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 만 얘기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심심할 것 같아서 아이패드 외에도 그 이전에 썼던 디지털 장비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겸사겸사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용이 길어질 것 같군요.
아무튼 드로잉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은 아니고 취미생활로요.
어릴 때부터 오에카키 게시판 등지에서 낙서하면서 놀았으니 많이 오래된 취미긴 한데(실력은 안 늘었지만...)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라파이어 쓰고 돈 좀 생겼을 땐 인튜어스도 쓰고 그랬지만 당시엔 좀 더 아니메 그림체에 더 가까웠습니다. 타블렛을 사놓고도 오에카키 낙서용으로 많이 쓰고 큰 작업 수준으로 한 건 손에 꼽을 정도긴 하더랍니다만.
그러다가 20대 후반쯤 들어가서 그림의 특성이 슬슬 잡히기 작했습니다. 한동안 A4용지랑 제트스트림 0.5mm짜릴 끼고 살았는데 그 시기에 좀 많은 부분들이 변했던 것 같네요.
2010년 즈음부터 거의 2016년까지 작업방식은 볼펜에 종이로 그리고 흑백으로 스캔한 뒤 흰 영역을 날리고 채색하는 방법을 쓰다가 어느 시점부턴 귀찮아서 폰카로 찍고 대충 채색하는 짓을 하게 됩니다.
사실상 이 방법은 2016년 말쯤 끝나게 됩니다(바로 위 세 그림).
물리적으로 보존하는 것도 귀찮아졌고 무엇보다 한 번 그리면 그걸로 끝이라 나중에 보면 참 마음에 안 들 경우가 많았거든요.
물론 디지털 드로잉에 대한 욕망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2000년도 말 시점엔 화면이 회전하고 와콤 스타일러스를 지원하는 TPC들의 가격이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엔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중고로 싸게 풀린 것들을 2013년이 지나서야 구매하게 됩니다.
후지쯔 T2010과 레노버 씽크패드 X200T. 두 기종 모두 1280x800 해상도, 스위블 액정, 와콤 스타일러스를 지원하는 기종들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저전력 CPU를 사용하던 관계로 본격적인 작업은 거의 하지 못한 케이스. 결국 둘 다 손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Cube i7 Stylus입니다. 2015년에 할인 이벤트가 떠서 처음으로 알리 익스프레스를 쓰게 된 계기가 됐던 제품.
이 물건의 가장 중요한 점은 CPU로 베이트레일/체리트레일 아톰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코어 M-5Y10C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4GB 램은 당시로선 크게 나쁘진 않았고 64GB 스토리지는 그나마 eMMC는 아니라서 참을 만했던 기억이 있군요.
뭐 그걸로 그림을 몇번 그리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결국 팔았습니다. 16:9 화면비를 원래부터 좋아하지도 않았고, 특히 내부의 마이크나 스피커, 부착형 키보드의 자성 때문인지 외곽부분의 오차나 스타일러스 인식이 안 되는 문제에 상당히 스트레스였습니다. 윈도우 10의 팜 리젝션 기능도 썩 좋지 않았었고요. 비슷한 사양대비 가장 싸면서 와콤 호환 디지타이저라는 게 그나마 장점이었던 기기.
그렇게 살살 염증을 느끼던 차에 2015년의 연말을 맞아 나를 위한 선물로 레노버 아이디어패드 믹스 700을 샀었습니다만...
화면비도 3:2라 마음에 들었고 6세대 코어 M이었고 8GB 램에 128GB 스토리지 등등... 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AES 스타일러스를 사용했고 그나마도 동시에 발매되지 않아 한참 뒤에야 호환되는 HP제 스타일러스를 구입해서 테스트를 한 결과는...
뭐 처참했습니다. 지터링도 심하고 감도조차 이건 도무지 그림 그릴 용도는 아니라서 때려치우고 동영상 머신으로 쓰다가 액정 부셔먹고 여차저차 하다 1/3 가격으로 팔아버린 기억이.
물론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었고 한동안 다른 대체품을 찾다 보니 레노버 씽크패드 헬릭스 2세대(오른쪽)가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이 시점엔 중고를 사는 게 답이라서 중고로 샀습니다만 이전에 쓰던 분이 매우 깔끔하게 쓰셔서 괜찮았지요.
헬릭스 2세대는 코어M 5Y71, 8GB 램, 256GB의 스토리지, 그리고 EMR 방식의 와콤 스타일러스를 사용합니다. 사실상 이 기종이 레노버의 마지막 와콤 EMR 기종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기기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100만 원 가까이 주고 산 믹스 700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죠. 기기의 마감도 훌륭하고 튼튼하고... 키보드 역시 Ultranav 버전이라 활용도가 좋았고 키보드에 내장된 배터리, 스피커, 부가 포트 등의 이점이 있었습니다만...
이 경우도 역시나 16:9의 화면비, 윈도우 10의 나쁜 팜 리젝션, 결정적으로 강화유리가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 스타일러스가 닿는 곳과 액정끼리 단차가 꽤 크게 나기 때문에 펜 기울기에 따라 오차가 심하게 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뭐 적어도 Cube i7처럼 외곽오차는 없었습니다만. 이것도 결국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군요. 다 좋았는데 드로잉하긴 영 아니어서 아쉬웠던 기기.
헬릭스 2에 크게 아쉬움을 느끼다가 발견한 게 바이오 Z 캔버스(12.3인치)입니다.
이 물건은 애초에 아티스트를 타겟으로 한 모델이라 홍보 영상만 보고 대체 어떨까 궁금했지만 소니는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에다가 노트북 파트는 바이오로 분사해 버린 마당이라 국내에서 구할 순 없었으나... 구매대행 업체에서 리퍼비시 모델을 반가격에 후려서 파는 걸 보고 산 기억이 나는군요.
