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시쓰고 이제서야 올립니다.
부디 늦은 점 양해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한껏 분주해진 금향궁. 아침부터 바깥으로 나와 어수선한 주변을 살피던 용상은 이상하리만치 분주한 본문 자매들을 보고는 두 눈만 굴리고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함이 왔지만, 조용히 입을 닫고 이동하는 동기를 불러세웠다."사요! 사요! 어디를 그... 리...""어! 상아! 지금 좀 바쁘니까 나중에!!""어... 어, 응. 알았어."너무나 바쁜 나머지 잠깐 말 붙이고는 가던 길 가는 동기. 그 뒤를 무심코 바라만 보았던 용상은 얼이 빠진 듯,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용상의 앞으로 두 사매들이 정신없이 뛰어가자 그녀들을 불러세웠다."려 사매! 동 사매!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거야?!""앗! 용 소저?""앗, 그......"용상이 다가갔다."오전부터 무슨 일인 거야? 다들 왜이리 급하게 움직이는 건지 혹시 아는 것 있어?""그, 그게......"두 사매는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무슨 연유인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인지 용상의 두 눈이 마주쳐도 입을 열기 힘들어 했다. 용상은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는 살짝 뒷 걸음질 쳤다. 그때, 용상의 뒤를 누군가가 막고있었다. 막고있던 사람은 용상의 두 어깨를 사뿐히 잡고는 말했다."종려. 은동. 둘은 서둘러 가거라. 상 사매는 내가 맡겠다.""앗! 네! 설 사저!"둘은 용상 뒤의 사저의 말을 듣고는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용상은 그대로 뒤를 돌아 자신을 막던 사람을 보았다."성설... 사저?""상 사매. 여기있었구나? 밤새 어디갔다가 이른 아침에 보이는 것이냐?""앗! 아... 그, 그게...""......응?"성설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평소에 나던 용상의 분향이 느껴지지 않아 의아했다.' 뭐지? 평소랑은 좀 다른데...? 사매의 분향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깥에 있었던 것인가? 게다가 이 향은... 당문의 독향... 인 것 같은데...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용상을 쳐다보았다."그, 그... 어제 밤부터 잠이 오질 않아 용연칠절(龍淵七絕) 참락성진강(斩落星辰纲)의 절기를 수련하고, 현현조화공(玄玄造化功)을 운기하다가 지쳐서 그대로 나무 아래서 잠들었습니다."용상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녀가 이상해 보이긴 했다. 워낙에나 그녀의 얼굴 표정이며 당황해 하는 몸짓이 역력했기에 무언의 의심이 성설의 가슴 속에 피어났다. 그러나..."뭐, 내일이면 무림대회이니 상 사매도 준비하느라 긴장이 깊은 것 같구나. 게다가 그동안 당문이 궁에 머물면서 독향이 제법 진해진 듯 하니 딱히 이상할 건 없네. 그래도 밤새 바깥에 있었다면 감기라도 걸리기 쉬울테니 이것이라도 먹어."성설은 정신없어 보이는 용상에게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양혈단(養血丹) 이야. 잠깐 몸이 데워질 것이니 나쁘지는 않겠지."성설의 한 손으로 양혈단을 건네받은 용상은 고개를 숙여 예의를 보였다."고, 고마워요. 설 사저."성설은 슬쩍 미소짓고는 말했다."고맙기는. 그간 사매가 당문의 수발을 들어서 피곤할 거라고 알고 있어. 궁주께서도 너를 봐달라고 했으니 이정도는 가벼울 뿐이야.""네. 그럼......"용상은 허리 춤에 달아놓은 죽통을 꺼내 안에든 물과 함께 양혈단을 복용했다. 그리고는 잠시 심호흡을 하자 서서히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사저 덕분에 몸이 살짝 데워지는 것 같네요.""생각보다 약효가 빨라서 좋지? 위장으로 내려가자마자 녹아내려 흡수가 재빠르게 일어나니 그만큼 금방 나른해지기도 하니까. 경공을 펼치고 이동할 때는 조심하고.""하, 하하... 그러고보니 사저.""응?"용상은 주변의 바쁜 자매들을 보고는 사정을 성설에게 물었다."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 있나요? 자매들이 다들 바빠보이는데.""아! 내 정신 좀 보게."성설은 주먹을 들어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두 어번 하고는 용상에게 말했다."용상은 궁주의 전언을 받아라.""앗! 네, 네. 제자 용상, 궁주의 말씀을 듣습니다."용상은 그대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사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제자 용상은 지금 당문의 대표, 조 소협을 궁주께 알현 시키거라.""......네?"