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바그다드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등장하게 될 주요 지역은 바그다드, 사마라, 마샤프, 알라무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작의 형태 정확히는 알타이어가 주인공이었던 1편의 형태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신화 3부작의 큰 특징이었던 RPG 요소도 삭제가 되는 등 대대적으로 개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에 발매할 것을 중국인이 검수하고 그 장소를 사천성 청두(成都)에서 한다 어쩐다의 이야기들이 있어서 솔직히 기분이 나쁘더군요. 자세한 곳은 밑의 사이트에서 확인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매하는 것을 왜 중국인의 손을 한번 거쳐야 하는건지... 우리나라의 유비소프트 지사는 대체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네요. 버그 관련해서도 수차례나 같은 내용으로 요청을 했었는데 여전이 버그는 수정이 안 되고 있고...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밑의 사이트에서 확인 해보셔요. 저는 좀 그렇네요.
(https://www.ubisoft.com/en-us/company/careers/search/743999930371613-intern-game-tester-kr-ocalization-)
1.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쐐기 문자로 적혀 있다) - 대영박물관 소장 중
무엇으로 시작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바심의 독수리 이름이 엔키두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부터 시작을 하는게 좋겠다 싶었어요. 엔키두가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 중 한 명의 이름이기 때문이었어요. 이 서사시는 실제로 기원전 2100년경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당히 오래된 서사시입니다. 번역에 따라서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기원전 28세기 경에 우르크라는 도시에 길가메시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혈통부터가 범상치 않았는데요 2/3는 신, 1/3은 인간인 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힘이 엄청나게 강했었어요. 그렇지만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점차 자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폭정을 휘두르기 시작했는데요. 이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 바로 초야권을 자신이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신혼부부가 생겼다면 원래대로는 그 부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맞는데 이 첫날밤을 자신이 했다는 말이지요.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백성들의 원망은 쌓여갔고 결국 하늘의 신 아누에게 이놈을 혼내달라는 기도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누누를 시켜 엔키두를 만들고 즉시 지상으로 내려가서 길가메시를 혼내주라고 명령을 했죠. 그렇지만 막상 지상에 내려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동굴에서 야생의 생활을 하다가 이슈타르 신전의 여사제가 엔키두와 접촉, 13박 14일 동안 매일 매일 그렇고 그런일을 계속 하면서 동시에 빵과 맥주를 매일 먹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야생성이 벗겨지고 여사제는 엔키두를 우르크까지 안내. 결국 둘은 만나게 되었고 결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길가메시로 추정되는 아시리아 시절의 조각상 - 루브르 박물관 소장 중
엔키두 조각상(기원전 2027년 - 1763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 이라크 박물관 소장 중
그렇지만 둘의 힘이 똑같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이기지 못하는 싸움이 계속 되었고 지쳐버린 둘은 결국 화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둘이 싸우면서 정이라도 든 것일까요? 둘은 서로를 마주보면서 영원한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이후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도와 선정을 펼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지요. 이후 두 영웅은 괴물 훔바바 처치 등 수많은 업적을 이루어내는 나날을 보냈는데 이로 인해 이들의 명성이 하늘의 신들에게까지 닿게 됩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반해버렸고, 구애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길가메시는 이미 이슈타르를 거쳐간 남자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구애를 무시하고 오히려 이슈타르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서 이슈타르의 행동을 질책하게 됩니다. 이 글을 본 이슈타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아버지 아누에게 괴물 황소를 보내서 우르크를 초토화 시켜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딸이 하도 졸라대서 결국 황소를 보내게 되었어요.ㅎㅎ
