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DC의 등장과 함께 유저들에게 차세대 액션이란 게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던 소닉 어드벤쳐는 화려한 그래픽과 멋진 연출, 2D에서 느꼈던 속도감을 고스란히 3D로 옮겨오면서도 다양하고 멋진 액션을 즐길 수 있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소닉 시리즈는 소닉 어드벤쳐를 통해 무난하게 2D에서 3D로 활동 영역을 옮겼고, 많은 게이머들이 3D로 펼쳐지는 소닉의 후속 시리즈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소닉 어드벤쳐 1편과 2편을 능가할만한 타이틀은 사실상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PS3와 X360으로 등장했던 소닉 더 헤지혹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기대 이하의 그래픽과 극심한 프레임 저하, 어중간한 맵 디자인과 이해가 안 가는 기나긴 로딩으로 악명을 떨쳤기에 소닉 시리즈의 최신작인 소닉 언리쉬드에 대한 기대감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소닉 어드벤쳐하면 떠올릴 바로 그 장면. |
테마곡만큼은 좋았던 넥스트 제너레이션. |
다양한 기종으로 소닉 시리즈가 진행되었지만 그 반응은 MD 시절처럼 뜨겁지 않았으며, 이제 더이상 소닉은 예전처럼 닌텐도의 마리오와 견줄 수 있는 캐릭터로 내세우기에 힘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소닉이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당시로선 충격에 가까울 만큼 강렬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이었기에 가능했었지만 3D로 바뀌면서 추가된 다양한 액션 시스템과 필드 시스템, 그리고 비중이 커진 대화 파트가 소닉의 발목을 부여잡고 결국은 평범한 3D 액션 게임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 발매된 넥스트 제너네이션과 달리 소닉 시리즈의 최신작인 소닉 언리쉬드는 전작에서 지적되었던 많은 부분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 소닉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이정표적인 타이틀이 될 만한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버전 타이틀은 소닉 월드 어드벤쳐. |
일종의 반성적인 작품이라 해도 좋은 소닉 언리쉬드. |
소닉 언리쉬드는 일단 두 가지 면에서 많은 놀라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화려하고 깔끔한 그래픽과 놀라운 속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맵 디자인이었습니다. 과연 차세대기로 등장하는 게임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던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크게 발전해서 다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화사한 느낌의 완성도 높은 그래픽을 자랑하며, 빠른 게임 진행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배경 그래픽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줍니다. 또한 2D 시절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듯한 맵 디자인으로 인해 간만에 정신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빠른 게임 진행이 가능해진 것도 소닉 언리쉬드의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배경을 눈 돌아가는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닉 시리즈를 사랑하던 팬들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초반부터 유저들의 눈을 잡아끌 만한 배경이 펼쳐졌고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또한 되도록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소닉 부스트와 광속 대시, 소닉 드리프트, 벽 점프 시스템 등이 사용되었고 이런 다양한 시스템으로 인해 소닉은 더욱 빠르고 화려하게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스템이 많아진 만큼 단순히 버튼 하나로 가능하던 조작 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버튼이 활용되었지만 다른 액션 게임에 비하면 그리 복잡하진 않으며 비교적 손쉽게 화려한 액션을 펼칠 수 있습니다. 광속 대시와 소닉 부스트를 사용하면 실수로 맵에서 약간 이탈해서 속도가 떨어졌을 때에도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려 달릴 수 있으며, 발동 상태에서는 평소에는 이동할 수 없었던 곳을 빠르게 이동하거나 주위의 링을 빨아들이며 달릴 수 있습니다.
소닉 드리프트/슬라이딩은 급격한 방향 전환 시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낮은 곳을 통과할 때도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그 외에도 호밍 어택을 활용해 공중에 떠 있는 적을 연속해서 공격하면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진행할 수 있으며, 이젠 소닉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라인드 파트 또한 빨라진 속도에 맞춰 퀵 스텝 시스템을 도입해서 장애물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퀵 스텝은 그라인드 파트뿐만 아니라 일반 러시 중에도 장애물을 피해 링을 먹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기에 가급적 속도를 줄이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상쾌한 액션을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어줍니다. 시스템이 다양하게 들어갔지만 난잡하거나 복잡하기보다는 소닉의 생명인 스피드를 유지해주고 더 빠른 액션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소닉 언리쉬드의 장점입니다.
