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라오어 글을 읽게 되어서 그런지 자꾸 글을 끄적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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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어 파트2 논쟁을 2년째 보면서 반대의 이유를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쉽게 하나로 정리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가 많으니까요. 조엘의 안타까운 빠른 퇴장 과정부터 게임이 보여주는 수위 높은 폭력성과 잔혹함, 소위 이쁘지 않은 남성화 된 여성 주인공. 그리고 게임 곳곳에서 드러나는 PC적 요소들까지. 그리고 안타깝지만 다른 콘솔 사용자들의 악의적인 흠집 내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어쨌든 이 다양한 이유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특성까지 더해져 재생산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다시 해보면 애초에 라오어는 이 모두를 만족하려고 했을까요? 혹은 단순히 닐 드럭만이 예술가병에 걸렸기 때문에 대중의 기대와 다른 게임을 만들려고 했을까요? 저런 이런 대답들이 상당히 순진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전략을 단순히 인격화된 개인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도움이 될 뿐입니다. 당장 수천 억원의 돈을 들여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 AAA급 규모의 게임 회사들은 철저하게 상업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라오어를 애초에 성인 대상으로 기획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이 게임에 우열이 있는 것처럼 오해될까 걱정되지만, 그보다 게임의 사용자 층을 확장하겠다는 소니의 사업 전략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는 수익화라는 콘솔 시장이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에 대한 소니의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MS는 게임패스라는 국독제를 통해 클라우드와 멀티플랫폼 전략으로 수익화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MS의 전략만 보면 콘솔의 미래는 어두워보입니다. MS의 미래에는 TV만 인터넷에 연결하면 게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게임패스의 퍼스트파티 게임은 대부분 플레이 시간이 긴 RPG나 시뮬레이션 장르로 개발됩니다. MS도 주로 그런 개발사를 인수하죠. MS가 소니처럼 액션 어드벤처를 많이 만들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MS는 사용자들이 독점게임을 하며 구독제를 통해 수백시간씩 게임을 하길 원할 겁니다. 적어도 제가 볼 때 게임패스는 헤비 게이머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소니는 콘솔과 독점 게임의 성능을 강조하며 플랫폼의 락인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라이브 게임들 출시 이후 수익화 전략이 어떨지는 봐야겠지요) 이 게임을 하려면 콘솔을 사야 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전히 패키지 판매를 주력하기 때문입니다.(PC판매도 결국 소니에게는 패키지 판매가 중요합니다.) 게임 시간이 긴 게임보다는 짧고 강렬하고 밀도 높은 게임이 사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소니는 몰입과 경험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는 액션 어드벤처만한 장르가 없죠. 인터렉티브 무비도 상대적으로 소니가 좋아하는 장르 같습니다. 소니가 인수하는 회사들은 주로 액션과 비주얼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소니가 사용자층을 확장하겠다는 방향에서 라오어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닌텐도가 캐주얼한 게임을, MS가 구독제를 통한 헤비게이머 위주로 시장을 형성할 때 상용자층의 확대는 소니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소니가 상대적으로 다양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런 상업적 고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C적 요소나 다양성은 이미 너무나 세계적 흐름이긴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진 콘솔 사용자에 맞는 게임을 출시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지요.
같은 너티독의 게임이지만 언차티드 시리즈와 라오어의 시리즈가 기대하는 사용자는 많이 다릅니다. 언차티드가 헐리우드 같은 오락적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라오어를 언챠티드 같은 즐거움을 기대하며 플레이하지는 않죠. 언차티드는 누구나 좋아할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만 라오어 시리즈는 꼭 그런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챠티드가 마블 같은 게임이라면 라오어는 마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게임일지 모릅니다.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겁니다.
라오어는 기존의 게임과는 표현방식도 많이 다릅니다. 복선과 상징도 많고 분명 인물의 서사도 대사만으로 유추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인물의 표정이나 성격에 따른 역설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인물의 감정을 이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출들이 모여 이야기의 깊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모든 내용을 말로 설명하면 얼마나 영상이 유치해지는지 잘 아실 겁니다)
반대로 이런 이유에서 자막을 주로 봐야 하는 국내에서는 화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에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는거 같습니다. 사실 영화만 해도 자막은 국내 팬들이 주로 영상언어(표현양식)보다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처음 질문에서처럼 라오어는 누구를 위한 게임이었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인가보다 라오어에 대한 비판에 이 질문 자체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라오어가 즐겁지 않았다면 아마 이 게임은 당신을 위한 게임이 아닌 겁니다. 그럼에도 라오어2가 인생 게임인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이 라오어에는 있을테니까요. 패키지 판매량도 소니가 기대한만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라오어로 인해 새롭게 게임의 매력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단순히 패키지 판매량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몇 해 전 미드소마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불편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 그 영화가 참 좋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등장인물의 외모가 매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인물의 결점과 서사가 가진 공감대가 매력이 되기도 합니다. 인디게임 같은 참신한 기획이나 독특할 설정이 매력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 게임이 싫은 이유는 무수히 많을 겁니다. 모두 이해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여전히 당신이 좋아할 게임이 많고, 이 게임은 당신을 위해 기획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