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ULTI] 낭만과 두려움 가득한 야간주행, 퍼시픽 드라이브

[「RULIWEB」]

제목	퍼시픽 드라이브	출시일	2024년 2월 22일
개발사	아이언우드 스튜디오	장르	어드벤처
기종	PS5/PC	등급	15세 이용가
언어	한국어 자막	작성자	Sawual

※ 본문에 약간의 스토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매일매일 새로운 게임의 정보를 찾아내고 접하는게 일상이고, 그만큼 그 중에서 어느 한 게임이 눈길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스샷 한장, 타이틀 이미지 하나, 한줄의 설명으로 기자를 확 사로잡은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퍼시픽 드라이브’ 였다.

 

미스터리한 격리구역을 차 한대에 의지해 탐험하는 게임. 이 컨셉에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퍼시픽 드라이브’ 는 여러모로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여러 게임의 특징을 동시에 생각나게 하면서, 기존 게임들에게서 당연시 되어왔던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며 핵심 플레이를 쌓은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을 크게 감성으로 승부하는 게임과 플레이 메카닉의 재미로 승부하는 게임으로 나눈다면, 이 게임은 확실히 전자다. 물론 이 둘은 항상 나뉘거나 깔끔하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며 얼마든지 둘 다 챙길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무튼 ‘퍼시픽 드라이브’ 라는 게임에서 이 감성의 영역이 절대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 한 ‘퍼시픽 드라이브’ 는 그런 감성적인 충족감도 컸지만, 오히려 게임플레이로 다가오는 재미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다른 게임들에서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만족감이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올림픽 반도, 아니 올림픽 통제 구역에

기본 세팅은 그렇다. 먼 옛날 올림픽 반도에서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미 정부는 ARDA 라는 기관을 세워 여기를 거대한 장벽으로 폐쇄해 올림픽 통제 구역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90년대 말, 장벽 밖에서 배달원인 주인공은 스테이션 웨건을 타고 배달을 하던 도중, 갑자기 장벽 안으로 빨려들어가 버린다. 장벽 안으로 와 보니 과거 ARDA 의 연구원이었거나 해서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는 사람 세명을 알게 되고, 그리고 ‘렘넌트’ 라고 부르는 기이한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차를 타고 생존을 위해 나아간다.

 

 

게임의 분위기는 미국의 도시전설 문화가 최고로 사랑하는 미국의 8090년대의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그야말로 도시전설의 정석을 보여준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정도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두 작품이 배경으로 하는 연대는 제법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묘사하는 톤 앤 매너는 상당히 비슷하다.

비밀기관 ARDA는 도시전설에서 필수적인 통제기관 역할이고, 주요 등장인물인(비록 목소리로만 나오지만) 오필리아, 프랜시스, 토비아스는 모두 ARDA에서 일했거나 연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오필리아와 프랜시스는 당연하게도 이상 현상을 연구하던 과학자이며, 이들이 실질적인 조력자가 된다.

 

주인공의 차는 ‘렘넌트’ 라고 부르는 존재가 되었는데, ‘렘넌트’ 는 이 이상현상의 영향을 받은 초자연적인 개체들이다. 때문에 보통의 차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일단은 이 렘넌트의 정체를 밝히고 올림픽 통제 구역의 비밀을 파헤치는게 게임의 기본 목적이다.

‘퍼시픽 드라이브’ 는 특유의 게임 스타일 상 온갖 감성적 요소들로 게임의 분위기를 잡고 묘사하는게 너무나 중요한 게임이다. 90년대말, 도시전설적인 분위기와 미국의 시골을 운전하는 드라이빙까지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은 여러가지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처음에는 이 으스스한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파밍 하는 동안 계속 벌벌 떨며 뒤를 돌아보게 된다.

특유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탁월한 광원 활용으로 만들어내는 이 게임의 비주얼은 단연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굉장한 고퀄리티의 그래픽까지는 아니지만 광원 만큼은 여느 하이엔드 게임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그 활용도 대단히 뛰어나다. 비가 내리고, 바닥이 질척이고, 수풀이 폭풍에 휘날리고, 거기에 은은하게 비추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이 되어주는 붉은 테일라이트 등등, 이 게임은 비주얼적으로 어느 장면에서나 인상적인 멋진 그림을 만든다.

