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스러운 PS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혜성처럼 나타나 많은 게이머를 복스럽게 감동시켰던 RPG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트라이에이스에서 제작하고 에닉스에서 발매한 RPG [발키리 프로파일]이었습니다. 인기 타이틀의 후속작이 아닌, 완전 오리지널 작품이면서도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며 많은 게이머에게 확실히 이름을 각인시켰던 [발키리 프로파일]은 발매사의 힘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3D 일색이었던 그 당시의 풍토 속에서도 잘 만든 2D 게임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타이틀이었습니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개성적인 시스템과 얼 척 없는 오프닝 동영상, 환장스러운 버그 등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게임이었지만 PS2 발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도 후속작이나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던 타이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프로젝트 자체가 잊혀지는가 했지만 PSP용 [발키리 프로파일 -레나스-]와 더불어 PS2용 [발키리 프로파일 -실메리아-]가 발표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PSP용 [레나스]는 PS로 등장했던 전작을 베이스로 여러 추가요소를 넣어 이식한 버전이며, PS2용 [실메리아]는 정식으로 [발키리 프로파일]의 뒤를 잇는 후속작입니다. 장장 7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한국과 일본 동시에 정식발매된 [실메리아]. 게이머의 피와도 같은 돈을 쪽쪽 빨아먹던 조악한 한정판의 개념을 한 방에 날려버렸던 전작의 알찬 한정판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멋진 한정판(일본 발매판)을 기대했던 팬들의 기대를 너무나도 처절하게 배신하며 등장한 [실메리아]의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메리아]는 [발키리 프로파일]의 정식 후속작이기는 하지만 시간대는 오히려 전작의 몇백 년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스토리의 긴밀한 연계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세계관만을 계승한 정도이기 때문에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고 이 게임을 를 접하는 플레이어라도 접근하기가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비록 같은 타이틀을 공유하고 있는 두 작품이지만 발매 콘솔도 다르고 전작과의 발매일도 7년이라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리 큰 무리수를 두지 않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동떨어진 타이틀은 아니라서 스토리가 점점 진행될수록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았던 유저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꽤 나오기 때문에 미리 전작을 플레이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 일본에서 PSP로 [레나스]를 발매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실메리아]를 플레이하기 전에 미리 플레이하라는 의도인 듯도 합니다.
후속작이니만큼 당연히 예전과 다른 얼굴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예전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며, 주인공의 처지와 역할 또한 전혀 다른 각도로 전개됩니다. 전작인 [발키리 프로파일]의 레나스는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를 대비해 주신 오딘의 명을 받들어 영혼을 모으는, 신화에서의 의미 그대로의 발키리였지만 이번 작품의 주인공 실메리아는 어떤 계기로 인해 오딘의 명령을 거역하고 모은 영혼을 신계로 보내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강제로 인간으로 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전생한 실메리아의 정신은 디판의 왕녀 알리시아의 몸에서 각성을 합니다. 자신을 거스른 실메리아가 각성한 것을 알아챈 오딘은 발키리 3남매의 장녀인 아리를 보내 알리시아를 죽이려 하고, 실메리아는 알리시아를 보호해가며 인간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디판의 왕녀 알리시아와 발키리 실메리아 두 영혼이 하나의 몸에 담겨 있는 설정을 깔고 진행되기 때문에 인격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이 게임 전반에 걸쳐 연출됩니다. 예를 들어 실메리아일 때는 아버지에게 할 말 못할 말 다하다가도 알리시아의 인격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를 찾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각각의 인격에 따라 대사의 자막 또한 다른 색으로 표시됩니다. 졸지에 무허가 더부살이 인격을 받아들인 알리시아에게 몇백 년 전 디판에 충성을 맹세했던 에인헤랴르 딜런, 비밀을 숨긴 듯한 궁투사 루퍼스가 동료가 되어주며, 전작에서 많이 보았을 마술사 레자드와 누군지 뻔히(…) 보이는 레오네, 그리고 레오네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아루제도 동료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실메리아를 쫓는 역으로 발키리 3남매의 장녀 아리가 등장해서 미묘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실메리아가 알리시아의 몸속에 영혼만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동료로 맞이하게 되는 에인헤랴르에 대한 부분이 크게 변경되었습니다. 