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의 도마 도읍지.
율재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일까. 많은 아이들이 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떠들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 하지만 거기서 험한 말이 나오자 유우기리는 문득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다.
'그건 제국 장군에게 베인 상처였어!'
'아니거든, 사람을 해친 호랑이를 물리쳤을 때 발톱에 할퀸 거야!'
아무래도 히엔의 뺨에 난 십자 상처에 대해 말다툼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부 근거 없는 소문이라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제천대성이랑 승부했을 때라니까!'
대룡산맥 깊은 곳에 산다고 하는 환수와 승부라니, 생각지도 못한 진기한 이야기다.
뭐, 완전히 무관계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아쉽지만 역시 다르다.
그 상처는 ─ 유우기리는 옛날 일을 떠올렸다.
*-*-*-*-*-*-*-*-*-*-*-*-*-*-*-*-*-*-*-*-*-*-*-*-*-*-*-*-*-*-*-*-*-*-*-*-*-*-*-*-*-*-*-*-*-*-*-*-*-*-*-*-*-*-*-*-*-*-*-*-*-*-
유우기리가 아직 스이 마을에서 살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을 시절.
마을 규정에 따라 바깥과 접촉이 금지되었지만, 그녀를 시작으로 호기심이 왕성한 스이의 아이들은 가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지상까지 놀러 나왔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게 도마 도읍지를 보러 가지고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나갔지만 거기서 본 것은 책에서 자주 본
활기 넘치는 마을이 아니었다. 싸움으로 반은 파괴된 모습이고 어깨로 바람을 가르며 걷는 시커먼 제국병뿐.
이 압정자들에 의해 사람들이 폭행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겁이 난 아이들은 얼른 달아나기로 했다.
그때 유우기리는 돌아가던 중 아이들을 놓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얀샤의 울창한 대나무 숲에 숨어들어 운명의 만남을 이룬 것이다.
그 소년은 작은 체구에 맞지 않는 거대한 목도를 들고는 일심분란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폭포처럼 땀을 흘리면서 단련을 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낯선 곳에서 미아가 된 불안감은 신기하게 사려지고 호기심이 솟았다.
그녀는 무심결에 말을 걸었다.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도 소년은 전혀 놀라지 않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수행이다. 힘이 없어서는 싸우지도, 지키지도 못하니까!'
'어린애인데 뭐랑 싸워? 뭐를 지켜?'
그 물음에 소년은 겨우 목도를 내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여기에 사는 사람이 아니군. 난 리진의 슌, 도마의 사무라이다. 사무라이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
이를 위해 이렇게 힘을 기르는 것이다.'
슌이라 이름을 댄 그 소년이 바로 후일 유우기리가 섬기게 되는 히엔이다.
그는 유우기리가 스이 사람인 것을 알고 친절하게 홍옥해 해변까지 데려다줬다.
그렇게 그녀는 무사히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날의 일은 항상 머릿속에 남았다.
제국병이 찾아온다면 싸울 방법이 없는 스이 사람들은 순식간에 유린당하겠지.
나도 힘을 길러 고향을 지켜야 해─
그런 생각이 든 유우기리는 슌의 수행장으로 가 그를 따라 목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두 사람은 '수행'을 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며 이윽고 휴식을 핑계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 같이 노는 일도 늘어났다.
유우기리가 마을에서 유행하는 '사방치기'를 알려주니 슌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스이 마을에서는 매일같이 이렇게 논다고 알려주니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 반응을 보고 제국 지배하의 도마에서는 아이들도 느긋하게 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슌에게는 이 대나무 숲만이 감시자의 눈이 닿지 않는 자유로운 장소였던 것이다.
어느 날 대나무 숲에 가니 웬일로 슌이 목도를 들지 않고 앉아서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유우기리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며칠 전부터, 제국 침공으로 반파된 도마성을 속주 총독부로서 이용하기 위한 복구공사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강제노동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밤낮없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이어지는 중노동으로 쓰러진 자들이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제국군은 무정하게
사람들을 쓰고 버린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슌은 자신의 아버지인, 도마의 전 군주이자 지금은 속주 부총독을 맡고 있는 카이엔에게
강제노동의 중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제국 지배 아래 꼭두각시로 어떤 권한도 없는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공사가 끝날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을 들은 것이다. 슌은 제국군과 싸워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카이엔은 조용히 타일렀다.