음악도 여기에 힘을 더한다. 당대의 분위기를 살린 포크/컨트리/사이키델릭 락으로 가득한 라디오 사운드트랙은 8090년대의 곡을 직접 가져와 쓰기보다는 후대의 곡을 고르거나, 제작사에서 직접 작곡 또는 편곡을 했음에도 당대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게하는 점이 일품이다. 메인 테마인 ‘A Shell in the Pit’ 부터가 사이키텔릭 락 느낌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또다른 인상 깊은 곡 중 하나인 ‘Forty Fives Say Six Six Six’ 는 포크송인 등, 노래가 돋구는 감성은 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운전’ 이니까.

그리고 ‘드라이브’ 라는 감성에 걸맞게 기본적인 조작은 딱 필요한 만큼의 자동차 조작, 그리고 정보 전달을 대쉬보드의 경보로 하는 등 여러모로 이질적이지 않게 게임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뭐, 이 부분은 계속해서 텍스트로 설명하기보다는 스크린샷들과 노래를 직접 소개하는게 가장 빠를 것 같다.

 

이렇게 이 게임은 첫인상을 확연히 사로잡고 출발한다. 이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거나 매력을 느꼈다면 시작이 좋다. 이 다음은 더더욱 호불호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한줄로 표현하면... SCP+로그라이트+던전크롤러+데스스트랜딩

게임 플레이의 기본 구조는 차고에서 차를 정비한 다음, 미니맵에서 갈 지역을 대강 선정하고 구역과 구역을 이동해 통제 구역의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더 강력한 이상현상, 더 무서운 이상개체를 만나고 살아남으면서 이것저것 재료를 줍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 귀환한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자동차와 차고를 업그레이드하고 생존과 수집 능력을 더 강화하면서 더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식이다.

 

다가오지마 혐광객... 오면 죽어버릴거야!

이 게임에서 가장 크게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은 핵심 상호작용이 전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는 ‘데스스트랜딩’ 을 떠올릴 법도 한데, 일견 비슷한 맥락이 있지만 그나마도 ‘데스스트랜딩’ 은 무기도 있고 전투도 할 수 있지만 단지 뒷감당이 안되서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게임은 아예 제대로 된 무기가 없으며, 그나마 적을 향한 도구도 조명탄 총 따위가 전부다.

대신 차량의 업그레이드는 굉장히 많다. 먼저 후드를 비롯한 각 부분의 파츠를 갈아 끼울 수 있고, 문짝 하나까지 속성을 고를 수 있으며 개조해나감에 따라 트렁크, 뒷좌석, 조수석, 측면, 상단 등 각종 부위에 이런저런 장비들을 붙일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너저분한 스테이션 웨건이던 차가 나중가면 고스트 버스터즈 뺨치는 온갖 장비를 덕지덕지 붙인 유틸리티 차량이 된다.

 

차량은 빌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유지보수 수요를 잡아먹기도 한다. 부품들의 내구도 같은 건 기본. 어디 부딪히거나 오래 쓰면 장비가 손상되어 전용의 수리 도구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귀신들린 마냥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작동도 튀어나온다. 업그레이드와 유지 소모 등등, 여러가지 빌딩 게임의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자동차를 끌고 나가 마주하게 되는 환경은, 그야말로 귀곡산장이다. 올림픽 통제 구역은 3중 장벽으로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대부분 어둡고, 축축하고, 으스스하며, 아주 가끔 보이는 맑은 날에도 갑자기 태풍이 불어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일쑤다. 거기에 도로는 엉망이고, 버려진 건물들은 온갖 집기가 널부러져 있으며, 방사능과 전기 누출이 판을 친다. 가장 외곽에 위치한 차고에서 출발해 점점 더 안쪽으로 나아가 무사히 파밍을 하고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야 한다.

