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게임은 디아블로4.
일 안 하기로 유명한 블리자드의 오랜만의 신작이다.
* 블리자드라는 회사에 대한 감상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블리자드는 모든 것을 고려하는 걸 좋아하는, 굉장히 대중적인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는 거다.
아마도 와우, 그 중에서도 리치왕의 분노가 대히트를 치면서 회사의 성격이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의 와우는 폭발적인 유저 베이스에 비해 하드한 게임이었고 상위 컨텐츠로 갈 수록 더욱 가차 없어지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리치왕의 분노는 난이도를 낮추고, 낮은 단계에서 상위 단계로 친절하게 유도했다.
예전에는 "뭐? 이번에 나온 레이드 던전 클리어율이 2% 밖에 안 된다고? 응 ㅈ까." 이랬다면
리치왕부터는 "뭐? 이전에 레이드가 너무 어려워서 유저들이 파밍이 잘 안 됐다고? 여기 존나 짧고 쉽고 템 퍼주는 레이드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됐다.
언젠가부터는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는 가혹하고 라이트 게이머에게만 좋은 게임사가 되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 뭐 암튼.
* 이는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디아블로 역시 마찬가지다.
1편부터 지금까지, 마우스로 하나로만 게임이 가능할 정도로 쉽고 단순하다.
그것이 디아블로가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게임이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다.
* 그것이 1편, 2편, 3편, 모바일, 그리고 이제 4편이다.
다섯 번째다.
모두 고려한다는 건 말로만 들으면 좋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일장일단이 있다.
마냥 장점만 있지는 않다.
모든 것을 고려하다 보면 모난 곳을 계속 깎게 되는데, 그리하여 완성되는 건 동그라미다.
어떤 장르, 어떤 성격의 게임을 내든 결국 동그라미일 뿐이다.
이번 디아4의 형태가 그러하다.
뭔가 콕 찝어서 맛탱이가 갔다고 할 만한 부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장점도 없는 그런 물건이 나와 버렸다.
그래서 캠페인 엔딩 본지는 꽤 됐지만 할 말이 없어서 글을 안 쓰고 있었다.
* 우선 그래픽은 사양대비 제법 괜찮은 편이다.
리얼하면서도 손으로 비빈 듯한 그런 오묘한 느낌이 있다.
똑같이 리얼톤인 디아2 레저렉션과는 확실히 맛이 다르다.
* 문제는 뻔하다는 거다.
이미 옛날 옛적에 다크소울이 다크 판타지의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
이후에 나온 다크한 판타지 게임들은 죄다 다크소울을 따라할 정도.
아무리 시점이 다르다고는 해도 디아4는 다크소울이 보여준 비주얼에 준하지도, 뛰어넘지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지도 못 했다.
그냥 어둡고 눅눅하고, 뭣 하면 피 좀 발라주고.
인상 깊은 것이라고는 물을 먹어서 질척해진 흙바닥의 질감 밖에 없다.
* 오픈월드의 도입은 몇 안 되는 명백한 실패 사례다.
아무런 이점이 없다.
게임 속도만 발목 잡는다.
애초에 디아는 북작북작 몬스터를 때려 잡아서 템을 뽑아내고,
다 잡았으면 다른 곳으로 포탈 타고 이동해서 또 복작복작 몬스터를 때려 잡고,
인벤이 다 차면 포탈로 마을 좀 갔다 오고.
이걸 반복하는 성질 급한 게임이다.
* 하지만 오픈월드의 매력은 이동에 있다.
오픈월드를 도입하고 그 매력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디아만의 속도감이 저해되기 마련.
지금은 패치 됐지만 악몽 던전까지 일일이 달려가게 만든 게 그 일례다.
서로 양립하기 힘든 걸 갖다 붙여놨다는 소리다.
수집해야 하는 약초나 광물, 릴리트 제단은 대부분 벽쪽에 있어서 늘 벽을 비비면서 이동하는 게 개그 포인트다.
와중에 벽과 길 사이의 구분이 잘 안 가서 버벅이는 건 덤이다.
유저들에게 오픈월드 디아의 맛을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선택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패치 돼서 사라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픈월드 도입은 그저 마케팅과 탈것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이라는 꼬리표 밖에 남지 않겠지.
* 게임에는 레벨 스케일링이 도입 되어 있는데, 이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디아4는 일반, 베테랑, 악몽 이런 식으로 난이도가 있는데 적들이 계속 날 따라서 강해지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난이도를 올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최근에 다시 게임을 하면서 바바를 하고 있는데.
베테랑으로 난이도를 올렸다가 너무 아파서 다시 난이도를 낮췄다.