전작에서 에인헤랴르가 될 영웅이 죽기를 기다렸던 것과는 달리, 에인헤랴르의 매개체가 될 물건을 찾아 매터리얼라이즈(실체화) 하면 그냥 동료가 되어줍니다. 전작에서는 에인헤랴르가 어떤 이유로 죽어가고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들이 남기는 이야기의 여운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실메리아]에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 매터리얼라이즈만 걸면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 듯 손쉽게 동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필을 통해서 어떤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에인헤랴르인지는 대충 알 수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 A를 붙잡아다 강제로 파티에 넣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짤막한 단막극을 보는 듯했던 전작을 생각했던 유저들에게 무미건조해진 텍스트가 기다리고 있는 [실메리아]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큰 아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맞이한 에인헤랴르는 해방하면서 인간으로 전생을 시킬 수도 있는데, 성격 까칠한 실메리아는 참으로 고약하게 해방합니다. 무기나 방어구를 장비시킨 채 해방시키면 해당 아이템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맨몸으로 살기 힘든 인간 세상으로 해방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에인헤랴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잊지 않고 찾아가 각종 아이템과 돈을 갈취하는 실메리아의 모습은 말 그대로 무서운 아이. 해방할 때의 레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달라지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정당하다면 정당한 레벨업의 동기를 부여하지만 뭐랄까, 전작에서는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캐릭터의 의미로 존재했던 에인헤랴르가 [실메리아]에서는 단순한 아이템의 개념으로 치우쳐져서 무덤덤하게 취급되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2D에서 3D로 외형이 변하면서 던전 역시 전작과 달리 3D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횡스크롤 액션과도 같은 진행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캠프를 하거나 던전에 들어갈 때 사용되던 피리어드 시스템이 삭제되고 정석 시스템은 광자 시스템으로 변경되는 등 바뀌지 않은 부분보다 바뀐 부분이 더욱 많습니다. 특히 광자 액션을 이용해 필요 없는 전투를 피하며 빠른 진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불필요한 전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전작에서 던전을 진행하기 위해 도입된 정석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이번작의 광자 시스템 역시 던전 안에서 퍼즐을 풀 때 사용되며, 광자에 맞은 몬스터와 접촉을 해도 전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원치 않는 전투를 피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 저기 놓여있는 아이템과 에인헤랴르, 봉인석에 눈이 돌아가게 되면 그때부터 플레이어와 광자 액션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입수하기 상당히 난감한 위치에 요리조리 놓여있는 에인헤랴르와 아이템, 봉인석을 얻기 위해서 광자 액션은 그야말로 필수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광자 액션을 통한 퍼즐 풀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물론 그냥 지나쳐도 진행에 큰 문제가 없지만 맵에 아이템의 습득률이 표시되어서 플레이어의 심리를 묘하게 자극합니다. 수치에 집착하게 되는 게이머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 무수한 게이머를 낚은 대표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 아이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수치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별거 아닌듯하면서도 신경 쓰이게 하는 요소에 달성률을 붙여서 정작 스토리 진행을 하지 못하고 끝없는 수치 올리기에 몰두하는 안쓰러운 플레이를 은근히 조장하는 게 트라이에이스 타이틀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템의 유혹을 이겨낸 플레이어라도 전투에 큰 영향을 주는 봉인석은 그냥 지나치면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합니다.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파티와 던전에 큰 영향을 주는 봉인석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투 난이도를 큰 폭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봉인석은 직접 가지고 다니거나 혹은 던전에 설치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대미지를 대폭 줄여주는 봉인석이 있는가 하면 경험치를 늘려주는 봉인석 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다양한 효과를 발휘하는 봉인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봉인석의 효율적인 사용에 따라 던전의 난이도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아이템을 과감하게 지나쳤던 통 큰 용사라 할지라도 봉인석을 그냥 지나치면 던전에서 봉인석의 효과만큼 고생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적의 공격력이 올라가는 등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던전에 설치할 봉인석과 직접 가지고 다닐 봉인석 구분을 잘 해야 합니다.