 

 

이런 위험지대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손에 쥔 채집도구들과 차량 뿐이다. 렘넌트 답게 범상치 않은 성능을 자랑하지만 몇 번 들이박으면 헤드라이트가 깨지고, 문짝이 날아가면서 위험에 노출되는 차는 가끔은 위태롭게 느껴질 것이고 쏟아지는 위기 상황 속에서 다 부서지는 차를 끌고 탈출을 하다보면 극한의 드라이빙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최선의 목표는 단연 무사생환이다. 아무리 많은 재료를, 아무리 귀한 재료를 얻고 조사를 마쳤다고 해도 살아돌아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결국 전체 일정을 고려해 소모품과 장비 내구도, 구성을 짜고 살아남아야 한다.

게임을 어느정도 플레이하다보면 사실 차를 몰면서 자원을 수집하고 업그레이드하고 있지만, 어딘가 이 게임의 방식이 다른 게임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로그라이트식 던전 크롤러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구조가 차고에서 재정비를 한 후 올림픽 폐쇄 구역의 깊은 곳으로 연속하여 탐험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며, 각각의 맵도 직접 들어가 탐사하기 전에는 정보가 불명확한, 즉 미확정 요소가 많다.

단지 그 던전이 3중 장벽으로 둘러쌓인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는 90년대 올림픽 통제 구역이며, 내 도구는 칼이나 총이 아닌 자동차라는 점, 전투가 아닌 생존과 수집으로 핵심 상호작용을 풀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이런 초자연현상을 다루는 게임들 다수가 이상 개체들 또는 크립티드를 어떻게 해치우고 또 환경 자체를 극복하느냐에 초점을 두었다면, ‘퍼시픽 드라이브’ 는 회피와 생존만이 가능한, 말그대로 드라이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어우 끔찍해라

이를 보여주듯, 플레이어는 이상개체들을 직접 공격할 수 없다. 차로 칠 수는 있지만 대부분 오히려 그런 행동은 플레이어의 차에 손상을 주는 결과로 끝이 난다. 이상현상은 더더욱 불가해한데, 플레이어가 이상현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은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이 모든 위협에 무기력하게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공격이나 적극적인 배제는 불가능하지만, 플레이어는 차를 중심으로 온갖 생존수단을 고려할 수 있다. 전격/부식/방사능/폭발 등의 피해 유형에 맞추어 각각 절연/부식저항/납도금/장갑이라는 속성을 파트마다 하나씩 골라 끼울 수 있고, 전력을 소모해서 차를 보호하는 액티브 장비들도 있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량의 성능을 개선해서 주행성능을 높이는 것 자체로도 위협을 회피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 게임의 핵심은 이러한 생존 수단을 마련해두고, 피해가면서 자원을 수집해 다시 차량과 플레이어의 능력을 강화하여 게임의 마지막 지점=엔딩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게 된다

이런 구조가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건 게임의 두가지 특징 덕분이다. 먼저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이상개체나 이상현상은 필요 이상의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장장이 같은 아주 일부 개체를 빼면 플레이어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노리거나 공격하는 개체는 없으며, 대부분 마치 방해물처럼 작용한다. 플레이어나 차량을 쫓아 추격하는 개체도 없고, 대부분 한 지역에 자리잡고 그 지역에서 위험성을 조성한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기 의지대로 이 위험을 피할 수도 있고, 또는 감수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게임의 주어진 목적이 상당히 간단하다는 점이다. 이 게임은 로그라이트적인 특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플레이의 목적성까지 로그류와 공유하지는 않으며, 어디까지나 이 게임은 스토리 상의 엔딩을 보면 끝이나는 게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맵을 넓히고 미션을 따라 마지막 지역을 극복하여 도달하는게 목표가 된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어떤 식으로 자신이 성장해야 할지, 다가오는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매우 명확하게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게임의 특성이 합쳐져서 로그라이트적인 미학을 이 게임 나름의 방식대로 굉장히 맛있게 풀어내는데, 바로 로그라이크던 로그라이트던 모든 로그류를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철학인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리스크 감수다. 얼핏 보면 위협의 근원을 제거할 수 없다는 점과 전투 요소가 없다는 점 때문에 플레이어가 굉장히 수동적인 위치에 놓일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로 이 게임의 위협 요소들은 동시에 제한적인 부분도 많고 플레이어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되려 넓힌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극적인 리스크 감수를 반복 하도록 유도하는게 로그라이크의 핵심이자 정체성이다. 위험이 있으면 그만큼 보상을 얻는, 리스크와 게인의 구조는 모든 게임에서 당연한 부분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플레이어가 리스크와 게인을 저울질하며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받아들이고 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다른 게임들과 속칭 로그류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그런 위협을 감수하는 방법, 그리고 감수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쉽게 가늠이 가능하고 여기에 단순히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닌 ‘차량’ 이라는 이동형 기지 덕분에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변수도 많이 창출할 수 있다.