화면이 일그러지는 연출을 보여주는 소닉 부스트. |
호밍 어택으로 공격과 이동을 동시에. |
상당히 요긴하게 사용되는 퀵 스텝. |
방향 전환이나 장애물 통과에 사용되는 소닉 드리프트. |
소닉이 달리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러운 시점의 전환을 통해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속도감 있는 화면을 모두 잡아낼 수 있었으며 중간중간 반응속도를 시험하는 듯한 타이밍 버튼 액션을 통해 집중도를 잃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다만 처음 플레이를 하는 유저라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버튼 액션이 아니라 거의 맵을 통째로 외워야만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빠듯한 편이기에 충분한 속도감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반복된 플레이가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달리지 않을 때의 기본 속도가 꽤 빠르기 때문에 소닉의 움직임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것도 유저에 따라 조작감 문제로 이어질 만한 요소입니다. 물론 아날로그 스틱의 조작 정도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감도가 꽤 민감한 편이어서 처음엔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시점 연출로 속도감을 한껏 느낄 수 있다. |
소닉 언리쉬드는 달리는 것이 전부인 게임이 아니어서 낮 모드와 밤 모드를 따로 나누어 전혀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낮에는 소닉 더 헤지혹으로 빠른 속도감을 즐기며 달릴 수 있으며 밤에는 소닉 더 웨이혹으로 변해 액션 파트를 즐길 수 있습니다. 닥터 에그맨의 계략에 빠진 소닉은 밤 시간대에는 늑대로 변신하게 되는데, 평상시와는 달리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늘어나는 팔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거나 집어던지고 다양한 콤보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밤 모드에서는 낮 모드와 마찬가지로 스테이지가 끝나면 얻은 포인트를 사용해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으며, 적들과 싸워가면서 퍼즐을 풀고 끝에는 보스와의 대전이 중심이 됩니다. 퍼즐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기에 퍼즐이라는 시스템을 최소한도로 억제한 느낌이며, 적과의 전투 역시 그리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강렬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낮 모드. |
밤 모드에서는 적과의 전투와 퍼즐이 중심이 된다. |
사실 이번 작품에서는 헤지혹 모드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웨이혹 모드는 쓸데없는 부분으로 인식하는 유저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헤지혹 모드와 웨이혹 모드는 극과 극의 느낌이며 기껏 소닉 시리즈의 본분에 가장 어울리는 게임으로 돌아온 소닉 언리쉬드에서 가장 말이 많을 듯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게임이라는 매체로 발매된 이상 그저 달리기만 하면 끝나는 게임은 최근 게임 업계에선 조금 꺼려지는 게임이라 할 수 있으며,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과 함께 다양한 재미와 볼륨적인 부분을 위해서라도 달린다는 것 이외의 요소를 집어넣었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의미에서 생각하자면 웨이혹 모드는 액션 게임으로서의 완성도가 높기만 하다면 충분히 소닉 언리쉬드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파트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극과 극의 느낌을 주는 낮 모드와 밤 모드. |
하지만 아쉽게도 소닉 언리쉬드에서 가장 많은 단점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웨이혹 모드입니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만큼은 아니지만 프레임은 불안정하며 액션 그 자체도 다른 게임에서 많이 봐왔던 진부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액션 게임으로서의 신선한 요소를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갓 오브 워 시리즈를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웨이혹 모드에서 굉장한 친숙함을 느낄 것이며 신선함이라는 측면 외에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배경은 그리 넓지도 않으며 지루한 이동 퍼즐과 독창성 없는 액션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적들이 나옴과 동시에 불안정해지는 프레임은 헤지혹 모드를 받쳐주며 완성도를 높여주는 요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닉 언리쉬드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요소로 생각됩니다. 밤 모드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소닉 언리쉬드의 농도가 옅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런 액션은 소닉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은 것이 사실. |
