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있으니 스포없이 게임하고 싶은 사람은 주의할 것.
나는 원래 기록용 감상글에는 스포를 씀. 권유용 감상글이라면 스포를 피하겠지만...
1. 게임패스 데이원으로 출시되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그냥 스팀으로 샀다... 나는 왜 게임패스 얼티밋으로 가입해 있는 것일까 대체.
2. 게임의 장르는 서바이벌 크래프팅 + 기지 관리. 그러나 크래프팅의 비중은 낮은 편. 누군가 서브노티카와 유사하다는데 공감할만함. 그런데 내 느낌상으로는 개발사의 전작인 디스 워 오브 마인과 유사하게 느껴짐.
3. 게임의 배경 설정이 매우 흥미로운데,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 "래피듐"을 탐사하던 우주탐사선이 불시착해 유일한 생존자가 된 주인공이, 자신의 복제(그러나 다른 경험과 의식을 지닌)들을 만들어내 살아남고 지구로 돌아가기 까지의 이야기임.
4. 이 나의 복제=알터 들이 매우 다양한데, 기술자, 과학자, 의사... 등등임. "나"의 인생 여정에서 특정한 사건들이 다르게 흘러갔다면? 에서 그 직업으로 성장한 또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것.
5. 그런데 게임을 하다보면 이걸 "만들어낸다"라는 느낌보다는, 양자중첩으로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또다른 자신을 가져오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복제된 애들에게는 자기 나름의 기억과 경험이 있음. 양자컴퓨터이니만큼, 양자적 평행세계에서 적합한 모델을 골라 그걸 가져온다고 느껴짐.
6. (11bit 스튜디오 작품이 항상 그러하듯) 게임의 진행과정은 억까와 억까와 억까가 범람하는 거대한 억까의 태풍이 몰아치는 구조임.
7. 간단한 예로, 광부 얀이 있음. 이 친구는 자기 세상에서 한 팔이 잘린 광부였는데, 복제되어 만들어진 다음 양 팔이 다시 생긴 것에 신기해함. 그런데 ㅁㅇ성 진통제를 자꾸 달라고 하다가, 어느날 자기 팔 한쪽을 잘라버림... 11 bit 스튜디오의 게임 디자인에서 호불호가 매우 많이 갈리는 지점이 이건데, "플레이어가 선택했을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주거든. 플레이어는 선택 시점에서 예상되는 이익과 불이익을 저울질 한 다음 결정을 하는데, 선택 시점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던져버리면 선택이 무의미해진다는 느낌을 받기 쉬움.
8. 물론 이 광부 얀의 팔은 계속 잘린채로 있는건 아니고, 과학자나 의사를 통해 치료해 줄 수 있음. 그리고 상담가나 경비 얀을 통해서 심리치료까지 병행해주면 자기 세계 기억에서 괴로워하는 것에 해방됨. 팔이 치료되고 해방된 광부 얀은 불평불만이 매우 적고 하루 12시간 일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 외부 방사능도 어느 정도 감수하는 슈퍼일꾼이 됨.
9. 게임의 자원관리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광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음. 물론 그걸 쓸만하게 만드는 과정이 드럽게 어렵다는게 문제지만...
10.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얼터들은 이처럼 자기 문제를 안고 있음. 기술자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데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과학자는 냉혹하며 자기중심적임. 그나마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식물학자놈이 내 전처와의 관계에 질투하는 장면까지 오면 좀 무섭기까지 함.
11. 그런데 이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고, 말 그대로 "자신과의 화해"를 하게 됨. 한편 문제가 해결된 얼터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도 많은 감동을 줌. 기술자놈이 통수친 다음 되돌아와 사과하는 것이라거나, 과학자가 마지막에 행성의 신비를 연구하기 위해 자기는 남겠다고 하는 등...
12. 또한 얼터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의 심리적 장점을 하나씩 배워갈 수 있는데, 이렇게 배운 교훈은 회차를 넘어 전승되며 각종 상황의 대화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함. 이 교훈을 통한 선택지가 없다면 특정 엔딩은 보지 못할 수도 있음. 게다가 교훈으로 얻은 새 선택지는 대체로 다른 선택지들보다 나은 결과를 제공함.
13. 위에서 말한대로, 이 게임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음. 게임은 대체로 자원관리와 인원관리, 미션을 수행하는 시간관리로 이루어지는데,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음. 자원관리는 특히나 사람을 여러차례 빡치게 하는데, 창고의 규모가 매우 작고 기지 시설이 많고 클수록 이동에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바람에 자원을 모으기가 힘들고, 자원을 모으려면 인원관리를 해서 걔들이 오래 불평없이 일하게 해야 하는데 애들의 불평불만은 끝이 없는데다 툭하면 감정이 상하고, 자원만 모으면 되는게 아니라 미션을 수행해서 다음 지역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난이도조차 쉬운게 아님...
14. 이 게임을 절대 할 수 없는 유형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완벽주의자임. 이 게임은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선택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는 불이익을 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 불이익이 보통 큰게 아님.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 조졌네" 싶은 시점이 여러차례 찾아옴. 보통 완벽주의자 게이머는 이 시점에서 게임을 꺼버리거나 다시 시작하는데, 이러면 끝까지 갈 수가 없을거임. 근데 11bit 게임들이 항상 그렇듯, 아 조졌네 싶은 시점 이후에 반드시 회복할 기회를 주긴 함.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15. 개인적으로 "아 조졌네" 싶은 시점이 3번 정도 있었음...
16. 게임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좀 끌게 되는데, 특정 연구에 필요한 자원이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개방되기 때문에 그걸 끝까지 뽑아먹은 후 다음 지역으로 가는게 좋음. 프펑 1을 한 사람이라면 화이트아웃이 다가오면 개방되는 탐색지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17. 11bit 의 여러 전작들 중에서 특히나 이야기적인 완성도가 매우매우 높음. 무슨 말이냐면, 이 게임을 한번 끝까지 완주하고 나면 정말 완성된 한편의 장편 드라마나 연작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듬. this war of mine보다도 더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사실 리플레이 밸류가 적은 편이 아닌데도, 한번 클리어한 다음 바로 다음 회차를 하고 싶다는 기분은 안듬.
18. 번역에서 문제가 좀 많은 편. "Less Angry"(분노가 줄어듬)을 "조금 화남"으로 번역하는 등, 문맥을 파악하면 오역이라는게 뻔히 보이는 오역들이 매우 많음. 엔딩 크레딧에 한국어 번역팀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AI 번역을 사용한듯함.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면 게임 진행에서 큰 문제는 없지만... 아쉬운 부분임. 근데 일어도 없던데 흠...
19.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라서 데스스트랜딩 2가 나올때까지 천천히 먹으려던 것에서 주말 도합 5시간만 자며 결국 엔딩을 봐버림... 그러나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종류의 게임은 아님. "선택한 시점에서는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억까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게임에 손대는게 적절한 선택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