용상은 성설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뭘 그리 놀래, 사매?"용상은 금방에 아무렇지 않은 듯, 소매를 털어냈다."아, 아닙니다, 사저. 궁주님의 말씀, 받들겠습니다.""......흐응."성설은 용상의 행동이 너무나 의아해서 도끼눈을 뜨고 지긋이 쳐다보자, 용상은 서둘러 자리를 피해 당문의 숙소 방향으로 경공을 펼쳤다."이상하네. 왜 저러지? 평소같지 않은데... 사매가 원래 저리 소녀같았나? ......소녀?"성설은 경공을 펼치고 가다가 휘청이는 용상의 뒤를 바라보았다."양혈단 먹고 경공은 자재하랬더니 바로 쓰는 구나. 뭐, 원래부터 사매는 귀여운 구석은 있었지. 기분 탓인 것 같지만... 나도 어서 움직여야겠다. 상 사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린 사매를 배제하고 움직여야하니... 그 날, 진실을 마주했다고 해도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성설도 자리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향해 움직였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오! 상 누님!""조 동생!"당문 숙소 앞에서 명상 중이던 조활과 마주친 용상은 서둘러 그에 곁으로 다가갔고,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지난 밤의 일들이 생각나 살짝 얼굴이 빨개졌다. 조활이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물었다."얼굴이 벌게졌소, 누님. 열이라도 있는 거요?""응? 나? 아... 아마 사저가 준 양혈단 때문일거야. 감기같다고 말했더니 바로 주셔서......"조활이 놀라서 물었다"감기?? 괜찮소??"조활이 부담스럽게 다가오자 두 팔로 그를 막으면서 말하는 용상."아니야!! 괜찮아. 내 몸은 내가 잘 아니까. 걱정 안해도 돼.""그, 그렇소?"조활이 눈을 마주치고 말하자 용상은 잠시 심장이 멎은 듯 멈췄으나, 그의 눈빛을 피한 시선을 뒤로 한 채, 곧바로 아무일 없다는 듯이 눈을 바로 마주하고 미소지으며 말했다."정말이야..."조활은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뭐, 그럼 다행이오.""응."짤막한 적막이 그들의 주변을 감쌌다. 어색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곧 둘은 시선을 마주하면서 미소지었다."후후. 정말이지... 이럴 줄 몰랐다니까.""그러게 말이오. 나도 아직도 꿈꾸는 것 같소. 정말이지 믿겨지지가 않소. 천하가 버린 조활이 무림의 암흑을 베어낸 불세출 영웅의 아름답고 강인한 따님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되게 느껴지오. 내가 그간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보람이 이렇게 큰 선물로 다가오다니... 오래살고 볼 일이오."용상은 붉었던 얼굴을 더욱 붉혔다."바, 바보같은 소리마라. 너는 내가 선택한 사내다. 내가 조 동생보다 먼저 고백하고 우선 취한 것이다. 넌 내것 이니라!""하하! 그렇소. 내가 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취 당했구려. 방심해서 선수를 빼앗기다니, 사내로 태어나 참으로 억울하고 분하군! 어여쁜 여성에게 귀 꿰이듯 꿰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라니!""하하! 웃기지마!"용상은 조활의 익살스럽고 부담스러운 언행에 부끄러워 그만,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둘러 차지만 조활은 물 만난 미꾸라지마냥 요리조리 피한다. 용연칠절 권장의 할산장(割山掌)과 퇴법인 사일퇴(射日腿)의 초식이 절로 조활을 덮쳤지만, 그를 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끝부분의 초식이 느슨하게 뻗어졌다. 그러다 조활이 순간의 틈을 찾아 그녀의 발목을 슬쩍 걸어 용상이 뒤로 쓰러지는 찰나, 사뿐히 손을 가져다 등부터 감싸안았다.
"너, 계속 부끄럽게 이럴래?".....조활은 그녀의 선녀같은 고운 표정에 가슴이 조여지는 고통을 맛보았다.' 큭...! 귀여워서 시, 심장에 무리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조활은 용상을 사뿐히 바닥에 내려놓고, 사랑놀음은 잠시 덮어둔 채 물었다."상 누님. 그나저나 아침 일찍부터 금방 방에서 나가셨던데, 역시 주변의 눈 때문에?"용상은 왠지 수줍었다."뭐...... 일단은 그렇지?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게다가 금향궁 숙소에서 사라진지도 한참이었잖아. 나야 수련을 하고 있었으니 대충 그쪽으로 둘러대도 상관은 없지만, 아침까지 침실에 있지를 못했으니 만약에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 있을 필요도 있었고...""그렇군요. 그럼 누님, 이시간에 갑자기 나를 찾은 건 무슨 일이시오?"용상은 그와의 수줍은 재회를 뒤로하고 사저로부터 전달받은 궁주의 명을 전해주기 시작했다."궁주께서요?""응. 