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뭔가 좀 이상했다.
구름은 스멀스멀 바람은 스산하지
푸르던 파란 하늘은 어디를 갔는지
불길한 일이라도 일어날 듯이 잿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태풍의 영향으로 당분간 비가 계속 온다나 뭐라나
아무튼 비가 쏟아지기 전에 하루 트레이닝 분량을 끝마쳐야
테이오도 안심하고 쉴 수 있으니
"오늘은 적당히 하고 후딱 끝내볼까!"
하며 운동장으로 나갔지만
연습시간이 다 되어도 테이오의 모습은 커녕
테이오의 털 한 줌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땡땡이인가?
평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어쩌면 새로운 타입의 장난일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테이오가 있을 법한 장소를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트레이너 실.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열린다.
테이오가 자주 와서 놀긴 하지만
여기는 엄연히 내 개인 공간.
문을 세게 열든 약하게 열든
쥐 잡듯이 뒤지든 내 맘이라는 말씀.
그렇게 경악한 테이오의 얼굴을 기대하며
트레이너 실을 보았지만
"자, 테이오 얌전히 트레이닝에..?"
없다.
어라?
이건 생각 못했는데
설마 학생회실에서 놀고 있는건가?
철두철미한 루돌프가 트레이닝을 하지 않고
땡땡이를 치는 테이오를 방치할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생회실로 발을 옮겼다.
똑똑.
아쉽지만 학생회실은 내 공간이 아니니
큰 소리로 여는건 무리다
애초에 민폐기도 하고
잠시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창문을 보니
빗방울이 하나 둘 흔적을 남겨가고 있었다.
아.
오늘 트레이닝은 물 건너갔구만.
비 때문에 못하는 거니 건너가지는 못하나..?
...
좋지 않다.
아무리 루돌프가 있는 학생회실이라고 해도
이런 아재개그를 생각하고 있다가는
무심코 테이오에게 얘기해버리는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루돌프라면 웃어줄지도 모르지만
테이오는..
아마 상당히 구겨진 얼굴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좀 늦네.
학생회 일이 바쁜가..?
노크를 하고 시간이 꽤 지났지만
문이 열린다거나 "들어오도록" 같은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 일이 바쁜거면 어쩔 수 없지 라며 돌아가려는 찰나,
"무...무슨일이지?"
에어 그루브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급하게 문을 열며 나왔다.
어랍쇼?
일이 그렇게나 바빴던건가
이거 참 그런거면 미안한데
"테이오의 트레이너인가..혹시 회장님을 찾는 거 라면 지금은 부재 중이시다."
이내 침착함을 어느 정도 회복한 에어 그루브는 뜻 밖의 말을 했다.
"아니. 루돌프를 찾는건 아니고 테이오가
혹시 여기 있나 해서 와봤는데..여기도 없구나"
이번에도 허탕인가
다음은 또 어디를 찾아봐야 할까
고민하며 학생회실을 나서던 도중
"아아, 그런거였나..
뭐? 테이오도..?"
속썩이는 조카 얘기를 하듯 말하던 에어그루브는
갑자기 한 박자 늦게 당황한 목소리로 테이오를 찾았다.
"뭔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에어 그루브가 당황하는 건 루돌프의 3연속 아재개그가 아니라면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걱정스레 질문을 던졌다.
"아,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된다."
뭔가 에어 그루브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지만
창 밖을 보니 한두 방울 정도 떨어지던 비는
빗물이 이리저리 거칠게 휩쓰는 소나기가 되어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럼 혹시 테이오를 본다면 일단 오늘은 쉬라고 전해줘!"
"그래, 그러도록 하지."
에어그루브와 대화를 적당히 끝마치고 다시
테이오가 있을 법한 장소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시계----------------
이 정도면 테이오가 갈 장소는 다 가본 것 같은데...
물론 테이오는 커녕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녀석, 그렇게 트레이닝이 하기 싫었으면 말이라도 하지.
오늘은 어쩔 수 없나..
결국 찾을 수 없었던 테이오
오늘 분량은 나중에 어떻게 해야지 하며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펼치고
트레이너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찰나
시야에 맥퀸이 들어왔다.
