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갈량
촉의 재상. 이 사람이야 긴 말이 필요없습니다.
연의에서 과장된 것이 많긴 하지만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죠.
2. 허정
촉의 유능한 행정관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
촉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모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는 허정을 태부에 임명했고, 허정은 촉 내부 행정을 갈고 닦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위나라의 왕랑, 화흠, 진군과도 꽤 친한 사이라 개인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허정은 나이 70을 넘었지만 인물을 사랑하여 후진들을 받아들이고, 청담을 논의하면서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승상 제갈량 이하 모든 이들이 그를 존경했다.(정사 허정전)
3. 이적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 교류했었고, 유표가 죽자 바로 유비를 따라간 인물이자 재능과 언변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유비가 익주 평정 후 이적을 간옹, 손건과 맞먹는 대우를 해줬을 정도니까요.
나중에 제갈량, 유파, 법정, 이엄과 함께 촉의 법률인 '촉과'를 만들었습니다.
4. 유파
촉을 대표하는 행정관 중 한 명이지만 그 이전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영릉군 출신인데, 유표가 그를 여러 번 초빙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자 조조에게로 갔습니다.
조조는 그를 받아들이고 영릉, 계양, 장사를 귀순시키게 했는데, 유비가 이 세 군을 점령하자 유파는 그대로 교지를 거쳐 촉군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유비가 촉을 점령하자 유파는 유비에게 사죄했고, 유비는 유파를 초빙해서 등용했습니다.
지위는 상서령까지 올라갔는데, 청렴하고 공손하고 과묵한 성격이라 공적인 일 이외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파가 죽은 후, 위의 진군이 편지를 보내 유파의 소식을 묻자 제갈량은 유파를 경의를 담아 유군자초라 칭하면서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5. 동윤
동화의 아들이자 매우 엄격하고 공정한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제갈량이 북벌에 나섰을 때, 유선의 나이가 어려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할 걸 걱정해서 동윤에게 궁궐의 일을 맡겼습니다.
후에 유선의 후비 수가 열둘을 넘지 않았고, 비인도 채워졌으므로 더 늘리는 건 마땅치 않다면서 유선의 부탁을 거절한 일도 유명합니다.
때문에 유선이 동윤을 매우 어려워했고, 간신 황호도 동윤을 두려워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설치지 못했습니다.
6. 진지
허정의 형의 외조카이자 천문과 역학에 뛰어났습니다.
때문에 비의는 그를 높이 여겨서 동윤이 죽은 후 그로 하여금 동윤의 뒤를 이어서 유선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지는 위로는 황제에게 아부하고, 아래로는 환관이나 소인들과 사귀어서 촉을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유선과 황호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 것도 이 진지란 작자죠.
7. 여예
공정함과 엄격함에서 동윤 못지 않다는 평을 받는 인물입니다.
제갈량이 북벌할 때 병사들이 화합하지 못하자, 여예는 5천을 이끌고 이들을 위로하고 엄격하게 관리해서 내부 불화를 사전에 막았습니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는 달아났던 병사들이 들어와 다른 사람의 호적 등을 빌려 쓰는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여예는 그것에 대한 방지책을 철저하게 실행해서 이를 근절했습니다.
정치적인 사무에서도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청능(淸能)이라 불렸고, 법률을 지키는 거에 매우 엄했습니다.
8. 왕련
남양군 출신이고, 유장이 촉을 다스리던 때에 촉군으로 들어가 현령이 되었습니다.
촉 평정 후에는 부임하던 곳마다 공을 세웠고, 소금과 철의 이익금을 관리해서 국가의 재정 상태를 크게 도왔습니다.
인재 보는 안목도 뛰어나서 유능한 자들을 직접 뽑기도 했는데, 여예, 두기, 유간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하려 할 때는 "남방은 풍토병이 많은 곳입니다. 한 나라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간언하기도 했습니다.
9. 상랑
제갈량의 출사표에 언급된 상총의 아버지이자 유능한 행정관입니다.
유표를 섬기다가 유표가 죽은 후 유비에게 갔는데, 유비는 형주를 평정한 후 그에게 4개 현의 관리를 맡겼습니다.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할 때는 후방의 일을 처리했고, 직책을 떠난 후에도 전적 연구에 전념한 열성파였습니다.
80이 넘어서도 직접 서적을 교감하면서 오류를 고쳤고, 소장한 책의 양이 당시 촉에서 가장 많은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10. 장예
촉군 성도 출신이고, 실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민첩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유비 시절에는 농기구와 무기 제조 관련 행정을 맡았고, 제갈량 때는 참군을 맡아서 행정 업무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의리도 두터워서 친한 친구가 죽자 그 모친과 아들을 받아들여서 정성껏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생전에 가장 높은 직위를 맡은 게 승상 장사였는데, 이건 승상의 대리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촉의 재상. 이 사람이야 긴 말이 필요없습니다.