아누가 보낸 황소가 우르크를 휩쓸기 시작하자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힘을 합쳐 황소를 퇴치하였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이슈타르는 기가 막혀서 길가메시에게 저주를 퍼붓자 엔키두는 둘이서 잡은 황소의 오른쪽 넓적다리 부분을 잘라서 이슈타르에게 던져버리는 패기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이슈타르는 또 기분이 상해서 아빠한테 또 조릅니다. 황소 공격도 실패하고 오히려 망신만 제대로 당했으니 이슈타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것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아누는 또 딸이 졸라대자 바로 신들의 회의를 열어서 길가메시와 엔키두를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게 됩니다(참 할 짓 없다). 하지만 길가메시에게는 신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결국 자신들이 만든 생명체인 엔키두를 죽이기로 합의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엔키두는 병들어 죽게 되고 크게 상심한 길가메시는 영생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세상을 여행하면서 불사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불로초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것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길가메시는 이것을 자신만 먹지 않고 당시 우르크에 있던 노인들과 같이 나눠 먹어서 모두 회춘 시키기로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가메시. 도중에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더위도 식히고 물도 마실 겸 근처 개울가에서 시원하게 목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늙은 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길가메시가 잘 보관하고 있던 불로초를 찾아 냉큼 먹어버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뱀은 회춘하게 되어서 돌아가게 되었지요. 이후 뱀들이 정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것이 이때 먹은 불로초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영생이 수포로 돌아가자 길가메시는 크게 상심하고 우르크로 돌아가게 되고 계속 한탄과 후회만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신들이 나타나서 “넌 영생은 못하지만 죽게 되면 저승의 왕이 될 거야. 그러니까 천수만 잘 누리면 된다. 알았지?”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길가메시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일들을 단단한 돌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기록하게 한 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2.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미라지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인류의 4대 문명 중 한 곳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입니다. 이곳에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의 두 강이 흐르고 있어서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부르는 아주 비옥한 지방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인류의 계속된 농업화 등으로 인해서 이 지역 대부분이 사막화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다양한 기후와 생명체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 오른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부터 왼쪽의 동 지중해 영역까지 걸쳐져 있다
당시 생태계의 폭이 워낙 넓었고, 그만큼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먹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만 봐도 금방 아시겠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아시리아‧바빌로니아 등등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 지역에서 출현하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연관 지을 수 있는 키워드만 해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바빌로니아‧최초의 통일 왕국 아시리아‧쐐기 문자‧파란색 문이 특징인 이슈타르의 문(ishtar gate)‧바벨탑으로 불리는 에테멘앙키(Etemenanki)‧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건설한 바빌론의 공중정원(Hanging Gardens of Babylon)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곳입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서 나오는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설을 명령한 알렉산드로스 3세도 페르시아 정벌 이후 제국 건설이 어느 정도 완료가 되자 제국의 수도를 바빌론으로 정할 정도로 좋은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본인도 바빌론에서 사망하기도 했고요. 비록 지금은 인류의 수많은 역사를 거치면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대부분 사막화 및 토지 염화가 진행이 되어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화가 진행이 되고 있지만 저지른 것이 인간이면 돌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겠죠? 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되기를 희망하면서 이 부분은 이 정도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3. 무함마드와 이슬람교의 탄생(Muhammad and the birth of islam)