특히 전체적인 플레이 시간을 봤을 때 낮 시간대보다 밤 시간대의 비중이 더 큰 것도 과거의 빠른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던 소닉을 기대했던 유저에겐 아쉬운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밤 모드의 존재가 완전한 실패 요소라는 이야기는 아니며, 소닉이 적을 두들겨 패면서 진행한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닉 언리쉬드의 반쪽을 채워주는 파트에서 개성 없는 심심한 액션과 놀라울 정도로 의미 없는 퍼즐 등의 요소는 낮 모드의 강렬한 느낌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며,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낮 모드와 달리 여러 부분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나라의 화려한 배경을 보며 시원시원하게 달리던 낮 모드와는 달리 칙칙한 배경에 지루한 액션을 보여주는 밤 모드는 일견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또 하나 소닉 언리쉬드의 템포를 늘어뜨리는 것이 메달을 모아서 스테이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자동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스테이지를 찾아서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메달 찾기에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오히려 주객전도가 된 느낌입니다. 플레이를 하다 보며 아무래도 주로 밤 모드를 플레이해서 성능을 올리고 메달을 찾게 되는데, 이런 일련의 작업을 거친 후에야 비로서 낮 모드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입니다. 낮 모드를 플레이하는 것은 너무나 즐겁지만 그 낮 모드를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지루한 스테이지 찾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스테이지를 열기 위해서 같은 스테이지를 몇 번씩 플레이해가며 메달을 모아야 하는 것은 플레이 시간을 늘리는 데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스테이지가 끝나면 획득한 포인트로 점점 더 빨라지거나, 혹은 점점 더 강해지거나. |
사실 스토리가 그리 중요한 시리즈는 아니고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소닉과 닥터 에그맨을 중심으로 게임이 진행되며, 소닉 언리쉬드의 신 캐릭터인 칩이 중요 스토리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익숙한 얼굴인 테일즈와 에이미가 등장하지만 그 외에 소닉 시리즈에 등장했던 수많은 캐릭터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어느 정도 등장 캐릭터 수를 줄여서 선택과 집중을 한 느낌입니다. 어디까지나 게임을 진행하는 주인공은 소닉이라는 느낌으로,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만큼 난잡하지 않고 밀도 있는 액션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한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음성과 자막 모두 영어/일본어 중에서 선택 가능한 방식이며, 특히 Xbox360 버전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출시되어서 외국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더 빨리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신 캐릭터인 칩. |
초장부터 시원하게 소닉 물 먹이는 에그맨 선생. |
에지혹 엔진이라는 제작되는 첫 타이틀인 소닉 언리쉬드는 소닉 시리즈에 있어 매우 중요한 타이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같이 세가가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입장인 세가를 대표하는 소닉 시리즈는 단순한 시리즈물로 치부하기엔 그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가의 하드웨어 포기 이후 다양한 기종으로 수많은 소닉 시리즈가 제작되었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고 어떤 타이틀은 평범한 타이틀 그 이하의 평가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소닉의 위상은 예전과는 달리 많이 떨어진 인상입니다. 이제 소닉이라는 캐릭터는 더이상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나는 건 분명 그간 소닉 시리즈에 실망한 유저가 적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소닉 어드벤쳐 이후 10년 동안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도 존재합니다.
소닉 언리쉬드는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는 타이틀이라 할 수 있으며, 제작사 측에서도 문제점을 의식했는지 많은 부분에서 반성하고 고민한 느낌입니다. 그 결과물인 소닉 언리쉬드는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타이틀입니다. 과거의 소닉을 플레이하던 감각을 상당 부분 재현해냈으며, 시리즈 최고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제작된 낮 모드는 소닉 시리즈에 실망했던 게이머라 해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드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액션 파트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눈에 밟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소닉 시리즈는 제작될 것이고 소니 언리쉬드에서 이끌어내었던 유저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제작진들의 노하우는 후속작에서 틀림없이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며, 더욱 발전한 소닉 시리즈를 기대하게끔 합니다.
굉장히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었던 만큼 더욱 아쉬움이 남는 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