자세한 사항은 들은 것은 없는데, 금향궁이 좀 이상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조활이 얼굴을 살짝 굳히며 아침부터 이상했던 주변을 돌아보았다."그러고보니, 당문 숙소 주변의 금향궁 자매들께서 보이지 않던데,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거요?""나도 잘 모르겠어. 동기며, 사매며, 사저며...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야."용상은 그리 말하고는 슬쩍 조활의 눈치를 살폈다. 조활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용상의 살짝 펴진 손을 과감하게 잡아주었다."이젠 아니오만?""후훗. 웃기고 있어. 아무튼, 스승님께 가보자. 무슨 일인지도 확인해야겠고, 여차하면 스승님께 우리 관계도... 말씀드리고 싶고 말이지."조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놀랐지만 굳이 막을 생각도 없었다."그럽시다. 일단 궁주님을 뵙는 것으로 하고, 어서 서두르는 것이 좋겠소.""응. 가자."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위협은 어둠 속에 숨고어둠은 심연이오.심연은 무릇, 당신을 옭아메는그림자이라.불꽃은 검게 물든 질서를더욱 불태워 잿빛으로 흩뿌리고찬란했던 그날의 영광은이젠 온데간데 없이메말라 무간으로 돌아간다.비오는 새벽녘에이슬인줄 착각하고고개들어 꽃 피우던 씨앗이여.순진한 것은 어리석도다.어리석음은 절망이 될 것이니,너의 허무맹랑함은나락에 빠져 허우적대는개미와 다를 것이 없다.하지만 잊지 말라.네 안에 품고있던아직도 힘을 숨긴 불씨는천년의 용이 될 시간을재고 있으니알량한 마음을 먹은 어리석은 중생들을뿌리채 뽑아 그들의 수급을 들어올릴 때,비로소 다시 날아올라흐트러진 세상을 바로 잡을 것이오,부서지고 바스라진 인간도를일으켜 세울 것이다.짝짝짝짝!온부인의 노래와 고풍스런 연주가 끝이나자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가 박수갈채를 하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멋지구려, 언니. 참으로 감복했소. 부서지고 바스라진 인간도라... 멋진 어귀로다."온부인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중선아."화중선은 온부인의 부름에 고개와 무릎을 살짝 숙여 예의를 보였다."결국 이렇게 시간이 와버렸소만?""그렇구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구나.""바깥에서 공주가 오고 있는데, 방도는 있는 것이오?"온부인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기대말거라. 내가 그녀를 이기기엔 형세가 너무 기울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사주겠지. 필히 형세를 누그러뜨려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교묘함은, 진실됨을 상대로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수 만큼은 금향궁을 위해 사용하려한다."튕!온부인은 가지고 있던 비파의 현을 한가닥 튕겼다. 짧고 간결한 한 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울리는 가락은 선율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그 떨림이 슬프게 가슴을 울렸다."진정 이래야 하오? 방법은 차고 넘칠 텐데...""그 차고 넘치는 방법 중에 악수가 많다. 금향궁은 딸린 식구들도 제법이고, 모두를 아우를 방도는 얼마 없는 것이 현실이지. 현실을 직시하거라, 중선아.""그래도..."화중선이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운 상황에 우울해하니, 온부인이 슬쩍 미소짓고는 그대로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부, 부끄럽게 왜 이러시오.""우리는 너무 오래 싸웠구나.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에 열을 올리는 것이 전부라 가까웠어도 결코 그러지 못해 이제야 손을 받아주는 구나."화중선은 그녀의 손짓에 그저 편안히 받아들일 뿐이었다."그때의 약속. 지켜줄 수 있겠느냐?"약속. 화중선은 온부인과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는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떨었다."어, 언니?? 정말 죽으려 하는 것이오?? 최근들어 왜이리 극단적이오. 극단적인건 나 하나면 충분하잖소?"온부인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손에 쥔 비파는 잔잔하게 튕겨져 은은하게 알현실을 감싸고 있었다."나는 돌아가려는 것 뿐이다. 인간도로. 내가 궁주로서 금향궁의 모두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정원랑께서도 기다리고 계신다. 나라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입은 은혜가 크구나.""