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가을에 너를 처음 만났다.
너를 처음 보러 갈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고양이를 들이기로 하고, 여기저기 웹사이트를 보던 아내가 너의 사진을 보여주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너를 보러 갔지.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동구 어느 샵에서 처음 만난 너는 사진 속의 너보다 조금 더 보잘 것 없었고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우리를 보며 앵앵 울어대던 너를 기억한다. 너의 형제와 같이 있었지. 우린 형제 중 어느 아이를 데려갈지 고민했고, 결국 처음 결정한 대로 너를 데려왔다.
그런 너는 막 신혼이던 우리 집의, 그리고 내 아내의 첫 고양이가 되었다.
여타의 고양이가 그렇지만, 너 역시도 어릴 때는 장난을 좋아했다. 깨물고, 뜯고, 올라가고. 온 집안은 너의 놀이터가 되었고 전선과 휴지는 그렇게 너의 장난감이 되어갔다.
그렇게 물건이 상하면 우리는 너에게 화를 내곤 했었지.
조금 더 커진 너는 어릴 때의 너보다 훨씬 얌전했고, 어른스러웠다. 침대에 올라오는 것을 즐겼고, 안기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늘 내 아내의 곁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고양이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그날, 우리가 없는 사이에 너는 정말 엄청난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그 뒤로 계속 방광염에 시달리고, 방광염을 조심해가며 너에게 맛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처방사료를 지금까지 먹어왔지.
그 뒤의 너는 예전보다 소심해졌고, 안기는 것을 싫어하고, 낮을 가리고, 사람 곁에 있는 것을 예전보다 꺼려하게 되었다.
몇 번 이사하는 동안 힘들었을 너를 생각해본다. 소란스러운 거리와 비좁은 이동장을 너는 무척 싫어했다. 이동장을 쓸 때는 네가 아파서, 아니면 털이 너무 길어져 병원을 데려갈 때였고 그렇게 이동장을 꺼내면 너는 늘 도망을 가곤 했다.
방광염으로 세 번의 입원, 털은 길어져 매년 잘라줘야 털이 덜 날리고, 자주 토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일 년에 몇 번씩 설사를 하고, 바닥에는 늘 약간씩의 모래가 깔려 신발과 양말에 섞이고, 옷마다 털이 붙어 날리는 모습과 세수하고 수건으로 닦을 때 입과 피부에 고양이털이 걸릴 때면 ‘고양이가 없었으면’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날, 2011년 10월의 어느 날. 네가 우리 집의 고양이가 된 것처럼 우리 또한 너의 가족이 되어 버린 것을. 그렇게 떼어 버리기엔 우리는 너무 오래 함께 해왔고, 우리는 네게 정이 들었다. 네가 싫어하는 끌어안기, 발톱 깎기에 화가 나더라도 곧 우리에게 와서 몸을 부비던 너를 보면 너 또한 우리에게 정이 들었던 것 같다.
작년, 너를 데려간 첫 병원에서 시한부 처방을 받았던 그때. 우린 더 이상 너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울었다. 비싼 약값, 약을 처방해도 완치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수의사의 진단. 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자며 데려간 다른 병원에서 너의 완치가능성을 찾았을 때 우린 환호했다. 역시 아직 우리가 헤어지기는 너무 빨랐다며.
수술을 마친 너는 건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살이 점점 찌고,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평소대로 행동하고, 이전보다 더 친근하게 우리에게 몸을 부비고,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네 나름대로의 이별 준비가 아니었을까.
올해 여름, 네가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아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너는 줄곧 아파왔지. 어쩌면 너무 안일했을까. 우리는 병원을 바꾸고 약을 먹으며 곧 좋아지는 너를 보고 안심했던 것 같다.
바로 얼마 전, 이제 다 회복된 것처럼 보이던 네 모습이 생각난다. 예전 아파지기 전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시끄럽게 말을 걸고, 침대에 누워 있는 우리의 몸을 번갈아 밟으며 돌아다니고 서로의 몸에 꾹꾹이를 하던 네 모습. 우린 이제 네가 다 나은 것 같다며 안심했지만 그것은 네가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위해 마지막의 기력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너는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마치 이별을 준비하듯 말라가고, 잘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아픔 속에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너를 보면 나는, 우리는 이미 9년 전쯤 세상을 뜨려 했던 너를 억지로 잡아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바빴을까. 세상이 그리 싫었을까. 너에게 이 세상은 그리 달갑지 않은 곳이었을 거다. 늘 같은 사료, 싫어하는 간식. 잘 보이지 않는 창밖의 세상. 이동장에 실려 밖으로 나갈 때마다 들리는 소음. 가끔 찾아오는 모르는 사람. 깎이는 발톱. 여름마다 짧아지는 털. 싫어하는 것이 너무 많은 너에게 이 세상은 어서 떠나고 싶은 그런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가던 마지막 날. 우리가 잠들기 전까지도 너는 우리를 불렀지. 네가 부를 때면 우린 번갈아가며 너를 만져주고,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힘들게 숨을 쉬고, 누워서 목만 겨우 가누던 너의 모습. 너무 힘들어 보여 내일도 저렇게 힘들어한다면 역시 안락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잠이 드는 것은 싫었던 것일까. 우리가 잠시 잠이 들고 겨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어나서 본 것은 고이 떠난 너의 모습이었지.
