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검은방부터 하우스홀드까지, 진승호 디렉터의 15년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시도했던 부분들과 반성했던 부분을 되짚어보며, 선택이라는 키워드가 본인의 개발 이력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봤다.
라인게임즈 라르고 스튜디오, 진승호 디렉터
강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간 자신이 걸어온 길은 오버그라운드에서 연달아 어드벤처 게임을 개발해 출시한 것. 이었고. 거칠게 요약하자면, ‘까짓거 한 번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멘붕과 우여곡절을 겪어온. 쉽지는 않았던 시간’이었다. 이러한 길을 겪으며 그가 담당한 게임은 직접적으로는 12개이며, 이 모두가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다. 디렉터와 시나리오를 담당한 스토리 위주 어드벤처는 8개에 이른다.
스스로를 글쓰는 사람(수일배)이자 게임을 만드는 사람(진승호)으로 규정하는 진승호 디렉터는 첫 타이틀인 ‘브이맨’으로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웅서기를 만든 핸즈온 모바일(엠포마 코리아, MFORMA)에 입사하여 200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브이맨은 출시까지 이어졌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진승호 디렉터는 영웅서기 제로의 마무리 작업에 투입되어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고 회상했다.
스토리텔링형 방탈출 게임이라는 컨셉에서 시작한 검은방은 그가 처음으로 완결까지 쓴 이야기이자. 트릭과 방 구조. 캐릭터 등 많은 것을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2008년 검은방이 국내 게임 시장에 출시됐다.
● 그 시작 - 검은방
검은방은 플래시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의 아쉬움에서 출발한 타이틀이다. 당시 플래시로 제작된 방탈출 게임이 많았으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었기에 캐릭터의 존재가 없고. 스토리나 퍼즐의 인과관계도 없거나 불명확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진승호 디렉터는 여기에 스토리를 붙이기 위해서, 영화 쏘우나 큐브를 참고하는 과정을 거쳤다. 치명적인 공간에 갇혀있는 여러 사람이 협력하거나 반목하면서 탈출하는 상황이라면, 스토리를 붙일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협력을 위한 부분에서는 이를 게임 플레이로 만들기 위해, 아이템 전달 시스템을 넣었다. 힘이 센 캐릭터에게 물건을 전달해서 사용하면. 해당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흐름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곧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행의 개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이야기의 전개와 인물의 개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상호작용은, 내러티브와 게임 플레이를 접목하는 예시와 같다.
이에 따라서 이야기 구조는 범인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첫 번째 이야기. 그리고 모든 인물이 한 가지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두 번째 이야기로 나뉘는 형태로 이어졌다. 회차마다 다른 시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볼륨을 늘리기 위한 선택지이기도 했지만, 살아서 탈출하겠다는 재도전 욕구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더불어, 범인의 추리는 선택지를 찍는 형태로 설계됐다. 이는 범인 찾기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추리물의 느낌만을 주기 위해서라는 기획 의도. 마지막으로 난이도를 낮춰 찍기를 해도 성공하고 선택에서 오는 쾌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기조들은 이후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며 시스템이 점차 고도화된다.
검은방은 4명 정도가 반 년 정도를 개발한 결과물이었으며, 20만 개에 가깝게 판매가 됐다. 기대와 예상을 뛰어 넘은 성공이었고. 자연스레 검은방의 속편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 그 이후 - 검은방 2에서 검은방 4까지
검은방 2는 이전 작품에서 기존 틀을 유지, 발전시키고. 스토리 관련 시스템을 강화하여 새 이야기를 해보자는 목표로 개발이 진행됐다. 따라서 기존의 룰과 아이템 전달 요소는 유지되었고 기기발전에 따른 해상도 확장과 이펙트가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야기 측면에서는 전작의 주인공과 탐정역 캐릭터를 재등장 시키는 한편,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진행에 따라서 루트가 바뀌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여기에는 진행을 다양하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특정한 스토리 기믹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스토리 기믹이란, 새 주인공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전개다. 이는 소설의 서술 트릭과 같이,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트릭으로 구성한 것이다. 기믹을 이용한 시스템 트릭은 이후 진승호 디렉터가 제작한 이후의 타이틀에서도 등장하게 된다. 검은방 2는 전작의 흥행을 경신했고 후속작 개발이 승인됨과 동시에, 개발 기간도 늘어나게 됐다.
새로이 추가된 ‘언쟁’ 시스템은 NPC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비위를 맞추거나. 강경하게 나가면서 위험한 동행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일반 대화와 보여주는 모습이 달랐고,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이 마찰이 생기는 지점을 예측하는 준비가 될 수 있었다.