하, 하지만 남궁 오라버니는..."팅!불협화음으로 들리는 비파의 한 음이 불안하게 알현실을 울렸다. 온부인이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온몸으로 증오감과 분노가 흘러내렸으니 화폭 위의 그림같던 중선의 표정이 긴장에 굳어졌다."그 이야긴 하지말거라. 듣기도 싫구나.""언니..."깊게 소리치고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바깥 창을 바라보는 온부인. 순간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 가슴 속을 후벼파는 듯한 마음의 통증을 느껴 오른손이 절로 가슴을 가렸다."그래. 아직도 나는 그를 잊은 적이 없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 하지만 왜 하필 내가 아니었던 것이지? 어째서 그는 나를 얄팍한 의리 하나로 버려버릴 수가 있단 말이냐? 어째서... 어째서 사랑보다 우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지? 남자들은 모두가 그런 것이냐? 남자들은... 남자들은!!"온부인의 언성이 높아졌다. 화중선은 그녀의 아픔을 알기에 그저 입을 굳게 닫을 뿐이었다. 그 무슨 이야기를 한들, 무슨 위로가 되겠냐마는, 그토록 냉정을 유지하던 온부인의 가슴 속부터 터져나오는 지난 날의 고통에 사무치는 모습을 보고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온부인이 화중선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모든 남자들은 모두 남궁... 난가자와도 같은 것이냐??""언... 니.중선의 어깨에 올려진 온부인의 손은 힘이 들어가있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담겨있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온부인의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중선은 고개를 떨궜다."......미안하구나. 이러고도 명색이 궁주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온부인은 조용히 심호흡하고 중선의 어깨를 잡은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 비파를 움켜쥐고 대여섯번의 현을 튕겨 구슬픈 음을 만들어냈다."내일 무림대회는 금향궁이 주인공이 아니다. 당문이다. 그러니 그리 알고 있거라. 만약 최악의 수가 대회 중에 보인다면 중선아. 너에게 뒷일을 맡기마."화중선은 평소처럼 분위기를 금방 바꾸었다."알겠소. 언니의 뜻은 잘 알겠으니 맡겨주시오. 부디... 부디 내일은 큰 수고가 없기를...""그래."그리 이야기 하고서 화중선은 아지랑이처럼 모습을 감췄다.온부인은 그녀가 떠난 후, 구슬프고, 사연이 깊은 음색을 비파를 통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파 연주는 알현실을 가득메우다 못해 창을 통하여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메마른 바람이 그 선율을 이끌고 잔잔하게 퍼뜨렸다.그러다 이윽고 궁에 거의 다다른 용상과 조활이 비파연주를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살폈지만 고요한 분위기가 사뭇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져 어색했다."스... 스승님. 어째서 이리 슬픈 음색을..."용상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본 조활은 아무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불안은 접으시오, 누님. 내가 있소."그런 조활을 바라본 용상은 어느새 불안함이 사그러들고, 안정감이 들었다.' 신기하구나. 그냥 손만 잡았을 뿐인데, 스승님의 구슬픈 음색으로 불안해진 마음이 눈 녹듯 편안해지다니. 조 동생은 어디서 이런 재주를 익힌 것일까? 아니면... '용상은 조활의 눈을 바라보았다. 스승이 자신에게 말했던, 어떤 한 마디가 떠올랐다.' 상아. 너를 불안에서 구원해주는 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아주 소중한 감정이란다. 잊지말거라. 너는 분명,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란다. '용상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안정되었던 심장이 살살 뛰기 시작하자 가슴에 손을 가져가 그 고동을 만끽했다.스승님의 말이 옳았다.' 이것이 사랑... 이라는 것이구나. '용상과 조활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뭐가 그리 웃기시오?""그러는 너도 웃고 있지 않아?""이건... 누님 얼굴 표정이 웃겨서 그렇소.""풉. 나도 마찬가지다. 조 동생의 얼굴이 워낙에 못생겨서 절로 웃음지어지는구나."외모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뒷걸음질 치는 조활."이, 이제와서 얼굴 타령이오?"