행여나 정리하기 힘들까봐 폭신한 천이 깔리지도 않은 바닥에서 외롭게 떠난 네 모습. 잠들기 전까지는 계속 우리를 부르더니 우리가 잠들고 나서는 그렇게 부르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떠나 버렸구나.
네가 떠난 금요일. 너의 영혼이 떠나간 몸을 씻기고, 네가 쓴 마지막 모래를 버리고, 네가 가며 먹을 양만 뺀 사료를 버리고, 네가 좋아했던 삼줄을 버리고 우린 너를 세상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토요일, 싸늘하게 잠든 네 몸을 큰 천에 싸서 끌어안고 정말 먼 거리를 이동했다. 처음으로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고 나간 산책이 네 산책 중 가장 먼 거리가 되었구나.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너는 처음 너를 데려왔던 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우리는 네가 잠든 작은 보관함을 보며 너와 함께 했던 추억을 곱씹고, 이름을 부를 때면 갈대같이 털 많은 꼬리를 찰랑거리며 대답하던, 길게 울며 우리를 보던 너를 기억하며, 너의 사진을 둘러보며, 네가 앉아있던 장소를 보며, 그리고 청소하고 청소해도 튀어나올 네가 남긴 털을 보며 우리는 슬퍼하겠지.
그런 슬픔과 추억, 오래 곱씹지는 않을 거다. 10살이면 고양이치곤 살 만큼 살았다. 우린 너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지워 나갈 거다. 집안 구석구석에 있을 너의 털을 치우고, 네가 먹던 사료를 버리고, 네가 밥을 먹은 흔적을 치우고, 집안 곳곳에 놓인 모래를 치울 거다. 네가 쓰던 화장실을 깨끗이 치우고, 너보다 훨씬 예쁜 아기고양이를 곧 데려올 거다. 털도 짧아서 여름마다 안 깎여도 되는 그런 아이를. 너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함께 보낼 거다. 너랑은 전혀 관계없는 이름을 줄 거다. 네가 매일같이 먹던 처방사료 같은 것 안 먹이고 맛있는 사료도 먹이고, 네가 그렇게 안 먹던 츄르와 맛난 캔사료도 먹이고, 네가 싫어하던 털 빗기기도 매일같이 해서 윤기 나는 털로 만들어 줄 거다. 네가 싫어하던 끌어안기도 매일 해줄 거고 매일 배 위에 올려놓고 잘 거다. 통통하게 살찌워서 마지막까지 말라가던 네 모습 따윈 생각도 안 나게 할 거다.
그러니 우린 걱정하지 마 대추야. 추야. 추냥아. 너에게만 준 이름. 이제 두 번 다시 못 불러볼 이름. 꽃보다 예쁜 우리 가족, 우리의 첫 고양이야. 기쁠 때도, 힘들 때도 함께 해준 우리 고양이. 내 아내의 이해자.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의 소중했던, 우리의 가족 대추야. 너는 아이가 없는 우리들에게 자식과 같았고, 둘 뿐이었던 우리 가족을 셋으로 만들어 준 존재였어. 이 세상에서는 잘 놀았니? 너와 조금 더 많이, 자주 놀아줄 것을 그랬어. 이제 네가 가지고 놀지 못할 장난감들은 네가 담긴 보관함 옆에 둘께. 너의 사진을, 네가 좋아했던 장소를 볼 때마다 사무치게 네가 그리워 질 거야. 평소에도 시큰둥하던 너라면 우리 걱정은 안할 것 같지만, 부디 이 세상의 끝에 그 뒤가 있다면 그때 네 모습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삐쩍 마른 게 아닌 나름 통통하던 건강한 네 모습을.
병치레가 잦았던 너를 데려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 네가 있어 행복했으니까.
그럼 부디 좋은 여행이 되기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너를 기대하며.
안녕. 또 보자. 대추야.
2016. 05. 04 캣타워 위에서. 잠시 방문한 아이와 함께
2017. 05. 18 양 송곳니가 아직 멀쩡하던 그때
2019. 08. 14 어딘가 머리를 누르고 자기 좋아했던 모습
2020. 05. 11 늘 근처에서 배를 보이며 굴러다니던 모습
대추
2011. 07. 11(입양 2011. 10. 08) ~ 2021. 11. 26
사랑하는 우리 가족
무지개 다리 너머 고양이 별로 귀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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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저 둘이 합쳐 찍은 사진이 2천장 가까이 되는데, 저는 근 20년째 루리웹에 있으면서도 단 한번도 이 아이 사진을 올린적이 없었네요. 왜그랬는지 원...
새로운 아이는 이번 주 토요일에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저 아이보다 오래 같이 지내고 싶네요.
종류 무관하게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내시는 회원님들, 부디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 오래오래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번외로, 혹여 아이가 세상에 있었다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건.. 발도장을 남겨 보시는건 어떨까요.
저는 이 생각을 저 아이의 화장을 막 시작하고 잠시 뒤에야 생각이 났습니다. 스탬프잉크든 뭐든 해서 발도장 하나 남겨둘걸 그랬어요.
새로 들여오는 아이는 발도장도 찍어주고 커갈때마다 사진도 계속 남겨둬야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새 아이의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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