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 절지동물 사육 커뮤니티의 '아크라브'님과 어쩌다 연락이 닿아, 이야기 끝에 함께 아리조나로 2박 3일 탐사를 가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리조나 사막은 굉장히 험난하고 위험하다보니 혼자서는 갈 엄두도 못내는 곳입니다만, 함께해주신다고 하시니 굉장히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약속한 출발 날짜까지 서로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오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어쨌든 저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이것저것 준비해 가기로 했습니다.
LA에서 출발하여, 차를 이용해 아리조나로 향합니다.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아크라브님과 교대해가며 운전했습니다.
장거리 운전 끝에 도착한 숙소입니다. 가져온 짐들을 대충 꺼내놓은지라 많이 어지럽네요.
아리조나 소노란 사막 근처로 아크라브님이 미리 예약해 놓으셨습니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쾌적하고 편안해서 좋았네요. 역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숙소 같습니다.
숙소에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시작한 일은 근처 식료품점에서 구한 생닭을 해체하는 일이었습니다.
함정채집에 사용될 닭뼈를 확보하기 위해 저와 아크라브님은 비닐장갑을 끼고 열심히 생닭을 해체했습니다.
생각보다 잘 안뜯어지더군요.
준비가 완료된 함정의 모습입니다.
함정에 사용된 용기는 아크라브님이 준비해오셨습니다.
함정채집의 목표는 사막에 서식하는 지네들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널리 알려진 이 방법이 아리조나에서도 효율적으로 먹힐지는 미지수였습니다만, 일단은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채집 포인트를 찾아 소노란 사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구아로 선인장들이 보이네요. 사막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옵니다.
소노란 사막 국립공원은 굉장히 넓고 방대합니다.
때문에 채집 포인트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비포장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엄청 고생하기도 하고, 한참이나 갔던 길을 다시 한참 걸려서 되돌아오기도 하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채집 포인트를 발견하지 못한 저희는 결국 적당한 하이킹 트레일 입구에 차를 세울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막에 진입한 모습입니다.
아크라브님이 앞서 나아가고 계시네요.
첫 인상으론 그다지 이상적인 채집 장소로 보이진 않는 곳이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이제와서 다시 차로 돌아가 다른 장소를 찾기에도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우선 조금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습니다.
사진의 저 멀리 보이는 산 쪽으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개미 둥지입니다.
사막에 서식하는 개미들은 대부분 사납고 공격적입니다.
또한 독이 있는 침을 배 끝에 지니고 있는 종도 있기 때문에 채집 중 맞닥뜨리는 개미들은 굉장히 성가신 존재입니다.
그나마 이 녀석들은 그렇게까지 공격적이진 않았습니다.
종을 알 수 없는 조망성 거미의 거미줄.
거미줄은 보였지만 거미줄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곳곳의 관목에서 비슷한 형태의 거미줄을 상당히 자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지에선 이렇다 할 생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는 멀리 보이는 산 쪽으로 이동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흙과 관목 뿐이었던 평지와는 다르게, 산 근처는 지형과 식생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해가 산 반대편에 있어서 그런지 이쪽은 그림자가 졌네요.
아래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힘들었던 터라 이 부근에서 돌아다녀보기로 했습니다.
위의 평지와는 상당히 다른 풍경입니다.
충분히 생물들이 서식할만한 환경이라고 판단한 저희는 이곳에서 돌을 들춰가며 채집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산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과, 산쪽에서 바라본 사막의 전경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무리 돌을 뒤집어봐도 이렇다할 수확이 나오지 않자, 저는 슬슬 이곳에 생물이 서식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채워가던 중, 아크라브님이 갑작스레 긴박한 목소리로 소리를 높혀 저를 부르시길래 황급히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아크라브님이 돌 틈에서 발견하신 것은 척왈라 도마뱀이었습니다.
몸통이 검은 색을 띄고 있어서 그런지 아크라브님은 처음 발견하셨을때 아주 잠깐동안 커다란 쥐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네요.
저 역시 손을 넣어 잡으려던 도중 아크라브님이 '쥐 아냐?'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잠시 움찔 했습니다.
그러나 곧 몸에 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마뱀이라고 확신하곤, 망설임 없이 바위 틈으로 손을 넣어 포획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포획 과정에선 굉장히 몸부림치던 녀석이었지만 일단 잡히고 나니까 얌전해졌습니다.
꽤 크더군요.
야생 척왈라를 직접 포획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던만큼 상당히 기분 좋았습니다.
이 녀석은 바위 틈에 숨어서, 포식자가 나타나면 배를 부풀려 몸이 빠지지 않게 하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마뱀입니다.
