 그랬어...
※ 프로그램 구간 보상 3장
● 86 캐머런 마이즈너
하이라이트로 봤는데 빨랫줄 타구였죠. (그나저나 보는 입장인데도 구장이 적응이 안 되네요)
● 86 맥켄지 고어
● 88 조던 웨스트버그
※ 팩으로 등장 5인
● 86 그리핀 코나인
● 86 오스틴 웰스
● 86 작은 먼시
● 88 토미 에드먼
● 88 닉 피베타
※ LAST RIDE PROGRAM, 4월 5일 04:00 업데이트
※ 1~10구간, 50포인트
은퇴 시즌의 나이가 39살이었지만 커리어 첫 20승을 거둔 투수가 은퇴하는 것이 아쉬웠던 기억입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이 더 까다로운 시기라 270승에서 멈추는 것이 더 아쉽기도 했던 기억인데, 그런 걸 박수 칠 때 떠나는 것이라 하는 건가요? (하지만 이 말이 생각나네요. 이경규 형님 가라사대 박수 칠 때 왜 떠나, 계속해먹어야지...)
※ 마이크 무시나
● 모먼츠 1~3
● 양키스 카드로 10이닝
● 시리즈 카드 500PXP
※ 데이비드 오티즈
● 모먼츠 1~3
● 레드삭스 카드로 15안타
● 시리즈 카드 500PXP
● 87 마이크 무시나
카드의 피칭 모습은 언뜻 '잭 그레인키'모습도 보이는 것 같네요.
'무스' 흥미롭기도 하고 좋은 선수라 생각나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텍사스 시절보다 KBO 시절이 더 기억되는 '더스틴 니퍼트'의 고향 동네 인구가 100명을 살짝 넘었는지 미만이었는 지로 기억 하는데 무시나의 고향은 그 정도로 적은 인구는 아니었지만 6천 명이 안 되는 동네였다고 해요. (펜실베이니아주 어디였는데...)
데뷔하던 1991년만 해도 고향 동네에는 가로등이 4개뿐이었답니다.
동네 번화가의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리면 5분이면 도착하고 신호에 안 걸리면 3분이면 도착할 정도의 규모였다고 인터뷰하면서 웃던 무스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핸섬 외모에 명석한 두뇌 거기에 백인이고 집안 환경도 좋았던 전형적인 중산층+의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변호사였고 전업주부가 되기 전까지 어머니의 직업은 간호사였습니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볼티모어 11라운드 지명) 프로계약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본인 말에 의하면 가풍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대학을 다닐 수 있는데, 마이너 리그에서 버스 타고 이동하며 형편없는 호텔에서 잠을 자며 3~4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똑같은 야구도 하면서 대학 생활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고 하죠.
그래서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데 고등학교 시절 워낙 빼어난 실력으로 펜실베이니아주 올해의 야구 선수로 2번이나 선정될 정도의 선수였기에 여러 대학의 제의를 받았는데 고심하던 텍사스 공과대학, 조지아 공과대학 등의 제의를 거절하고 스탠퍼드를 선택합니다. (스탠퍼드를 최종 선택한 이유는 야구장 시설과 캘리포니아의 환상적인 날씨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무렵 볼티모어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컵스와 다저스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백만장자 집은 아니어도 돈이 궁한 집은 아니었잖아요. 야구사에 아주 유명한 '월터 오말리'(뉴욕 연고지를 떠나 당시 야구 불모지인 서부 개척과 재키 로빈슨 데뷔)의 아들 '피터 오말리'다저스 구단주는 메이저리그 직행을 약속하기도 했고, 컵스도 구애를 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대학 생활을 보장하고 싶어서였는지 진짜로 질러본 것인지 계약금 25만 달러 아래는 일부러 듣는 척도 안 했다고 하죠.
이 금액이 왜 중요하냐 하면 무시나를 지명했던 볼티모어도 지명은 했지만 선수의 스탠퍼드 입학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금액 오퍼도 넣지 않았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1987년 1라운드 전체 1번 지명 선수는 시애틀이 지명한 훗날 위대한 선수 반열에 오르는 '켄 그리피 주니어'였는데 계약금이 16만인가 19만 달러였고 보너스 금액까지 합쳐도 20만 달러가 안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무시나 아버지의 25만 달러 미만은 계약하지도 않겠다는 말은 아버지가 아들을 대학에 꼭 입학시키려는 마음에서 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피터 오말리' 구단주는 아버지 '월터 오말리'처럼 파격적인 제안이나 시장 개척을 잘하던 선구자였는데 무시나에게 메이저리그 직행을 약속했던 것처럼 몇 년 지나서는 대런 드라이포트(16번째)와 99년 박찬호 아니 그냥 박찬호(17번째) 선수를 바로 데뷔시키기도 했죠.
재미있는 것이 1990년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1라운드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에서 1990년 7월에 데뷔 경기를 치렀는데, 시즌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가고 대학도 3년 반 만에 졸업합니다.
경제학도 무시나의 대학 졸업 논문 주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계약을 맺는 것과 대학 졸업 후 계약을 맺는 것에 대한 경제학적인 접근에 관한 걸로 기억하고요.
어디서는 마이크 무시나가 고등학교를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하는데 저는 4등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시나의 모교 전통이 전교 1~3등은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의도적으로 4등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읽은 기억이 나네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명 무스는 성인이 되고 외모나 성격으로 인해 선수 시절에 붙여진 것이 아니고 8살에 리틀야구팀에서부터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때 성(Mussina) 때문에 붙여졌다고 기억해요.
무시나(Mussina)의 음절(Meu See Na)이 동물 무스(Moo se)와 비슷해서 붙여졌다고 해요. (애들의 마음은 동서양 구분이 없죠)
● 88 데이비드 오티즈
※ 만우절 지나고 나온 찐 보상
● 85 리치 애시번
● 86 바이다 블루
● 86 조 모건
● 88 스탠 뮤지얼
※ 체이스 팩 4번
● 90 브라이언 레이놀즈
※ 컨퀘스트 '검'맵 업데이트
컨퀘스트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맵에 대한 8개의 보상 설명란에는 왕좌의 게임 표지에 나올듯한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아니면 보더랜드나 타이니 티나의 원더랜드 세계관도 좋아하는 진정한 게이머이자 프로그래머인지 그 게임에서 막 던지는 웃긴 대사 같은 느낌도 납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글 작성하고 사진 올리고 하는데 PC로 볼 때는 예전 그대로 보이는데 모바일로 보면 사진이나 글이 작성한 데로 보이지 않고 줄바꿈이 되던가 하는데 수정해 봐도 똑같고 이유를 모르겠네요. 보기 불편한 분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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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해설위원이 예전에 블로그 운영하실때 썼던 레전드 스토리 자주 찾아보곤 했는데 그때처럼 넘 재밌게 봤습니다. | 25.04.08 07: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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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 25.04.09 1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