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한 새벽입니다, 음갤 여러분.
루리웹은 오래전에 제법했지만 음갤에 들어오는 건 7대 죄악 순례말고는 처음이군요.
사실 요즘 고대 레시피를 따라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올리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건 로마인들의 만능 액젓 가룸입니다.
(하필 한국의 패드립과 비슷해서 한국에선 드립칠 때나 자주 듣는 느억맘 소스)
생선을 이용한 발효 소스인 액젓은 동양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실제로 근대 서양인들은 액젓을 수입해 사치품으로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역사적으로 보면 아이러니한 것이 많은 서양 국가들의 아버지 나라 로마에서는 액젓이 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룸이죠.
가룸이라 불린 액젓은 각종 향신료를 암포라(로마 옹기) 바닥에 깔고 대량의 소금, 기름 많은 생선을 '내장을 냅두고' 층마다 쌓고 매일 햇볕속에서 휘저으며 만듭니다.
로마인들은 이 가룸을 약방의 감초, 한국의 마늘처럼 거의 모든 음식에 조금이라도 사용했고, 액젓을 거른 가룸 찌꺼기도 각종 요리에 대량으로 소비했죠.
그런데 제조 과정에서 내장을 냅둔다는 말을 강조했단 점에서 알 수 있지만 뚜껑을 열고 휘적거리면 진짜 비릿내가 작렬해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역합니다.
로마인들도 완성품만 즐겼지 발효 중의 역한 비린내는 싫어서 가룸 제작소를 도시에서 적당히 먼 곳에 가룸 젓는 노예 숙소와 함께 몰아넣었죠.
다만 완성된 가룸의 냄새도 원래 가룸을 먹던 로마인과 그리스인만 적응할 수 있었고 로마화되던 다른 민족들은 딴 건 다 받아들여도 가룸만큼은 못 받아들일 정도로 싫어했습니다.
중세 초 서유럽의 게르만계 대주교가 동로마에 방문했을 때 음식에서 가룸 비린내가 진동해서 황제가 연 만찬에서 식사를 못한다고 기록했을 정도.
게다가 시간이 지나며 동로마에서도 murri라는 곡물장, 그러니까 로마식 간장이 유행하여 가룸은 로마가 망하기도 전에 로마인의 식탁에서 밀려났습니다.
저도 이런 걸 만들었다가는 집에서 추방될 수 있으니 몸을 사렸는데 냉장고 정리 중 냉동고의 말라비틀어진 조기들이 무진장 많이 나와서 한 번 시도해봤습니다.
일단 진짜 고대 레시피 그대로 구현할 생각은 없어서 향신료 배합은 사프란 정향 고수 타라곤 팔각을 모두 같은 비율로 혼합해 바닥에 옅게 깔고 육두구 7.5g 검은 봉다리에 담긴 고추가루 5에 흑마늘 20쪽 튀긴 적양파 2개를 레몬 필 10개분과 버무려 뿌렸습니디.
애초에 가룸은 지역 입맛에 맞춰 많은 바리에이션이 있었으니 뭐 로마인들도 그닥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겁니다.
소금은 맛대가리 없고 딱히 전통도 아니며 생산 과정이 수상한 천일염 대신 즌통 소금인 자염을 공수해서 썼습니다.
냉동고의 조기들은 로마인들이 그랬듯이 용기에 대충 씻고 투하.
뚜껑 열고 햇볕 숙성하는 과정은 이웃들의 분노를 부를 것 같아서 유리로 된 숙성 용기를 당분간 쓰는 거로 타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위의 자세한 제조 과정은 사진 찍는 걸 잊어서 일주일이 지나 조기 쉐이크가 됐을 때 첫사진을 찍었습니다. 볼 때마다 조기대가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서 성호를 자주 그어줍니다.
이걸 2달간 햇볕을 쬐며 휘적, 옹기에 옮기고 2달 또 휘적한 결과....
(작품명: 뒤틀린 조기들의 응어리진 비명소리)
구글에 치면 나오는 실제 가룸 재현품들과 거의 똑같은 괴상망측한 비주얼의 가룸이 완성되었습니다.
비주얼보다 놀라운 건 고작 4개월 숙성했는데 비린내가 일반적인 액젓보다 적고 향신료들이 조기들의 원망과 함께 융합되어 아마도 레몬 필에서 비롯된 시트러스 풍의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향의 유혹에 넘어가 조금만 먹어봤는데 짭조름하면서 강한 감칠맛과 약한 비린맛이 느껴지는 점은 일반 액젓과 큰 차이가 없지만 떠오른 생선기름에 베인 묵직한 사프란 향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향신료들의 향이 뇌리에서 한참을 떠나지 않네요.
뭐 레시피에 사용된 향신료의 값을 생각하면 이 가룸은 로마인들의 식탁을 차지할 필수품보단 원로들의 만찬 자리에 올라갈 급의 가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치고 생긴 게 너무 끔찍할 뿐.
여하튼 당분간 이놈을 곱게 갈아서 찌꺼기를 정제한 이후 여러 요리에 정제물과 찌꺼기를 써보면서 가룸의 실사용 후기를 축적하겠습니다.
모두 좋은 화요일 보내요.
음. 슬슬 가룸 요리 후기들을 올릴까했는데 일련의 사태를 보니 아무래도 복귀한 시점이 안 좋았군요. 벌써 떠나야 한다니. 후기는 동명의 아이디로 뉴리넷에 올리겠습니다. 기대해주셨던 분들은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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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당분간 이놈을 곱게 갈아서 찌꺼기를 정제한 이후 여러 요리에 정제물과 찌꺼기를 써보면서 가룸의 실사용 후기를 축적하겠습니다. // 실사용 후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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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만든 한국사람이있다니 놀랍네요 진짜궁금했는데 완제품도 거의안파는거같더라구요 유럽 막 찾아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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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당분간 이놈을 곱게 갈아서 찌꺼기를 정제한 이후 여러 요리에 정제물과 찌꺼기를 써보면서 가룸의 실사용 후기를 축적하겠습니다. // 실사용 후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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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만든 한국사람이있다니 놀랍네요 진짜궁금했는데 완제품도 거의안파는거같더라구요 유럽 막 찾아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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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수르수트뢰밍 생각해보면...ㄷㄷㄷ | 22.06.22 17: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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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람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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