검은방 3는 전작을 뛰어넘는 흥행을 거뒀고, 이전 작품의 내용이 궁금해진 플레이어들이 전작을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과를 만든 배경으로는 안정된 개발 환경과 숙련된 개발자들. 속편을 거듭하며 쌓인 이야기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진승호 디렉터는 ‘주인공 일행이 방에서 완전히 나온 다음은 어떨까?’라는 의문에서 몇 가지 상상을 하기 시작했으나, 회사의 분위기가 안좋아지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마주하게 됐다. 대규모 퇴사가 있었고 오랜 기간 일해온 팀원들의 이탈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성공의 배경 중 몇 가지가 초기화된 상태로 속편의 제작에 돌입하게 됐다.
개발의 마무리에서 여러 팀원이 퇴사하며, 출시 직전은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검은방 4는 세상에 나왔고.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 다음에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남겼다. 하지만, EA 모바일의 방침이 바뀌면서, 진승호 디렉터는 회사를 떠나, 정리된 팀원들과 다시 합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검은방을 안 만드는 나는 뭐지? 뭘 할 수 있지? 어떤 걸 해야되지?’와 같은 질문들이다.
● 회색도시 1과 2
물음 속에서 진승호 디렉터는 그간 해온 것들을 몽땅 모아서 만들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선택.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게임으로 표현하는 결정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구성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것이 스스로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진행한 것이었다. ‘방을 나온 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서울에서 실제 배경 로케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시기. 업계는 for kakao 타이틀로 재편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여기서 진승호 디렉터는 오리지널 IP로 증명르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점점 더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회사가 카카오 시대에 전력 투구를 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회색도시 1편은 for kakao를 단 어드벤처 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서 회색도시 1은 쉽게. 그리고 드라마처럼. 복잡한 인과를 배제하는 기조로 개발이 진행됐다. 그 결과, 주요 시스템은 난이도가 하락했고. 관계 위주의 이야기. 과거편의 축소와 편집을 가져왔다. 기다리면 무료와 같은 시스템도 도입되기는 했지만, 미션별로 끊는 지점이나 필름 사용 밸런스가 좋지만은 못했다.
회색도시 1 이후, 진승호 디렉터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를 돌이켜 봤다는 말을 전했다. 따라서 회색도시를 보완하고 제대로 끝을 맺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의해서 후속작 제작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스템 임기응변은 그간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본인 스스로가 선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상태였고. 여러가지 생각이 모여 임기응변이라는 시스템의 발상으로 이어졌다. 임기응변은 엄밀이 따지면 모바일 서비스 게임의 콘텐츠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부조리하고 힌트가 거의 없는 상태로 몰아세웠지만,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체험을 넣고 싶었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선택의 본질이 폭력성과 불가역성으로 보는 시각이 표현된 것이다.
당시를 돌아보며, 진승호 디렉터는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거기에 파묻혀서 궤도를 이탈해버렸다는 평을 남겼다. 그 결과 팀은 해체되었고 오버그라운드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은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내가 하고 싶어서’만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위에서 일을 맡기고 사업과 개발 지원 조직. 개발팀이 함께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지 않고 달리는 본인의 문제도 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팀 축소가 보도된 이후, 진승호 디렉터는 타임라인에서 자신의 일을 주제로 논평과 멘션이 쏟아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베리드 스타즈’의 구상이 시작됐다.
● 베리드 스타즈 그리고...
베리드 스타즈는 SNS를 사용한다는 컨셉을 놓고 이전에 생각한 연말 시상식 살인사건의 아이디어. 그리고 검은방 1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방침에서 출발한 타이틀이다. 연쇄 살인과 범인 추리 요소가 도입되었으며, 갇혔지만 SNS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상황을 도입하고. 그 매개체를 스마트워치로 잡았다.
스마트 워치는 게임 초반부 플레이에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벨소리를 이용한 트릭. 녹음 기능과 이를 이용한 트릭을 게임 내에 녹여냈다. 플레이어들이 해당 기능을 무조건 열어보고 살펴보도록 하면서, 게임 시작 한 시간 내에 트릭에 사용되는 요소를 모두 소개하고 어떤 기능은 직접 시도하도록 유도했다.
상황적 배경에서 나오는 순위 또한 언젠가부터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면서, ‘이런 상황에서 순위가 중요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순위는 뒤집히지 않으며, 이와 같은 인식을 등장인물과 이야기. 그리고 플레이어가 공유하도록 했다.
베리드 스타즈는 이외에도 패키지 제작과 같은 게임 외부적인 요소들. 멀티 플랫폼과 개발 범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들을 거듭한 타이틀이기도 했다. 출시 전까지는 우려가 있었지만, 판매량은 물론 2020 지스타에서 두 개의 상을 수상하는 등 의미있는 타이틀로 자리매김하는 긍정적인 결과로 마감됐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명확해진 부분도 있다. 진승호 디렉터는 이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하며, 좋아하는 일은 곧 더 잘하고 싶은 일이고. 더 잘하고 싶은 일은 곧, 지금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좋아하는 일이란 = 괴로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과 선택으로 가득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다시 한 번 걷기 시작하겠다는 다짐과 당부의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