저도 아크라브님도 이 녀석을 데려가서 사육할 마음이 없었기에 다시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상당한 속도로 도망쳐서 주변의 바위 틈으로 들어가버리더랍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갑작스레 등장한 척왈라 덕분에 저희는 더욱 의욕을 불태우며 돌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척왈라가 살고 있다는 것은 다른 생물도 충분히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니까요.
아니나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 아크라브님이 큰 소리로 '전갈! 전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북미에서 가장 큰 전갈, 데저트헤어리를 처음으로 야생에서 맞닥뜨린 순간이었습니다.
아크라브님이 뒤집은 돌 밑에서 쉬고 있었나봅니다.
발견하는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저는 좀 떨어진 곳에서 돌을 뒤집고 있었기 때문에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진 못했습니다.
전갈은 독침이 있는 꼬리 쪽을 잡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 녀석이 저희들의 첫 수확인 셈입니다.
시작부터 데저트헤어리라니... 어쩐지 이번 채집은 잘 될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챙겨온 플라스틱 용기에 헤어리를 집어넣은 모습입니다
이후로도 저희는 한동안 돌을 계속 뒤집으며 돌아다녔습니다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이미 데저트 헤어리라는 큰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만큼은 즐거운 상태였죠.
슬슬 해가 지고 사막에 어둠이 찾아옵니다.
너무 어두워져서 주변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기 전에 저희는 지네 채집을 위한 함정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차까지 돌아가서 준비해둔 함정들을 가지고 다시 산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산에서 헤어리를 발견했기 때문에 함정 역시 산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려면 무언가 지표가 될만한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사구아로 선인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함정을 뭍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함정 병을 입구까지 파뭍은 모습입니다.
안에는 살코기가 붙은 생 닭뼈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간단하게 나무껍질 등으로 덮어줬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방식으로 지네 채집이 가능한데, 이곳에서도 먹힐지 모르겠네요.
함정을 설치하는 와중에 점점 어두워져서 손전등을 켜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막의 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찾아옵니다.
원래는 총 8개를 설치하려 했지만, 땅에 돌이 너무 많고 지형이 너무 험난하여 함정을 파뭍는데 체력 소비가 심하여 그 절반인 4개만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저희는 차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오기로 정했습니다.
야간 탐사용 헤드라이트를 켠 아크라브님의 모습입니다.
전갈은 블랙라이트로 비추면 형광빛으로 빛나는 특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블랙라이트 손전등이 전갈 채집에 많이 사용되는데요, 저희도 당연히 블랙라이트를 사용한 채집을 계획했었습니다.
차를 향해 돌아가던 중 제가 블랙라이트로 발견한 작은 전갈입니다.
centruroides exilicauda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아리조나 바크스콜피온이라고도 불리우며, 북미에서 가장 강한 독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아크라브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미의 데스 스토커'입니다.
처음으로 블랙라이트를 활용해 전갈을 채집하는데 성공한 저는 흥분했고, 때문에 차를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블랙라이트로 전갈을 찾는데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큰 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덕분에 저희는 돌아오는 길에서 또 다른 데저트헤어리와 스트라잎테일 스콜피온(vaejovis spinigerus) 한 개체를 추가로 채집할 수 있었고, 블랙 라이트를 활용한 전갈 채집의 묘미를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저희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완전히 어두워진 사막 안에서 진행 방향을 잘못 잡아, 차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해가 진 사막은 그야말로 칠흑 그 자체였습니다.
손전등으로 비추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 어느곳도 보이지 않으며,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라 저희가 올라갔던 산의 능선조차 확인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어두웠습니다.
밝을 때까지만 했어도 그렇게 개방적이고 광활했던 사막이 밤이 되자 답답하고 폐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2m 정도까지밖에 밝혀주지 못하는 손전등 불빛이 곧 저희의 최대 시야였고, 좁아진 시야는 저희의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게 만들었습니다.
아이폰 지도를 보며 수시간을 헤매이며, 왔던 길을 돌아가고, 그 길을 다시 또 돌아가고를 반복하던 저희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사막을 방황한 끝에서야 간신히 주차되어 있던 차로 되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그저 멈추면 끝이라는 생각에 더이상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물론 제가 저질체력이었던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때 당시 진짜로 공포와 절망을 느꼈습니다.
준비 없이 들어가면 밤의 사막이 얼마나 무서운 장소가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간신히 숙소로 돌아온 후 채집한 전갈들을 확인해봤습니다.
2마리의 데저트 헤어리
1마리의 아리조나 바크전갈
1마리의 스트라잎테일 스콜피온입니다.