그런데 시즌 여정에서는 악몽 난이도를 가라면서 보채길래 혼란을 느꼈다.
당장 베테랑도 힘든데 악몽 가라니?
* 디아4의 오픈월드나 필드 이벤트, 레벨 스케일링, 전작보다 간략화 된 난이도 구분 및 난이도 상승 강제 등등.
이것들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세팅된 느낌이 짙은데.
그건 바로 온라인 기능이다.
게임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파티를 맺거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모든 요소들이 온라인 협력 기능을 위해 조정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이모탈이 먼저 시작했고 웃기게도 더 잘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쪽은 너무 강제한다, 경쟁까지 유도한다고 해서 욕을 먹고 있는데.
디아4는 아마 그 부분까지도 고려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온라인 기능은 오히려 이모탈보다 밋밋하다.
* 오히려 필드 보스나 던전은 이모탈이 더 나았다.
특히 이모탈의 필드 보스인 핏빛 장미는 ㅈ같으면서도 재밌는, 온라인 게임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필드 보스였다.
이모탈 던전은 와우처럼 기믹형인데,
뗏목으로 강물을 탄다거나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에서 싸우거나, 거대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등 다이나믹한 구성을 보여준다.
디아4에는 왜 그런 던전을 도입 안 한 건지 모르겠다.
던전이 양산형 복붙인 게 온라인 협력을 위한 건가? 아닐 텐데.
* 디아4는 어디로 보나 어중간 하다.
가볍고 빠르고 간편함은 이모탈이 가져갔고, 여기서 더 확장해봐야 이미 와우가 있다.
그 사이의 중간 지점을 노리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디아는 와우를 꿈꾸는 걸까?
그럼 대체 디아스러움이라는 건 뭘까?
그런 건 허상인가?
디아4는 본질에 대한 혼란 상태에 빠져버린 것 같다.
* 캠페인은 옛날에 마쳤고 최근에 시즌을 달리는 중이긴 한데.
유비소프트 게임 이후 정말 오랜만에 별로 할 말이 없는 작품이었다.
뭔가 진득하게 설명하고픈 구석이 없다.
감상이 뚜렷하게 남질 않는다.
평소에 내가 집요하게 파고들던 스토리도 언급이 없는 이유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판을 하기에는 또... ... 뾰족하게 별로라고 할 만한 부분도 없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액션성이니 조합이니 뭐니 구체적으로 요목조목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핵 앤 슬래시라는 게 워낙 단순한 장르니까.
단순한 장르의 한계라고 봐야겠지.
메탈 슬러그 같은 거다.
메탈 슬러그는 그냥 쏘고 달리고 점프하는 게 전부인 게임이다.
시리즈가 점점 발전하며 3편에서 고점을 찍었지만 이후로는 재미가 없어진다.
이후 시리즈는 전작들보다 못 만든 것도 있지만, 쏘고 달리는 런 앤 건 장르 자체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변화를 크게 주면 애초에 그 장르가 아니게 되고, 변화를 적게 주면 지겨워진다.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질 못 했다.
블리자드는 그 한계를 깰 생각조차 없어 보이긴 하다만.
* 2편도 고려하고
3편도 고려하고
이모탈도 고려하고
와우도 고려하고
뇌 없는 사람도 고려하고
뇌가 뛰어난 사람도 고려하고
팔이 하나인 사람도 고려하고
팔이 네 개인 사람도 고려하고
남자도 고려하고
여자도 고려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무언가도 고려한다.
그 모든 걸 고려해서 나온 게 완벽한 존재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모든 걸 고려한다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맥락이 같으니까.
블쟈가 꿈꾸던 완전무결한 이상향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 특징.
<모든 것이자 아무 것도 아닌 오픈월드 핵 앤 슬래시.>
* 장점.
노가다 거리가 많아서 시간 죽이기엔 최고.
사양대비 좋은 그래픽 퀄리티.
팔 한 짝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쉽고 단순한 플레이.
귀에 쏙쏙 박히는 더빙.
계속해서 추가되는 시즌 컨텐츠.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치 않는, 부담 없는 게임성.
올드팬이면 반가울 팬서비스 요소가 많음.
* 단점.
느리고 지루해진 게임성.
번거로워진 세팅 방식.
길과 벽의 구분이 모호함.
도리어 재미를 저해하는 오픈월드.
2 맛도 아니고 3 맛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맛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맛.
짜증날 정도로 많은 보스 피통.
꾸미기 아이템이 사고 싶지 않게 생겼고 티도 별로 안 남.
네트워크 렉.
3편의 후속작이면서 스토리적으로는 묘하게 거리감을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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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23.10.25 15:5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