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나의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기도이다
기도할 수 없는 기도이다
주저앉는 기도이다
뭉개지는 기도이다
사람의,
사람이 짓는
사람이 어쩔 수 있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기도는 말이 없다
언제나 경악보다 먼저 와서,
두려움보다 슬픔보다 분노보다 먼저 와서
두 손을 모으려 하는 나를
무슨 말을 떠올리려 하는 나를
단숨에 찔러버린다
허공을 쥐고
사지를 뒤틀면서
기도는 기도를 빼앗기고
꿈틀거리는 신음 하나를 입에 문다
분노가 되기 전에,
슬픔이 두려움이 경악이 되기 전에
전선같이 와서
침묵 하나로 뚫어버리는 것
더듬거리면서
내 기도는 언제나 기도 이전,
사람이 어쩔 수 없을 어쩔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경련하는 기도이다
모르는 기도이다
기도에 목 졸려 나는 빈다
기도보다 먼저 온 기도에 꿰여
입속에서 목구멍 속에서
빌고 빈다
나무는 간다
이영광, 창비시선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