'눈앞의 현실만이 아닌 대국을 보거라.'
그는 아버지의 괴로운 입장을 알았기에 그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지만, 유우기리의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도마의 사무라이로서 지금 당장 모두를 구하고 싶은 거야!'
슌의 눈에서 큰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이를 숨기고자 허둥대며 등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은 해도, 무력한 아이에 지나지 않은 자신은 더욱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스스로의 무력함이 분하다.
유우기리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침묵의 때가 잠시 지나고,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올려다보는 슌이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수행을 하지 않고 미안하지만 오늘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유우기리는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슌이 그렇게 울분을 터뜨리며 포기할 소년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것이란 직감으로 그의 뒤를 몰래 쫓았다.
예상대로 슌은 집이 있는 마을로 가지 않고 어째선지 폐허가 된 무인강 유역으로 걸음을 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간엔 묘. 도마의 시조이자 슌의 선조인 인물을 모시는 영묘다.
종교 행사를 혐오하는 제국에 의해 입구를 막고 있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슌은 그들의 눈을 피하고자 그림자에 숨겨진
문을 열고 영묘의 안으로 들어갔다. 가문에게 전해진 뒷문이었다.
유우기리는 의문을 품으면서 거리를 둔 채 슌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얕은 어둠과 곰팡내가 나는 영묘의 통로를 지나니 안쪽에서 둔한 금속음이 울렸다.
철컹... 철컹...
슌은 재빠르게 기둥 그림자에, 당황하던 유우기리도 가까운 징의 그늘에 몸을 숨겼다.
곧 이어 어둠 속에서 강철의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주를 심핵으로서 이용한 무장 자동기계 인형, 키요후사다.
괘씸한 침입자들에게서 영묘의 보물을 수호하기 위한 존재가, 지금도 역할을 하고 있다.
슌은 숨을 죽이고, 유우기리는 떨림을 억누르며 거구가 물러나길 기다렸다.
이윽고 키요후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니 슌이 기둥에서 나와 기세 좋게 내달렸다. 유우기리도 다시 그를 놓치지 않도록
허둥대며 뛰쳐나오다 ─ 요란하게 징을 쓰려뜨렸다.
통로에 굉음이 울려 퍼진다.
이렇게 되면 주변의 키요후사가 돌아오는 것이 분명하다. 침입자를 발견해 대검을 들어 올린 키요후사를 보고
유우기리는 놀라 꼼짝할 수 없었다.
죽는다...!
죽음을 각오한 유우기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귀를 찢는 듯한 금속음이 울리고는 두려웠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거기엔 내려친 대검을
받아내는 소년의 등이 있었다.
검을 받아내면서 슌이 외쳤다.
'유우기리, 피해!'
유우기리는 거의 기어서는 어떻게 거구에게서 벗어났다.
힘싸움으로는 키요후사에게 당할 수 없어 어떻게 옆으로 대검을 넘겼지만 연거푸 날아오는 검격에 겨우 방어했다.
뒤로 날려져버린 슌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선혈이 흘렀다. 뺨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절체절명이다.
하지만 그를 버릴 수 없었다.
방금 키요후사가 대검을 휘두른 직후, 그 무거움에 휘청였다.
대검이 닿기 직전에 피하면 상대에게 순간적인 틈이 생긴다!
망설일 틈이 없다, 그는 내기를 걸었다.
대담하게 키요후사의 공격 범위에 뛰어들어 휘두르는 것을 유도했다.
'지금이다!'
공격이 오는 것을 안다면 피할 수 있다.
슌은 키요후사의 검격을 벌써 피했다. 다시 캍 끝이 이마를 스쳤지만, 대검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찢은 직후
그는 완벽히 상대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적의 몸이 휘청일 때 슌은 침착하게 뽑아 수행한 대로 꽂았다.
심핵이 부서진 키요후사는 균형을 잃고 굉음을 내면서 쓰러졌다.
고개를 든 슌의 뺨에는 새빨간 십자가 새겨져 있었다.
'유우기리, 도망치자!'
승리의 여흥에 잠겨있을 순간도 없이 슌은 유우기리의 손을 잡고 쏜살같이 뛰었다.