때문에, 겉보기에는 굉장히 수동적으로 보이는 이 게임이 한편으로는 플레이어의 매우 적극적인 역동성을 보장하는 게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런 수많은 시도를 통해 ‘미지’ 를 ‘깨달음’ 으로 전환해나가는 재미, 그게 이 게임에서 굉장히 특별하고 큰 플레이적인 만족감이었다.

■ '미지에 대한 두려움' 도 리스크 감수로 만드는 게임의 묘미

한편으로 게임 전반에 걸친 진한 분위기 조성이 그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성 뿐만 아니라 이런 게임 플레이에 관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위협을 감수한다는 중요한 기작에서, 플레이어가 무서움 또는 미지를 딛고 나서는 것도 하나의 플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이 본격적인 공포 게임은 아니지만, 공포, 또는 무서움, 또는 으슬으슬함이라는 테마가 결코 비중이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의 공포는 대놓고 때려박는, 점프 스케어나 유혈낭자 같은 무식한 방식의 공포가 아니라 은은한 공포, 조금씩 섬짓섬짓해지는 그런 으슬으슬함이라는 코드다.

물론 그런 방향성을 가진 게임들은 많지만, 이 게임은 여러 특유의 요소와 배경 덕분에 그런 느낌이 극대화된다. 자동차라는 상대적인 이동 안전지대는 플레이어가 평소에 느끼는 공포감을 경감시킨다. 그리고 게임의 구조 자체도 스크립트를 때려박아가며 강제 이벤트로 공포를 떠먹이지 않기에 그런 상대적 평온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상 현상이 들이닥치고 이따금 그 안전지대(자동차)가 부서지고 위기를 겪을 때 느끼는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웃기게도 이 현상을 겪으면 죽는지, 뭐 차가 부서지기는 하는지 모르고 대체로 피하려고 하지만 어떤 우연한 사건들로 원치 않게 직접 결과를 대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 때마다 격정적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이어진다.

즉 미지의 공포, 그리고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플레이 환경, 게임 전반에 걸친 유혈이나 점프 스케어가 아닌 분위기의 공포를 이용하는 방향성이 결합되어 이 게임의 무서움은 매우 현실적인 으슬으슬한 수준을 잘 유지한다. 바로 이것, 은은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라는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공포 게임에 내성이 상당히 강한 편인데, 그건 대부분의 공포 게임이 제공하는 공포스러운 환경은 굉장히 인위적이어서 이성 단계에서는 항상 이게 가짜라는걸 인식할 수 밖에 없으며, 가끔씩 나오는 점프 스케어를 위시로 한 대놓고 공포를 노린 요소들도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데다 반복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감이 급격하게 쌓이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공포의 대상, 공포 요소는 플레이어가 극복 가능한 대상으로 설정이 되기에 더더욱 빠르게 그런 공포 요소에 익숙해지고, 나중가면 그저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퍼시픽 드라이브’ 는 애초에 공포가 메인 테마인 게임도 아니고, 게임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플레이어를 이끄는 요소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점점 더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처음에는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관광객에 놀라 비명을 지르지만 나중에는 “에이, X랄 그만해.” 라고 한마디 하고 하던 일 마저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오히려 이 부분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플레이어가 게임과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녹아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간 드라이브라는 소재 자체와 맞물려, 이런 분위기 조성은 정말로 탁월하고, 하나의 재미요소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에 의지해, 가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을 위로삼아 달리는 야간 주행. 이 어떻게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 그저 감성 원툴만은 아닌, 아주 잘 조율된 플레이 요소들

얼핏 보면 이렇게 하나의 컨셉에 맞추어 최소한으로만 만들어진 작은 게임 같지만, 의외로 게임 곳곳에서는 잘 조율되고 섬세하게 마련된 다양한 요소들을 마주할 수 있다.