앞에서 잠깐 언급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후 페르시아 제국‧헬레니즘 제국‧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는 것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남에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문화의 교류가 적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사막이라는 지형의 특성상 씨족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살아가는 방법이 가장 편했을테고, 지금도 사막에 대한 인식은 황량하고 매마른 느낌이 강한데 고대에는 말할 것도 없겠죠. 이로 인해 아라비아 반도 지역 대부분은 씨족들이 모여 살면서 자신들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씨족은 돌을 섬기고, 어느 씨족은 곰을 섬기고, 어느 씨족은 나무를 섬기는 일종의 토테미즘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네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이중 메카(Mecca)의 상어를 토템으로 섬기는 씨족에서 태어났습니다. 즉 고향이 메카라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압둘라 어머니는 아미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탄생 연도는 기록마다 다 달라서 지금도 논쟁이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570년을 무함마드의 탄생 연도로 보고 있습니다. 무함마드의 집안은 그렇게 잘 사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무함마드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잘 생겼던 것 같습니다.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가 당시 메카에서 제일가는 미남이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죽어버렸고(압둘라가 아미나와 결혼한지 3개월만에 사고사를 당했습니다), 어머니도 무함마드가 6살이 되었을 때 죽어버려서 할아버지와 삼촌의 손을 거치면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함마드가 25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장가를 가지 못했는데요. 당시 기준으로 25살까지 장가를 가지 못하면 엄청난 노총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장가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사촌 동생에게 청혼도 해봤지만 퇴짜를 맞아서 실연의 상처를 안고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지요(이 시절 이 지역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이 흔했기 때문에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무함마드의 운명이 한번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함마드가 일하던 상단의 여주인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주인의 이름은 카디자 빈트 쿠와일리드라고 하는데요. 성실하고 일 잘하면서 동시에 잘 생기기까지 한 무함마드에게 점차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디자는 무함마드에게 청혼을 하였는데 문제는 바로 카디자의 나이였습니다. 무함마드는 25살인데 반해 카디자는 당시 40살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즉 나이차이가 15살이나 되는데다가 카디자 본인도 과부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결혼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카디자는 어떻게 해서든 무함마드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무함마드에게 적극적으로 구혼을 하는 것과 동시에 뒷공작도 서슴없이 하는 말 그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결혼에 골인을 하게 됩니다. 카디자의 상단은 당시 메카에서는 알아주는 부자 상단이었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이후 편한 생활을 누리면서 지내게 됩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무함마드의 나이도 어느덧 40세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무함마드는 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별신경 쓰지 않았던 무함마드였지만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자 아내와 상의. 결국 상단의 모든 일에서 잠시 벗어나 메카 북쪽 교외에 있는 히라 암혈(The Cave of Hira)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어로는 cave 즉 동굴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진을 보시면 도저히 동굴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입니다. 잘 쳐봐야 고시원 단칸방 정도의 크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이곳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는 생활을 지속하다가 어느 날 밤, 언제나처럼 히라 암혈에 있는 무함마드에게 왠 사람이 나타나서 무함마드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외칩니다.
“읽어라!”
다짜고짜 읽으라는 외침소리를 들은 무함마드. 밤중에 누군가가 외치자 놀라기도 하고 뭔가 싶기도 해서 그 목소리가 나는 방향에 대고
“무엇을 읽으라는 말입니까?”라고 합니다(읽을 수 없습니다 라고도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갑자기 무함마드를 숨쉴 수 없을 정도로 껴안고 놓아준 뒤 다시 무함마드에게 외쳤습니다.
“읽어라!”
대체 무엇을 읽으라는 것인지 알지 못한 무함마드는 그 쪽에 대고 다시 한번
“무엇을 읽으라는 말입니까?”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무함마드에게 다가가 숨쉴 수 없을 정도로 껴안고 놓아준 뒤 무함마드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사라졌습니다.
“읽어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피 한 방울로 인간을 만드신 주님(알라)의 이름으로 읽어라! 주님께서는 관대하시고 그분은 깃털(펜)로 가르치셨으며, 인간에게 그들이 모르는 것도 가르쳐 주셨느니라.”