전부 다른 종이지만 하나같이 블랙라이트를 비추면 형광색으로 빛납니다.
어쨌든 숙소로 돌아온 저희는 햄버거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다시 한번 밤의 사막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제 다리는 한계를 넘어 움직인 댓가로 걷는 것은 커녕, 서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픔을 딛고 다시 한번 사막으로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아이폰 지도에 자동차 위치를 등록해두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방법을 썼어야 했는데, 그때는 밝을 때 사막에 진입했던 터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네요.
완전무장하신 아크라브님...
손전등, 블랙라이트, 헤드라이트로 이루어진 실용적인 야간 채집 패션입니다.
저도 찍었는데 제 사진은 흐려서 잘 안보이네요.
블랙라이트를 들고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활보할 결과, 약간의 전갈을 좀 더 채집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라이트를 이리저리 비추고 다니다가 무언가가 확 빛나는 순간, 그리고 가까이 가서 그것이 전갈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때 완전히 탈진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터라 아크라브님의 뒤를 간신히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쳤습니다.
당연히 전갈을 찾는데 필요한 집중력과 주의력은 바닥까지 떨어져있었고, 때문에 이날 밤 발견된 전갈은 전부 아크라브님이 발견하셨습니다.
어느정도 주변을 돌아다닌 후, 저희는 등화채집을 시도했습니다.
등화를 켜놓게 되면 나방 등의 날벌레들이 몰려들게 되고, 이러한 벌레들을 잡아먹으러 오는 포식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아크라브님께서 야생 낙타거미를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소망 하에 준비해오셨다고 합니다.
너무나 죄송스럽게도 제가 컨디션이 너무 안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등화채집은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진 못하고 그냥 차와 가까운 평지에서 시행되었습니다.
게다가 12시를 넘기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결국 먼저 차로 돌아가 쉬고 있게 되었습니다.
사막의 밤은 굉장히 춥더군요.
아크라브님은 조금 더 오래 머무르며 등화 주변에서 관찰하시다가 돌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저희의 채집 첫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쳤던 나머지 사진을 얼마 찍지 못했던 점이 지금와선 못내 아쉽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점은 비록 등화 위치가 최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낙타거미를 채집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첫날 채집된 개체들입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트라잎테일, 아리조나바크, 헤어리, 헤어리입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트라잎테일, 듄스콜피온, 낙타거미, 스트라잎테일입니다.
낙타거미는 상당한 소형종입니다.
북미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낙타거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긴 이런 소형 낙타거미들이 다종다양하게 분포합니다.
함정을 설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채집한 아리조나 바크전갈입니다.
독이 굉장히 강하여 '북미의 데스스토커'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다른 전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길쭉길쭉한 체형이 인상적입니다.
모래로 이루어진 평지에 주로 서식하는 듄스콜피온입니다.
꼬리쪽에 상처가 조금 있네요.
스트라잎테일 스콜피온입니다.
이름 그대로 꼬리에 줄무늬가 있습니다.
상당한 크기의 야생 데저트헤어리입니다.
아크라브님이 돌 뒤집기로 한마리, 제가 블랙라이트로 한마리, 총 2마리 채집했습니다.
비록 힘들고 고된 사건들을 겪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서 매우 흡족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않았더라면 더욱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저희는 만족스러운 채집 결과를 품에 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숙소에 도착한 후 샤워하고 곧바로 완전히 뻗어버린지라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막탐사] 아리조나 소노란 사막 채집기 2일차에서 계속됩니다.
2일차
어제 이런저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2일차는 한층 신중하게 계획을 짜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등화 채집 장소의 물색이었습니다.
어제 등화를 놓은 장소가 썩 이상적인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지형을 선택한다면 조금 더 많은 낙타거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위치의 하이킹 코스 쪽으로 차를 대고 사막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진입한지 얼마 안되어서 등화채집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곰인형 선인장(teddybear cholla)이라는 선인장의 조각이 사방팔방에 흩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그 선인장에서 떨어져나온 조각들인데, 마치 밤송이마냥 저렇게 바닥에 굴러다닙니다.
이 선인장의 가시는 매우 날카로우며, 뛰어난 탄성과 경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발 밑창 정도는 가볍게 뚫고 발바닥까지 박힙니다.
뿐만아니라 가시의 표면이 미늘처럼 되어있어서 박힐때는 잘 박히지만, 잘 뽑히지는 않는 무서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특성 때문에 가시가 한번 박히면 점점 깊숙히 파고들게 되죠.