 

어우 씨 깜짝이야

예를 들어 필드의 구성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가 걸어다니는게 아닌, 자동차로 주행한다는걸 고려한 레벨 디자인이 많다. 맵 곳곳에 있는 숲, 나무들은 보통 주행에 방해가 되기 마련인데, 숲마다 있는 나무들의 간격이 신묘하게 차로 비집고 다니기에 딱 좋은 밀도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그렇다. 이는 알게모르게 플레이어들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스트레스를 주기 딱 좋은 위협 요소인데, 이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로그라이트적인 리스크 감수와 실패의 위험, 그리고 실패 후에도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들도 잘 마련되어 있다. 차고와 맵 곳곳에 놓여있는 친절한 쓰레기통은 플레이어가 귀환에 실패하거나 해서 운영상 위기에 빠졌을 때, 적절하게 필요한 아이템을 보충해줌으로서 실패의 스트레스를 적절히 완화한다. 운전의 감각도 상당히 좋은 편이며, 패드가 아닌 키보드 마우스로 운전해도 문제가 없는 정도였다.

 

여기에 차고 내에서 인벤토리 관리를 위해 지급되는 도구들을 비롯해 인벤토리 관리도 여타 다른 게임에 비해 수월한 편이며, 차고의 각 기능도 필요에 따라 분업화 되어 있고 스토리지도 종류별로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능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차량의 상태를 보여주는 HUD, 맵과 경로의 현황을 보여주는 각종 아이콘과 정보도 잘 정리되어 있다. 마치 이런 류의 게임을 하다가 어떤 사소한 지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을 유발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듯이, 그런 문제들을 다 스무스하게 해결해놓았다.

미션의 구성도 다소 빈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나름 재미있게 잘 구성된 편이다. 애초에 주요 조력자인 3명의 인물이 오직 음성으로만 등장하는데도 게임 특유의 배경과 분위기 전달법으로 세계관의 매력을 느끼는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으며, 미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드라이브 플레이는 꽤 만족스러웠다. 특히 중후반부에 연달아 펼쳐지는 도로를 내달리며 관문을 충전하는 미션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분명 이 게임은 개발 규모 상이나 게임의 핵심 상호작용이 제한적인 면 등에서 여러모로 표현 상의 제약이 많다. 그러나 그런 약점을 상당히 슬기롭게 잘 대처하고 보완하고자 한 노력이 눈에 띈다. 이것이 게임 특유의 스타일과 분위기라는 필터를 한겹 거치면서 더 좋게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 부족한 뒷심, 차라리 그냥 끝냈더라면

그러나 이 게임도 완벽하진 않다. 특히 전반부의 압도적인 분위기, 그리고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오밀조밀하게 짜임새 있는 플레이가 후반부로 가게 되면 갑자기 힘을 잃는다. 일단은 플레이어가 이 게임이 가하는 위협이나 압도하는 분위기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는 것도 있겠지만, 명백히 후반부의 게임 구성이 다소 부실하기 때문이 더 크다.

 

후반부로 갈수록 메인 미션의 비중이 더 커지는 대신, 외곽-중부-심부로 이어지는 필드의 구성이 바뀌는 위협 요소들을 빼면 구성상의 차이가 크지 못한 것이 첫번째 아쉬움이다. 물론, 깊숙히 들어갈수록 이전에는 보지 못한 자원들이 등장하고, 더 무서운 적이 나오며, 이상현상의 빈도도 높아지지만 어쨌든 나오는 건물의 양상이 비슷하고, 기본 플레이는 그대로이기에 점점 더 심심해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원들은 건물 안에서 나오지 않고 필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춘 도구를 들고 가서 캐기만 하면 되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일은 줄어든다. 어차피 후반부라고 해봤자 건물 형태도 같고, 건물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자원도 같기에 후반 필드는 결국 거기에서 나오는 자원 몇가지, 늪지 포자나 혈액, 올림피움 광석 같은 것만 노리고 가게 되고, 오히려 전반부보다 플레이 양상이 단조로워진다.