신기한 경험을 한 무함마드. 이후 포교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이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훗날 메디나에서 이 사람의 정체가 바로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 무함마드는 포교를 하면서 23년간 신에게 받은 계시들을 모두 기록해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내려오는 쿠란(القرآن)입니다. 쿠란이라는 제목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읽어라!,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무함마드는 이후에도 계속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있다가 산으로 올라간지 3년이 지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슬람교의 포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내를 시작으로 점차 확장을 시키려고 했는데요. 당연히 당시 메카의 모든 씨족들은 이러한 포교 활동에 반대를 하게 됩니다. 애초에 이슬람교가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유일신 종교이기도 했고,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주는 경제력 때문이기도 했죠. 그래서 아내의 상단은 파산하게 되었고 자신의 후원자들도 점차 줄어드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포교 중에 한가지 흥미 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무함마드가 52세가 되던 시절 알라의 권능으로 부라크라는 이름의 짐승을 타고 ‘멀리 있는 사원’과 하늘에 가서 많은 선지자들과 이야기를 한 뒤 돌아왔다고 하는데 이것을 미라지(Miraj)라고 부릅니다. 이를 무함마드의 승천이라고도 부르는데요. 곧 나올 제목이 미라지 라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노린건가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포교활동에 힘썼지만 메카에서는 점차 반대자가 늘어나는 상황. 끝내는 무함마드의 목숨마저도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위급한 상황까지 몰리게 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날 밤 겨우겨우 메카를 탈출해 얼마 뒤 메디나(Medina)라는 도시에 도착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이슬람교에서는 헤지라(الهجرة)라고 합니다. 뜻은 성스러운 이동(성천, 聖遷)이라는 뜻인데요. 그리고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날을 기준으로 이슬람력이 시작 되었습니다. 또한 무함마드가 도착한 날을 ‘이슬람 기원 원년’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즉 이슬람력 100년이라고 하면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지 100년이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우후드 전투(Battle of Uhud)를 지휘하는 무함마드
그렇지만 겨우 도착한 메디나도 메카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지 사실상 메디나의 상황도 오십보백보였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무함마드 일행이 쫓기다시피 해서 왔던데다가, 무함마드 한 사람만 왔으면 상관 없었겠지만 이 때 따르는 사람들도 같이 왔다는 것이 문제였죠. 이로 인해 당장 메디나를 유지할 식량과 물자들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함마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메카를 출입하는 큰 상인들을 대상으로 약탈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지하드(جهاد)의 시작이었습니다. 즉 성전은 약탈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말이 되지요. 아무튼 이런 약탈을 시작으로 메디나 내부에 있는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작업도 하였고, 627년에는 메카에서 1만 병력을 이끌고 침공해온 것을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메카의 메디나 침공 1년 뒤인 628년에 무함마드는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고 공표합니다. 이후 1년 뒤에는 자신의 씨족과 화해를 했고, 다시 1년 뒤에는 무슬림 신도의 죽음을 이유로 메디나에서 1만 병력을 이끌고 메카를 침공, 무혈 입성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메카 안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깔끔히 청소한 뒤, 당시 메카에서 제일 큰 성소였던 카바 성소(Kaaba)를 이슬람교의 제1성소로 삼을 것을 선언합니다. 귀족들에게는 이슬람교 안 믿으면 귀족이고 뭐고 없다고 협박(!)을 했구요. 결국 귀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모두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였고 무함마드는 메카와 메디나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즉 종교인 무함마드가 실권을 잡게 됨으로써 정치인 무함마드가 되기도 하였던 순간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4. 아바스 왕조와 이슬람 황금기(Abbasid Caliphate and Islamic Golden Age)
서기 632년 무함마드는 62세의 나이로 메디나에서 죽었습니다. 이후 이슬람교는 칼리파 통치 체제로 되었는데요. 칼리파(Caliphate)는 간단히 말하면 군주와 종교지도자를 하나로 합친 직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칼리파들은 상당히 호전적이고 명군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은지 1년 만에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통일해버렸고, 서기 655년 즉 무함마드 사망 23년 뒤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이어버리는 이슬람 세계를 만들어버렸으니까요.
