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구덩이 속의 세 B급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16)
2편: 구덩이 속의 네 B급(上)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47)
3편: 구덩이 속의 네 B급(下)(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48)
전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 하나(上)(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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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바이오스피어의 벽을 부수고 조그마한 - 물론 어디까지나 톰 입장에서 - 돌 정도는 그냥 밟아 짓뭉개며 지하 주차장까지 다다랐다. 톰과 같은 거대한 AGS가 들어서자 안 그래도 넓은 편은 아니었던 공간이 더 좁아졌기에 세 바이오로이드는 거의 벽에 눌리다시피 바짝 붙어 서야 했다. 톰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휩싸인 이 무저갱의 구덩이를 둘러보았다. 한참 동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뭐가 보이기는 하는지 헤드라이트를 이리저리 몇 번 깜빡인 AGS가 마침내 입, 아니 스피커를 열었다.
“기억남. 이곳은 지하 주차장. 근처에 출입구가 있음.”
“맞아. 돌더미로 막혀 있을 테지만...출입구가 어느 쪽 방향인지도 알지?”
“알고 있음. 지하주차장의 매 층마다 출입구 앞의 첫 번째 기둥에 층수 표시. 숫자가 적혀 있는 방향의 맞은 편. 해당 기둥, 찾아야 함.”
“헤헤, 제가 알고 있슴다”
다시 한 번, 브라우니는 허세와 자만에 가득찬 소위 ‘뽕찬’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뭐랬슴까. 저 기둥 옮기면 일이 풀릴 거라 안 했슴까. 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검다!”
샌드걸과 레프리콘은 브라우니가 그 기둥을 찾아낸 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으며, 톰 같은 고출력 작업기계가 없으면 그걸 옮기는 건 고사하고 살짝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을 굳이 하진 않기로 했다.
브라우니가 안내한 기둥을 살펴본 톰이 희망찬 소식을 전했다,
“맞음. 해당 기둥. 뒤편 틈새. 어디로 얼마나 나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향은 일치. 기둥을 치우고 틈새를 넓혀 지나갈 통로를 만들겠음”
허세가 극에 다다라 거의 자신이 마리쯤이라도 된 것 같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 브라우니의 머리 위로, 톰은 그러나 불길한 소식도 전했다.
“하지만 주의 필요. 해당 공간, 파괴적인 붕괴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생긴 공동(空洞). 천장 불안정. 무너진 잡석과 토사로 간신히 균형 유지. 함부로 바위들을 부수고 치웠다간, 무너질 수 있음.”
“그러면 조심해서 작업해야 하겠군요.”
“이그젝틀리. 이곳의 바이오로이드들, 물리학에 대한 능지 부족. 함부로 기둥을 움직였다간 불행한 일 발생 가능. 본 개체, 바이오로이드 쥐포는 보고 싶지 않음.”
그러니까 아까 여기 있을 때 무슨 기적이 일어나서 그녀들이 그 기둥을 움직일 수 있었다손 쳐도 그 결과가 그리 유쾌하진 않았을 수도 있었단 얘기다. 브라우니는 그 말뜻을 이해 못했는지 여전히 득의만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무튼 이제 그녀가 뭘 생각하건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뿐이다 -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것.
“작업 시작. 전력 소모가 심하니 음성 모듈 끄겠음. 작업 소음 매우 극심. 따라서 음성 인식 모듈도 끄겠음. 말 걸어도 인식 불가."
"저, 저흰 뭘 하면 되죠?"
"노예들은 아무 짝에도 도움 안 됨. 작업 중에 대량의 잡석 발생. 위험하니 멀찍이 떨어질 것. 구석에서 최고 농업 담당관과 노가리나 깔 것.”
“그러니까 우린 요 아쿠아의 부하가 아니란 말....”
드드드드드
“으악 내 귀!”
엄청나게 커다란 드릴 소리가 자욱하게 사방을 울리고 무지막지한 돌 파편들이 튀어올랐다. 톰은 낭비할 전력이 아깝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없이 - 전력이 낭비되니까 - 그 우악스러운 집게발과 굴착기를 무자비하게 휘둘러 바위들을 치우고 깨부수기 시작했다. 일단 AGS가 작업에 투입되자 그간의 길었던 잡담이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드드드드드
침묵 속에서, 오로지 요란한 진동과 소음만이 통로에 가득했다. 브라우니가 처음에 지적했듯이 기둥을 치우면 틈새가 만들어지며, 그건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 틈새가 어디까지, 그리고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다분히 무지막지하고 거칠어 보이긴 해도 톰이 그 틈새를 따라 주의 깊게 통로를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비록 잠시도 쉬지 않고 돌을 깨고 흙을 파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톰의 연산 모듈은 끊임없이 출입구 - 아마도 그것의 오래된 기억장치에 내장된 지도정보에 따라 - 에 이르기 위해, 그리고 그러면서도 작업으로 인해 지반이 무너져 모두가 생매장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 분명했다. 귀가 먹어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요란한 소음과 진동이 좁고 어두운 지하의 구덩이를 가득 메웠기에, - 그래서 네 바이오로이드는 바로 옆에 있는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힘들었다 - 네 바이오로이드는 잠자코 톰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톰이 했던 경고대로 굴착 작업을 하는 톰의 앞뒤로는 엄청난 양의 부서진 돌조각과 파편들이 튀었다.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우리라. 어차피 거기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말이다.