전작이 높은 인기를 누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른 RPG와 차별화를 이룬 전투 시스템인데, 택티컬 컴비네이션 배틀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독특하고도 재미난 전투 시스템으로 유명한 트라이에이스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예전보다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전투 시스템은 액션치만 아니라면 손쉽게 익힐 수 있는 수준입니다. [실메리아]의 전투는 플레이어가 움직이지 않으면 적도 움직이지 않으며 플레이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같이 움직이는 이른바 세미 리얼 타임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AP(액션 포인트)를 이용해 적을 쓰러트려야 합니다. 공격을 해서 소모된 AP는 적을 쓰러트리거나 공격을 당하면 회복되기 때문에 AP의 수치를 숙지해서 계획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또한 [실메리아]에는 새로이 익스텐드 게이지가 생겨서 빨리 전투를 끝낼수록 경험치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적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적을 쓰러트린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적보다 강력한 리더를 쓰러트려야만 전투가 종료됩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리더만 없애도 전투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기본 틀에 브레이크 모드라는 무차별 공격 가능 모드와 필살기에 해당하는 결정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와 화려한 연출을 바라는 게이머들을 모두 만족시켜주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점점 더 유저 편의성이 강조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임이 많아졌지만 [실메리아]는 게이머의 손을 많이 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려는 유저에겐 조금 귀찮을 수도 있는 이러한 시스템은 게이머의 능동적인 개입과 화려한 볼거리라는 두 가지를 모두 취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투 시스템은 딱히 흠잡을 만한 곳이 없지만 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이템과 스킬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스킬 자체는 정말 유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AP 소모 없이 아이템을 사용하게 해주는 프리 아이템, 브레이크 모드에 들어갈 확률을 올려주는 브레이크 업에 각종 형태의 적들에게 추가 대미지를 주는 슬레이어 시리즈 등 원활한 게임 진행에 큰 도움을 주는 스킬들이 가득 있지만 이 스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걸어야 할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스킬을 얻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템마다 새겨져 있는 룬을 조합해서 발동시키는 것입니다. 룬의 조합이 스킬에 맞는다면 스킬이 발동되고, 발동된 상태로 전투를 해서 스킬의 습득률이 100%가 되면 해당 스킬을 아이템 조합 없이 캐릭터의 CP 제한 안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룬의 조합과 스킬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딱 골라서 익힌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 아이템의 성능보다는 룬의 조합을 중요시하게 되다 보니 어느 아이템 하나 마음대로 처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런 전차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아이템을 입수하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아이템의 성능보다는 룬을 먼저 보게 됩니다. 룬이 아까워서 온갖 아이템을 다 가지고 다니게 되고, 이런 일은 액세서리일수록 그 정도가 심해집니다. 액세서리는 다른 룬과 링크되는 경우 성능이 강화되는 것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스킬의 습득과 다른 룬과의 링크까지 생각하자면 끝도 없이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세밀하게 유저가 조절할 수 있고 달성률을 높이면서 진행하는 게임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건들게 해서 불필요하게 게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선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략본을 팔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부분을 넣었다는 느낌이 강한 게임을 플레이할 때면 불쾌한 기분까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메리아]에는 그 정도로 고의적인 부분은 없지만 일본어가 수 놓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스토리 하나 따라가기도 벅찬 한국 게이머들에게 이것저것 조합이나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하는 시스템은 막막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게이머가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없게 한달까요. 개인적으로 봉인석 시스템과 함께 한글화 발매가 아니라서 아쉬운 시스템이 바로 이 룬과 스킬 관련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각 마을 상점에 있는 단골 아이템도 룬 조합과 함께 아이템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상점을 이용할수록 모습을 드러내는 단골 아이템은 성능 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특정 아이템을 팔아야만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팔아 버린 아이템이 재료가 되는 경우에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다시 마을로 돌아가 해당 아이템을 구입해서 팔아야만 하고 재료로 들어가는 아이템에 룬이 새겨진 액세서리가 대량으로 들어가게 되면 갈등이 한없이 증폭됩니다. 단골 아이템은 구입하기 전에는 성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룬과 단골 아이템을 두고 끝없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결국 스킬과 단골 아이템이라는 두 애물단지 사이에서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느낄 듯합니다. 이쯤 되면 아이템을 뚝딱 만들어내던 레나스 언니가 슬슬 부러워지기 시작합니다.