5명의 칼리파가 활약했던 정통 칼리파 시대를 거쳐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 시절에는 지금의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까지 삼켜버리는 활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그 밑 즉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사실상 이슬람 세력권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이로 인해 훗날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크게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 시절과는 상관 없으니 넘어갈께요~
우마미야 왕조 시절까지 총 19명의 칼리파들이 활약을 했고 그 뒤를 이은 아바스 왕조 부터는 20대 칼리파 시절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슬람의 큰 확장으로 인해서 수니파 시아파 등으로 나뉘어지기도 하는 여러 진통을 겪으면서 우마미야 왕조 시절보다는 영토의 규모가 적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 시절에 문화가 매우 발달하게 되어서 ‘중세 이슬람의 황금 시대’가 개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아바스 왕조 5대 칼리파였던 하룬 알 라시드 시절이었는데요. 이 사람과 그의 아들인 7대 칼리파 알 마문의 선정으로 당시 수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문화 황금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하룬 알 라시드 칼리파는 789년 수도 바그다드에 비툴 히크마. 현재 말로 지혜의 집(The House of wisdom)을 건설하고 이곳에 당시 왕국에서 활약하고 있던 학자들을 모두 배속 시켜 국정에 대한 조언을 맡기는 것과 동시에 법학, 시, 수학, 과학, 음악, 화학, 천문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등 당시 학문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은 남김없이 불러들여 지혜의 집에서 마음껏 연구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바그다드에는 언제나 학자들의 연구가 끊이지 않았고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피타고라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이 저술한 기록들을 아랍어로 번역을 한 뒤 지혜의 집에 보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숫자 0의 개념과 아유르베다 의학 등을 수입하였고, 중국에서는 종이‧비단‧도자기 제조 기술 등을 습득하였구요. 칼리파의 선정에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하고 궁정에서도 조선 세종의 집현전처럼 학자들이 국정에 이로운 조언만 계속해주니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지사. 왕국은 날이 갈수록 부강해졌고, 수도 바그다드는 당시 가장 화려한 도시로써 번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인 알 마문의 경우에는 이런 지혜의 집을 좀 더 활성화 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먼저 이슬람 법률을 제정한 뒤 이슬람 계통 중 하나인 수니파의 법학을 정립하는데 성공하였고, 수도 바그다드에 수많은 번역가들을 불러들여 아버지가 진행했었던 고대의 모든 자료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궁정과 지혜의 집에만 있는 학자들이 한 곳에서만 틀어박혀 연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고, 종교‧사랑 등 어떤 주제로써도 마음 편하게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습니다.
여기에 알 마문은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능력만 있다면 무슬림만이 아니라 기독교인, 유대인, 조로아스터교인까지들도 모두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냥 대놓고 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말해도 처벌 받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이슬람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유클리드 덕후로써도 유명했는데요. 꿈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서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나 뭐라나~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서 나오는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The Great library of Alexandria)
알 마문은 지혜의 집을 더욱 확장 시켜 그 동안 아랍어로 번역된 모든 책들을 지혜의 집 내부 도서관에 보관을 하고 학자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지시했는데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번역한 장서가 대단히 많았다는 반증이겠죠. 고대 시절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는 최대 60만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와 이 시절의 세월 차이를 생각하면 책은 더 많았을 것이고 규모도 더 컸을 것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시절에 이렇게 엄청나게 번역한 장서들 덕분에 훗날 유럽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인데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중세 유럽은 ‘종교가 사람을 지배한다.’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모든 것을 기독교와 교황청 등 성직자들이 통제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당시 고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앙이 더 우월하다는 논증을 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대표적인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고대의 문화와 자료들을 모두 배척하는 사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고대 유럽에 있었던 수많은 문화와 기술들 특히 많은 문헌들이 실전이 되고 말았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로마 제국에서 사용하던 수도교(Roman aqueduct)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사람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단언하였고 악마의 기술이다 뭐다 하면서 사실상 버리다시피 했습니다(브라더후드 해보신 분들은 수도교 복구 작업 많이 해보셨을 겁니다ㅎㅎ). 거기다가 로마 제국 시절에 잘만 썼던 콘크리트 기술도 중세를 거치면서 실전이 되었다고 하니 참 아깝네요(이것은 지금도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종교 우위적인 생활로 인해서 문헌들이 많이 실전되었는데 이것을 훗날 역수입해서 라틴어로 번역을 해서 유럽에 고대 문화들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즉 훗날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열리게 되는 학문적 바탕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당시에 유럽에서 라틴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을 하는데도 엄청나게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로마 제국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편찬한 로마법 대전(Corpus Juris Civilis)만 해도 라틴어로 편찬한 법전이었는데 이것을 편찬한 뒤 얼마 되지 않은 이후에도 번역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는 15세기 중반의 경우에는 라틴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더욱 적었을 것입니다.