연의에서 과장된 것이 많긴 하지만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죠.
2. 허정
촉의 유능한 행정관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
촉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모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는 허정을 태부에 임명했고, 허정은 촉 내부 행정을 갈고 닦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위나라의 왕랑, 화흠, 진군과도 꽤 친한 사이라 개인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허정은 나이 70을 넘었지만 인물을 사랑하여 후진들을 받아들이고, 청담을 논의하면서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승상 제갈량 이하 모든 이들이 그를 존경했다.(정사 허정전)
3. 이적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 교류했었고, 유표가 죽자 바로 유비를 따라간 인물이자 재능과 언변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유비가 익주 평정 후 이적을 간옹, 손건과 맞먹는 대우를 해줬을 정도니까요.
나중에 제갈량, 유파, 법정, 이엄과 함께 촉의 법률인 '촉과'를 만들었습니다.
4. 유파
촉을 대표하는 행정관 중 한 명이지만 그 이전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영릉군 출신인데, 유표가 그를 여러 번 초빙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자 조조에게로 갔습니다.
조조는 그를 받아들이고 영릉, 계양, 장사를 귀순시키게 했는데, 유비가 이 세 군을 점령하자 유파는 그대로 교지를 거쳐 촉군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유비가 촉을 점령하자 유파는 유비에게 사죄했고, 유비는 유파를 초빙해서 등용했습니다.
지위는 상서령까지 올라갔는데, 청렴하고 공손하고 과묵한 성격이라 공적인 일 이외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파가 죽은 후, 위의 진군이 편지를 보내 유파의 소식을 묻자 제갈량은 유파를 경의를 담아 유군자초라 칭하면서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5. 동윤
동화의 아들이자 매우 엄격하고 공정한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제갈량이 북벌에 나섰을 때, 유선의 나이가 어려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할 걸 걱정해서 동윤에게 궁궐의 일을 맡겼습니다.
후에 유선의 후비 수가 열둘을 넘지 않았고, 비인도 채워졌으므로 더 늘리는 건 마땅치 않다면서 유선의 부탁을 거절한 일도 유명합니다.
때문에 유선이 동윤을 매우 어려워했고, 간신 황호도 동윤을 두려워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설치지 못했습니다.
6. 진지
허정의 형의 외조카이자 천문과 역학에 뛰어났습니다.
때문에 비의는 그를 높이 여겨서 동윤이 죽은 후 그로 하여금 동윤의 뒤를 이어서 유선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지는 위로는 황제에게 아부하고, 아래로는 환관이나 소인들과 사귀어서 촉을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유선과 황호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 것도 이 진지란 작자죠.
7. 여예
공정함과 엄격함에서 동윤 못지 않다는 평을 받는 인물입니다.
제갈량이 북벌할 때 병사들이 화합하지 못하자, 여예는 5천을 이끌고 이들을 위로하고 엄격하게 관리해서 내부 불화를 사전에 막았습니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는 달아났던 병사들이 들어와 다른 사람의 호적 등을 빌려 쓰는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여예는 그것에 대한 방지책을 철저하게 실행해서 이를 근절했습니다.
정치적인 사무에서도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청능(淸能)이라 불렸고, 법률을 지키는 거에 매우 엄했습니다.
8. 왕련
남양군 출신이고, 유장이 촉을 다스리던 때에 촉군으로 들어가 현령이 되었습니다.
촉 평정 후에는 부임하던 곳마다 공을 세웠고, 소금과 철의 이익금을 관리해서 국가의 재정 상태를 크게 도왔습니다.
인재 보는 안목도 뛰어나서 유능한 자들을 직접 뽑기도 했는데, 여예, 두기, 유간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하려 할 때는 "남방은 풍토병이 많은 곳입니다. 한 나라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간언하기도 했습니다.
9. 상랑
제갈량의 출사표에 언급된 상총의 아버지이자 유능한 행정관입니다.
유표를 섬기다가 유표가 죽은 후 유비에게 갔는데, 유비는 형주를 평정한 후 그에게 4개 현의 관리를 맡겼습니다.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할 때는 후방의 일을 처리했고, 직책을 떠난 후에도 전적 연구에 전념한 열성파였습니다.
80이 넘어서도 직접 서적을 교감하면서 오류를 고쳤고, 소장한 책의 양이 당시 촉에서 가장 많은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10. 장예
촉군 성도 출신이고, 실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민첩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유비 시절에는 농기구와 무기 제조 관련 행정을 맡았고, 제갈량 때는 참군을 맡아서 행정 업무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의리도 두터워서 친한 친구가 죽자 그 모친과 아들을 받아들여서 정성껏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생전에 가장 높은 직위를 맡은 게 승상 장사였는데, 이건 승상의 대리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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