신발을 신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게 이 teddybear cholla들의 가시입니다.
곰인형 선인장(teddybear cholla)들은 아리조나 사막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녀석들을 피해다니며 밑창을 뚫고 박히는 바닥의 선인장 조각들과 씨름하다보면 차라리 방울뱀을 만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예전에 살던 지역에서 이 선인장들을 자주 접해봤기 때문에 위험성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인장들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그만큼 끔찍하고 악독한 식물들이니 혹시라도 사막에 가게 되면 반드시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새로 찾아가본 하이킹 코스는 너무나도 많은 선인장들 때문에 밤에는 굉장히 위험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결국 어제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산쪽에서 돌아다녔던 어제와는 다르게 이번엔 평지쪽으로 수km이상 깊숙히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등화를 놓을 장소는 위 사진의 장소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변이 어느정도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가까운 위치에 큰 나무들이 자라나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쉬던 벌레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해가 지는 동안 저희는 잠시 산쪽으로 이동하여 돌 뒤집기 채집을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특이한 발색을 지닌 스트라잎 테일 스콜피온을 발견했습니다.
사막의 밤은 굉장히 빠르게 찾아오기 때문에 저희는 서둘러 등화를 놓아둔 장소로 되돌아갔습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채집을 시작할 때가 다가옵니다.
어두워지자 저희는 등화를 켜두고, 블랙라이트 채집에 나섰습니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고...
걷고 또 걸어도 블랙라이트에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자 제 안에서는 조금씩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잘 잡았다고 해도 오늘도 잘 잡히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다른 불안들도 하나둘씩 연이어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어쩌면 채집 포인트가 안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산쪽에만 전갈이 사는 것일수도 있다.
어제 운을 다 쓴거다. 등등...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져가던 와중에 우연히 블랙라이트가 스쳐간 관목 뿌리 부근에서 무언가가 반짝였습니다.
무성한 관목 가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전갈이 확실했습니다.
여태까지의 불안감이 가시고 갑자기 희망이 보이는 듯 했죠.
그러나 저희가 채집하려고 다가가기도 전에 전갈은 관목 뿌리 부근에 있던 굴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아크라브님이 굴을 파내려 시도해봤지만 예상 이상으로 굴이 깊었기 때문에 결국 저희는 전갈 한마리를 눈 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잠깐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희망은 금세 다시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저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며 관목들의 뿌리 부근을 집중적으로 블랙라이트를 비춰보기 시작했습니다.
몇분이나 지났을까요?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또 다시 관목의 뿌리 부근에서 형광빛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크기로 미뤄볼때 데저트헤어리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갈이 굴 입구에 살짝 걸쳐 있었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아까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 뻔했죠.
아크라브님과 저는 조심스레 다가가 헤어리를 포획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헤어리는 굴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크라브님이 아쉬운 마음에 굴을 파내고 관목을 헤쳐냈지만 이미 헤어리는 굴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버린 후였습니다.
슬슬 불안이 가중되고 '오늘은 이대로 끝나는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냥 등화쪽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고 고민하며 의욕을 잃은채로 터덜터덜 나아가던 도중...
블랙라이트에 전갈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관목의 뿌리 부근에 어중간하게 숨어있는 전갈들이 아닌, 아예 굴 밖으로 나와서 배회중인 전갈들이 갑자기 다수 포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조금전까지의 일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상당한 수의 전갈들이 저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저희는 신속하게 전갈들을 포획했습니다.
제가 전갈을 블랙라이트로 포착하면, 아크라브님이 그것을 포획합니다.
아크라브님이 전갈을 포획하시는 동안 저는 블랙라이트로 전갈을 계속해서 비춰주고,
그 후엔 피클통을 꺼내어 개체를 안전하게 피클통 안에 넣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개체를 담은 피클통들을 가방 안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집어넣는 동안 아크라브님이 위 사진과 같이 플래시라이트로 제가 불편하지 않도록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뭐 하나 미리 사전에 상의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마치 작전이라도 짠 것처럼 척척 역할을 나누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전갈들을 포획해나갔습니다.
이런 팀워크도 채집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네요.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저희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전갈들을 채집했습니다.
어제의 채집이 성공적이었다면 오늘의 채집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정도 전갈을 채집한 후엔 등화를 켜놓은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등화에 모여든 벌레들을 관찰했습니다.
대부분이 나방과 침벌들이더군요. 방충망을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벌 한마리가 제 목을 쐈습니다.
지금도 부어서 아프고 따갑네요.
아쉽게도 이번엔 낙타거미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마귀가 왔네요. 이 사진 정 중앙에 작은 갈색 수컷 사마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이시나요?