매우 훌륭한 기기였습니다. Core i7-4770HQ, Iris Pro 5200, 16GB 램, 512 NVMe 스토리지 모델은 당시 동일한 용도로 나온 신티크 컴패니언 시리즈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뛰어난 스펙이었죠. 기기 해상도도 2560x1704, 3:2 비율로 마음에 들었고 RF로 연결되는 키보드는 필요에 따라 옆에 놔두고 사용할 수 있어서 드로잉에 전혀 방해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일러스는 엔트리그 기반이고 당연하게도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 서피스 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반대로 바이오의 펜을 서피스에 쓸 수도 있었죠). MPP 2세대가 집안 어딘가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바이오 Z 캔버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스탠드가 매우 예술적이라는 겁니다.
영상처럼 원하는 각도로 조정이 가능함은 물론 그 상태로 놔두어도 계속 고정이 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하며 사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헬릭스 2세대보단 당연히 만족스럽다 못해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만... 잘 쓰다가 지하철에서 자빠져서 액정 깨먹고(...) 8GB 모델을 중고로 사서 액정교체를 시도했다가 그것도 날려먹고(...?) 결국 세 번째 구입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2017년에 벌인 가장 미친 짓인 듯. 마지막으로 산 것도 말년을 곱게 넘어가지 못하고 괜히 뜯었다가 화면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상태로 얼마 전 싼값에 팔려나가고 말았읍니다... 8GB짜린 간이 서버로 굴리고 있긴 합니다만.
근데 기기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이걸로 완성한 게 없다시피 한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군요.
2018년엔 Zbook X2 G4(오른쪽)를 사는 미친짓을 하게 됩니다. 4K 화면, i7-8550u, 32GB 램, 512GB NVMe 스토리지, 넌글레어 4K 화면, 와콤 EMR 스타일러스, 탈착식 키보드 등... 이것 역시 바이오 Z 캔버스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이긴 합니다만 명색이 워크스테이션이라 나름 쿼드로랍시고 들어가긴 했는데... 생각만큼 괜찮은 성능은 아니었고요. 한동안 잘 쓰긴 했습니다. 일단 성능이 깡패기도 했고...
그런데 이 시기면 이미 아이패드 6세대/애플펜슬까지 구입한 상태였습니다만 드로잉의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군요. 그렇게 한 1년쯤 Zbook을 끼고 다녔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무겁습니다(...). 키보드까지 결합한 본체가 1.6kg고 거기에 어댑터는 필수일 정도로 배터리 소모가 빠른 데다가 접지가 부실한 카페에선 지터링까지 생기니 추가 연장용 콘센트를 챙기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좋긴 했지만 저한테는 매우 과분했던 물건.
그러다 아이패드를 사설수리 받은 뒤에 팔아치워 버린 뒤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샀고, 여기서부터 드로잉 환경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미니 5에 로지텍 크레용을 써서 그리다 보니 생각보다 손에 잘 맞는다고 느껴버렸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PC에서 쓰던 클립 스튜디오가 앱스토어에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뭐... 다음 단계는 뻔하게도 아이패드 프로까지 사게 되는 거였죠.
덕분에 탄력을 받아 이것저것 더 시도하게 됐지만 지나친 디테일에 대한 집착 때문에 2019년까진 썩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볼펜으로는 정말 되는대로 그렸는데 디지털로 시작하게 되면 계속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을 고치다 보니 그림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가버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직도 타협이 잘 안 되는 것 같군요.
아참, 아이패드 프로를 산 뒤로 Zbook 역시 팔아버렸습니다. 여기저기 상태가 요상해져서 반값에 팔아치웠군요. 뭐 아이패드 프로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시원하게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진작에 아이패드 프로를 샀어야 했어.
해서 아이패드 프로 3인치 12.9인치로 안착. 드로잉에 어떤 요소도 방해하지 않는 매우 편안한 느낌이라 매우 만족합니다. 64GB는 좀 아쉬워서 256GB를 샀지만 다음 세대를 살 거라면 이젠 128GB가 기본이라 그걸 사겠죠. 미디어 플레이어의 역할은 미니 5가 하고 있다 보니 그림만 그리기엔 저장공간이 허허벌판 수준으로 남더군요(애초에 그린 것도 적은 탓이 있지만...). 그렇게 x86 환경을 고집하다 결국 아이패드로 모든 작업을 이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클립스튜디오도 연간 구독도 잊지 않고 했고요. 다만 2019년까지도 의욕이 크게 생기지 않아서 허송세월을 보내긴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올해부터는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일단 잡고 있던 그림은 끝까지 그리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대충 이런 짓의 연속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림 하나를 붙들고 있느라 7개월이 걸렸다는 사실이지만요. 그리는 과정을 라이브도 하고 녹화도 해봤는데 2월 초에 손풀기로 시작한 게 커지고 커지다 보니 9월쯤 돼서야 완성되었습니다. 평일에도 그리고 휴일엔 몇 시간씩 선만 그었던 시절. 7700x15800px의 거대한 그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그림들은 낮은 해상도에서 시작해서 설렁설렁 그렸습니다.
프로크리에이트는 그다지 손에 맞지 않아 처음에 잠깐 쓰다 말았는데 손그림 느낌 내기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두 번 낙서도 해봤고요.
크리스마스 기념 프로크리에이트로 라이브(6시간)
이건 11월부터 붙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2020년을 넘기고 말았군요. 어쨌든 완성하기엔... 여전히 멀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 얘기였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2021년 보내시길...
고장난 바이오 Z 캔버스들 중 하나는 좋은 아이패드용 거치대가 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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