 

거기다 후반부 필드라고 해도 그렇게 플레이어를 압도적으로 위협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 가장 큰 요인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미션에서 얻게되는 부품인 LIM 차폐막이다. 전력을 소모하는 범퍼 부품일 뿐이지만 거의 모든 물리 피해를 막아주는 이 부품의 성능과 효율이 너무나 좋아서 심부 구역에 들어가도 이 장비만 있다면 어지간해서는 차 부서질 없이 완주하는게 가능해진다.

사실상 중부 구역을 무사히 다닐 정도의 세팅이 되어 있다면 여기에 미션에서 주는 LIM 차폐막을 달기만 해도 바로 엔딩까지 직진할 수 있을 정도다. 즉, 실질적으로 심부 구역에서의 성장 요소는 거의 없는 셈이고, 심부 구역 자체의 중요성도 떨어지게 된다.

 

기껏 힘들게 올림피움 파밍해서 차를 완성해도 쓸데가 없다.
그냥 탈출시켜주지

거기다 심부 구역에서의 파밍 중요도를 낮추는데에는 이 게임의 비교적 빠른 엔딩 시점과 전무한 리플레이 밸류가 한몫 한다. 최종 테크인 올림피움 테크는 엔딩을 보거나 마지막 존을 돌아다니는 등 엔드 콘텐츠에 전혀 필요하지 않고, 동시에 올림피움 수급이 매우 어렵고 운에 의존하기도 하여, 올리기도 어렵다. 실제로 엔딩을 본 후 심부 구역을 여섯번이나 샅샅이 뒤지며 다녀왔는데도 패널 두세개 만드는걸로 끝났다.

엔딩 자체의 빈약함도 지적받는 부분 중 하나다. 엔딩 미션은 오히려 그 이전의 미션들보다 구성이 빈약하다. 물론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감성적인 만족감이나 어떤 뽕은 차오르지만, 플레이적인 재미가 한참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엔딩을 보고나면 플레이어가 구역에 남게 되는데 이 부분도 문제가 된다.

 

일단 게임이 가진 리플레이 밸류가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다. 엔딩을 보고나서 할 거라고는 그나마 올림피움 파밍 정도인데 앞서 말했듯 올림피움 파츠는 성능은 좋긴 하지만 게임 난이도 상 없어도 그만인 수준의 장비다. 그렇다면 차라리 엔딩을 보는 시점에서 플레이어를 탈출시키고 아예 게임을 끝내버려도 됐을텐데, 어정쩡한 엔딩이 되면서 게임 전체의 마지막 감상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오히려 후반부에서 게임의 난이도 상승보다 플레이어의 성장이 너무 커서 난이도는 굉장히 루즈해지고, 그러다보니 후반부 미션의 짦은 길이도 부각되어버리며, 낮은 리플레이 밸류를 가리기보다는 오히려 노출시키는 엔딩을 선택해버렸다. 그냥 개운하게 마무리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다.


■ 야간 주행, 좋아하세요?

결과적으로 ‘퍼시픽 드라이브’ 는 흥미로운 컨셉에 맞춰 이에 어울리는 구성요소를 잘 갖추고, 아트와 퍼포먼스, 스케일에서 모두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완성도를 보여준 수작이다. 후반부의 난이도 조절이나 콘텐츠 구성 등이 조금 아쉽지만 그 이전까지 보여준 장점이 더 돋보이며, 이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성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러모로 취향 저격 당한 부분이 크겠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하며 한 게임

기자는 원래도 운전을 좋아하고, 특히나 한적한 밤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게임은 그 감성적 만족감을 가득 채워주었다. 엔딩을 보고 게임을 마무리한 후, 앞서 언급한 후반부의 단점들과 또한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리플레이 밸류로 인해서 이 게임을 더 플레이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위험한 황무지를 드라이브하는 감성이 그리워서 게임을 몇 번인가 다시 켜게 됐다.

 

약 20여명이 채 안되는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가 만든 작은 게임이지만, 올해 가장 인상적인 게임 중 하나로 남을 ‘퍼시픽 드라이브’. 이 게임은 텍스트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직 플레이 순간에만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만족감이 있다. 취향만 맞는다면,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20시간의 드라이브를 하게 될 것이다.