등화를 한동안 더 관찰하다가 더 기다려도 특별한 변화는 없을거라 판단하고는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많던 전갈들이 돌아갈때는 코빼기도 안보이더군요.
아무래도 전갈이 활동하는 시간이 상당히 짧은 듯 합니다.
혹시라도 미래에 소노란 사막으로 채집을 가실 분들은 시간을 잘 조절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오늘의 결과물입니다.
위쪽 플라스틱 용기 8개는 1일차에서 채집한 개체들이고, 아래쪽의 15개가 오늘 채집한 개체들입니다.
데저트헤어리만 10마리네요
야생개체라서 그런지 몸집과 사나움이 샵에서 보이는 개체들을 상회합니다.
계획을 잘 짰고, 그 계획대로 척척 잘 진행되었던 기분 좋은 채집이었습니다.
계획 없이 맨땅에 헤딩했던 1일차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2일차였네요.
이제 내일은 설치해뒀던 함정들에 무엇이 잡혀있을지 확인하고, 여태까지 채집한 개체들 중 사육하지 않을 녀석들을 놓아준 후, 채집을 완전히 마무리짓고 집으로 귀환할 예정입니다.
[아리조나 소노란 사막 채집기 3일차]에서 계속됩니다.
3일차
드디어 채집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설치해둔 함정을 수거하고, 채집했던 개체들을 다시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적당히 개체들이 태양빛을 피할만한 그늘이 많은 곳을 탐색하고 놓아줄 장소를 정했습니다.
어느정도 크기가 있는 커다란 관목의 밑둥 부근입니다.
채집했던 개체들은 사육할 개체 일부만을 남기고 전부 놓아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개체들의 뒷모습이 참으로 씩씩해보입니다
채집했던 데저트헤어리 아성체입니다.
이렇게 작고 여린 녀석들이지만 사막에서 꿋꿋하게 생존을 위해 투쟁해나갈 것입니다.
개체들을 전부 놓아준 후, 트랩들을 체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이 막대를 세워 표시해뒀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결과는 완전히 꽝.
개미와 구더기만 잔뜩 들어있더군요.
아무래도 트랩의 위치를 잘못 선정한 듯 싶습니다.
처음 산 쪽에서 헤어리를 채집했기에 트랩도 산에 묻어놓았는데, 2일차 야간채집에서 평지에 더 생물이 많이 서식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지 쪽에 설치했다면 조금쯤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채집에서는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과 현장을 직접 뛰며 얻는 경험에 꽤나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역시 채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육자들의 채집기도 많이 보고, 채집에 대한 정보도 굉장히 많이 수집했습니다만, 정작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정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만큼 사막은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장소입니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많은 사진과 영상을 접하더라도 결국은 직접 사막을 접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저도, 아크라브님도 이전에 사막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서 미 서부 사막환경이 어느정도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소노란 사막은 많은 부분에서 새롭고 낯설다고 느껴졌네요.
이틀동안 저희에게 힘든 경험도, 즐거운 경험도 잔뜩 겪게 만들어주었던 소노란 사막의 전경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니 묘한 기분이 되네요.
이런 척박하고 메마른 대지에서도 수많은 생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사막과도 헤어질 시간입니다.
채집도구들과 짐들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그새 정들어버린 소노란 사막의 풍경을 뒤로하며 저희들의 일상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정말 너무나도 특별하고 보람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막에서 헤맨 일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밤의 사막을 배회한 일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추억처럼 느껴지네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저와 함께 해주신 아크라브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긴 채집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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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생물도 있고, 안되는 생물도 있습니다. 전갈은 워낙 개체수가 많아서 아리조나주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습니다. 거기선 그냥 해충 취급이라 막 죽이는 사람들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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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른쪽 가겠네요 제가봐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음 그런데 저렇게 생물 채집해도 법저긍로 문제 없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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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닭 해체하실 때 첨에 순간 김치를 포장하시는 줄 알고 역시 타지에 갈 땐 김치 라고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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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작은 다큐를 보는 것같아서 매우 재밌었어요. 오른쪽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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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한 전갈들 중 위험한 종은 '아리조나 바크 전갈' 한 종 뿐입니다. 평소에도 독이 강한 생물들을 신중하게 다루고 있고, 만용이나 허세로 손을 가져다대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채집기에서 손을 사용하여 채집한 종들은 꿀벌 이하의 약한 독을 지닌 종들이고, 위험한 종은 도구를 사용하여 채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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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작은 다큐를 보는 것같아서 매우 재밌었어요. 오른쪽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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