프로덕션 I.G가 참여했음에도 일러스트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해 허탈함까지 안겨주었던 전작의 오프닝과는 달리 [실메리아]에서는 오프닝과 프롤로그에서부터 상당히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저기 세밀하게 묘사된 배경과 독특한 색감은 보통 판타지 게임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화면을 뿌려주면서 위화감과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너무 뽀샤시한 효과를 내기 위해 뿌연 감도 없잖아 있지만 몽환적인 분위기와 게임의 독특한 설정을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 정도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했음에도 프로그레시브와 16:9 와이드 화면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만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PS2로는 더할 나위 없는 그래픽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1999년 PS의 황혼기에 등장했던 전작처럼 [실메리아] 역시 2006년 PS2의 막장에 다다라서야 등장했으며 그동안 축적했던 노하우를 이용한 그들의 최대치를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작보다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오프닝과 프롤로그에서부터 멋진 음악이 흘러나온 [실메리아]는 게임에 들어가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마을이나 던전에서의 배경음악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으며 전투 시의 타격 효과음, 특히 브레이크 모드나 결정기에서의 효과음과 연출은 어지간한 격투 게임이 부럽지 않게 해줍니다. 로딩 또한 굉장히 짧아서 오랜 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RPG임에도 쾌적한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묘사된 그래픽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 그리고 쾌적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짧은 로딩은 오히려 늦게 나와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들게 해줄 정도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만들어내며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실메리아]는 전작의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그래픽과 진화된 전투 시스템, 매력적인 캐릭터, 화려한 전투 연출은 트라이에이스의 이름값을 충분히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룬 조합을 통한 스킬 습득, 광자 액션을 이용한 퍼즐 풀기, 단골 아이템 등의 요소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눈에 밟히고 연구하자니 골치 아픈, 말하자면 계륵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트라이에이스가 준비한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길 시간이 된다면 이러한 부분에서 큰 재미를 느끼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지만 간편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나 시간이 많지 않은 게이머라면 이런 부분을 모두 즐기면서 하기에는 무리일 것입니다. 이런 점들은 [실메리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를 갈라놓는 듯한 느낌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독특합니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설정과 몽환적인 화면 연출, 횡스크롤 게임을 하는 듯한 던전 진행과 액션 게임과도 같은 배틀 시스템, 이리저리 재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각종 시스템은 분명 다른 게임을 하듯 쉽게 다가가기도, 익숙해지기도 힘든 게임입니다. 게다가 한글화가 아닌, 일본판 그대로인 정식발매판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유저들은 그만큼 더 낯설기만 한 게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게임 시장에서 [발키리 포르파일]이란 게임은 어떤 의미일까요? 꽤 이름도 알려지고 플레이해본 유저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의 유저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기 그지없는 게임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요소와 선입겹으로 인해 [실메리아]에서 준비된 것을 모두 즐길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시스템을 숙지하고 연구를 조금만 한다면 다른 RPG와 달리 지겹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인 건 틀림없지만 일본어라는 큰 장벽이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굳이 [실메리아]가 아니더라도 다른 즐길만한 게임은 얼마든지 있기에 간단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접근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물론 RPG란 장르 자체가 많은 시간을 들여서 플레이해야 하고 어느 정도 유저를 가리는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최근 들어 극과 극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이런 점을 보면 [발키리 프로파일] 시리즈도 시간이 흐를수록 하는 사람만 하는 RPG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기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시스템을 넣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인해 과도한 부담이 생기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단순히 어려운 게임과 복잡한 게임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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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PS2] 발키리 프로파일 -실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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