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코끼리
그는 걸었다. 그는 방금 국민은행을 지나쳤고, 국민은행
을 지나 이바돔감자탕을 지나 지하로 통하는 술집을 지나
족발보쌈집을 지나 걸었다. 그는 걸었는데, 건물 2층 코인
노래방을 지났고 스시정을 지나 베스킨라벤스를 지나 던
킨도너츠를 지나 하나은행을 지났고 기업은행을 지나 걸었
다. 그러니까 그는 꽤 번화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계
속 걸었다. 소울키친을 지나 커피빈을 지나 카페B를 지나
그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를 지나 주민 센
터를 지나 무아국수……가 보이는 곳에서 그는 멈췄다.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라고?
그는 무아국수에서 등을 돌려 주민 센터를 지나 다시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에게로 돌아왔다. 그
파란 코끼리는 분명 카페B와 주민 센터 사이에서 코로 눈
을 비비고 있었다. 그는 파란 코끼리가 코로 눈을 비비는
것을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 긴 코로 눈
을 비비는 파란 코끼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
각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걸었다.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
는 파란 코끼리를 지나 주민 센터를 지나 무아국수를 지나
무등산갈비를 지나 천 가게를 지나……
완벽한 개업 축하 시
강보원, 민음의 시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