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뒤
그 해 여름에 우리는 삼거리 금방앗간
그 앞집으로 이사를 했다. 거기다가
물감과 간수를 파는 가게를 냈다.
삼촌이 객지에서 온 광부들과 얼려
매일장취로 술만 퍼먹고 다니던
그 지겹던 가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가게에 박혀 소주만 찾았지만
내게는 밤이 오는 것만은 즐거웠다.
길 건너 도장ㅁㅁ네 집에서는
밤이 돼야만 노랫가락 소리가 들리고
나이 어린 ㅁㅁ는 술꾼에게 졸리다가
우리 집으로 쫓겨와 숨어서 떨었다.
그 해의 그 뜨겁던 열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세거리 개울가에 모여 수군대던
농군들을. 소나기가 오던 날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도장ㅁㅁ네 집 마당은 피로 얼룩졌다.
마침내 장가 져도 나이 어린 ㅁㅁ는
좀체 신명이 나지 않는 걸까
어느날 돌연히 읍내로 떠나버려
집 나간 삼촌까지도 영 돌아오지 않았다.
개울물이 불어 우리는 뒷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장마가 들면
우리는 그 피비린내를 잊지 못한 채
다시 장터로 이사를 한다는 소문이었다.
농무
신경림, 창비시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