▶긍정적  
- 탁월한 비주얼과 음악을 활용한 끝내주는 감성

- 제한적 상호작용으로 구현한 완성도 높은 플레이
- 뛰어나고 안정적인 게임 퍼포먼스

▶부정적 
- 후반부의 난이도 조절 실패와 부실한 플레이

- 취향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닌 코어 플레이

작성 / 편집: 이명규 기자 ([e-mail])

[라이트트윈스]

야간운전에 대한 공포감과 감성은 잘 표현한거 같아요

[지구별외계인]

엑스파일 시절 음모론을 좋아한다면 하고 싶을 게임이구만...

[토코♡유미♡사치코]

그래서 비평할때도 훈련타령을...

[blackalbum]

그게 너무 심하면 플스1 말기에 스퀘어처럼 헛짓거리를 많이 하게되지만 그래도 주구장창 룰렛머신만 만드는거 보단 좋죠

[srandom]

관광객 여전히 너무 싫네요..
야간에 특히..

[씪씪]

재밌어보이네

[bewayt]

요즘 루리웹 게임리뷰 수준이 엄청 높아진것 같습니다. 너무 재밌어 보이네요

[하바네로2]

이거 개인적으론 이상현상 진단 쪽이 너무 짜증났음
간단한 거 한두개라면 모를까 여러가지가 걸려있는 상태에서 증상 딱 꼽아내기도 쉽지 않은데 한판당 횟수 제한까지 있음
어떻게든 노가다로 골라내서 하나 처리하면 그동안 원정 갖다온 사이 또 하나 걸려와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나 다름 없음
그렇다고 진단 좀더 쉽게 해주는 업그레이드는 한번 실행 할때마다 파밍해온 귀중한 에너지를 소비해서 쉽사리 손이 잘 가지 않음...

이거랑 자막이 위에 있어서 운전하느라 보기도 힘든건 어떻게든 해줫으면 좋겠음
나머진 리뷰에서 언급한대로 취향을 꽤나 타겠지만 속칭 "폐지줍기" 파밍겜을 좋아한다면 나쁘지 않은 게임임

[하바네로2]

나중에 설정 뒤져보던 중 위에 언급한 진단쪽 설정을 건둘수 있는 옵션을 발견함

그 외에도 난이도 조절 설정들이 친절하게 있으니 유튜브 보고 어려울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적당히 만져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근데 왜 자막 위치 이동하는건 없지?

[지나가던여우]

드라이빙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양질의 텍스트 잘 읽고 갑니다!

[룻벼]

만약 이런 게임의 차량 운전 기능이 사이버펑크 2077 수준이었다면 희대의 똥겜이 됐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이런 게임은 차량 운전은 운전 전문게임 수준의 조작성을 보여줘야 될테니

[루리웹-0033216493]

같은 패턴의 반복인데 빌드도 많고 뽑아낼건 많은데 솔직히 금방 질림...
로그라이크 특유의 서사가 약한건 게임 플레이 매꾸려고 한건데 그게 좀 잘 안됨.

[anthracite]

세이브나 잘 됐으면 좋겠어요 망할 ㅋㅋ

[그래네말이다맞다]

게임은 재밌는데 후반부 밸붕 아이템 하나가 크게 단점인가 보네요

[이거보는사람다행복해라]

되게 재밌게 하는중인데 멀미가 너무 나더라 어휴
그래도 쫄깃한 맛이 엄청 좋음
재료들 주섬주섬 싸들고 귀가하려는데 점점 피는 닳아가고 차는 파손되어가고 빛기둥은 멀고 하면
진짜 불안불안함

[Raw Meat]

3080 글카가 86도까지 치솟는 거 보고 환불했음. 암만 재미가 있으면 뭐해. 컴퓨터를 녹여버리는데.

[헤드픈]

하자 있다가 풀로드 걸리는 게임 만나니 그 하자가 드러난 듯 7800xt로 하는데 60도대에서 놈

[Raw Meat]

나만 그런 게 아님.

[이리야]

대단한 리뷰 입니다.

[루리웹-8830681567]

로그라이트는 처음 알았네

[CG구멍가게]

오.. 잘로피

[GeminiArk]

지금 발매 후 한달이 되었는데 그동안 패치를 5개나 내놓은거 보면 개발사가 게임에 신경을 엄청 쓰고 있는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