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시외버스터미널
―유령 7
진주에서 밥 먹다 보니 두 주 전 여수서 먹던 밥 생각
난다
어느 밥이 더 좋았나? 비밀이다
여수에서 밥 먹던 기분과 진주서 밥 먹는 기분은 다
르다
술자리도 듣는 소리도 색色이 다르다 다르지만,
아무 말도 안 하련다 나는 다만,
경문왕의 복두장이처럼 속이 부글거려 죽겠다
말이 될지 똥이 될지 모를 거시기를 한바탕
하고 싶은데, 남강 가를 한참이나 걸어도
대숲이 없다 대숲은커녕
대나무 그림자도 없다 사실은,
말도 하기 싫다
똥도 지쳐서 더 못 누겠다
끓는 배 속에, 비밀 같은 비밀은 없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그냥 음식 때문이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김칫국에
비듬처럼 섞여 들어간 고춧가루 때문이다
고춧가루에 묻은 미세먼지나
먼지를 부는 남해 바람 소리, 아니면
파도에 꽁지가 젖은 갈매기들 끼룩거림 때문이거나
갈매기들이 물에 빠뜨리는 똥 덩이들 때문이다
남강이나 내 고향 안동 낙동강 가에
대나무 숲이 없어서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나처럼,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아침에 세 번 설사를 하기 때문
이다
애가 말을 안 듣고 재수씩이나 해서는 동네 대학엘 가
서이다
이곳의 피에 젖은 한국전쟁사가 부어준 공포나
공포로 떵떵거린 지역 출신 정권에 대한 공포의 동조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든 말든
당나귀 귀가 임금님 귀든 말든
한 놈만 조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각이 남북통일만큼이나 힘들어서다, 아니
쉬워서다……가 됐다는 것이고, 그도 아니면
남강 변 낙동강 변을 자욱이 덮은 거대한 대숲 때문이
돼버린 것 같으므로,
나는 이 무아지경의 미움에게 엎드려 빌고 싶지만 지
금은 또,
해장술을 한 병 마신 터라 기운이 없다, 정신도 없다,
다만
경상도 안동 땅 사람들이 머나먼 목포 땅 사람들을 미
워하는 건
반세기 동안의 허위 선전이나 날조 왜곡 때문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냥, 안동시 옥동 오비호프집 화장실에 누가 들어가
똥을 눴는데
휴지가 없어서라는 것
그냥 미친 듯이 휴지가 없어서……가 됐다는 것이고,
그도 아니면, 휴지는 잔뜩 있는데
미친 듯이 똥이 안 나와서……가 돼버린 탓이라 생각
한다
먼 것엔 이유가 없다
먼 것은 이유다
그 환영幻影의 숲에 비밀 같은 건 없다
우스운 것도 무서운 것도 다 환영이고, 환영이란 그런
것이며
문제는, 문제보다 문제의 문제이고, 이 모든 이유 없는
주정은
내 극비다 바지에 똥을 지릴지도 모르니
극비에 대해선 묻지 말라
아픔은 아픔,
아픔의 아픔도 아픔이라면 이곳의 미움에 대해서만,
말도 안 되고 똥도 안 되는 짧은 봄날의 복통에 대해
서만
빌어달라
버스는 십 분 뒤에 온다
나는 아랫배를 쥐고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간다
끝없는 사람
이영광, 문학과지성 시인선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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