5. 사마라의 혼란기(The Anarchy at Samarra)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인생. 사람이 만든 나라라는 것도 결국에는 똑같이 궂은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슬람 황금기를 열었던 시절이 지나게 되니 아바스 왕조에 점차 궂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서기 861년부터 870년까지 약 10년 동안 극심한 내부 불안정의 시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발단은 바로 10대 칼리파였던 알 무타와킬의 죽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알 무타와킬은 이슬람 황금기의 마지막 군주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팽창 및 잦은 반란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당시 수도였던 사마라 지역에 많은 건축물을 남기는 업적이 있기는 했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측백나무를 베어서 자신의 궁전 기둥으로 쓰거나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을 궁정에서 추방하고 꿀색 모자와 벨트를 착용하는 등의 차별 정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알 무타와킬은 자식인 알 문타시르의 반란에 의해 식사 중에 칼을 맞아 죽게 되었고, 그 다음날에 칼리파가 술을 마시다가 질식사했다고 발표한 뒤 칼리파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칼리파에 오른 알 문타시르는 당시 이슬람의 다른 계파였던 시아파와도 화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누어집니다), 장군 와시프를 등용, 로마 제국의 국경 지대에 배치를 시켜서 원정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즉위를 했기 때문에 형제들을 찾아가 계승권 포기 각서를 받는 등의 군주권 강화에도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듯 나름 좋은 싹을 보여주는 모습이 있었지만 즉위한지 7개월이 지났을 때 원인 불명의 이유로 급사를 하게 됩니다. 이에 알 무타와킬을 등극 시켰던 튀르크 장군들이 모여서 협의를 한 끝에 알 무스타인을 새로운 칼리파로 받들 것에 합의를 하였지만 수도 사마라에 있던 아랍인 군대가 이것을 거부. 알 무타즈를 지지하면서 봉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사마라의 무기고를 습격해 물자를 확보하고 시가전을 벌였는데 당시 튀르크인 기병이 매우 막강했기 때문에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튀르크 장군들에게 굴복하게 되었고, 옛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총독이 시민들을 설득함으로써 알 무스타인은 칼리파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로마 제국과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시민들의 지하드 요구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고, 865년에는 임금 체불을 참다 못한 튀르크인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라를 탈출해 바그다드로 가게 되었습니다.
칼리파의 바그다드 탈출로 인해서 튀르크 귀족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그다드에 사자를 파견해 알 무스타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수도 사마라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렇지만 알 무스타인은 그동안 밀린 월급은 주겠지만 사마라에는 안 간다고 하였고 튀르크인들의 오만함을 지적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사마라의 귀족들이 단합해 아예 알 무스타인을 칼리파의 자리에서 폐위 시키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알 무스타인에 의해 감금 되어 있던 사람들 중 알 무타즈를 새로운 칼리파로 옹립하기로 결정하였고 칼리파 알 무스타인과 튀르크인들의 대대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제5차 피트나라고 부르는데요. 칼리파 친위 세력과 당시 상당한 군권과 실권을 갖고 있던 튀르크인들이 제대로 붙어버렸기 때문에 그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당연히 아바스 왕조의 국력이 빠르게 소모가 되었지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당시 튀르크인들의 싸움 실력은 엄청났기 때문에 칼리파 쪽의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1년 뒤인 866년에 칼리파가 튀르크인 장군들에게 정식으로 항복을 하였고, 메카‧메디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히자즈 지역으로 은퇴하는 것을 조건으로 양위를 승낙했지만 오히려 바그다드 근처의 와시트에 연금이 되었다가 9개월 뒤에 사마라로 소환되어 가던 도중 칼리파 알 무타즈에게 고용된 암살자들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알 무타즈는 아바스 왕조의 유일한 칼리파가 되기는 했지만 이런 형태의 즉위가 다 그렇듯이 군주의 실권은 거의 없게 되고 옹립한 신하들에게 많은 힘이 쏠리게 되는 것이 사실. 알 무타즈를 옹립한 튀르크인들의 권력이 엄청나게 뻥튀기 되었습니다. 이에 알 무타즈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용병대를 중용해 튀르크인들을 견제하고, 튀르크 장성의 숙청작업을 통해 칼리파의 권위를 올려보려고 했지만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튀르크인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고, 오랜 내전으로 인해서 국가가 초토화 되었기 때문에 바그다드‧사마라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에서도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됩니다. 세금이 없게 되니 군인들에게 지급할 돈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튀르크인들은 다시 한번 엎어버리기로 합니다.