"테이오의 트레이너씨?"
"맥퀸..!"
트레이너의 식어가던 컨디션이 절호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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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그런 거였나요
정말이지 테이오는 손이 많이 간다니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맥퀸의 이젠 익숙하다는 말투를 들으니 역시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익숙한 건 둘째 치고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오는 비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그건 그렇고 이젠 정말 기숙사에라도 돌아와야 할텐데.."
"어머나, 아직까지 안 들어왔다는 건가요?"
"응. 키세키에게 물어봐도 아직 안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하루 정도 땡땡이 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지금까지 안 돌아오는건 뭔가 걱정된단 말이지..
하필이면 지금 비도 많이 오는데"
"....."
"트레이너씨, 딱 한 군데 생각나는 곳이 있기는 있사와요"
비 얘기를 하니 잠시 동안 침묵하던 맥퀸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
뭐지.
설마 맥퀸마저 테이오에게 이미 매수당했던 건가..?
아니 그렇다면 이렇게 알려줄리가 없겠지
"혹시 가실거라면 한 가지만 약속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엉?
갑자기 왠 약속?
이거 뭔가 거창한 일이라도 하는거였나
"뭐..뭔지는 몰라도 테이오를 데리고 올 수만 있다면야.."
"약속할게"
일단 테이오가 걱정되었기에
의심가는 일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후..그러면 절대 테이오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말아주세요.."
뭐시라
뭘 하길래 그 맥퀸이 이렇게까지 신신당부를..
못 봤지만 벌써부터 놀라운데
하여튼 맥퀸의 당부를 듣고 테이오가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저 멀리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테이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렇게 비오는데도 기운차다니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하지만 이제 곧 통금시간이니 언제까지나 놀 순 없으니
슬슬 테이오를 돌려보낼 시간이다.
"테이오!! 이제 그만 놀고 들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보이던 테이오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테이오..?"
우산같은건 진즉 던져버리고
몸은 테이오의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트레이...너?"
울음섞인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테이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내가 너무 늦은건가?
아니면 저번에 뭔가를 잘못한건가?
여러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하려는 찰나.
니시시시하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계인대염에 걸린 맥퀸 흉내!"
뭐?
내가 뭘 잘못 들은걸까?
그렇게 망치에 맞은 듯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테이오는 "물의 테이오 스텝이야!" 라고 외치며
물 뭉덩이를 마구마구 밟으며 내 얼굴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풍덩 풍덩 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 무참히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저 멀리 있던 맥퀸의 얼굴을 보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맥퀸이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너무 많은 물에 젖고 나서야 깨달았다.
체념하고 물을 계속 맞다가
물을 뿌리는 것에 질린듯한 테이오가
또 다시 테이오 스텝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일단 머리를 싸매고 있는 맥퀸에게로 향했다.
"트레이너 씨, 보시는 대로 저희 우마무스메는
비가 올 때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답니다..."
"그거 사람이랑 비슷하네.."
"그리고 그 증세는 비가 많이 오면 많이 올 수록 심해져요"
"그건 보면 알아"
기진맥진한 상태로 맥퀸과 대화하니 수수께끼는 풀렸지만
테이오의 현재 상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이제 어쩐다.."
솔직히 아무것도 생각나지는 않지만
일단 말해봤다 어쩌면 좋지 정말
"비가 그치기 전까지는 아마 계속 저럴 거에요.."
맥퀸의 사형선고에 가까운 발언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새로운 충격은 소리로 다가왔다.
"오래돼서 마실 수 없는 물은?"
"고대 유물!"
그건 아재재그를 속사포로 뱉어내고 혼자 웃고 있는 루돌프였다.
맥퀸도 나도 이젠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공원에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익숙한 우마무스메가 들어왔다.
전력질주라도 한 듯 땀범벅이 된 에어그루브였다.
광란의 아재개그와 테이오 스텝을 하는 루돌프와 테이오의 모습을 보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지만
미안. 에어그루브.
이미 늦었다.
에어그루브가 주저앉은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아..
진짜 어쩌면 좋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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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그루브의 컨디션이 최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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