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도 무정도 없이
죽음만 있으면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너는 두 손에 죽음을 꺼내 들고
나를 꼬나본다.
안 주면 죽여버릴 거야
취한 너는 별안간
덤비고 싶다, ㄱㅈㅅ아, 하고 날
무찌르고 싶다.
하지만 너는 애원한다,
차비 좀 빌려주세요.
귀신을 만난 듯
네 죽음은 주먹이 되려다가
다시 펴진다.
나는 주먹을 보고 싶지만
유정도 무정도 없지만
너는 검은 손바닥을 보여준다.
죽음은 손바닥 위에서
공기알 같다.
병아리 같다.
혓바닥 같다.
그래서, 그것을 너는
흉기처럼 휘두르고 싶지만
휘두를 것 같지만
너의 죽여버리겠어는
죽어버릴거야이다.
나는 네 인사불성을
취중 난동을
최종 병기를 보고 싶은데
너는 고작 중얼거린다, 이천원만,
이천원만 빌려주세요
나는 네게 차비를 뺏긴다.
하지만 너는 죽음을
선사하지 않고,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서 간다, 오늘 밤 네가
씨1발, 죽으면 그만이었던 삶이어서
오늘 밤도 네가 끝내 죽지
않는 죽음이어서, 죽이지
않는 죽음이어서, 나는
하릴없이 비에 젖는다.
유정도 무정도 없이
ㄱㅈㅅ으로.
나무는 간다
이영광, 창비시선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