서기 869년. 튀르크 병사들은 들고일어나 칼리파를 체포한 뒤 퇴위문서에 강제 서명을 시킨 후 바로 감옥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에 감옥 안에서 죽어버렸다고 해요. 일설에는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사인은 여전히 분분하다고 합니다. 비록 퇴위를 당했지만 칼리파가 퇴위 당한지 3일 만에 죽어버렸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또 한번 엎어버린 튀르크 병사들은 이번에는 누구를 옹립할까를 논의하다가 알 무흐타디를 지목하게 됩니다. 알 무흐타디는 나름대로 인망이 있었고, 검소하고 신앙심도 깊었습니다. 또한 롤모델이 명군 우마르 2세였기 때문에 내전으로 인해 상처가 깊은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개혁들을 시작하는데요. 당시 궁정 안에 만연했던 사치들을 혁파, 칼리파가 법정에 직접 나가 풍기문란을 잡아 사회적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시민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인심을 얻는 한편, 당시 커질대로 커진 튀르크 장성들의 권력 다툼을 틈타 이들을 모두 숙청해서 칼리파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고도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계획이 튀르크 장병들 귀에 들어가게 되고 이들은 또 다시 한번 엎어버리게 됩니다(그만들 좀 해! 이것들아!). 서기 870년에 군사를 일으켜 4일 뒤에 칼리파 쪽의 병사들을 모두 격파한 뒤 궁전을 포위하고 강제폐위를 시켰던 것이지요. 또한 알 무흐타디를 심하게 고문해서 당시 개혁 정책으로 인해 어느 정도 확충해 놓았던 금고까지 털어버린 다음에 바로 죽여버리게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죽을 때 까지 알 무흐타디의 파이어 에그(!)를 매우 걷어찼다고도 하고(안 되겠소. 찹시다!), 양위를 거부하자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자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기록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폐위 당하는 것에 저항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뒤 그곳을 계속 걷어차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되겠네요. 애고...
아무튼 이번에도 엎어버린 튀르크 장군들은 이번에는 누구를 옹립할까를 논의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있던 만큼 튀르크 장군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칼리파로 옹립하는 것이 편했겠죠. 그래서 10대 칼리파 알 무타와킬의 막내 아들이었던 아흐마드를 알 무타미드로써 칼리파에 추대하기로 합니다. 상당히 유약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합격점을 받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알 무타미드가 즉위한 것으로써 사마라의 혼란기는 종식이 됩니다만 이렇게 나라가 절단이 나게 되면 당연히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 상식. 이집트‧다마스쿠스‧팔레스타인 쪽은 세금을 중앙으로 보내지 않고 자신들이 꿀꺽 함으로써 준 독립을 하게 되었고, 동쪽에서는 사파르 왕조가, 북쪽에서는 자이드파 국가인 알라비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고 남쪽에서는 잔즈 반란 및 카르마트가 극성을 부리게 됩니다. 사실상 수도권이었던 사마라와 바그다드 지역등을 제외하고는 사방에서 준 독립 및 반란이 일어나게 된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미라지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이 시절의 감추어진 존재들이 칼리파 세력이었을지 아니면 튀르크인 세력이었을지가 상당히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양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고대 결사단들을 잡는 형태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애초에 암살단이나 템플 기사단이나 국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ㅎㅎ
6. 천일야화(One Thousand and One Nights)
미라지를 예약 구매하시는 분들에게는 40인의 도적이라는 이름의 특수 퀘스트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40인의 도적을 보니 천일야화에서 나오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으로는 천일야화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미라지의 역사적 시절과는 한참 다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아랍의 문학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 바로 이 천일야화일테니까요.