순찰하는 키요후사는 보이지 않았다.
슌과 유우기리는 영묘의 입구에 도달하고는 주저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살았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릴 때,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섰다.
간엔 묘를 경비하는 제국병이었다.
'너희들, 어떻게 왔지!? 영묘의 출입은 금지다! 위반자는 처형한다는 총독령을 모르진 않겠지!'
겁이 나 굳어버린 유우기리를 감싸며 슌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전부 내 책임이다!
처형할 거라면 나로 끝내고 이 아이는 용서해줘!'
그렇게 간청하며 슌은 무릎을 꿇었다.
'꼬맹이 주제에 배짱은 좋군...'
칼을 뽑고 자세를 취한 제국병을 보면서 유우기리는 울지조차 못했다.
자신의 실태로 소중한 친구가 처형당한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마음만이 맴돌아 눈물이 흘러넘쳤다.
'기다리게, 이 아이는 부총독의 장남인데 처형할 겐가?'
거기엔 당시 리진 가문에서 일을 하던 거한의 사무라이 고우세츠가 있었다.
슌의 정체를 알고는 놀란 제국병들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죄를 물어야 한다고 반론했다.
'그렇다면 경비 책임을 맡으면서 아이들을 막지 못한 그대들의 죄도 물어야겠군.'
고우세츠의 그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제국병은 봐주는 건 이번뿐이라며 내뱉고는 두 사람을 풀어줬다.
'도마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제천대성의 힘을 빌리고 싶었어.'
간엔 묘에 들어간 이유를 고우세츠가 물으니 슌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니 거한의 사무라이는 팔짱을 끼고는 절절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제천대성은 이름난 대환수.
그 힘이 있으면 성의 공사에 동원들 자들을 구할 수 있지.
하지만 그 후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슌이 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우세츠는 말을 이었다.
'강제노동에서 벗어난 자들은 더욱 혹독하게 억압당하는 것이 필연.
슌 도련님이 구해준 자들에게 그런 각오가 있을까?
일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다음을 내다보아야 하오.
카이엔님이 말한 '대국을 보거라'는 그런 뜻이오.'
묵묵히 고개를 숙인 슌을 보고 유우기리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슌은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줬어! 그러니 이제 용서해줘!'
자초지종을 말하는 소녀에게 고우세츠는 귀를 기울였다.
'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친구를 구한 것은 훌륭하오.
그 마음가짐을 보고 이번에는 이걸로 그만하도록 하겠소.'
이후 머지않아 도마성의 공사는 끝이나 사람들은 강제노동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대나무 숲에서 단 두 명의 수행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슌이 고우세츠에게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대로였어. 제국과 싸우기에는 아직 일러. 도마의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소년은 자조하는 기색으로 미소를 짓고는, 다시 표정을 고치며 선언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도마를 스이 마을처럼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
반드시 해내겠어!'
'나도, 나도 도와주고 싶어!'
무심코 유우기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기다릴게!'
그렇게 어린 소년과 소녀는 헤어졌다.
그들이 재회한 것은 몇 년 뒤의 일. 그때 유우기리는 '숨은 마을'에서 기술을 익힌 닌자로, 히엔은 한 사람의 사무라이로.
*-*-*-*-*-*-*-*-*-*-*-*-*-*-*-*-*-*-*-*-*-*-*-*-*-*-*-*-*-*-*-*-*-*-*-*-*-*-*-*-*-*-*-*-*-*-*-*-*-*-*-*-*-*-*-*-*-*-*-*-*-*-
어느샌가 아이들은 말다툼에 지쳤는지 사방치기를 하고 있다.
거기엔 아이들이 웃고 있는 나라가 있다.
'사방치긴가? 나도 함께 하지!'
십자 상처를 가진 사무라이가 나타나 아이들 무리에 섞인 모습을 보고 유우기리는 미소 지었다. 그날의 소년은 분명 약속을 지켰다.
원문 : https://jp.finalfantasyxiv.com/lodestone/special/tales_from_the_twilight/
----------------------------------------------------------------------------------------------------------------------
일반적인 확장팩 발매 주기에 따르면 올 여름에 여명비화 1~4화가 나왔겠지만
코로나로 확장팩 발매가 연기되자 이런 형식으로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