뒷걸음치는 반응을 보고 그의 약점을 건든 것 같아 미안했지만, 이제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둘은 이미 너무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기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핫! 농이다. 농. 나는 여전하다. 사람에게는 외모보단 심성이고, 깊고 신중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다. 그래서 널 고른거야."조활의 얼굴 표정이 익살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마저도 용상에게는 애틋했다."하하!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고백이오."조활은 용상의 손을 사뿐히 감싸쥐고 휘날리는 가녀린 머리칼을 소중히 쓸어내렸다."고맙소, 누님.""......네 시선이 따갑구나. 어, 어서 가자."조활은 그녀의 수줍어하는 미소를 보고는 같이 나란히 금향궁 알현실로 걸어 들어갔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당문 조활. 궁주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용상은 조활을 온부인 앞으로 위치시켰고, 조활의 곁에서 벗어나 온부인의 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때, 알게모르게 풍겨온 둘의 잔잔한 분위기에 온부인은 조활, 용상. 둘을 바라보다가 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 것을 느낀 용상은 속으로 뜨끔했다.' 스승님 표정이 좀 이상한데... 왜 이리 뚫어져라 쳐다보시는 거지......? '.....' 상아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구나. 그런데 이 향은... 독향? 아니, 좀 다른데... 당문지기들과의 생활 덕인건가...... 뭐지, 이 그립고 익숙한 향은......? '온부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평소와는 확연하게 다른, 용상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었고 그 덕에 그녀에게서 나는 향을 어림잡아 예상할 수 있었다. 온부인의 한 쪽 온화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호라...... '무언가 기분 좋은 분위기를 감지한 온부인이 용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런 온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용상은 두 눈을 질끔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때 온부인은 손에 든 비파의 현을 한 가닥, 짧게 튕겼다.팅."상아."용상이 놀라며 답했다."네, 네! 제자 용상, 스승님의 부름을 받듭니다!"온부인이 굳은 얼굴 표정으로 용상에게 말했다."잠시 나가 있거라. 나는 내일있을 무림대회에 대해 조 소협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두, 둘이서요?"온부인은 표정하나 흐트러짐 없이 용상을 보았다. 용상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즉시 깨닫고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없이 조활을 스쳐지나가며 여운을 흩뿌리고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갔다. 용상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고 둘 뿐인 알현실은 고요했다. 온부인은 나지막히 고요한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조 소협."조활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예. 말씀하십시오."조활 역시 흔들림없는 모습을 보였고, 온부인은 흐뭇한, 육안으로는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말했다."지금 할 이야기는 본래 그대와 하려던 것과는 관련없는 주제를 잠시 짤막하게 할 것인데, 혹여나 폐가 되겠소?"조활은 알현실에서의 온부인의 태도를 간파해냈고, 그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상관 없습니다. 이곳의 주인은 궁주이십니다. 후배가 감히 예상컨데, 당문에 대한 질문은 아닐 것 이라 생각됩니다만. 연관없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마 중요한 사실을 궁주께 들킨 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후후. 당연히 중요한 사실이오. 나에게는 말이지."의외로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조활의 태도에 온부인은 속으로 감탄했다. 속으로 웃음까지 지어질 정도였다. 