천일야화의 다른 이름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라고 하지요. 이 책은 셰에라자드라는 재상의 딸과 당시 사산 왕조의 샤한샤였던 샤 리아르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여자혐오가 극한까지 이르러 있었던 샤 리아르는 매일 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뒤 날이 밝으면 바로 그 처녀의 목을 쳐버리는 짓을 3년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나라 전체의 처녀가 씨가 마르게 되었고, 백성들은 알라에게 기도를 올려 저 망할 자식 좀 제발 죽여달라고 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민심이 악화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때 재상의 장녀였던 셰에라자드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아빠. 내가 오늘 밤 샤한샤의 침실로 들어갈께요.”라고요. 당연히 재상은 강하게 반대를 했지만 셰에라자드는 살아날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끝내 들어가게 됩니다. 침실에 들어간 첫날에 셰에라자드는 여동생인 두냐자드도 함께 데려와서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라고 지시합니다. “언니가 샤한샤랑 하룻밤 보낸 뒤 나를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 해. ‘언니가 이야기 하나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알았지?” 두냐자드는 언니의 말을 듣고 언니와 샤한샤가 하룻밤을 보낸 뒤 바로 두 사람의 침실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의외로 샤한샤는 승낙을 해줬고 이때부터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파티가 시작이 되었지요.
셰에라자드는 요즘 말로 밀당을 아주 잘 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잘 하다가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재미있어 지거나 아침이 되었을 때 쯤에는 절단 신공을 발휘해서 다음 날에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쯤에는 “이번 이야기도 좋았지만 다음 이야기는 더 재미있을거에요~”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면서 샤한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1001일이나 계속 되었고 마침내 1002일째 아침이 되어서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자 샤한샤는 “아주 재미있었다~” 라고 하면서 크게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셰에라자드는 샤한샤에게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명의 아들들을 보여주면서 이 이상 처녀들을 죽이는 짓은 그만 해달라고 정식 탄원, 샤한샤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 처녀가 죽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샤한샤에게는 샤 자만이라는 이름의 남동생이 있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되자 감동을 받아 “형이신 샤한샤께서 언니를 아내로 맞이했으니 나는 동생인 두냐자드와 결혼하고 싶소.”라는 내용의 청혼서를 재상집에 정식으로 넣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샤 리아르는 셰에라자드와 샤 자만은 두냐자드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두 커플은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고, 샤 리아르는 지금까지 셰에라자드에게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남김 없이 기록으로 남겨서 황궁의 보물고에 보관을 하도록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셰에라자드가 샤 리아르에게 했던 이야기들 중 몇몇은 현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요.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알라딘 등이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알라딘의 경우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2019년에는 실사 영화로도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렇지만 애초에 왕에게 들려줄 이야기였기 때문에 야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이슬람 우월론에 입각하여 나오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걸러서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각 부분마다 최대한 짧고 많은 내용을 담아서 전달을 하려고 했는데 많은 분들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추석 연휴가 시작이 됩니다. 이번 추석은 6일이나 되는 긴 시간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재미있고 마음 편한 날들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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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잘 읽고 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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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 긴 글을 혼자 다 쓰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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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내도 될 정도 이야기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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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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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이슬람교 서적을 초월 한 수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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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레이 하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 23.09.24 06: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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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 긴 글을 혼자 다 쓰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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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암살단원분들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해서요.^^ | 23.09.24 09: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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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 | 23.09.24 18:5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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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 23.09.28 06: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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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이슬람교 서적을 초월 한 수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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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3.09.28 13: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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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명문 이십니다. | 23.09.28 20: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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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3.09.28 21: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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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23.09.28 21: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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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 23.10.01 13: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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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우리나라에도 빨리 그런 시스템이 들어와야 하는데 참... 아쉽네요. | 23.10.06 17:4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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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감사드려요~^^ | 23.10.05 23:4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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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저도 곧 플레이 해보려고요~^^ | 23.10.07 23:2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