그리하여, 비록 시끄러워서 ‘노가리’는 깔 수 없었지만, 네 바이오로이드는 - 그나마 소음과 쏟아지는 돌파편들을 피하려고 - 톰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한참 전 이 무저갱에 처음 떨어졌을 때 셋이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이 구덩이 속에서 아무 말도 없이 쪼그려 앉았다.
“.......”
드드드드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의 땅구덩이 속에서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과 요란한 진동만이 울려 퍼졌다. 레프리콘은 왜 바이오로이드가 AGS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정반대다. 사고방식의 유연성 문제를 제외한다면 AGS의 압도적인 출력은 그야말로 바이오로이드를 아득히 추월한다. 그러고보니 가장 염가형 시가전 모델인 폴른조차 스틸라인 한 개 분대의 전투력을 내지 않던가. 브라우니가 한 달 동안 파내자니 뭐니 했던 그 콘크리트 기둥을 단 수십여분 만에 쓱 뽑아내서 나아갈 길을 만들자 레프리콘은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드드드드드
쿵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래 오래, 온몸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소음이 잠시도 멈추지 않자 - 톰은 그 와중에도 지반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연산을 수행하는 게 분명해 보였지만 - 레프리콘은 그만 방향감각을 잃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비좁은 땅구덩이 속에서 진동과 소음이 반사되어 메아리치자 이젠 그 소음의 진원지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저만치서 깜빡이는 톰의 미등(尾燈)만이 저기에 작업하는 AGS가 있고 거기가 소음의 근원이겠거니 하고 짐작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드드드
쿵
드드
음, 진동 사이사이로 뭔가 다른 진동이 느껴지는 거 같은데. 레프리콘은 무심하게 생각했다. 아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중에 온 사방이 시끄럽고 진동과 소음이 메아리쳐 반사되니 느끼는 착각인지도 모른다. 방향감각이 상실되는 칠흑 속에서 환청을 듣거나 메아리치는 소리의 진원지를 잘못 잡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드드
쿵
드드드
뭔가 톰과는 다른 방향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거 같은데. 이거 환청 맞나? 톰이 내는 소음의 울림은 지겨울 정도로 끊김이 없고 연속적이었지만, 이 진동음은 뭔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뭔가 엄청 무거운 거 - 예를 들면 공룡이라거나, 타이런트라거나 - 가 걸어다닌다면 이런 진동이 들리리라. 내가 방향감각을 상실했기로서니 소음이 지겨워져서 스스로 비트를 만들어내다니, 어쩌면 난 군대가 아니라 음악에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몰라...하고 레프리콘은 시답잖은 생각까지 했다. 정말 간만에 아무것도 안 하고 - 사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맞지만 - 쪼그려 앉아서 멍하니 칠흑 속의 어둠이나 응시하자니 이런 정신나간 생각까지 하는구나고 그녀는 스스로 자책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법.
드
쿵
드드드드
그 진동음은 어쩐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그 말인즉, 소리의 근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긴데...아니 진짜 이거 뭐지? 톰이 일으키는 소음 떄문에 착각한 것일까? 애초에 저 진동음 자체가 소음 때문에 생긴 일종의 환청이 아닐까? 진짜 어둠과 지하의 비좁은 공간에 질려 드디어 그녀의 정신이 돌아버린 거란 말인가? 이 아무도 없는 무저갱의 지하에 그녀들과 톰 외에 누가 따로 있을 리가 없....
문득, 레프리콘은 뭔가가 떠올랐다.
그건 별로 생각하기 싫은 것이었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생각이 그저 브라우니보다도 멍청한 망상이기를 바라며.
“저, 중위님”
“뭐죠, 상병?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줄래요?”
“조금 전에 아쿠아가 말했던 거 기억나십니까? 그, 뭔가 엄청 커다란 게 우리랑 같이 떨어진 거 같단 거 말입니다”
샌드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네, 기억납니다.”
“우리가 여기 떨어진 건 토터스가 지반을 무너뜨려서였잖습니까?”
“그렇죠”
“토터스는 크고 무겁잖아요?”
샌드걸은 뭔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원판이 토미 워커니까 500톤은 넘겠죠”
“만약, 그 토터스가 말입니다....”
“네?”
“우리와 같이 지하로 추락했고....”
“?”
“아직도 살아 있다면....”
샌드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상병,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놈도...우리와 같이 이 지하를 헤매고 있을 거 아닙니까?”
샌드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쿵.
그리고, 점점 가까워져 오던 진동음이, 마침내 천둥처럼 크게 가까이 와닿았다.
다음 순간, 그녀들이 서 있던 좌측 암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톰의 소음을 뒤덮을 만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흙먼지와 흙냄새가 훅 끼쳤다.
그 무너지는 벽면, 갑작스러운 붕괴로 쏟아지는 자갈돌과 돌조각들 사이로, 철충에 감염된 AGS특유의 시뻘건 불빛이 휘번득 빛났다.
그것이, 그녀들이 결코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 존재가, 심연 속에서 튀어나온 악몽이, 으르렁대며 포효했다.
젠장, 심연 속에서 이런 해후는 사양인데.
<계속: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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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일하느라 늦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이 이 관심병자를 흥분시킵니다 앗 아앗 하응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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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 20.10.17 23: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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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절반 왔네요 | 20.10.18 01: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