겉모습은 그저 눈을 감고 생각하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속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좋소.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조 소협께서는 결국 상아를 취하셨구려."....조활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입을 열었다."......그렇습니다.""......"온부인은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 소협은 다시보니 신중함도 갖추었고, 대담함도 겸했으며, 들리는 이야기로는 무공까지 조예가 깊은 자로다. 내가 감히 그 깊이는 알 수 없으나, 무공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그가 가진 능력은 상반되는 것이 많으니, 상아와는 정말 좋은 인연이 되겠어. 이게... 부모의 마음... 이려나? '용상의 선택에 온부인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생각하고는 조활의 모습을 좀 더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로지 흠이라면 그의 외모지만, 내가 상아를 가르친 보람이 이런 곳에서 발휘되는 구나. 외모로만 판단하는 속된 마음가짐은 불구대천의 원수요, 피해야할 덕이로다. 그러니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빈틈없이 심사숙고하여 사람을 사귀는데 한치 앞을 허투루하지 말지어다. '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두 눈을 감고 심호흡할 뿐 이었다.' 나조차도 그의 외모를 처음 보고 당황했으나 상아의 눈은 정말 탁월하구나. 가끔은 순수한 상아의 시선이 부러워지는군. '온부인은 감았던 두 눈을 떠 조활과 시선을 마주했다. 조활도 그리 강심장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긴장에 가득찬 시선을 보일 뿐이었다."나는 상아의 어미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위치라는 것을 스스로가 자부하고 있소. 비록 어린 나이에 금향궁에 귀의하고 수련했지만, 나에게는 하나 뿐인 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소. 그런 상아에게 사내라니.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해야겠습니다."조활은 고개를 숙여 온부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뿐이었다."나는 과거, 상아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소."조활이 물었다."어떤 이야기를...?"온부인의 비파의 현이 짧게 튕겨지고, 그의 물음에 답하기 시작했다."어느 날, 상아가 말하더이다. 상아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조활은 알게모르게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허나 그대를 만나고 나서는 마음이 많이 바뀐 모양이군요. 불문율이라고. 본 궁에게 감히 호언장담까지 한 아이 이거늘. 대체 어찌한 것이오? 어찌하여 상아가 조 소협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오?"조활은 침을 꼴딱 삼키고 무슨 말을 먼저해야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어떻게든 되겠거니 조활은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여지없이 말하기 시작했다."후배는 외모가 출중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모습에 의심되는 것은 없습니까?"온부인은 조활의 과감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상당히 자신감 있군요. 좋습니다. 조금 센 수위로, 어미된 자로서 그대의 의중을 떠보겠으니, 혹여 당문의 달콤한 독향이나 단을 먹여 세뇌라도 했다... 고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소?"생각보다 수위가 센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당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발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금향궁의 궁주이기 이전에 용상의 어머니였다. 딸 인생의 반쪽을 차지하는 사내를 고름에 있어서 이는 매우 정당한 처세라고 생각하는 조활이었다."생각은 자유입니다만 당문의 명예를 걸고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후배는 진심으로 상 누님을 연모하고, 그녀 또한 저를 사랑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맺어진 것이지요. 저희 둘 사이에는 이미 이견이 없습니다. 재차 확인했습니다. 본 후배는 상 누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도 저를 사랑합니다."온부인은 그런 그의 모습이 그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지난 과거를 살펴보았을 때, 이토록 가슴 뜨거워지는 사랑을 했었던가? 이토록 완벽해보이는 사랑을 찾았던가? 자신이 찾고 헤메던 가장 완벽한 사랑이 눈 앞에 있기에 가슴이 뛰고 설레며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아... 부럽도다. 부럽도다. 난가자... 남궁원... 이 빌어쳐먹을 겁쟁이... 내가 원하던 진정한 사랑이 멀리있어 나를 찾지 못하였다고만 느껴왔거늘, 이리도 가까운 곳에 가장 해답다운 해답이 존재하고 있었을 줄이야... 부럽구나. 부럽구나, 상아... '온부인은 끓어오르는 가슴을 잡지도 못한채 궁주로서의 위엄을 지켜야했기에 두 눈을 부릅뜨고 조활을 바라볼 뿐이었다."좋소. 이정도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얕은 생각이긴 하지만, 본 궁은 상아의 안녕을 위해 움직일 것이니."온부인은 짧게 비파의 현을 튕겨내 은은한 음을 울려퍼뜨리고 입을 열었다."앞으로도 부디 상아를 잘 부탁하오."조활은 그저 궁주의 부탁에 무릎꿇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가, 감사합니다! 그... 그러니까... 장... 모님이라고...?"흠칫.한 쪽 눈썹이 떨리는 온부인. 목소리가 떨려왔다."그, 그, 그건 나중에, 나중에 부탁드리오. 이자리에서는 부디 삼가바라오.""아... 하하. 알겠습니다."조활은 꿇은 무릎을 펴 자리에 일어섰다."그럼 상 누님의 이야기를 하자고 부르신 것은 아닐테고... 이제 슬슬 본론으로 가시겠습니까?"온부인은 튕기던 비파를 가볍게 옆에 두고 사뭇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조활은 갑자기 무겁게 흐르는 분위기에 슬슬 압도되기 시작했고, 온부인의 당황함은 어디론가 사라진채 매섭게 조활을 쳐다보기 시작했다.조활은 너무 무거운 주제로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고는 입에 모여있던 침을 꿀꺽 삼키고 온부인의 움직이는 입과 눈에 집중했다.이윽고 온부인의 입이 떨어졌다."조 소협.""예. 궁주님. 말씀하시지요."온부인은 잠시 차분히 두 눈을 감고 무겁게 뜨기를 두 어번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부디 진지하게 본 궁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라오. 이는 금향궁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나 상아에게만큼은 가르치지 않은 진실이니, 부디 그녀에게는 무림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함구하길 부탁드리오."조활은 얼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진실이길래 상 누님에게까지 비밀이라 하시는지...? 게다가 지금 하시는 발언은 제가 감히 들어도 되는, 그런 중요한 이야기라도 되는 것 입니까?"온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조활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하는지 당최 예상이 되지 않았다. 금향궁에서 용상의 위치가 그리 가벼운 자리는 아닐지언데 그녀를 일부러 따돌리는 듯한 느낌의 진실. 그 진실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이리 진중하고 무거운지 알 수 없었다. 조활의 표정은 불안함에 찌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 곧 조활은, 이어지는 온부인의 이야기에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우리 금향궁은 니교이며 축생(畜牲), 수라(修羅), 아귀(餓鬼), 지옥(地獄), 천(天)과 함께 하는, 현 무림계 공통의 적. 인간도(人間道)라오."......."......예?"망우협려전(忘憂俠侶傳) (8). 끝.
* 저는 연재소설 게시판에서 개인작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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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작과 활협전 팬픽을 번갈아 연재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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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순서는 월영전입니다. 개인 소설은 현재 수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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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